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야초 이야기] 천문동 (天門冬)
달리는 말도 따라 잡는 힘의 원천, 천문동(天門冬)이 하산(下山)하려는 까닭?
윤영무 기자가 간다 『생명을 살리는 흙의 건강 처방전』
뿌리만 캐 먹고 산속에서 살다가 만난 귀신(?)
40대 초반의 그가 깊은 산속에 들어와 비닐 천막을 치고 산중 수련을 하는 이유를 사람들은 알 수 없었다.
물어봐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빙그레 웃기만 했으니까. 그는 어젯밤에 이어 오늘 밤도 눈을 반쯤 뜬 상태에서
편평한 바위 위에 가부좌 자세로 앉아있었다. 별빛마저 구름에 가려 칠흑같은 어둠이 숲속에 내려앉은 가운데
계곡의 쏟아지는 물소리와 나뭇잎을 지나가는 바람 소리, 그리고 숲속의 온갖 풀벌레와 그 숫자를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불가사의(不可思 議)한 흙속의 미생물들이 활동하는 소리가 정적을 깨며 그의 귓가에 밀려들었다.
그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가, 몇 초간 멈추고, 다시 들이쉰 숨을 내쉬며 배꼽 아래 단전에 힘을 모았다.
낮에는 짐승처럼 먹을 수 있는 산야초를 찾아 산속을 다니다가 밤이 되면 단전호흡을 했다. 오늘로 꼭 일주일 째,
그는 동물의 본능을 가진 산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뿌리엔 독이 없다”는 말을 약초꾼들로부터 들었던 그는 산에서 3일째 되는 날, 허기를 참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모든 식물의 뿌리를 캐어 먹기 시작했다. 노란색이 감도는, 독성이 있다는 뿌리를 제외하고는 어느 것이든 다
먹었다. 배가 고프면 사람도 산 속에선 짐승이나 차이가 없었다. 산에 들어 올 때 가져온 생 현미가 있는 한,
산에서 캔 뿌리만 먹고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고 느꼈다.
산중 생활에 자신감이 생기자 이번에는 자신이 산속에 홀로 있다는 외로움에 괴로워 해야 했다. 밤이 되면 그
외로움은 공포심으로 변해서 산속에 혼자 있다가 무슨 일을 당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되어 밤마다
손님처럼 찾아왔다.
캄캄한 밤의 한 가운데로 들어선 지금도 그랬다. 그는 갑자기 자신의 등에서 누군가 있는 것 같은 싸늘한 느낌으로
살갗에 닭살이 돋아, 반 쯤 감았던 눈을 떴다. 그 순간이었다. 캄캄한 눈앞에서 머리 를 산발하고 소복을 입은 여자
귀신이 서 있는 게 아닌가.
그는 “누구야 당신, 귀신이면 물러가라”고 소리를 치려고 했으나, 소리가 목구멍에 걸려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희뿌옇게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귀신은 분명히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누군가 귀신을 투사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그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귀신 앞에서 몸이 쪼그라들고 덜덜 떨리며 얼어붙어 그 자리에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으으으~~~” 그는 숨이 멎는 신음 소리를 내며, 이마를 바위에 박고, 싹싹 빌었다.
일반 음식에서 나는 이상한 냄새의 정체
20여 년 전이었다. 나는 충남의 한 농촌체험마을에 취재하러 갔다가, 2년간 산중수련을 했다는 그를 만나, 산속의
체험담을 들었다. 그는 보통 사람보다 10센티만큼 작은 키였지만, 극도로 다부진 체격이었다. 구릿빛 피부에, 팔뚝에
솟은 핏줄과 힘줄이 힘차게 솟구쳐 나왔으며, 어깨와 허벅지가 대리석 조각처럼 단단했다. 그는 자신이 산야초를
연구하기 위해 산중 수련을 했었노라고 고백했다.
“그런데 산에서 귀신을 본 게 사실인가요?” 내가 물었다.
“제가 왜 기자한테 거짓말을 하겠어요. 이마를 바위에서 떼고 한참 빌었다니까요.”
“혹시 잘못 보신 거 아닐까요? 배가 고파서, 아니면 집 생각이 나서 헛것을 봤거나”
“헛것이요? 아닙니다. 헛것인지 아닌지 저는 알지요. 여하튼 믿으시든 안 믿으시든, 저는 그날 밤 뜬 눈으로 보내고,
먼동이 트자마자 바로 하산했어요. 도저히 무서워서 더 있을 수가 없었지요.”
“산에서 그럼 일주일 밖에 안 있었잖아요? 2년을 수련을 하셨다면서?”
“마을에 내려온 뒤, 회복하는데 몇 달이 걸렸어요. 그렇지만 먼저 그 산에는 도저히 갈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산으로 들어가서, 산야초만 먹고 살아본 것이지요.”
