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문학 가을호 <13호> 원고 (시 3편)
1).침묵이 입을 열다
인묵 김형식
정문골 고개 너머에는
자연이 숨겨 놓은 또 다른 마을 하나 있다
태곳적부터 쌓여 온 침묵들이 저네들끼리 모여 사는 오지,
개똥벌레 무덤
심마니들도 모르고 있는 이 외진 곳에서 흰 구름 몇 조각 흘러 나갔을 것이다
종종 침묵이 사라지는 것은 고개 너머에서 손들 이 드나들고 있다는 것
오염된 손이 다녀가고 나면
마을에 장송곡 소리가 난다
침묵이 하나 둘 숨을 거둔 것이다
칠흑 밤
그곳에 가면 개똥벌레가 꼬리 춤을 추자고 한다
개, 개, 그 개똥의 이름표를 달고
더는 훼손돼서는 안될
자연을 끌어안고
멸종 위기의 슬픈 축제가 있던 날 밤
무덤 속에서
모든 침묵이 입을 연다
개똥벌레는 침묵이 죽어서 눈을 뜬 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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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신을 죽여야 산다
인묵 김형식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신의
뜻이고,
이 세상에서 죽어가는 것도 신의 뜻이다
일어서는 것도
걷는 것도 신의 뜻이고
누구를 사랑하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신의 뜻이고
내가 자의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다
생각하는 것 조차도 신의 뜻이라니
나는 신의 숨통을 꾾어 놓을 것이다
그리하여 신으로 부터 영원히 자유로워질것이다
쏘아라
탕 탕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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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해
인묵 김형식
잎은 봄에
꽃은 가을에
서로 만나지 못하고 핀 꽃무릇
아직도 풀지 못했어?
전생의 업 그리 두터운가
심장의 붉은 피는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돌고 도는데
무엇이 그리 꼬여
얼굴을 돌리고 살아가고 있는가
녹여 내야지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온다
그 응어리 녹여 내고
우리 마주 보고 곱게 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