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밀회나 마녀의 연애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연상녀들의 치명적 매력은 브라운관을 넘어 실제 ‘연애계’에서도 어린 남자들을 홀리는
중이다. 꼿꼿하고 빈틈없는 완숙미로 중무장한 누나들은 어떤 순간에 어린 남자들에게 무너질까. 힘의 논리로 바라본 연상연하 커플의 핫스폿(Hot
Spot).
연상녀와 연하남의 궁합은 생물학적으로 이미 ‘건강하고 이상적인 남녀관계’로 검증된 연애패턴이다. 새로울 것 없는 흔한 연애가
우리나라에서 유독 도드라지는 건 유교적 통념 탓이 크다. 지난 10년의 추세를 보면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고,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연상녀-연하남’ 커플에 대한 인식도 크게 변하고 있다. 실제 사례가 많아지고 나이차도 크게 벌어지는 등 연애 패턴이 다변해지는 양상이다. 이건
뭘 말할까.
첫째, 자기관리가 철저한 매력적인 연상녀가 많아졌다. 둘째, 우리 사회의 보수성이 한층 유연해지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셋째
징후가 있다. 연애야말로 힘의 논리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 논리는 이전에도 그랬고
이후에도 변하지 않을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이 관점에서 보면 연상의 여자가 연하의 남자와 연애할 확률은 갈수록 높아질 것이다.
왜냐. 여자들이
‘쎄’지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처럼 포근하고 안온해서 연상녀를 사귀는 건 올드패션이다. 경제적인 여유 때문에 연상녀를 반기는 건 둘 다 더러운
감정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므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마음 고쳐먹는 게 좋겠다. 요새 어린 남자들은 연상녀에게 세상을 배운다. 두 남녀는
어른들의 연애와 함께 사회라는 정글을 헤치면서 성장해간다.
10년도 더 된 영화 <질투는 나의 힘>에서 박해일은 술을 잔뜩 마신 뒤 짝사랑하는 회사 선배 배종옥을 찾아가
문성근과의 불륜관계를 잇고 있는 그녀에게 말한다. “누나, 그 사람이랑 하지 마요. 나도 잘해요.” 박해일을 바라보던 배종옥의 시선은 딱
이랬다. ‘어이구 그랬쪄요? 우쭈쭈쭈~.’ 이런 찌질한 멘트에 설렐 여자는 없다.
하물며 세상 좀 살아본 연상의 여자가 술기운을 빌어 질투심이나
늘어놓는 남자에게 마음을 열 리 만무하다. 남자란 제 속 털어놓는 걸 어려워하는 족속이다. 삭히고 참는 걸 미덕으로 알고 살아간다. 때문에
고백에는 엄청난 용기가 따른다. 술기운 없이, 속으론 달달 떨면서도 겉으로는 무심하거나 담백하게 내놓는
남자의 고백은 누나를 설레게 한다. “누난 내 여자니까”라던 이승기처럼, 한술 더 떠 “(당신은) 내 마음이 흔들리는 걸
읽어줬어요. 남자는 그럴 때 키스해요”라던 유아인처럼.
연상녀 A는 띠동갑 연하남과 1년 넘게 비밀 연애를 했다. 처녀 총각의 연애였으니
숨길 것은 없었지만 문제는 남자가 제법 얼굴이 알려진 운동선수였다는 것. 데이트 장소는 주로 차 안과 연상녀의 집이었다. 여느 바쁜 연인들처럼
밤낮을 쪼개가며 만나던 중 의혹의 시선이 날아왔다. 아직 현역이었기에 자칫 선수 생명에 지장을 받을 수도 있었다. 여자는 결심했다고 한다.
어리고 앞날이 창창한 연인을 막아설 순 없었다. 헤어지자고 말하는 여자에게 남자는 프러포즈를 했다. “너, 나를 다른 여자한테 보내도 괜찮아?
난 안 돼. 결혼하자”라고 했다지. 여자는 기어이 결별했고, 남자는 운동에만 전념하며 시간을 보냈다. 가끔 여자는 회상했다. 힘들었지만 잘한
결정이었다고, 그리고 그 고백만은 지금 떠올려도 심장이 뜨거워진다고.
누나라고 매사 당당하랴. 오히려 반대다. 치열하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감성적으로 마모된 채 하루하루 버티며 일터에 나간다.
