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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부나무아래 선정과 깨달음, 부산시 동래구 보탑사
 
 
 
카페 게시글
중도는 쾌락과 고통을 치유 중도 깨달음과 12연기법의 보림
행복한 포교사 추천 0 조회 112 23.03.01 07:01 댓글 1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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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3.03.02 08:51

    첫댓글 댓글을 읽어보세요.

    https://www.youtube.com/live/YcBxVPPx_FI?feature=share

  • 작성자 23.03.03 09:25

    https://youtu.be/4li004R4jZI

  • 작성자 23.03.03 17:14

    먼저 '오개'와 '초선정 오선지'와의 관련성을 '니까야'의 <교리문답의 경>에서 설법을 하십니다.
    "도반이여, 초선에서 5가지 덮개 '오개'들이 버려지고 5가지의 '선지'들을 가지게 됩니다.
    여기 초선정을 증득하는 비구 수행자에게는
    감각적 욕망이 버려지고,
    악의(성냄, 거부)가 버려지고,
    나태(망상)와 졸음이 버려지고,
    들뜸과 후회가 버려지고,
    의심 등 방해하는 '오개'를 버려야합니다.

    수행자는 또한, 일으킨 생각, 지속적 고찰, 떨쳐버림의
    희열과 몸이 경안한 행복과
    마음이 한 끝에 집중(심일경)등의 5개 선지를 가지려 노력합니다.
    도반이여, 초선정에서 이와 같이 5가지의 '오개'들이 버려지고 5가지의 '선지'들을 갖추게 됩니다."

    이때의 '오개(특히 좌선시 허리 통증에 성냄)'를 받아들이고 통증을 내려놓을 때
    드디어 수행자는 눈.코.귀.혀.몸 등 5가지 감각기관을 굳건히 지켜나가는 계(silla)와 같은 문지기 역활을 잘 하는거랍니다.

  • 작성자 23.03.30 06:50

    담마는 누구에게나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말한 보통 명사 입니다. 연기는 필연입니다. 즉, 태어나 일어남에 함께 섕겨난 늙어 죽음의●그침이 바로 연기입니다.
    반면에 깨달음Bodhi는 고통과 쾌락을 담마에 정견한 각성입니다.
    적정은 명상주제에 대한 문지기 확립 즉, 념처의 지속적 수관입니다.
    사성제와 열반은 담마를 깨달음에 보림한 실참 즉, 제법(몸과 마음)의 일어남과 사라짐 漏의 그침입니다.
    그래서 기본이 중요합니다.
    안으로 뜻은 육근의 안이비설신의 기능은 마음을 통제하는 것이고,
    sati는 주제(성문)에 대한 문지기이고, sati기능은 기억의 통제이다.
    satimā는 문지기sati를 가진 것(기억을 한곳에 머뭄)이다.

    S10:4
    마음챙기는 자는 항상 행운이 함께하고,
    마음챙기는 자는 행복을 얻도다.
    마음챙기는 자는 더욱 더 나아지나,
    결코 증오로부터는 벗어나지 못하도다.
    ‘‘Satīmato sadā bhaddaṃ, satimā sukham edhati;
    Satīmato suve seyyo, verā na parimuccati.
    "새김을 확립하면 어제나 복되고
    새김을 확립하면 즐거움을 얻는다.
    새김을 확립하여 날마다 잘 지내더라도
    증오에서 해탈하지 못한다

  • 작성자 23.03.26 15:52

    내외입처와 명색 등 두 겹의 알음알이(識)를 가진 이 몸[유신견]을 근.경.식.촉.수.상.행.애.심.사[근경식과 오온]에서 갈애를 내려놓아 버리며 얻은 멸성제로부터 생로병사의 연기[형성]에 두려움이 없는 열반을 증득한다.

