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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외로운 순교자
오늘은 외로운 순교자라는 제목으로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 54번째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오늘은 침례 요한과 관련된 말씀을 준비 했습니다만, 제목을 정하여 놓고 보니 순교자들의 대부분의 죽음이 외로운 죽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죽음 앞에서 함께한 자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딤후 4:10-11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로마 감옥에 같혀 있는 바울이 외롭다는 말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말씀으로 낳은 영적 아들 디모데를 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한번 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 말씀에 보면 네가 올 때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하고 드로아 집에 있는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부탁을 합니다.
이제 겨울이 다가올 것이기에 겨울이라고 감옥 안에 따뜻한 옷을 넣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디모데가 어떻게 하였을까요?
스승이자 아버지와 같은 바울을 디모데도 참 많이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어떤 가운데 있다고요? 함께한 자들이 다 떠나고 외롭게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겉옷을 가지고 오라는 말씀에 더 걱정이 됩니다.
요즘 같으면 차를 가지고 여기 저기 챙길 것을 챙기면 빠를텐데 그 당시는 차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자급 목사가 무슨 돈이 있어서 마차를 이용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래도 외롭게 감옥에서 추위와 싸우고 있는 영적 아버지를 빨리 만나고 싶어서 디모데는 바쁘게 움직입니다.
그리고 부탁한 것을 다 챙겨서 로마로 향합니다.
그런데 도착하고 나니 이미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도 바울이 순교를 당하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미입니다, 외롭게 순교를 당한 바울도 그렇지만 그리운 영적 아버지를 만나려고 부탁한 겉옷을 가지고 바쁜 걸음으로 달려온 디모데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이미 순교 당한 후라는 것을 알았을 때 디모데는 아마도 가져간 겉옷을 잡고 통곡을 하였을 것입니다.
지금 누가 그러한 죽음을 외롭게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까? 침례 요한이죠?
요한은 메시야의 길을 준비하기 위하여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 요한이 예수님이 메시야신 줄 어떻게 알았습니까?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셔서 알았을까요?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요 1: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침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침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
무슨 말씀 같습니까?
하나님께서 메시야가 누구인지를 가르쳐 주셨는데 어떻게 가르쳐 주셨다고요?
요한이 침례를 베풀 때 성령이 눈에 보이게 내려와서 임하는 것이 보이면 그가 누구라고요? 그가 메시야이다.
메시야라는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는 다 알고 계시죠?
메시야를 우리 말로 번역하면 기름 부음을 받은 자입니다.
우리는 다니엘서를 함께 하면서 이 말씀을 보았습니다.
단 9:25 “그러므로 너는 깨닫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이곳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히브리어로 메시야입니다.
예수께서 언제 기름부음을 받으셨습니까?
성경에서 기름은 무엇을 상징한다고 배우셨습니까? 성령
스가랴 4장에 보면 성소의 불을 밝히는 순금 등대가 보이고 등대 옆에 두 감람나무가 순금 등대에 기름을 공급하고 있는 광경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이런 말씀을 주십니다.
슥 4:6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아멘입니까?
성소의 불을 밝히는 일이 누구의 힘으로 된다고요. 나의 신 성령으로 이루어진다,
불은 무엇이 있어야 밝힐 수가 있습니까?
요즘은 밧데리가 있으면 불을 밝힐 수가 있습니다만. 스가랴 당시에는 기름이 공급되어야 불을 밝히는 일이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불을 밝히는 일에 쓰임받는 기름은 성령의 역사하심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증언의 말씀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실물 407 “기름은 성령을 표상한다. 스가랴서에도 성령이 기름으로 설명되어 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침례 요한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셨습니까?
기름을 상징하는 성령께서 가시적으로 요한의 눈에 보이게 내려 임하는 것이 보이면 그가 누구라고요?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야 곧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침례 요한이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메시야가 나타나길 기다렸겠습니까?
얼마나 많이 기다렸겠습니까?
근데 그분이 나타나셨습니다.
초라하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침례때 일어난 하나님께서 임재 하시는 외적인 현상도 목격하였고요.
그에게서 풍겨나는 이미지도 아마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만한 거창함은 보이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사랑의 하나님의 성품을 들어냄에 있어서 관심을 받을 만한 모습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이튿날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그리스도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요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저분이 우리가 기다렸던 메시야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런 말을 합니다.
30절입니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이 말씀은 무슨 말씀같습니까? 내가 전에 예기 했잖아? 라는 말이죠.
