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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11:7-10 “그러나 그 공주의 본 족속에게서 난 자 중의 한 사람이 왕위를 이어 권세를 받아 북방 왕의 군대를 치러 와서 그의 성에 들어가서 그들을 쳐서 이기고 그 신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과 은과 금의 아름다운 그릇들은 다 노략하여 애굽으로 가져갈 것이요 몇 해 동안은 그가 북방 왕을 치지 아니하리라 북방 왕이 남방 왕의 왕국으로 쳐들어갈 것이나 자기 본국으로 물러가리라 그러나 그의 아들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심히 많은 군대를 모아서 물이 넘침 같이 나아올 것이며 그가 또 와서 남방 왕의 견고한 성까지 칠 것이요”
저는 오늘 말씀의 제목을 중국 사자 성어중 와신 상담이라는 용어로 선택하였습니다.
와신 상담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슨 말입니까?
한자의 와신 상담은 이렇게 씁니다.
臥(누울 와), 薪(섶나무 신), 嘗(맛볼 상), 膽(쓸개 담)
이 말씀의 의미는 섶나무 즉 땔감 위에 누워 자고 쓸개를 맛본다는 뜻으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어떠한 고난도 참고 이겨낸다는 말임.
중국 춘추 시대 월왕 구천과 취리에서 싸워 크게 패한 오나라 왕 합려는 적의 화살에 부상당한 손가락의 상처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됩니다.
임종 때 합려는 태자인 부차에게 반드시 구천을 쳐서 원수를 갚아 달라고 유언을 합니다. 이제 왕위를 이어 받은 부차는 부왕의 유명을 잊지 않으려고 나무 땔감 위에서 잠을 자면서 자기 방을 드나드는 신하들에게 부왕의 유명을 외치게 합니다.
“부차야 너는 구천이 너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을 잊었는가” 라고요.
그렇게 밤낮 복수를 맹세한 부차는 은밀히 군사 훈련을 하면서 때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알게 된 구천이 먼저 공격을 해 옵니다,
그러나 전쟁을 준비해 온 부차의 군사에게 패하게 되고 회계산에서 포위를 당하여 꼼짝 할 수 없는 위기를 맞게 됩니다.
그때 구천은 오나라 중신들에게 뇌물을 주면서 부차에게 신하가 되겠다고 청합니다.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오나라의 오자서는 지금 구천을 쳐서 완전 멸망 시키지 못한다면 후환이 있을 것이라고 간청을 하였지만 부차는 구천을 살려 줍니다.
구천은 고국에 돌아온 후 쓸개를 옆에 두고 그 쓸개를 맛보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구천아 너는 화계산에서의 치욕을 잊었는가” 라고요 그렇게 복수할 기회를 노리던 구천은 20여년 후 오나라로 쳐 들어가서 수도를 점령하고 부차를 굴복시켜 최후의 승자가 되었습니다.
이 두 왕이 했던 와신 땔감 위에 자고 쓸개를 맛본다는 두 말이 하나로 묶여져서 와신상담이라는 고사 성어가 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우리도 복수가 아닌 우리 본향에 가기 위해 와신 상담 해야 되겠습니까?
우리 성도님들 복수를 위하여서도 와신 상담하는데요.
우리도 우리 영의 아버지의 십자가의 원수를 갚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십자가의 사람들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십자가의 사람 하늘 사람들로 살아가는 은혜가 우리 모두와 함께하길 축복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다니엘서 11장 5절부터 있는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단 11:5 “남방의 왕은 강할 것이나 그 군주들 중 하나는 그보다 강하여 권세를 떨치리니 그의 권세가 심히 클 것이요”
알렉산더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후계자가 없어서 알렉산더 휘하의 네명의 장군들에 의하여 네 나라로 나누어 졌다고 성경은 말하고 역사는 그렇게 이루어진 사실을 우리는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중 남쪽의 애굽을 거점으로 한 프톨레 마이우스와 북쪽 시리아를 거점으로 한 셀레우코스 양대 진영으로 나눠지고 카산더와 리시마쿠스 두 장군의 나라는 약하여 져서 결국 없어지고 말았음을 역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남방왕과 북방왕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합니다.
남쪽 프톨레의 왕조를 남방왕이라고 하고요 북쪽의 셀리쿠스를 북방왕이라고 성경은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간 두 왕조의 왕들을 올려드리고 말씀을 계속 드리겠습니다.
북방왕의 왕조입니다.
셀레우코스 1세
안티오코스 1세
안티오코스 2세
셀레우코스 2세
셀레우코스 3세
안티오코스 3세
다음은 남방 왕의 왕조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
프톨레마이오스 2세
프톨레마이오스 3세
프톨레마이오스 4세
프톨레마이오스 5세
프톨레마이오스 6세
그냥 참고만 하시면 되겠습니다.
