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장례식장
부음이 왔다. 현직에 있을때 상사로 모셨던 분이다. 그 분은 평소에 강직하고 허식을 멀리하셨다.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라서 건강에 늘 자신감을 가졌던 분이셨는데... 건강백세를 말한다면 일찍 돌아가신 편이지만 팔순후반을 살았으니 장수 하신것이다.
발인 하루전날 장례식장을 찾았다. 입구부터 느낌이 달랐다. 장례식장을 가면 제일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화환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빈소 입구에 빽빽이 도열된 화환을 보면 대부분 낭비적임을 말한다. 어쩐 일인지 화환이 하나도 놓여 있지 않았다. 그 흔한 동문, 침목모임의 화환조차도 없었다. 다만 빈소 앞에 소박한 하얀국화 꽃바구니 하나가 은은한 향기를 풍기고 있을뿐.
화환을 많이 배치하여 가문의 품위를 과시 하려는 여느 장례식장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 분명 어떤 사연이 있음을 직시할수 있었다. 부의금 함이 있어야야 할 자리에도 “부의금을 받지 않습니다” 라는 글씨만이 있을뿐이다. 살아오면서 숱한 장례식장을 다녔지만 부의금을 사절하는 상가는 보기가 어렵다. 참으로 특이한 장례식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상객들이 모인 공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친소 친소 모인 사람들 앞에 놓인 것은 음식이 아닌 커피와 차 종류였다. 음식을 대접하지 않고 커피, 녹차, 생강차 등으로 조문객을 맞고 있는 것이다. 친척 인듯 한 분들이 따듯한 차 대접을 하는 것도 참으로 이색적이었다.
큰 상주분을 자주 접하지는 않았지만 고인을 상사로 모실 때 가끔 보았기에 금방 알아 볼수있었다. 분향을 마친후 손님이 뜸한 시간을 이용해 큰 상주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의도 별도로 마련하지 않았다 했다. 생전에 계실때 좋아하시던 옷을 사용했고, 관 또한 저렴한 것으로 하여 화장후 고향의 선영에 수목장으로 할 계획임을 강조했다. 고인께서 평소 장례 간소화에 대해 소신을 꼭 실천하도록 유언을 남기신 것이다.
현직에 근무하실때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아 충분히 그럴만한 분임을 짐작할수 있었다. 고인께서야 소신이 굳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유언을 어기지 않고 실행에 옮긴 자녀분들의 의지와 용기도 높이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례식은 사회적 의례 행위이다. 장례문화도 발전을 거듭해 지금은 어느 가정이나 장례식장을 이용하기에 이르렀다. 장례는 누구를 막론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삭히며 고인에 대한 마지막 예의를 갖추는 의례이다.
그런 진정한 의미를 새긴다면 어떻게든 상주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 조문객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오랫동안 이어져온 장례문화도 현실과 맞지 않은 형식이 있게 마련이다. 형식과 내용은 상호보완적이어서 때로는 형식이 내용을 규정짓기도 한다.
장례식장이라는 공간은 같았지만 마음 먹기에 따라 장례식장의 격식이 이렇게 달라질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기존의 관습을 깨고 다른 형식을 추구하는것은 남다른 용기가 필요 했으리라. 현실을 도외시한 격식을 행하기에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서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가 하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도 있을것이다.
그 분의 장례식장 분위기는 기존의 형식과 제도에 대한 반란이라는 점에서 분명 충격적이고 파격이었다. 이어온 관습을 깨기까지 많은 고민도 했을것이다. 차 한잔을 나누는 동안 한편으로는 무엇인가 있어야 하는 형식이 빠졌다는 생각에서 허전함의 느낌도 감출 수가 없었다.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부분은 그대로 가치를 지니지만 다른 사람과의 공감에 이르기는 쉽지 않다는 점을 새삼 확인했다.
장례식도 하나의 예(禮)이다. 예는 인간이 조화롭게 살기위해 오랜역사를 통해 만들어낸 형식이라고 할수있다. 우리사회 문화의 다양한 형식은 실제를 재현하는 사실주의적 입장과 맞지 않는다. 예는 관습적인 형식일때가 많다. 그것이 개인의 실제 현실을 벗어난 곳에 있다 할지라도.
예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하는 삶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나 개인의 입장과 욕심을 억제하지 않을 수없다. 현실적인 실제와 형식적인 관습은 늘 충돌한다. 어느 한쪽의 극단으로 쏠리지 않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세상에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했다. 장례풍습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시대가 변하는데 장례문화라고 변하지 않을 수있겠는가. 감히 개인의 소신대로 관습적으로 굳어버린 관습을 풀어헤치기란 여간 힘든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고인의 유언을 어김없이 실행에 옮긴 유족들의 용기를 가슴 깊이 새기고 싶다. 한사람의 결심이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수 있는 것은 선뜻 나서지는 못해도 상당부분 공감하고 있는 것이리라. 참으로 특별한 장례식장을 다녀와 가슴이 뭉클해진다. 시대변화 추세에 맞게 장례문화에도 변화의 발걸음을 떼어놓아야 하지 않을까. 30년전 삼복더위에 치뤘던 아버님 장례식을 떠올리니 잔잔한 웃음이 돋는다. 얼마전 TV에서 보도된 장례식장 비리에 대한 고발은 장례문화에 대한 변화의 길잡이가 되지 않을까.
첫댓글 대단하신 분이군요.
어르신도 그 자녀들도.....
멀지 않아 깔끔하고 미더운 장례문화가 구축될수 있겠단 기대와 희망을 가져봅니다.
좋은 눈을 가지신 삼별초님의 시각과 깊은 심성을 호흡했습니다.
네, 고문님 정말 대단한 분이십니다.
그 자녀분들도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미래의 장례식장의 분위기를 보는 것같았습니다.
차츰 변해야 할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애사때에는 아무리 멀다 하더라도 달려가지만 경사는 가족이 조촐하게 지내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기에 저는 경사는 참석을 잘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초대를 하면 어찌할 수 없이 축의금 가지고 가서 밥 한그릇 먹고 오지만 신랑이 누군지, 신부가 누군지도 모르고 식당으로 달려가서 밥 먹고 올때에 기분은 내 자식때에는 이런 것은 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을 하고 온답니다, 참 오랫만에 인사를 드립니다, 미세 먼지에 몸관리 잘 하시고 건강하십시요
정말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고 계시겠지요?
하시는 일은 잘 되시구요.
어느덧 절기가 바뀌고 있습니다.
따듯한 봄되면 언제 시간 내 산행 한번 하세요.
꽃의 물결 흐드러진 산속에서
새로운 에너지 가득 담을수 있길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