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런 카페가 있었다는 것도 이렇게 뒤늦게 알게되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며칠전 하고온 좋은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글을 쓰네요. 저는 2016년 현재 인제대학교 의대 본과1학년으로 재학중인 김도원입니다. 1학기에 학교를 다니던 중 이렇게 좋은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지원하게 되었는데 운이 좋게 선발되어 며칠 전 캄보디아로 해외봉사를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의료인으로 살아갈 것이기에 학생신분일 때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최대한 봉사를 하며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찰나에 이렇게 큰 좋은 기회가 저에게 주어졌습니다. 지원할 당시에는 호기심도 있었고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너무 많은 것을 배웠고 느낄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총 4일 간의 봉사기간 중 이틀은 쩡아엑 보건소에서 보냈고 나머지 이틀은 퐁특 보건소에서 보냈습니다. 봉사의 시작을 연 쩡아엑 보건소는 생각했던 것보다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일 것이라 예상했지만 작년에 봉사를 다녀가신 분들의 노고로 이미 구비되어 있는 약들도 있었고, 비교적 편하게 봉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퐁특 보건소는 많은 이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라는 설명답게 많이 열악했습니다. 약품은 커녕 화장실마저 물이 잘 내려가지 않아 불편을 겪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나마 주위분들의 도움으로 접수를 받을 수 있는 책상과 환자분들이 기다리실 수 있는 의자들이 주어져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학생들이 의료봉사에 참가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가진 지식이 완전한 것도 아닐뿐더러 실습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에 의료진 선생님들이 좀더 편하게 진료하실 수 있도록 여러 잔신부름을 하는 것 뿐이었지만 보람있고 뿌듯한 일들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해 이번 해외봉사에 참여한 학생은 12명이었습니다. 저희는 각각 역할 분담을 통해 효율적으로 진료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크게는 접수/구충제 배포/치과 보조/한방 보조/약국 보조/정형외과 보조/안과 보조 등으로 나누어 일을 했습니다. 또 최대한 매일매일 다른 일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 다양한 것을 배울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저는 첫째날 약국 보조를 맡았습니다. 이번에 봉사에 참여하신 의사선생님들이 모두 내과, 안과, 소아과, 정형외과, 통증의학과, 산부인과, 치과선생님들이신데 이 모든 과에서 진료를 받은 처방전들이 모두 약국으로 쏟아져 들어와 일이 꽤나 많았습니다. 또한 한국처럼 다양한 약들이 구비되어 있던 것이 아니라 처방전에 쓰여진 약을 대신할 수 있는 대체약품들을 일일이 찾아가며 약을 쌌고 또한 최상의 환경이 아닌만큼 옛날방식으로 약포장기계를 이용했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렸으며 조금은 바빴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처방전을 정확하게 읽는 법을 배울 수 있었고 차트에 기록된 진단명과 처방약들을 보며 어슴프레(?!) 배우는 것들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둘째날은 접수를 보았습니다. 캄보디아어를 알아들을 수 없는 관계로 각 분야마다 현지인 통역학생이 붙여졌는데 환자가 어디가 불편한지 호소하는 말을 통역학생이 듣고 저에게 말해주면 제가 좀더 자세히 문진 등을 하여 종이에 기록하고 환자가 어느 과로 가서 진료를 받아야 할지등을 적는 일이었습니다. 친구와 대화하는 것처럼 원활한 의사소통은 아니었지만 캄보디아 친구들이 열심히 통역해주고 일해준 덕분이 환자분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적어낼 수 있었고 선생님들이 진료하시는데 적게나마 보탬이 될까 하나라도 더 물어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문진하는 법을 배웠었는데 그때는 표준화환자를 대상으로 많은 시간과 여러 좋은 진료여건이 주어진 상태였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실제환자와 있을 수 있는 여러 상황을 경험하게 된 것 같습니다. 또한 혈당이 높은 환자가 왔을 때 즉석에서 혈당을 검사하는 법도 배웠습니다.
셋째날은 치과에서 일할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봉사 셋째날이라 많이 지쳐있기도 했었고 음식을 잘못먹었는지 속도 안좋은 상태에서 봉사를 해야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혹시나 선생님들도 지쳐계실텐데 피해가 되진 않을까 실수를 하진 않을까 많이 긴장하고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다행히 보건소를 옮기면서 진료여건이 조금 바뀌어 할일이 많진 않았습니다. 치과기구를 소독해야 하는데 소독하는 기구가 없어서 직접 기구들을 설거지하듯이 닦고 캡슐 같은 것으로 한번더 소독하고 삶는 과정을 해야했는데 체감온도 40도에 육박하는 날씨에 펄펄끓는 물앞에 서있으려니 조금은 고통스러웠던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또한 제가 자원한 봉사의 하나였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나보다 더 힘든사람들을 생각하며 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날은 정형외과보조를 할수 있었습니다. 평소 정형외과에 관심이 많아 몸과 마음은 많이 지쳐있었지만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보조일을 했습니다. 마취과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정형외과 선생님이 재놓으라고 하신 주사들을 재는 방법을 배웠고 정형외과에서 진료가 끝난 환자분들을 모시고 약국이나 타과로 데려다 드리는 일이 주업무였습니다. 퐁특보건소에는 비교적 연령층이 높은 환자분들께서 많이 찾아주셨는데 그때문인지 관절등이 아프다는 이유로 정형외과를 찾는 환자분들이 많아 정형외과가 많이 붐볐던 것 같습니다. 정형외과에서 일하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만14세의 어린 남자 환아였는데 뼈가 잘 형성되지 않아 거동도 못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골형성부전증(?)이라고 하셨던 것같은데 거리가 멀어 잘 듣지는 못했습니다. 큰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을 보고있자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여러과에서 일을 하면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저희의 봉사기간이 짧으니만큼 팔로우업이 되지 않았고 때문에 근본적인 치료보다는 통증완화 혹은 증상완화 등의 일시적인 치료가 이루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캄보디아는 우리나라처럼 의료체계가 확립되어있지 않아 의료비가 매우 비싸고 보험같은 것도 갖추어져 있지 않기때문에 의료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이 매우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인간의 기본권 중 하나가 건강권이니만큼 캄보디아 국민들에게도 무한한 양질의 의료서비스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나라가 그러한 체계를 갖출 때까지 비록 증상완화에만 초점을 맞출수 밖에 없더라도 이러한 의료봉사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봉사를 마치고 귀국한지 4일째인 아직도 진료를 받고 나가며 제손을 잡고 고맙다며 두세번 고개를 숙이던 환자분들과 새끼손가락을 잡고 놓아주지 않던 캄보디아 어린이들이 눈에 선합니다.
첫댓글 사업회와의 인연도 잘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랄게요.
고생 많았습니다.훌륭한 의사가 되시어 다음기회 더 많은 봉사를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