지난번에 우리는 남방왕과 북방왕이 정략결혼으로 우호조약을 맺은 모습과 배신 당하였던 북방왕의 전처 라오디케의 원한의 복수로 공주와 아들 그리고 왕까지 독살 당하는 모습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런 내용이 다니엘서 11장 6절의 말씀이고요.
사랑하는 동생과 조카 그리고 매부가 독살 당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남방왕이 가만 있겠습니까?
남방왕의 복수극이 그 다음 절 7절과 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단 11:7-8 “그러나 그 공주의 본 족속에게서 난 자 중의 한 사람이 왕위를 이어 권세를 받아 북방 왕의 군대를 치러 와서 그의 성에 들어가서 그들을 쳐서 이기고 그 신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과 은과 금의 아름다운 그릇들은 다 노략하여 애굽으로 가져갈 것이요 몇 해 동안은 그가 북방 왕을 치지 아니하리라”
그러나로 시작한 사람은 북방왕에게 시집간 베레니케의 오빠인 프톨레미 3세 유에르케터스 왕입니다.
그는 동생을 죽인 자를 복수하기 위하여 시리아로 쳐 들어가서 메소보타미아까지 밀고 들어가서 그전에 북방왕이 애굽에서 가져 갔던 물건들을 회수하여 돌아 옵니다.
그렇게 패배를 당하고 나라를 짖밟힌 북방왕은 가만히 있을까요?
어떤 일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 집니까?
그다음 말씀이 그런 상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단 11:9 “북방 왕이 남방 왕의 왕국으로 쳐들어갈 것이나 자기 본국으로 물러가리라”
“북방 왕이 남방 왕의 왕국으로 쳐들어갈 것이나 자기 본국으로 물러가리라” 이 말씀은 북방왕의 남방 침공이 성공할 것이라는 말씀처럼 보입니까?
실패할 것이라는 말씀처럼 보입니까? 실패
안티오커스2세 뒤를 이어 왕이 된 셀루큐스2세는 침략 당하여 노략당한 것을 복수하기 위하여 군사를 일으켜서 쳐 들어갔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10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단 11:10 “그러나 그의 아들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심히 많은 군대를 모아서 물이 넘침 같이 나아올 것이며 그가 또 와서 남방 왕의 견고한 성까지 칠 것이요”
아버지가 복수에 실패한 것을 그 아들이 왕의 자리를 이어 받았지만 셀류커스 3세도 왕실의 음모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고 그 뒤를 이어서 그의 형제인 안티오커스 3세가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림으로 그의 아들들이 전쟁을 준비하였다는 말씀이 성취가 되었습니다.
계속되는 남방왕과 북방왕의 전쟁을 11절 12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단 11:11-12 “남방 왕은 크게 노하여 나와서 북방 왕과 싸울 것이라 북방 왕이 큰 무리를 일으킬 것이나 그 무리는 그의 손에 넘겨 준 바 되리라 그가 큰 무리를 사로잡은 후에 그의 마음이 스스로 높아져서 수만 명을 엎드러뜨릴 것이나 그 세력은 더하지 못할 것이요”
이 말씀을 역사에 등장한 왕의 이름을 넣어서 다시 번역하여 올려 드립니다.
10절에서 12절을 이렇게 해석하여 번역하였습니다.
“그 아들들(시리아왕 셀루쿠스 2세의 두 아들인 셀루쿠스 3세와 안티오쿠스3세)이 전쟁을 준비하고 심히 많은 군대를 모아서 물의 넘침 같이 나아 올 것이며 그가 또 와서 남방왕의 견고한 성까지 칠 것이요 남방왕(프톨레미4세)은 크게 노하여 나와서 북방 왕(안티오커스3세)과 싸울 것이라 북방왕이 큰 무리를 일으킬 것이나 그 무리가 그(프톨레미4세)의 손에 붙인 바 되리라 그(프톨레미4세)가 큰 무리를 사로 잡은 후에 그 마음이 스스로 높아져서 수 만명을 엎드려 뜨릴 것이나 그 세력은 더하지 못할 것이요”
이 말씀은 역사를 좀 아시는 분들이 들으면 주전 217년에 시리아와 이집트 사이에 있었던 라피아 전쟁의 기록을 읽는 것처럼 느낄 것입니다.
인터넷 검색에 라피아 전쟁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북방왕 시리아는 보병 6만2천, 기병 6.000. 코끼리 부대 인도산 102마리로 쳐 내려 갔습니다.
이에 맞서 남쪽의 프톨레미는 보병 7만과 기병 5천 그리고 소말리아산 코끼리 73마리로 붙었는데 결과는 예상외로 양쪽에 엄청난 사상자를 내고 또 다시 남방 왕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그 전쟁에서 북방왕 시리아는 보병 1만4천명을 잃었고요.
기병 300을 잃었고 포로가 4.000명이 되었습니다,
이 전쟁은 또 다시 이집트의 승리가 되었습니다.
12절에서 우리는 또 이런 말씀을 읽었습니다.
