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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새 계명
https://www.youtube.com/watch?v=L_EMIzP38Xg
요 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지난번 언약에 대한 말씀을 드릴 때 새 계명에 대하여 잠간 말씀 드렸습니다.
새 계명과 옛 계명이라는 것이 있나요?
어떤 분들은 그런 말을 합니다. 새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고요.
옛 계명은 십계명이라고요.
우리 성도님들 생각에는 어떻습니까? 일리가 있는 말씀처럼 여겨집니까?
지난번에 언약에 대한 말씀을 나눌 때 새 언약과 옛 언약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면서 성경에 옛 언약이라는 말씀이 있다고 했습니까? 없다고 했습니까? 없다
옛 언약 말고 어떤 언약이 있다고 들으셨습니까? 첫 언약
그럼 새 계명에 대하여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셨는데 옛 계명이라는 말은 성경에 있을까요? 없을까요? 답은 있다 임, 오늘 아마도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럼 새 계명은 사랑이라고 하셨는데 옛 계명은 어떤 것일까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새 계명과 십계명의 차이는 어떠한가요?
새 계명은 예부터 있어온 계명임.
요일 2: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이곳에 옛 계명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어떤 것이 옛 계명이라고 합니까? 새 계명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옛부터 있었던 계명이라고 요한은 가르쳐 주고 잇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성경을 읽으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은 예수님 때에 처음으로 말씀하신 내용이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서 오해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무서운 하나님. 사각처럼 각진 하나님 율법을 들이 대어서 아니면 가차 없이 잘라버리시는 하나님
반면에 신약의 하나님은 용서해 주시고 보듬어 주시고 인내하시는 모서리가 없는 둥글 둥굴하신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것임.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구약이 말하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같습니까? 무서운 하나님 같습니까?
우린 이미 지난번에 이 같은 사실들을 확인하였지요?.
구약에도 사랑과 진노가 있고 신약에도 사랑과 진노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 성도님들 말씀을 통하여 확인하여 보셨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구약에는 사랑에 대한 말씀이 많이 없는 줄을 알고 있습니다.
구약이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말씀들을 좀 보겠습니다.
구약이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
습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신구약을 통털어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가슴 깊이 파고들도록 기록된 말씀이 있는가?
사 49:15-16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요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사랑하는 성도님들 구약의 하나님의 사랑 신약에서 자기를 비우시고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 사랑 같은 사랑이 아닙니까?
그럼에도 왜 구약에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가 다르게 느껴질까요?
성경은 그것이 아니라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해석하고 그렇게 가르쳐 왔기 때문임.
계명에 대하여도 그렇다는 것임을 우리는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십계명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의 품성의 본질을 함께 살펴보겠음
사랑은 율법의 강령
마 22:36-40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 두 계명이라고 하셨는데 두 계명은 어떤 것인가요?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맞나요? 예 맞습니다.
이 두 계명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강령이 무엇일까?
강령=헬[크레만뉘미]
혀가 잘 돌아가지 않는 참 어려운 말입니다.
그 의미는 달려 있다의 의미가 있는 헬라어임.
사용된 성경절.
마 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리라”
눅 23: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같은 헬라어가 이렇게 쓰여졌음.
그럼 강령이라는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마 22: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 두 계명이라는 말씀은 어떤 계명을 가리키는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이 말씀은 온 율법과 선지자가 달려 있는 말씀이다 라는 의미임.
이해가 되는가?
킹제임스번역
“모든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이 이 두 명령에 달려 있느니라”
바로 위에 있는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나의 강령이라는 말씀을 킹제임스 번역은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모든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이 어디에 달려 있다고요? 두 계명에 달려있다.
그럼 두 계명에 달려 있는 율법과 선지자는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가?
우리 성도님들은 율법과 선지자에 대한 말씀을 많이 들어서 설명 드리지 않아도 아실 것임.
아직 율법과 선지자에 대하여 이해가 안되시는 분들 있는가?
율법과 선지자는 무엇이라고 했는가?
율법은 모세의 오경, 선지자는 그 나머지 모든 성경.
이 내용을 신약의 요한 계시록은 모세와 엘리야로 표현을 하고 있기도 함.
모세와 엘리야는 구약 성경을 대표하는 사람들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럼 구약성경의 내용이 무엇이라는 말인가요?
다시 마태복음에 있는 이미 읽었던 말씀 다시 올립니다.
마 22:36-40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선생님이여 율법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이 말씀은 성경의 가르침 중에 어떤 가르침이 으뜸입니까 라는 질문과 같은 것임.
예수께서 무엇이라 대답하셨는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시고는
이 두계명에 온 구약의 가르침이 다 달려 있다고 하셨음.
이 두 계명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구약과 어떤 관련이 있다는 말씀인가요?
구약의 모든 내용이 이와 같은 내용이라는 것입니다.이해가 되시나요?
그럼 신약에서 예수께서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은 무엇에 대한 반복이라는 말씀인가?
구약의 말씀에 대한 반복이었다. 아멘입니까?
그러니까 구약의 가르침도 무엇이었다는 말씀입니까?
구약의 많은 내용들을 압축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이었다.
그러니 옛 계명과 새 계명은 어떤 것이라고요? 같은 것이다.
그런데 왜 새 계명이라고 하셨을까요?