“그랬군요. 산야초만 먹고 살다가 하산하고 나서 달라진 게 있었나요?”
“있었지요.”
“그게 뭐지요?”
“식당 밥을 먹을 수가 없었어요. 냄새가 나서. 구역질까지 나요... 요즘 조금씩 먹어보긴 하지만, 거의 집에서 내가 직접
만든 음식만 먹고, 가끔 산에 가서 산야초 식사를 하고 내려오곤 합니다.”
“음식에서 냄새가 나는 건 당연하지 않나요? 나는 맛이 있던데...”
“물론 그렇지요. 그러나 모든 식물은 각자 고유의 향과 맛을 갖고 있거든요. 식당 음식은 그런 식물의 맛과 향이 나질
않아요. 뭔가 고약한 냄새가 나는 거예요. 화학비료, 농약을 써서 그런게 아닐까 싶은데요.”
그는 숲속 부엽토의 미생물이 키워낸 산야초에서는 일반 식물과 달리 고약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모든
식물은 흙의 미생물이 키워야만 된다면서, “산삼을 된장에 찍어 먹으면 되겠느냐?”고 되물었다. 식물에 뭘 치고 발라
먹는 것은 식물이 본래의 맛과 향을 잃어 맛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달리는 말을 따라 잡는다는 하늘이 내린 약용식물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야생동물이 건강한 이유를 알 수 있을 듯 했다. 야생동물이라고 해서 죽을 때까지
건강한 상태인지 아닌지, 나 같은 문외한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산속에는 병원이 없고, 야생동물이 자진해서
진찰 받을 일도 없다는 건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그러니 사람이 산 속 야생동물과 달리 몸이 아픈 것은 혹시 먹는 것이 그들과 달라서 그런 건 아닌지, 합리적인 의심을
해 볼 수는 있었다. 그는 산속 수련 2년 만에 야생동물에 가까운 사람이 되었다. 인간이 가지고 있던 원래의 미각을
되찾았고, 산야초만을 주식으로 하고 산을 오르내림으로써 건강하고 건강한 몸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인공조미료와 가공식품에 길들여진 나 역시 음식을 바꾸면, 그처럼 건강한 몸이 될 수 있을까? 하여 그에게
“밥을 먹지 않고도 산야초만 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았나요?” 하고 물었다.
“물론이지요.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식물은 대략 5천 가지라 고 합니다. 제가 이 모든 식물을 다 먹어 보지는 않았고,
그럴 수도 없겠지만, 그 중 5% 정도는 먹어봤지 않았을까 싶어요. 산중 생활을 하면서 밥을 지어 먹지는 않았고, 현미를
한 주먹씩 생으로 먹고, 주로 산야초 뿌리를 먹었습니다. 예전에 쌀이 없어서 고구마로 끼니를 채우고 살았을 때처럼
했지요. 그런 뿌리 가운데서도 천문동 뿌리를 먹었을 때, 정말이지 배도 전혀 고프지 않았고 몸에서 힘이 솟는 게 느껴
졌습니다. 산을 오르락 내리락 거려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거든요.”
“지금, 천문동이라고 하셨나요? 천문동이 뭐죠?”
“네, 천문동(天門冬), 글자 그대로 하늘의 문을 열어주는 겨울 식물이란 뜻이지요. 산삼은 뇌두(腦頭)에서 뿌리가
하나만 자라는데, 천문동은 뇌두(腦頭)에서 길고 가는 고구마 같은 덩이뿌리가 수십 개에서 수백 개 까지 마치 종(鐘)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자라지요.”
“생김새가 서양의 야콘 같은 거네요.”
“비슷하긴 합니다만, 똑같지는 않아요. 그 천문동 덩이뿌리를 하나 떼어, 껍질을 벗겨보면, 하얀 아이스크림 같은
속살이 나오는데 그걸 생으로 먹는 거지요. 천문동 뿌리 몇 개를 한 끼로 먹고 나면 거짓말처럼 속이 든든해요. 특히,...”
“특히?”
“제가 듣기로는 이것을 장복하면, 달리는 말을 따라잡을 만큼 힘이 생기고, 희끗희끗했던 머리가 까맣게 된다고 합니다.”
조선 영조대왕이 즐겨 먹은 천문동, 혈관속의 노폐물 청소
그는 자신이 오래 전, 산에서 캐서 말렸다는 아교같이 생긴 단단한 천문동 뿌리를 보여주며 말했다.