내가 전에 말하던 나보다 먼저 계신 분이지만 나보다 늦게 오실 분이 계시다고 한 말이 바로 이분을 가리켜 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날 소개를 받은 제자 중 시몬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이 침례 요한을 떠나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의 형들을 예수께로 인도합니다.
아마도 두 제자들은 침례 요한에게 있어서는 핵심적인 제자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누가요? 지금 예수님께로 간 요한과 안드레가 말입니다.
제자들만 간 것이 아닙니다.
한번은 침례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요한복음 3장 26절입니다.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침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 이제 망했다는 말이 아닙니까?
선생님은 자기를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여서 자기 제자들도 보내시더니만 이제는 고객까지 다 뺏긴다는 말을 제자들의 입을 통해 듣지 않습니까?
그 말을 들은 요한이 무슨 말을 하였을까요?
그다음 다음 말씀에 보면 요한은 이런 말을 합니다.
라이벌 상태에서 할 수 없는 아주 대단한 말씀입니다.
요 3:29,30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세상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보고 바보라고 합니까?
요한은 참 바보 였습니다. 자기에게 오는 고객 관리에 있어서는 바보처럼 보입니다.
제가 30대부터 시계 도매업을 하였습니다.
첨에는 부속과 재료를 하다가 저에게 물건을 공급하여 주는 업체가 시계를 취급하니까 저도 따라서 시계를 공급받아서 판매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니는 코스를 거의 비슷하게 돌고 있는 우리 교회 저와 나이가 비슷한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어떨 때는 제가 거래하는 곳에 가면 그분이 먼저 와 있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보고 거래 라이벌이라고 합니까?
그런데 그분이 취급하는 시계와 제가 취급하는 시계가 다르기 때문에 그가 팔고 난 다음에도 저는 팔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먼저 가면 그가 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루는 저에게 어디서 물건을 가지고 오는지 물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당신도 무엇을 해 보고 싶다는 말입니까? 당신이 취급하는 그 물건을 나도 가지고 팔고 싶다는 말입니다.
제가 소개를 해 주어야 할까요? 가르쳐 주지 말아야 할까요?
그리스도인이 아닌 자들은 절대로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사업에 있어서 중요한 비밀은 자기 아들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치과 금을 하면서 제가 거래하는 장로님에게 치과에서 사용하는 금 제품을 만들어 보라고 했는데 그 함량을 몰라서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 함량을 알아 보려고 애를 썼는데 그들이 하는 말이 그런 말이었습니다.
아버지가 기술자이고 아들이 판매를 하는데 그 제품을 만들 때는 아들도 데리고 들어가지 않고 아버지 혼자들어가서 금과 다른 금속을 배합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들에게도 그 비밀을 가르쳐 주면 다른 곳에 새어 나갈 수가 있다는 것이 염려가 되어서 라는 말입니다.
그처럼 비슷한 물건을 같은 코스에 다니는 사람에게 자기가 취급하는 물건을 가르쳐 준다는 것은 거래처를 넘겨 주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도 저는 그가 비슷한 물건을 돈을 더 주고 구입 해서 판매하는 것이 안쓰러워서 가르쳐 주었습니다.
도매업자로서의 일급 비밀을 그에게 가르쳐 준 것이죠,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다음 저의 거래처에 가보니 제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 그가 먼저 와서 다 깔아 놓았습니다.
속이 상했을까요? 근데 그때는 믿음이 있었는지 몰라도 속이 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점포에서는 내가 취급하는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받아서 미안하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괜찮다고 하면서 오면 많이 팔아 주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바보짓을 했죠? 근데 내가 팔지 못하여서 혹 속상해 본 일은 있었는지 몰라도 한 번도 그 일을 후회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 그 같은 경험을 누가 하고 있다는 것입니까? 침례 요한이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도 빼앗겼고요, 고객들도 다 빼앗기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침례 요한은 뭐 하고 있다고 합니까?
그가 잘 되는 것을 보고 기쁨이 충만하다고요.
그런 그에게도 믿음의 위기가 있었습니까? 예수에 대한 확신이 흔들릴 때가 있었습니까?
그 후 침례 요한은 자기 죄를 지적한다는 이유로 헤롯에 의하여 잡혀서 감옥에 갇혔습니다.
들려오는 예수에 대한 소문은 굉장한 소문이 들려 왔습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 뱅이를 일어나게 하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 넘는 이들을 배불리 먹이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 차게 거두었고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이 그와 함께 하드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소문이 들릴 때마다 요한은 외로움을 더 느낍니다.
