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연구 49. 바리새인들에게 대한 책망3 (마 23:37~39)
2014. 07. 15
옹달샘교회 조해강
목사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
본문 관찰:
①
듣지 않고 돌이키지 않는 영혼들에게 대한 주님의 탄식과 안타까움을 보여주는 본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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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구약의 선지자들의 외침과 일맥상통한다-돌아오라(히브리어-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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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탉이 그 새끼를 모르려 함같이 너희를 모으려 함-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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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같은 로마, 또는 애굽과 앗수르로부터 보호하려고
하심
②
현재 예루살렘의 특징-7가지 화에 나타난 대로 본질을 잃은
종교생활을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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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st 저주e 23:13 천국 문을 닫고 다른 사람도 못 들어가게 함. e 이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가지지 않고 살아가는 책임자들 곧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의 삶이 천국 문을 닫는 행위하고 볼 수 있다. 그것에 걸려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과 유기적이고 살아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없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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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d 저주e 23:14 종교라는 외투 속에 극악한 악행을 범함. -과부의 가산을 삼키면서도 자신들의 악행을 가리기 위해 길게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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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rd 저주e 23:15 개종자 하나를 얻기 위해 열심을 내지만 일단 얻으면 더 악하게
만든다. 이 말은 그들이 개종하기 전보다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더 깊이 알아가기 힘들게 만든다는 의미다. 종교적 외식에 빠지면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알아가기는 불가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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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th 저주e 23:16~22 그들은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고 맹세를 무력화시키는 장치들을 고안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얼굴을 사람들이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신실한 신앙적 실천이야말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의 전제조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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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th 저주e 23:23 그들의 신앙은 미신적인 것이다.
사소한 것에는 목숨을 걸고 더 중요한 일들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박하와 근채와 회향의
십일조는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면서도 사랑과 정의에는 무관심한 것이다. 예배 참여, 교회 봉사, 헌금 생활 등에는 열심을 내지만 직장에서의 성실, 대인관계의 정직성,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 등에 있어서는
무관심한 오늘날의 신앙도 미신적인 면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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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th 저주e 23:25~28 겉으로 드러나는 면에 정성을 기울이지만 실상은 그것이 속임수요
거짓이라는 것은 자신들도 안다. 오늘날 겉으로 드러나는 치장의 가장 큰 영역은 예배당 건물이다. 과도한 욕심으로 인한 교회당 건축은 그 자체로 지탄과 조롱거리가 된 지 이미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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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th 저주e 23:29~31 경건한 의인들의 죽음에 대하여 추모하고 존경심을 드러내는 일에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그런 의인들을 죽이는 행위를 인정하는 행동을 한다.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이 새로
취임하면 동작동 국립묘지에 헌화하면서 애국자들의 정신을 기리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리고 돌아서서 그들이
하는 일은 의인을 박해하는 일이다. 이런 일이 주께서 싫어하시는 것이다.
③
그 집이 황폐하게 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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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은 더 이상 자랑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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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도 더 이상 자신들의 이름을 내는 자랑거리가 되지 못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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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도 최고의 원전기술을 보유한 나라라는 명성을 가질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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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살롬의 머릿결도 더 이상 자랑거리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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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신뢰하는 것에 의해 넘어짐.
④
주의 얼굴을 보지 못함이 가장 큰 저주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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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축복기도는 여호와께서 그 얼굴빛을 비추어주시는 것이다.-민수기의
제사장 축복(민 6:23~27)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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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범죄하면 주께서는 그 얼굴을 숨기신다.
신명기 31:17~18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며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할 것인즉 그들이 삼킴을 당하여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이 우리에게
내림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냐 할 것이라. 또 그들이 돌이켜 다른 신들을
따르는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 때에 반드시 내 얼굴을 숨기리라
Ø 신명기 32:20
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숨겨 그들의 종말이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세대요
진실이 없는 자녀임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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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주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Ø 시편 102:2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Ø 시편 69:17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환난 중에 있사오니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Ø 시편 88:14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시나이까
Ø 시편 143:7
여호와여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영이 피곤하니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을까 두려워하나이다
Ø 시편 27:9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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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로 우리의 얼굴을 향하는 것은 주님의 원하시는 바기도 하다.
Ø 예레미야 7:24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신들의 악한
마음의 꾀와 완악한 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돌리고 그 얼굴을 향하지 아니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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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산나를 외칠 때까지는 그 복을 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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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여 온 이방인들은 복을 받았다-룻, 고넬료, 나아만 장군 등
⑤
왜 주께서는 외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유대인들의 삶에 만족하지 않으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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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주님의 호흡으로 인간이 지어졌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가장 내밀한 부분이 주님의 형상을 닮았으므로 그곳으로부터 하나됨과 진실함을 찾지 못한다면 어찌 하나됨을
이룰 수 있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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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도 그의 기도에서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신다고 고백했다.
Ø 시51편 6절-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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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것 세 가지는 정의, 사랑, 그리고 신앙이기 때문이다.
Ø 미가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2.
제사장들을 향한 책망하심 속에 나타난 하나님 아버지의 본심
①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은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는 것이다. 이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서로 함께 하며 사랑을 나누는 일의 시작을 의미한다.
이것이 예배요 사귐이요 친교다. 예수께서도 베드로에게 이런 친밀함의 우정을 요구하셨다.
15 Ὅτε οὖν ἠρίστησαν, λέγει τῷ Σίμωνι Πέτρῳ
ὁ Ἰησοῦς, Σίμων Ἰωνᾶ, ἀγαπᾷς με πλεῖον τούτων; Λέγει αὐτῷ, Ναὶ κύριε· σὺ
οἶδας ὅτι φιλῶ σε. Λέγει αὐτῷ, Βόσκε τὰ ἀρνία μου.
16 Λέγει αὐτῷ πάλιν δεύτερον, Σίμων Ἰωνᾶ, ἀγαπᾷς
με; Λέγει αὐτῷ, Ναὶ κύριε· σὺ οἶδας ὅτι φιλῶ σε. Λέγει αὐτῷ,
Ποίμαινε τὰ πρόβατά μου.
17 Λέγει αὐτῷ τὸ τρίτον, Σίμων Ἰωνᾶ, φιλεῖς
με; Ἐλυπήθη ὁ Πέτρος ὅτι εἶπεν αὐτῷ τὸ τρίτον, Φιλεῖς με; Καὶ εἶπεν αὐτῷ, Κύριε,
σὺ πάντα οἶδας· σὺ γινώσκεις ὅτι φιλῶ σε. Λέγει αὐτῷ ὁ Ἰησοῦς,
Βόσκε τὰ πρόβατά μου.(요 21: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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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두 번 아가페 사랑을 하느냐고 베드로에게 물으셨고 그 때마다 베드로는 필리아 사랑을 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세번째 예수께서는 필리아 사랑을 하느냐고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그리고 베드로는 필리아 사랑으로 사랑한다고 대답했다. 친구 같은
진실한 우정으로 베드로는 주님을 사랑했고 주께서도 그것을 그에게 물으셨다.
②
이 친밀함을 깨뜨리는 것은 거짓이며, 욕심이며, 외식이고, 허영이다. 그런
삶에는 의의 태양이신 주님의 얼굴빛이 비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예루살렘의 패망이다. 다시 말하면 자랑거리가 더 이상 자랑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③
주님을 향한 진실한 고백을 회복할 때까지는 주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