저의 이해는 새 언약 속에 함께하는 계명이기에 새 계명이라는 말씀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율법은 자유를 주고 보호하는 기능으로 바뀜.
지난번에도 잠깐 살펴 보았던 내용임.
구약의 옛 계명도 신약의 사랑의 계명도 우릴 정죄하는 직분이 아닌 우릴 보호하는 기능으로 바뀌었다는 말씀임.
전에는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너는 죄인이다 라고 정죄하였던 그 율법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그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에게는 기능이 바뀌었다는 것임.
정죄하는 직분에서 무엇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까?
약 1:25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야고보는 어떤 율법이라고 합니까? 자유하게 하는 율법이다.
여러분들은 율법이 자유를 준다고 생각하시나요? 아직도 우릴 구속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우리나라 헌법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고 있습니까?
우릴 자유롭지 못하도록 구속하고 있습니까?
자동차를 마음놓고 달리지도 못하게 하고 있는데도 자유입니까?
요즘 나라의 교통 흐름이 바뀌어 지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계시죠?
시내에서는 지금 30키로 그리고 50키로로 조정 되고 있죠.
어린이 보호 구역에서는 30이나 40 그리고 시내도로는 50입니다.
자칫하면 위반하게 되고 벌금을 물게 되는 그런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많이 불편 하시죠? 그것을 자유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런 것을 가지고 질서 안에 자유라고 하죠,
세상의 법들이 하나님의 나라의 법을 많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전혀 모르는 것을 가지고 언약 맺지 않으시고 그 당시 이 땅에서 많이 행하여 졌던 그런 언약 관계를 가지고 사람들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께서 오늘날 이 세상의 법들도 하나님의 법의 성질을 잘 가르쳐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갈 2: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이 말씀은 무슨 말씀입니까?
두 가지로 우리에게 이해를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요
율법이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죄가 우리를 구속하는 것임이고요
다음으로는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 행함의 의를 통하여서 종 노릇 하도록 하는 거짓된 믿음에 대한 경고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진정한 자유가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지 않습니까?
오히려 하나님의 계명은 우리에게 예수 안에서의 참 자유가 무엇인지 알게 하고 그것으로 인하여 기쁨이 가득하게 하는 것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은혜를 감사하면서 기쁨으로 살아가게 되길 축복합니다.
안에 있을 때의 결과.
누구 안에 있을 때에라는 말입니까? 예수안에 그것은 또 다른 말로는 무엇안에 라는 말과 같다고 들으셨습니까? 말씀안에.
우리 성도님들 예수안에는 말씀안에라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말씀 안에 있을 때 어떤 은혜의 결과가 있을까요?
⑴.정죄가 마침.
롬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무엇이 마침이 되었다고요? 율법의 마침이 되었다.
그 말씀의 다른 뜻은요?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안으로 인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그 임무를 완수하였으니 예수께 데려다 주는 역할이 끝이 났다는 말씀이고요.
또 다른 말씀은 우릴 정죄하던 그 정죄의 직분도 함께 끝이 났다는 말씀임.
⑵.정죄함이 없음.
롬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예수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무엇이 없다고 합니까?
정죄함이 없다.
정죄도 끝이 났고 정죄함도 없다 감사한 일입니까?
이런 은혜 우리 모두에게 주셨나요? 우리 모두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확신합니까?
확신 만으로는 안되죠, 여러분들 확인 해 보셨습니까? 확인 해보니 확신한 것 맞습니까? 그렇다면 이러한 은혜를 잃어 버리지 말길 바랍니다.
⑶.생활로 율법을 굳게 세우는 삶을 살아감.
우리 힘으로는 할 수가 없는 것을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주께서 그 일들이 가능하도록 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함.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율법을 어떻게 한다고요? 굳게 세운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러분들의 삶이 하나님의 율법을 굳게 세우는 삶이 되길 축복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가 없지만 우리의 동의가 없으면 주께서도 하실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세우는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하면 주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그 일이 이루어지도록 역사하실 것임을 믿습니다.
⑷.의를 이루며 살아감.
어떻게 이해를 하면 율법을 이루는 삶과 비슷하다고 할 수가 있지만 우리의 삶으로 나타나는 것은 같은 것인지 모르지만 내용상으로는 다르다고 볼 수가 있음.
롬 6:14-16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15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아까는 순종으로 율법을 세우고요.
지금은 순종으로 무엇에 이르는 삶이 된다고 합니까? 의에 이르게 된다.
의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이시죠.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어 우리와 같이 되심은 우릴 어느 수준까지 올려주시기 위함이라고 합니까? 그리스도의 수준에까지..
황공한 은혜입니까? 우린 그런 은혜가운데 있다는 것 놀라운 사실이죠?
결론적인 말씀.
이렇게 함으로 율법을 통한 하나님의 뜻이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임. 그렇게 될 때 주님께서 오실 것임.
저는 율법과 관련된 구원문제의 결론을 구원은 회복이다라고 내립니다.
잃은 성품의 회복이며. 잃은 에덴의 회복이다.
그것은 구원자 예수님을 바라보므로 성품을 회복하고 에덴을 회복할 수가 있음을 성경은 보여줌.
주어진 말씀에 따라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성품들이 회복되고 잃은 에덴을 주시기 위해 오시는 주님의 영광의 재림을 맞이 할 수 있도록 살아가길 축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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