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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능력은 기도입니다(약 5:13-18)
우리가 요즘 묵상하는 생명의 샘가의 본문은 사도행전입니다. 그런데 지난 주간에 사도행전 16장을 묵상하면서 사도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 억울하게 옷을 찟기고 매를 맞고 지하 감옥에 갇혔습니다. 밤중에 불도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이들은 일어나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생각하며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평상시에도 기도하지만 고난이 다가왔을 때도 여전히 기도합니다. 사실 고난속에서 희망이라고는 오직 하나님밖에 없음을 절실히 깨닫고 더 기도합니다. 바울의 기도를 통해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이 임재하신 것입니다. 옥터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고 묶였던 사슬이 다 풀어졌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빌립보감옥의 간수가 예수믿고 구원받아 온 가족을 구원하는 이적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기도는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과의 대화입니다. 대화의 줄을 끊치 않고 기도한다는 것은 그 영혼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기도는 환경과 여건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어디서든지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이 다가왔는데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는 분명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기도만큼 위대한 능력은 없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손을 움직이게 하는 우리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시행하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요 14:13,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요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기도는 감추어진 하나님의 손을 움직이는 열쇠입니다. 뿐 만 아니라 기도는 우리에게 주어진 강력한 능력입니다.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주어졌습니다. 우리가 그 어떠한 성경적 지식이 있다 할지라도 기도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 성경지식은 그를 교만케 할 뿐 아무런 능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그 지식은 강력한 능력으로 바뀝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 마귀는 두려워 떠는 것입니다.
사무엘 차드윈은 말하기를 "마귀의 한가지 관심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없는 봉사, 기도없는 종교의식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 마귀는 우리의 수고를 비웃고, 우리의 지혜를 조소하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는 두려워 떤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만큼 위대한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보십시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우리의 삶의 현장은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도 있습니다. 하늘에 먹구름이 낄 때도 있지만 또 햇볕이 쨍쨍 내리 째는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언제 어디서나 찬송과 기도가 쉬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 찬송할 때입니까? 기도할 때입니까? 둘 중의 어디에 속하였습니까? 어느곳엔가 속해 있어야 믿음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 영혼이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기도도 안하고 찬송도 안한다면 무엇을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입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고난이 다가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라는 싸인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고난의 때에 기도합니다. 기도는 평범한 대화만이 아닙니다. 어떤 기도는 대화 이상입니다. 기도 가운데는 대화라기보다는 탄원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간절한 호소, 애걸, 신원이요, 야곱처럼 생의 승부를 거는 씨름과 같은 기도도 있습니다. 앉아서 차를 마시면서 편안한 자세에서 나눌 수 있는 대화도 있지만 만나서 들어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한 상황을 호소할 수도 있습니다.
14절,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1. 중보기도를 요청하라는 것입니다.
중보기도한다는 것은 나혼자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공동체를 주신 것은 바로 이처럼 개인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혼자만 고민하지 말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짐을 짊어지고 함께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마 18:19,20)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몸에 질병이 오고 고통이 왔을 때 혼자 고민하지 말고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교회의 장로는 지금으로 말하면 목회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영적 지도자를 의미합니다. 함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가면 함께 기도하고 안수합니다. 그 때 하나님의 치유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마귀는 합심기도를 매우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분리자이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 모이면 마귀가 역사할 수 있는 틈을 없애는 것입니다.
언제나 성령은 합심기도를 좋아하십니다. 목장에서도 목원의 문제를 놓고 목원들이 함께 기도합니다. 금식하기도 하고 함께 시간을 내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이것은 당시의 치료약이 없기 때문에 기름은 일종의 민간치료약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름을 부었다는 것은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연약한 자에게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있을 때 힘을 얻고 질병에서 고침받을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이처럼 그 아픈 곳에 기름을 바르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함께 기도의 동역자를 세우고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공동체에 속해 있어야 중보기도가 가능한 것입니다.
15절,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2. 믿음의 기도입니다(15).
야고보 사도는 약 1:6-7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정함이 없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응답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고 기도하면 이뤄집니다. (히 11:6)"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은 관계를 회복시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믿음이 없다면 불신앙자는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기도는 믿음의 사람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믿음이 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응답이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반드시 그가 계신 것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찾는 자, 즉 기도하는 자는 반드시 응답하실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만약 믿음이 없다면 먼저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주여! 내게 믿음을 주옵소서"
믿음이 기적을 일으킵니다. 믿음이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9:22을 보면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에게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셨고 마9:29을 보면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에게 "너희 믿음대로 되라"하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졌다고 했습니다. 막9:23을 보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고 기도해야 된다는 것을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고 기도하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문제든지 염려하지 마십시오. 한숨 쉬지 마십시오. 그 때가 바로 기도할 때입니다. (빌 4:6,7)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 앞에 믿음의 기도를 통하여 응답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5절,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기도는 우리가 하지만 응답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 지라고 사함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6절)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3. 의인의 간구입니다(16).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그러면 누가 의인입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눈앞에 어떤 사람이 의인입니까?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아서 하나님 보시기에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 씻은 바 되고 매일 죄고백을 통해 정결케 될 때 의로운 자라는 인정을 받을 뿐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하나님과의 막힌 것이 없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죄입니다.
