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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절이 이르니 (요한복음 10장 22~29절)
예수님은 자신이 선한 목자라 말씀하시며 나보다
먼저 온 자는 절도요 강도며 삯꾼이라 말씀하셨는데
이와 동일한 모습을 모형과 그림자로
말씀하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칠 년 풍년에 양식을 저장하여 칠 년 흉년에 대한
모든 준비를 마친 요셉과 형들의 이야기인데 ....
애굽의 총리로 있던 요셉이 시므온을 가두고
형들에게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 명을 내리자
율법을 상징하는 르우벤과
예수님을(복음을) 상징하는 유다의 모습입니다.
먼저 얻어온 양식이 떨어지자
다시 요셉에게로 가서 양식을 구해야 하는데
아버지 야곱은 베냐민을 데리고 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르우벤은 어떤 말을 하는지
창세기 42장 36~37절을 보면 ....
창42:36 그들의 아버지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에게 내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
창42:37 르우벤이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내 두 아들을 죽이소서 그를 내 손에 맡기소서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리이다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힌 르우벤은 율법을 상징하는 자이며
르우벤의 두 아들은 율법을 지켜 의롭다 여김을
받으려는 자들을(삯꾼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르우벤은 자신의 목숨이 아닌
두 아들을 죽이라는 것으로
자신의 아들의 생명을 살리지 못하고 죽이는 것이며
자신의 생명만 살리려고 도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 13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요10: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이번에는 예수님을(복음) 상징하는
유다의 모습을 보겠습니다.
창43:8 유다가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곧 가리니 그러면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 아이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하리이다
창43:9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르우벤과(삯꾼) 달리 유다는(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버리면서까지
베냐민의(하나님의 양) 목숨을 구한다고 말합니다.
이 모습을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 15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요10: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예수님이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처럼
유다도 동일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삯꾼은(율법은) 자신이 기르는
양의 목숨을 살리지 못하고 달아나지만
선한 목자는(복음은)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양의 생명을 살리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복음) 우리의 생명을 살리심을 기억하시고
오늘 본문 22절을 보면 ....
요10:22 <유대인들이 예수를 돌로 치려 하다>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당시 로마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던 유대인들은
수전절을 지키며 마카비와 같은 메시아가 오셔서
로마를 물리쳐 주어 평안히 살길 원하는 마음으로
수전절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예수님은 너희들이 기다리고
있는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 자신이라 말씀하는 것으로
예수님이 전하시는 복음의 말씀을 듣고 영접해야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전절의 의미를 먼저 알아보는데
시대적 배경을 잠시 알아보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을 재건하고 다시는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지 않는다고 다짐했지만
약 100년 뒤에 누가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는 말라기의 말씀을 끝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암흑기가 약 400년 동안
흐르게 되고 약속하신 메시아가 오시게 됩니다.
바사왕 고레스에 의해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그리스에(헬라) 의해 식민 지배를 받게 되는데
시리아 총독 안티오쿠스에피파네스 4세가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성전에 제우스신상을 세우고
제단에 돼지 피를 뿌리는 치욕스러운 일을 행하자
레위계열의 제사장인 맛디아가 반기를 들어 항쟁하다가 죽고
그의 아들들이 대신 싸우게 되는데
유다가(마카비) 선봉에 서서 싸워
주전 164년경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약 100년간
자유를 얻어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이날을 기념하는 것이 수전절인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누카라 부르며 지금도 이 날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 당시에도 로마의 식민 지배를
받으며 수전절을(하누카를) 기념하고 있던 것으로
약속하신 메시아가 속히 오셔서 마카비처럼
로마를 물리쳐 주어 자유를 얻기를 간절히 바라며
수전절을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계시던 예수님은
너희들이 간절히 바라고 있는 메시아가
예수님 자신임을 말씀하시는 장면인데 ....
이스라엘 백성이 로마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탄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모형하는 말씀입니다.
이런 자들을 노예에서 해방 시켜 생명을 얻게 하시려고
예수님이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본문 28절에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하자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을 통하여 잘 알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8장 18~22절을 보는데
8장 11절을 먼저 보면 ....
렘8:11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여호와께(복음의 말씀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바벨론 포로에 끌려간다는 선지자의 말을 듣고도
자신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율법을 잘 지키고 있으니
당연히 하나님이 안전하게 잘 지켜 주어
포로에 끌려가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강하다 평강하다 말한다는 것이지만
반드시 포로에 끌려가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교회만 열심히 다니고 목사님 말씀만
잘 따르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복음의 말씀을 믿어야 구원받음을 잊고 있는 모습인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보고 있는
예레미야 선지자는(여호와 하나님을 상징)
8장 18~22절에 이렇게 외칩니다.
