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밖으로 나와 닫힌 방문 앞에 섰다. 십이 년 전에 주인을 잃은 방은 시간이 지나도 열리지 않았다. 형은 열여덟 살에 세상을 떠났고 그렇게 엄마 아빠에게 영원히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아 버렸다. 내가 기억하는 형은 사진과 동영상 속 모습이 전부였다.(23)
맞는 열쇠가 아니라는 메시지조차 뜨지 않았다. 괜한 욕심에 형의 계정마저 사라지게 했다. 갑자기 찌르는 듯한 두통이 밀려들었다. 무거운 구형 XR헤드셋을 착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엔 자꾸만 마음 한구석이 따끔거렸다. 긁어 부스럼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더는 형의 세계에서 서성거리고 싶지 않았다.(44)
“미안해. 그동안 한 번도 미안하다 말하지 못해서. 네 마지막 날에 찾아가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배웅해 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 그런데 나 정말 잘 수가 없었어. 내겐 그럴 자격이 없잖아.”(238)
-먹어도 돼, 인마. 너 어릴 적에 귤 얼마나 좋아했는데. 작은 배가 볼록해질 정도로 오물오물 잘도 먹었지. 그러니까 이제부터라도 잘 먹어. 귤 좋아하면 겨울이 즐겁다.(241)
“저 예전에 귤 되게 좋아했대요. 작은 배가 볼록……아니, 아주 잘 먹었대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귤을 싫어하게 됐어요. 이상하게 신맛이 입이 아니라 가슴에 퍼지는 것 같았어요. 이제는 조금씩 먹어 보려고요, 선생님도 귤 드셔 보세요.”(245)
----황망하게 떠나버린 형의 죽음, 형의 흔적을 더듬으며 형의 비밀 문을 열었다. 4,140일 만에 열린 정원에는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현실의 그 누군가를 찾아가는 과정이 몰입감을 더한다. 주인공 선우 혁의 1인칭 시점의 소설이다. 선우 혁의 시점에서 형인 선우 진의 죽음을 되짚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갈수록 형과 닮아가는 모습, 형이 다니던 고등학교에의 진학, 메타버스를 통해 형의 세계에 접근하게 된 나. 이야기의 도입이 흥미롭다. 중간에 들어 있는 편지는 누구의 편지인지 궁금증이 일어난다. 후반으로 가서야 서서히 진실은 드러난다. 흡입력이 강한 소설이다.
가슴에 맺힌 그것은 귤로 상징되었다. 귤을 먹을 수 없는 마음, 신맛이 입이 아닌 가슴에 퍼지는 쓰라림에서 이제 그들은 조금씩 벗어나리라. 안타까움과 자책과 미안함이 엉켜있는 감정의 실타래가 풀리며 위로와 위안을 준다.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상실감을 이제 막 시작하는 첫사랑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