“이게 옛날부터 강장제와 선약으로 쓰인 겁니다. 신선의 술법을 닦는 사람을 방사(方士)라고 하는데 중국 진나라 때 갈홍
이라는 방사가 포박자(抱朴子)라는 책을 지었어요. 이 책에서 그는 천문동을 삶거나 쪄서 곡식으로 먹으면 다른 곡류를
먹지 않고도 거뜬히 살 수 있다고 그랬어요. 두자미라는 사람은 천문동만 먹고 80명의 첩을 거느리고 130명의 자식 을
두었는데 140살까지 살고도 하루 300백 리를 걸어도 지치지 않았다는 합니다.”
“전설 같은 이야기네요.”
나는 두자미라는 사람이 허장성제를 떤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산속에서 제대로 큰 천문동을 상복한다면, 과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추론을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조선 세종 때 편찬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에도 “천문동은 풍습으로 인한 중풍을 치료하고 골수를 보충해 준다. 오래
먹으면 기운이 나고 몸이 가벼워지며 배고픈 줄을 모른다. 기침이나 천식으로 숨이 몹시 차고, 폐종양으로 인한 고름
등을 치료하고 삶아서 오래 먹으면 살결이 윤택하게 되며, 몸의 온갖 가쁜 기운과 더러운 것이 없어진다,” 고 했다.
동의보감에서도 “숨이 차고 기침하는 증상을 낫게 하며, 오장을 편하게 해주며, 당뇨를 멎게 한다.”고 기록했다.
조선의 효종은 기침과 가래 때문에 천문동을 활용한 탕제를 복용했고, 80살로 장수를 누린 영조 대왕은 이를 즐겨
먹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문동 뿌리에는 물에 잘 녹는, 수용성 사포닌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데 이 성분은
마치 천연비누처럼 거품을 내며 혈관 속에 들어있는 노폐물을 청소한다고 한다.
유기농 약용 식물 재배종으로 떠오른 천문동
천문동은 원래 우리나라 서해안과 남해안 바닷가 산기슭, 섬에서 자생하는 토종식물이다. 하지만 몸에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무분별한 남획이 시작되어 지금은 전국의 자생지 몇 군데만 발견될 뿐, 거의 절멸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렇게 되자, 천문동도 스스로 자신의 종족 보존을 위해 개구리 알처럼 까맣게 생긴 씨앗을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산중 계곡 주변의 바위틈에 안착(安着)시켰다. 주로 해발 700백여 미터, 돌들이 깔린 산비탈 즉, 너덜지대면서 가랑
잎으로 덮이고, 해가 잘 드는 곳을 골라 종족 번식을 시도하고 있다.
천문동 자생지의 흙은 낙엽 부엽토가 충분히 형성돼 미생물 활동이 왕성하고, 배수가 잘 된다. 천문동이 약효를
가지려면, 이런 환경 속에서 최소한 5년 이상 자라야 하며, 술을 담으려면 10년 이상 자란 것을 써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이 귀신처럼 찾아 다 먹었을 것 같은데요, 아닌가요?”
뱁새처럼 초롱초롱한 눈매를 가진 그는 내가 묻는 말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렇지는 않지요. 멧돼지도 천문동 좋을 것을 알겠지만 천문동 줄기에 가시가 있어서 캐 먹을 수가 없어요.
천문동 가시는 다른 식물 가시와 달리 가시 끝이 아래로 향해 있어요. 흔히들 역(逆)가시라고 하는데요. 동물이
입을 대는 순간 면도날 같은 가시에 입안이 찢길 테니까 알고도 건드리지 못하는 거지요.”
“그럼 천문동을 산자락 밭에 옮겨 심어도 야생동물 피해를 보진 않겠네요.”
“그렇지요. 요즘 천문동 묘목을 사다가 밭에서 재배하는 농가들이 있거든요. 밭의 흙을 산속의 흙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준다면, 천문동은 저절로 잘 자랄 겁니다.”
천문동은 사람의 손이 덜 가면 갈수록 잘 자란다. 그저 풀을 뽑아 주는 게 일이라면 일이다. 화학 비료나 농약을
사용해서는 더더욱 되지 않으니, 재배 농가에서 볼 때도 품이 거의 들지 않는 유기농업이다. 흙 속 미생물의 세계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가가 천문동 재배의 관건이긴 하지만 천문동 밭에서 나는 풀을 뽑아서
그대로 흙 위에 덮어주면 되니까, 나이 들어서도 도전해 볼 수 있는 약용 작물이 천문동이 아닐까, 하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천문동은 거의 중국에서 수입된 것, 해마다 100톤씩 들어오고 있긴 하지만 국내산에 비해
효능이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산자락 밭을 낙엽 부엽토의 흙으로 조성하면, 그 흙은 반드시
제대로 된 약효의 천문동으로 보답할 것 같았다.
MeCONOMY magazine 윤영무 본부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