그러다보니 연애보다 일이 우선. 감정 처리에 서툴 수밖에 없다. 달달한 고백 한 번에 함락되면 좀 쉽게? 천만의 말씀. 끌리는 남자에게 마음
활짝 열어젖힐 여유가 누나들에겐 없다. 이때, 연하남들의 머뭇거리는 스킨십은 결정적 한 방이다.
스킨십은 두 종류다. 사회적인 스킨십과 말 그대로 육체적인 스킨십. 전자는 연상의 여자가 지금껏 달려온 커리어를 존중하는 조심스런 태도, 후자는
어린 혈기로 밀어붙이기보다 감정을 최대한 누른 채 다가오는 숨결. 손을 잡아준달지, 어깨를 빌려준달지, 귀밑머리 한번 넘겨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 어린 남자가 나를 이해하고 있구나’라는 마음이 전달되면 된다.
연상녀 B의 ‘웃픈’ 고백 하나. 열 살, 여기도 만만치 않은
나이차였다. 취미활동을 하다 만난 두 사람은 연하남의 구애 끝에 정식으로 사귀기로 하고 데이트를 시작했다. 꽃구경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두 손 꼭 붙잡고 셀카도 찍었다. 하지만 30대 후반의 여자가 느끼기엔 뭔가 진도가 나가다 만 느낌이었다. 보름이 넘도록 키스 한 번
없었다. 술을 엄청 마시고 키스하자고 덤볐다. 남자는 정말 그래도 되느냐며 허겁지겁 입술을 받았단다.
날라리처럼 보일까봐 스킨십을 돌탑 쌓는
기분으로 하루하루 미뤄왔다는 귀엽고 애틋한 고백에 여자의 몸은 더욱 달아올랐다지. 또 다른 연상녀 C는 나이가 어리고 조신한 남자친구 때문에
애를 태웠다. 주말 밤 그녀의 집에서 함께 TV를 보다가 여자 쪽에서 분위기를 잡으려는 조짐만 보이면 어린 남자는 반듯하게 누워 잠을 청했다.
자존심에 확 스크래치 난 여자는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슬슬 간질여봤다지. “누나!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라며 정색하더라나. 당시엔
확신이 없었다던 두 사람, 요샌 사랑의 순풍이 불어 쭉쭉 쾌속항진 중이란다.
누나들의 마지막 아킬레스건은 여전히 도사리고 있는 우리 사회의 통념이다. 제아무리 잔다르크적 세계관으로 무장했다 쳐도 현실에서
툭툭 부딪히는 연애의 허들을 콧방귀 뀌며 무시할 수 있기란 쉽지 않다. 이럴 때는 반대로 남자가 머뭇거리면 그 연애, 그 사랑, 볼 장 다 보고
날 샌다.
나이 많은 여자의 무릎이 통념 앞에서 꺾일 때 뒤에서 든든히 받쳐주는 남자의 존재감, 내 등
뒤에서 (본인도 나이 많은 여자와 연애하느라 신경 쓸 거 많은 처지에) 누군가 나를 바라봐주고 있다는 안정감, 이것에 감동받은 누나는 유일한 한
사람, 자신의 어린 남자 앞에서 무장해제하고 가슴을 연다.
연상녀 D는 보수적이고 의존적인 성격에 안전지향주의자였다. 열 살
이상 어린 남자와의 연애는 꿈도 꾸지 못하던 어느 날 일 때문에 만난 어린 남자에게 걷잡을 수 없이 끌리기 시작했다. 남자의 대시도 때마침
시작됐다. 사귀고 나서 얼마 후 여자의 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감당하기 힘든 연애에 부친상까지 당하니 여자의 마음은 메말라갔다.
헤어지자며 밀어내는 여자는 아랑곳없이 남자는 사흘 내내 장례식장을 지켰고, 딸 둘만 있던 상가에서 상주 노릇을 하며 조문객을 맞았다. 두 사람은
결혼했고 남자를 닮은 훈남 아들이 곧 돌을 맞는다.
연상연하커플의 연애는 힘의 논리에 의해 크고 작은 제약을 통과하면서 둘이 함께 이뤄낸 사랑의 성곽, 러브캐슬이다. 그러다보니
맥없이 무너지는 경우도 많지만 결실을 이룰 경우 연상남·연하녀 커플보다 한층 견고한 관계를 유지한다. 생물학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원숙미와
청년정신의 결합이 만들어내는 짜릿함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보통의 연애이면서 비범한 연애, 범법은 아닌데 어딘지 은밀한 연애, 뜨겁게 타오르기 딱
좋은 조건이다.
글 안은영(대중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