렘8:18 <선지자의 번뇌>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내 마음이 병들었도다
여호와께 돌아오라고 아무리 외쳐도 돌아오지 않는
백성을 보고 비통해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렘8:19 딸 내 백성의 심히 먼 땅에서 부르짖는
소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의 왕이 그 가운데 계시지 아니한가
그들이 어찌하여 그 조각한 신상과 이방의
헛된 것들로 나를 격노하게 하였는고 하시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고 있는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이들은 왜 이방인들이 우상을 섬기듯
하나님을 헛된 우상처럼 섬기고 있어
하나님을 격노하게 하느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렘8:20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하는도다
렘8:21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
여름이 지나고 추수기인 가을이 지나면
추수가 모두 끝나는 것처럼
이들은 결국 여호와께 돌아오지 못하여
바벨론 포로에 끌려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론 포로에 끌려가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 슬프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의 이름만 부르며 복음을 믿지 않아
지옥불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울고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렘8:22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 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 됨인고
길르앗에는 유향과 의사가 있다는 것으로
병든 자를 치료해줄 약과 병원과 의사가 있다는 것인데
그런데 왜 이스라엘 백성이
치료받지 못하고 있느냐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유대인의 지도자를 의사에 비유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유향에 비유하여 말씀하는 것인데
유대인의 지도자들은 모두가
돌파리 의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치료받지 못하는 양들을
복음으로 치료하여 생명을 얻게 하시기 위하여
오신 분이 예수님 자신 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수전절을 지키며 약속하신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수님은 지켜보시는데
본문 2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요10:23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
성전 안 솔로몬 행각이 나오는데
솔로몬 행각은 성전을 정면에서 바라보고 있는 모습입니다.
다윗은 피를 많이 흘려 성전을 세우지 못한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대상22:8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다윗이 피를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을 했다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사탄의 머리를 밟고
크게 승리하시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성전을 세울 모든 준비만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내가 떠나가는 것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야 약속하신 성령님이 오셔서
마음의 성전을 세워 주시고
진리의 길로 인도하여 구원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는 모습을
다윗이 크게 전쟁하여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왕이 되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성전을 세울 모든 준비를 마치자
그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세우고 모든 전쟁이
그치고 백성들이 평안하게 살았던 것입니다.
열왕기상 4장 24~25절을 보면 ....
왕상4:24 솔로몬이 그 강 건너편을 딥사에서부터
가사까지 모두, 그 강 건너편의 왕을 모두
다스리므로 그가 사방에 둘린 민족과 평화를 누렸으니
왕상4:25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더라
이렇게 솔로몬 성전이 세워짐으로 모든 전쟁이 그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평안히 살았다는 것을 모형으로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여 성령님이 오심으로
복음의 말씀을 깨달아 믿게 되어
사탄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하나님 나라에서
평안히 살게 된다는 것을 모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습처럼 백성을 평안히 살게 하시기 위하여
오신 분이 예수님 자신이라는 뜻으로
예수님이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 거니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이루어 주시기 위하여 오신 분이
예수님임을 기억하라고 예수님은 자신이
목숨까지 버리는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셨고
수전절을 기리며 약속하신 메시아를 소망하고 있는
자들에게 솔로몬 행각을 거니시며
솔로몬 때를 기억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본문 2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요10:24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예수님 자신이 메시아임을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을 믿지 않던 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약속하신 메시아이면 밝히 말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마카비와 같이 로마와 싸워 이겨 자신들에게
자유를 주실 육적인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자들인데
예수님은 영적인 메시아로 사탄의 노예로 있는
하나님 백성을 구원하러 오셨음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자 본문 25절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10:2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요10: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과 이적을 통하여
약속하신 메시아임을 말씀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약속하신 메시아가 오시면 각종
병든 자를 고쳐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기적과 이적을 통하여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시며
약속하신 메시아임을 증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냥 병든 자를 고치는 기적과
이적을 행하는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로마를 물리쳐 주시고
자유를 주실 어떠한 일도 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구약에서 메시아가 오시면 행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생각하지 않고
기적과 이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으로만 바라본다면
예수님만 믿으면 잘 먹고 잘 살고
각종 병을 치료받는다는 말씀에 넘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의 유혹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세도 신명기 4장 34~35절에
많은 기적과 이적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인도하신 일을 이렇게 말합니다.
신4:34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이는 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
신4:35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의 구원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임을
알게 하시려고 기적과 이적을 행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기적과 이적을 행하신 것은
예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임을 알게 하려고 행하신 것이며
기적과 이적을 행하시기 위하여 오신 분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적과 이적을 보고도 예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임을 믿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양들이 아니라는 것으로
택하신 하나님 백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택한 백성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른다고 본문 27~29절은 말합니다.
요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요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10: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양은 목자의 음성만 듣고 따르듯이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만 복음의 말씀을 듣고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며
그들에게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주어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그 누구도 택하신 백성의 생명을
빼앗아 갈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모든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는 분이 하나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2장 14~15절에
예수님이 오신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히2: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히2: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모든 인류는 혈과 육에 속하여 늘 죄를 범하고 있고
복음을 알지 못해 사탄의 노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은 죽지 않으려고 주인이 시키는 일만 하는 자들로
사탄이 시키는 일을 하여
늘 죄를 범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우리와 동일한 혈과 육을(육신의 몸) 지니시고
예수님이 오신 것은 우리를 사탄의 노예에서
해방 시켜 자유를 얻게 하시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저와 여러분의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이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임을 잊지 마시고
그분이 어떤 분인지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더 알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