  • 작성자 23.05.11 06:28

    부미자경 감수, 오개 받아들임, 무상.그침을
    문지기sati로서 집법즉멸법을 법수관.

    sati의 dvārika, dovārika(gatekeeper) 의미는 오근 감각접촉에서의 集滅에 대한 문(dvāra, door門)지기 이죠,
    예시로 <부미자경> "감각접촉觸에 반연한 즐겁거나 괴로운 느낌" 에서,
    觸에서의 일어남集과 그침滅의 수관이 없다고 하면 과연 그 느낌은 존재할까요? (이것이 S12:15에서의 세계loke에 의한 정견의 핵심)

  • 작성자 23.03.31 16:08

    중도 깨달음.집법즉멸법의 법안을 12연기 각지들에 확장..이것이 보림이다.
    즉, 형성을 집법즉멸법에 문지기 찰나 확립(하는 순간에) 연유로 생겨나는 식을...
    식을 집법즉멸법에 문지기 찰나 확립(하는 순간에) 연유로 생겨나는 명색을.
    (심.의.식의 ■식은 명색(마음.집,M9)을 넘어가지 못함. 재생연결식)
    명색을 집법즉멸법에 문지기 찰나 확립(하는 순간에) 연유로 생겨나는 육입을.
    육입을 집법즉멸법에 문지기 찰나 확립(하는 순간에) 연유로 생겨나는 감각접촉을.
    감각접촉을 집법즉멸법에 문지기 찰나 확립(하는 순간에) 연유로 생겨나는 느낌을.
    ...
    태어남 찰나 집법즉멸법의 문지기 확립를 조건으로 생겨나는 노ㅡ사를.
    <-- 중도 깨달음의 보림.

  • 작성자 23.04.06 11:15

    그러하군요. https://dictionary.sutta.org/ 의 말미에
    //増補改訂パーリ語辞典 水野弘元著
    sati:[sant の sg.loc.]// 라고 하듯이, 즉, sati를 여성명사 문지기dovāriko에 보지않고
    sant의 처격(동사atthi의 현재분사)에 보므로
    "태어남이 있을 때 노사가 있다." 가 맞는 해석입니다.
    일본 빨리어 사전의 해석도 참조해야 하겠습니다.^^

    그래도
    "태어남이 있다고 할때(즉, 집법즉멸법로서 문지기될 때) 노사.저것이.가 일어난다."라고 의미적인 해석을 첨가 할수도 있지 않을까요?

  • 작성자 23.03.29 05:29

    Sīlaṃ samādhi paññā ca
    vimutti ca anuttarā,
    Anubuddhā ime dhammā
    gotamena yasassinā.
     
    Iti ●buddho abhiññāya
    dhammamakkhāsi bhikkhūnaṃ,
    Dukkhassantakaro satthā
    cakkhumā parinibbuto'ti.
    [세존]
    “최상의 계행과 삼매와
    지혜, 그리고 해탈
    이러한 것들을 명성 있는
    고따마는 ●깨달았네.

    깨달은 님, 괴로움을 종식시킨 님,
    스승, 눈 있는 님,
    적멸에 든 님은 곧바로 알아
    수행승들에게 가르침을 설했네.”(A4:1)

  • 작성자 23.03.30 06:47

    '무엇이 dhamma(法)인가?'
    일어나고 반드시 그치는 것이 담마 법이랍니다. M22 에서, "내가 가르치는 것은 괴로움과 괴로움의 그침이다."
    고.집 (집성제)가 있다는 것은 고.멸 (멸성제)를 정견하는 것이고,
    또 일어남(집)원인과 그침(멸) 결과의 확립을 paticca-sam-uppāda(연기)에 ... 등등을 담마에 말합니다...

    S56:11은 법에 말합니다.
    '일어나는 법은 그 무엇이든 반드시 그친다(집법즉멸법)'.라고요.

    이때의 집멸의 확립을 챙기는 바를 념처(satipaṭṭhānā) 이라고 합니다.
    즉, 몸 [느낌, 마음, 법]에서 몸[느낌, 마음, 법]을 (일어나고 반드시 그치는 담마에)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긴다. (satipaṭṭhānāsutta)

    사념처에서 '념처satipaṭṭhānā'의 뜻은 ●집멸하는 법들(samudayavayadhammā[SN. vol.5. p.183.])을 확립하고 ■문지기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할때 고짜라gocara가 드러납니다.[SN. vol.5. p.149]
    즉,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자신의 gocara(고유의 영역= 집멸의 념처)가 아닌 다른 visaya(對境 혹은 다른 영역)을 돌아다니지 말라