죄가 있으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불가능합니다. 죄는 둘 사이를 가로막는 담입니다. 여러분, 남편이 죄를 범해 보세요. 아내와 담이 쌓입니다. 관계를 깨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죄를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본질적인 관계가 깨어졌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최초에 얼마나 좋았습니까?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표현이 바로 처음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죄를 범하고 나니까 하나님이 두렵습니다. 하나님앞에 나서는 것이 두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찾아오셨을 때 아담은 나무 밑에 가서 숨습니다. 이처럼 죄는 관계를 깨트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니까 인간에게는 마치 태양을 등진 것처럼 어둠이 가득합니다. 어둠을 껴안고 사는 것입니다.
모든 불행의 시작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데서부터 온 것입니다. 그래서 질병도 본질적으로는 죄 때문에 온 것입니다. 예수님의 치유 사역속에 보면 중풍병에 걸린 환자를 치유하시면서 하신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막 2: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죄사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중풍병에서 고침을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다가온 많은 질병은 죄에서 온 것입니다.
물론 모든 병이 죄에서 왔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많은 병의 본질은 죄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5절에서도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16절에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16절]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죄문제는 우리를 절망의 늪에 빠트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고통이 다가올 때 먼저 나에게 문제가 없는가? 나에게 회개해야 할 죄가 없는지를 점검해야 한비다. 죄문제만 해결되면 고통의 문제도 떠나갈 줄 믿습니다. 종종 주방에서 날파리가 낍니다. 왜 그렇습니까? 상한 음식이 있어서 그럽니다.
상한 음식이 없으면 결코 날파리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불행의 날파리가 끼어들지 못하도록 우리의 영혼을 상하게 하는 죄를 없애야 합니다. 그러면 거룩하면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힌 것이 없으면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우리의 기도가 의인의 간구 여야 합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간구는 무슨 기도를 의미합니까? 시간적으로 '자주' '지속적인' '끊임없는' 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간구는 자주 드리는 기도입니다. 간구는 끊임없이 지속되는 소원의 아룀입니다. 동시에 태도에 있어서는 '열렬한' '간절한' 기도입니다. '간구'는 '간절한 아룀'이요 '열렬한 아룀'입니다. '간구는 시간적인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것이요, 태도에 있어서 열렬함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의인의 간구는 진지한 기도요 열정적인 간구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사람은 기도를 자주 할 뿐 아니라 기도에 그 자신을 온전히 쏟아 붙습니다. 주님의 겟세마네기도, 이러한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기도를 성도라면 누구나 드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나 성도라고 해서 이런 기도를 드리지 않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어떤 제목이 있는데 적당히 시간이 되면 기도한다면 간구가 아닙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지속적으로 열정적으로 간구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7절에서 이런 간구에 탁월한 모범을 보인 사람 엘리야를 예를 들고 있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엘리야는 이스라엘이 영적 암흑기와 같은 시대에 가장 완악한 왕이었습니다. 그의 왕비는 이세벨은 시돈 왕 엣바알의 딸로 우상숭배자였습니다. 시돈은 이스라엘의 북쪽연안에 있는 나라로 우상숭배가 가득한 작은 나라였습니다. 말하자면 이세벨은 바알의 선교사로서 이스라엘 땅에 시집온 것입니다. 아합의 불신앙과 이세벨의 우상숭배가 합하여져 이스라엘 역사는 가장 악하고 어두운 배교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이때에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름받은 선지자가 엘리야였습니다. 그는 그야말로 홀로 남은 그루터기처럼 하나님의 편에 서서 민족의 고통을 보고 탄식하며 울부짖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을 보시는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기근을 보내셔서 3년 6개월동안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통로는 바로 엘리야의 기도였습니다.
그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당당히 우상숭배자들과 싸웠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에는 바알선지자 450과 아세라선지자 400명이 있었습니다. 무려 공식적인 우상의 제사장이 850명이 되었습니다. 나라는 기근에 빠져 먹을 물과 음식이 없어 굶어 죽어가는데 우상숭배 제사장들 850이나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고통의 원인을 아는 자는 바로 엘리야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저주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우상숭배에 젖어있는 백성들을 보면서 탄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 우상숭배자들 850명을 갈멜산에 불러서 그들과 영적 대결을 벌입니다. 누가 참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인지 대결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통하여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단의 제물을 태우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우상숭배자 850명을 다 멸망시켰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앞에 나아가서 간구합니다. 온 나라안이 가뭄으로 인해 절규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이 고통에서 구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비를 내려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러면 엘리야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앞에 간구해야 합니다. 열왕기상18장을 보면 나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어느 때까지 기도합니까? 응답이 올 때까지 7번을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떨어졌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하나님의 뜻이 분명해도 우리가 기도해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에스겔 36:35절에 보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에스겔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겔 36:35-37) "[35]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폐하더니 이제는 에덴 동산 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주민이 있다 하리니 [36] 너희 사방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폐한 자리에 심은 줄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37]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 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합니다. 그래도 우리가 이루어주기를 하나님앞에 구해야 응답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압니까? 우리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쉬지말고 기도하라, 무시로 기도하라고 권면하십니다. 합심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는 이론이 아닙니다. 기도는 행동입니다. 오늘본문에 우리가 권면하는 기도는 무슨 기도입니까? 고난당할 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1)교회와 함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2)믿음의 기도를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3)의인의 간구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모두가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기도가 증거입니다. 한 주간 동안도 여러분의 문제를 고민하고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앞에 나아가 맡기시고 믿음의 응답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