왜 그렇습니까?
적어도 지금쯤은 한번 와 주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래도 선구자인데 말입니다. 당신의 길을 예비한 사람인데 말입니다.
그런 이유에서라도 침례 요한을 구명하기 위하여 일하는 것처럼 보이기라도 했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활동하시는 모습은 침례 요한에 대하여서는 관심 밖의 일인 것 같았습니다.
요한의 믿음이 흔들립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냅니다. 어떤 말을 넣었습니까?
누가복음 7:20절입니다.
“그들이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침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 보라고 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더이다”
무슨 말씀입니까?
침례 요한의 확신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까?
이곳에서 오실이는 예수님 당시 대부분의 유태인들이 알고 있었던 메시야에 대한 표현입니다.
오신다고 하는 메시야가 당신이 맞습니까 라는 말씀입니다.
침례 요한도 메시야의 사명에 대하여서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까?
메시야라고 제자들에게 소개까지 하였는데 지금에 와서 그의 믿음이 흔들리는 것 같습니까?
그도 일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었던 메시야의 사명을 죄에서의 구원이 아니라 로마 억압에서의 구원으로 이해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 질문에 예수께서 무슨 답을 주셨습니까?
22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저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이 말씀은 이사야가 메시야의 사명에 대하여 예언한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라는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그같은 말씀을 하시면서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라는 말씀을 23절에 덫 붙이셨습니다.
그 후 요한의 기록은 예수님께서 그를 평가하시는 말씀외에 없습니다.
요한이 메시야의 소명을 완전하게 이해를 하였을까요?
그후 요한은 헤롯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미움을 싸서 헤로디아의 딸이 헤롯의 술 잔치에 춤을 추게 하고 그에게 소원을 말하라고 할 때에 요한의 목을 요구하도록 하였습니다.
헤로디아는 원래 헤롯의 동생 빌립의 아내 였습니다.
그런데 형 헤롯이 동생의 아내를 탐하여서 권력으로 동생의 아내를 빼앗았습니다.
그 일을 요한이 책망을 하자 헤로디아가 그 일에 앙심을 품고 요한을 죽여 더 이상 자기들을 정죄하는 발언이 나오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렇게 위대한 선지자,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였던 사람은, 음탕한 술 잔치 자리에 목이 잘려 쟁반에 담겨 가져오는, 어떤 의미에서 세상에서 가장 치욕적인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메시야의 선구자로 온 침례 요한, 그는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건을 통하여 세상에 태어 났고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대접을 받으면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마도 그 당시 세상은 침례 요한의 죽음에 별 관심이 없었을 것입니다.
개혁을 시도하다 완성을 보지 못하고 폭군에 의하여 젊은 나이에 죽은 청년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침례 요한을 예수님은 어떻게 평가 하셨을까요?
누가복음 7장 28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시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아담이 후 이 지구상에 존재해온 모든 사람이라는 말이 됩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이라는 말씀은 무슨 말씀일까요?
침례 요한이 천국에 가면 가장 작은 자라는 말씀일까요?
그 말씀의 의미는 아담 이후 예수께서 오셔서 복음을 전파하시어 은혜의 천국을 이루실 때까지의 세상에 있었던 사람 중에 침례 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전파하신 은혜의 왕국에는 참여하지를 못하였다는 말씀이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누가복음 16장 16절에서 말씀하신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오해하신 분들은 구약의 율법은 침례 요한의 때까지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지만 전혀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그다음 말씀이 의미를 더해 주고 있습니다.
“그 후로 부터는” 침례 요한 후로는 이라는 말씀이죠?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요한이 가르킨 예수그리스도가 천국 복음을 전하여서 듣는 이들은 그리고 원하는 자들은 다 천국에 앉을 수 있는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는 말씀이죠? 그 천국이 예수께서 전하신 은혜의 왕국이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주목을 받으면서 태어나서 세상의 주목을 받으면서 그의 사명을 시작하였던 침례 요한은 세상에서는 실패한 사람처럼, 크게 시작하였다가 망한 사람처럼, 알아주는 사람 아무도 없는 것처럼, 지켜 보는 이들 없는 가운데, 죽기 전에 할 말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외롭게 음탕한 군주의 쾌락을 만족시켜준 댓가로 그렇게 갔습니다.
아마도 요한은 그의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전하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죽음을 맞이 하였을 것입니다.
요한의 순교 이후 예수그리스도의 사업은 요한이 어떠한 예견을 했는지는 몰라도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라고 하는 유태인들의 기대대로 움직였습니까?