단 11:12 “그가 큰 무리를 사로잡은 후에 그의 마음이 스스로 높아져서 수만 명을 엎드러뜨릴 것이나 그 세력은 더하지 못할 것이요”
무슨 말씀 같습니까?
라피아 전쟁에서 대승한 남방 왕이 어떤 모습을 보이는 것 같습니까?
스스로 높아져서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라피아 전쟁에서 승리한 프톨레미 4세는 나태와 방탕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북방왕은 어떤 모습으로 있었을까요?
오늘 제가 제목을 와신 상담이라는 제목을 정하였습니다.
시작때 이미 말씀 드렸죠?.잘되면 나태하고 어려움을 당하면 분발하고 그게 사람의 본성인 것 같습니다.
우리 신앙도 그런 모습을 보입니까?
여러분들은 구약성경 사사기를 읽으면서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한 말씀만 올리겠습니다.
삿 3:11-12 “그 땅이 평온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또 라는 말씀은 무슨 말씀입니까? 상습이라는 용어가 생각나지 않습니까?
저는 사사기를 읽으면서 사사기가 나의 모습을 기록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안하면 우상숭배에 빠지고 어려우면 하나님 도와 주소서 라고 소리를 지르고요.
그리고 도움을 받아 평안해 지면 또 다시 우상숭배에 빠지는 저의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우상숭배라고 해서 신상을 만들어 섬기는 그런 일은 없겠죠?
자기 사랑의 우상, 탐심의 우상, 편하게 살고자 하는 우상들 불순종의 우상 내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우상들, 끊임없이 일어나는 그런 모습을 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그렇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환경이든지 좋지 못한 환경이든지 평안할 때는 어려웠을 때를 생각하고요.
어려울 때는 하나님께서 도와 주실 것을 생각하고 와신상담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큰 승리로 자만과 평안과 안일에 빠져 있을 동안 크게 패하여 어려움을 격었던 북방왕은 뭐하고 있었을까요?
성경은 그 다음의 기록을 어떻게 보여 줍니까?
단 11:13 “북방 왕은 돌아가서 다시 군대를 전보다 더 많이 준비하였다가 몇 때 곧 몇 해 후에 대군과 많은 물건을 거느리고 오리라”
승리한 남방왕은 스스로 높아져서 태평세월을 구가하고 있을 때 북방왕은 무엇을 하였다는 것처럼 보입니까? 전쟁을 준비하였다. 와신 상담 하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한국경제신문의 논설위원으로 있었던 박성희 기자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절의 시간을 맞는다.
인생의 성패는 고난을 발판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 가느냐 세상의 냉정함과 자신의 무능을 탓 하면서 주저 앉느냐에 달렸다,
문제는 실수가 아니라 실수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상황과 실수 실패에 매이지 않고 절치부심, 노력하면 하늘도 보살핀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 할 수 있습니다.
그 실수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실수하고 주저 앉아 있는 것이라고 하죠?
이런 글을 남기면서 사자 성어 절치부심이라는 말을 기록하였습니다.
절치부심이라는 사자 성어를 들어 보셨습니까?
그 말의 뜻은 이를 갈고 마음을 썩인다 라는 의미입니다.
몹시 분하여 마음이 쓰린 것을 말하죠.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긍정적인 의미로도 쓰일 수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상처를 받았을 때 또는 못 마땅하는 사람이 나의 신앙의 길을 막을 때 그런 마음을 가지자 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사람에 대한 분한 마음이 아니고요, 사람에 대하여 이를 가는 것이 아니고요.
이런 환경을 만든 사탄을 향하여 이를 가는 심령으로 다시 결심하여 오로지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 안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리라 라는 결심을 하자는 말씀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역사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세상 역사도 방종하고 나태하면 멸망이 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 유명한 세계 최고의 영웅이었던 알렉산더도 그랬고요.
오늘 말씀을 살핀 남방왕도 그랬습니다.
이겼다고 자만하고 나태하면 망한다는 것을 통해 우리 신앙은 무엇을 배울 수가 있습니까?
예수께서 밧모섬에서 요한을 만나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계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사랑하는 성도님들 세상 소리에 귀를 닫고 참된 증인이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기를 소망합니다.
책망의 소리라고 무시하지 마시고요, 거절하지 마시고요 받아 들이면 삽니다.
거절하면 죽고요 받아 들이면 삽니다,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신다고 하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는 음성은 저의 음성이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음성으로 받아 들이시면 유익이 있지만 연약한 실수 많은, 허물많은 한 죄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치부해 버리면 손해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예수님의 음성에 매일 매일 귀를 기울이시고 그 음성을 듣고 예수님께 문을 열어 드리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그 주님 안에서 주님을 모시고 함께 동행하시는 삶이 되길 축복합니다.
그래서 그 주님께서 오시는 그날 그 영광중에 꼭 참여하는 은혜가 우리 모두와 함께하길 축복합니다.
개인기도.
징조를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허물을 용서 하소서
죽어가는 영혼들의 소리를 듣고 손을 펼 수 있게 하소서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는 죄를 짓지 않게 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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