  • 작성자 23.03.30 06:49

    Vinaya Piṭaka, mahāvaggapāḷi, 1. mahākhandhako, 1. bodhikathā
    atha kho bhagavā etamatthaṃ viditvā tāyaṃ velāyaṃ imaṃ udānaṃ udānesi —
    “yadā have pātubhavanti dhammā.
    ātāpino jhāyato brāhmaṇassa.
    athassa kaṅkhā vapayanti sabbā.
    yato pajānāti sahetudhamman”ti.
    Netti. [PTS145]
    열심히 선정 수행하는 바라문에게 법이 명백해질 때
    그의 모든 의심은 사라진다. ●원인滅을 지닌 법을 잘 알기 때문에..
    atha kho bhagavā etamatthaṃ viditvā tāyaṃ velāyaṃ imaṃ udānaṃ udānesi —
    “yadā have pātubhavanti dhammā.
    ātāpino jhāyato brāhmaṇassa.
    athassa kaṅkhā vapayanti sabbā.
    yato khayaṃ paccayānaṃ avedī”ti.
    열심히 선정 수행하는 바라문에게●법이 명백해질 때
    그의 모든 의심은 사라진다 조건의●그침을 알았기 때문에

  • 작성자 23.03.30 06:41

    “yadā have pātubhavanti dhammā.
    ātāpino jhāyato brāhmaṇassa.
    vidhūpayaṃ tiṭṭhati mārasenaṃ.
    sūriyova VAR obhāsayamantalikkhan”ti.
    열심히 선정 수행하는 바라문에게 ●법들이 명백해질 때
    마라의 군대를 쫓아 버리고서 그는 서있다.
    해가 하늘을 빛으로 가득 채우듯.

    <<== 율장] Mahāvaggapāḷi[대품] 1. Mahākhandhako[큰 부분] . 1. Bodhikathā[깨달음 이야기

  • 작성자 23.03.29 14:38

    @행복한 포교사 감각적 욕망
    pañcime, bhikkhave, kāmaguṇā. katame pañca?
    cakkhuviññeyyā rūpā iṭṭhā kantā manāpā piyarūpā kāmūpasaṃhitā rajanīyā,
    sotaviññeyyā saddā ... pe ... ghānaviññeyyā gandhā... jivhāviññeyyā rasā...
    kāyaviññeyyā phoṭṭhabbā iṭṭhā kantā manāpā piyarūpā kāmūpasaṃhitā rajanīyā.
    ime kho, bhikkhave, pañca kāmaguṇā.
    비구여, 5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욕망을 짝하고 매혹적인,
    눈으로 인식되는 형색들이 있다.…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이 있다…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이 있다 … 혀로 인식되는 맛들이 있다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욕망을 짝하고 매혹적인,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들이 있다.
    비구여, 이것이 5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이다.

    evameva kho, bhikkhave, ye hi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 작성자 23.03.29 14:39

    @행복한 포교사 vā ime pañca kāmaguṇe
    gathitā mucchitā ajjhopannā anādīnavadassāvino anissaraṇapaññā paribhuñjanti,
    te evameva kho, bhikkhave, ye hi kec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ime pañca kāmaguṇe
    gathitā mucchitā ajjhopannā anādīnavadassāvino anissaraṇapaññā paribhuñjanti,
    te evamassu veditabbā—‘anayamāpannā byasanamāpannā yathākāmakaraṇīyā pāpimato’.
    비구여, 예를들면 숲속 사슴이 묶인 채 올가미 더미에 누워있다면,
    그는 불행을 만났고 재난을 얻었고 사악한 [마라]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사냥꾼이 오더라도 가고 싶은 곳으로 달려갈 수 없을 것이다.'라고 여겨는 것과 같다
    비구여, 그와같이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이들 5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에
    묶이고 홀리고 빠져서 재난을 보지 못하고 벗어남에 대한 통찰지가 없이 그것을 즐기는 자들은
    '불행을 만났고 재난을 얻었고 사악한 [마라]의 의 손아귀에 들어갔다.'라고 알아

  • 작성자 23.03.30 06:40

    @행복한 포교사 야 한다.”
    evameva kho, bhikkhave, bhikkhu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ayaṃ vuccati, bhikkhave, bhikkhu andhamakāsi māraṃ apadaṃ,
    vadhitvā māracakkhuṃ adassanaṃ gato pāpimato.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비구는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을 떨쳐버린 뒤,
    尋과 伺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초선(●M111 16개에 사띠 위치)을 구족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를 일러 마라를 눈멀게 했고, 마라의 눈을 발판이 없도록 그렇게 빼버려
    그 사악한 [마라]가 볼 수 없는 곳으로 갔다.'라고 한다

    <== 성스러운 구함 경[聖求經] 810) Ariyapariyesanā Sutta(M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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