하시는 일은 메시야의 일과 같은데 본격적인 왕의 자리로 나가는 일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머리가 좋은 유다가 예수님을 왕에 자리에 올리는 일을 빨리 진행시키려고 꾸민 것이 예수님을 판 사건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일어난 이적들을 통해서 볼 때 유다의 생각은 예수께서 폭도들에게 잡혀 가실 수가 없는 분이셨습니다.
천연계도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분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잡혀 가실 수가 있을까 하는 인간적인 생각에서 그는 제사장들에게 돈을 받고 구주를 팔았습니다.
그런데 그것 까지 성경에 예언되어 있다는 것을 유다는 몰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모습도 어떻게 되었습니까?
3년 동안 일어났던 이적들이 거짓말처럼 잡혀가신 예수님에게 일어났습니다.
메시야와 관련된 예언 중에 이런 예언이 있습니다.
이사야 50장 6절입니다.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빰을 맡기며 모욕과 침밷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유다가 이런 말씀을 알았더라면 어떻게 메시야를 파는 일을 했겠습니까?
우리도 그럴 수가 있습니까?
하늘가기를 소망하며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예수님을 대적하여서 예수님의 수염을 뽑고 떼리고 뺨을 치는 이런 일들 할 수가 있습니까?
우리 성도님들 증언의 말씀을 많이 읽으시길 바랍니다.
오늘날도 그리스도에게 이런 행악을 행하는 자들이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 일을 하면서 어떻게 주님 계신 하늘을 바라볼 수가 있습니까?
몰라서 그런 일을 하고 있다면 기도하시면서 어떤 일들이 그런 일들인지 정말 깨닫고 우리의 주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지 말길 호소합니다.
그렇게 기다렸던 메시야를 유태인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로마의 힘을 빌려서 나무에 달았습니다.
그것이 유태인들의 원이였습니까?
빌라도가 예수님을 아무리 재판을 하여도 그를 죽일 만한 죄를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합니다.
요 18:31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
우리에게 무엇이 없다고요? 사람 죽이는 권한이 없다.
필요할 때는 사람을 잘도 죽이고서는 예수님 재판에서는 그런 말을 합니다.
이 말씀 후에 요한은 이런 기록을 남깁니다.
요 18:32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무엇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합니까? 예수께서 어떻게 죽으실 것을...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까? 어디서 보셨나요?
시 22: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렸나이다”
악한 무리가 무엇을 찔렀다고요? 예수님의 수족을 찔렀다.
수족이 무엇을 가리키는 말입니까? 손과 발이죠,
손과 발이 찔려서 죽은 사람 있습니까?
사람의 신체 부위 가운데 사람의 생명과 관계가 제일 없는 지체가 손과 발입니다.
그렇습니까? 아 누구는 손과 발을 찔려 죽었대 라는 말 들어 보셨습니까?
급하면 손과 발은 짤라 내어도 죽지 않습니다.
그런데 손과 발을 찔러서 죽이는 사형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로마의 십자가형입니다.
죽음과 가장 관계가 없는 부위에 상처를 내어서 죽을 때까지 나무에 달아 놓는 사형방법이 십자가 형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까지 알려진 사형 방법 가운데 가장 잔인한 방법이 사형 방법입니다.
그리고 십자가 형을 받는 사람들은 옷을 다 벗기고요 그렇게 십자가에 메답니다.
음탕한 군주의 손에 의하여서 목이 잘려 쟁반 위에 올려지는 죽음이 더 잔인합니까?
홀짝 벗긴 몸으로 손과 발을 찔러서 십자가에 달아 놓은 죽음이 더 잔인한 죽음입니까?
아마도 침례요한도 메시야의 죽음과 관련된 말씀은 이해를 하지 못 한 것 같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십자가까지 따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가까지 갈 수 있는 사람들이 하늘 시온산에 설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가고 못하고는 우리의 힘으로 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니지만 결심은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모두가 주님 말씀따라 주님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따라가서 시온산에도 함께 설수 있는 은혜가 우리 모두와 함께하길 축복합니다.
기도
하늘에 계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하늘도 원하였고 세상에서도 잘 살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셨는데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시고 주님 십자가지고 끝까지 주님을 따를 수 있는 결심이 오늘 우리의 심령가운데 일어나게 하옵소서
그리고하여 골고다를 지나 시온산까지 함께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눅 7:16-23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그에게 알리니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이르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그들이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침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 보라고 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마침 그 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을 보게 하신지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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