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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석: 질의와 응답 943번. 미련한 다섯처녀에 대하여 / 슬기 있는 처녀, 미련한 처녀. 2004-10-25. 마25, 시119:105, 요15:3, 롬8:14, 롬8:6, 롬6:13, 눅21:34-36, 고전3:15, 계3:10, 계12:17, 계11:13, 마24:48-49, 벧후3:3-4, 마24:44, 계7:14-17, 계12:6, 눅14:8, 계19:7
미련한 다섯처녀에게는 그 문이 닫히고 주님으로 부터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라는 말씀을 듣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목사님의 글을 보면 전3년반을 미련한 처녀의 회개기간 이라고하신 글을 보았습니다.
제가 다른내용의 글을 본건지 아니면 목사님께서는 다른 어떤 성경적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응 답>
슬기 있는 처녀, 미련한 처녀.
형제께서는 응답자의 글을 잘못 보셨습니다. 응답자는 전3년반을 미련한 처녀들의 회개기간이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전3년반은 지상에 있는 모든 교회(성도)들이 신부의 준비를 위한 회개기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추수를 위해 두 증인들로 예언을 하게 하십니다. 이 기간에 회개하지 못한 성도들이 후3년반에 떨어지게 되고 그들은 그곳에서 다시 온전한 회개를 위한 무서운 시련과 연단을 다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25장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비유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면으로 해석하는 것을 바라봅니다. 그것은 비유이기 때문에 해석이 한가지 만으로 나올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말씀을 들려주신 목적이 어디 있는가에 대하여 올바른 판단이 앞서야 바른 해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이 비유는 주님이 장차 재림하실 때 모든 성도들이 깨어 있어야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는 우리는 깨어 있어야 신랑이신 예수님을 맞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하나의 비유이며 이 비유의 목적이 우리들에게 주 재림을 바라보며 깨어 있으라고 하시는데 있다는 것을 그 핵심으로 알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 비유에서 신랑은 예수님이시고 열 처녀는 성도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신랑이신 예수님을 맞이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신랑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속히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 중 다섯은 미련한 처녀라고 하셨습니다. 그 까닭은 등은 가졌지만 기름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의미는 이 처녀들은 신랑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마음이 없이 세속적인 생활을 하다가 결국은 신랑을 영접할 기회를 잃어 버렸다는데 있습니다.
이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라고 하신 말씀에서 등은 하나님의 말씀과 연관된 말이며, 구원을 뜻하기도 하는 것입니다(시119:105. 요15:3).
이들에게도 기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기름은 주님을 영접하기에 부족했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생활을 못했습니다(롬8:14). 그들은 영의 생각으로 주님을 섬기지 못했습니다(롬8:6). 그들은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지 못한 사람들입니다(롬6:13). 그들이 가진 기름은 겨우 자신의 구원을 유지하기 위한 소량의 기름뿐이었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기름이 부족하여 신랑을 맞이할 수 없음을 알고 슬기 있는 처녀들에게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슬기 있는 처녀들에게 들은 이야기는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는 권면입니다.
여기서 사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께 대한 회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갔다는 말은 그들의 회개할 시기를 의미합니다.
이들은 기름을 샀지만 문은 이미 닫혔습니다.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문은 구원의 문이 아닙니다.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왔다"고 한 것은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왔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들어가야 할 문은 이미 닫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오실 때 믿는 많은 성도들이 환난에 떨어진다고 하는 여러 가지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눅21:34-36. 고전3:15. 계3:10, 11:13, 12:17). 여기서 말씀하신 문은 바로 이 전3년반의 문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회개는 했지만 문은 이미 닫혔습니다. 이 세상은 이미 후삼년반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들은 할 수 없이 후삼년반의 환난을 겪어야 하는 것입니다. '남은 자' '남은 자손'이라고 나와 있는 사람들이 이 미련한 처녀들입니다(계11:13, 12:17).
슬기 있는 처녀란 지혜로운 그리스도인들을 상징한 말입니다. 지혜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을 말합니다.
이 처녀들은 등도 가지고 기름도 가졌습니다. 등이 신앙의 외형적인 모습이라면 기름은 신앙의 내적인 모습을 의미하는 것으로 성령의 임재를 말합니다.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다"고 하셨습니다.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한" 미련한 처녀들과는 근본적으로 신앙적인 자세가 다른 것입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기름을 빌려달라고 했지만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이 오시는 그 시간까지 그들의 길을 밝힐 충분한 양의 기름을 가지고 있어야 했음으로 거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비유는 성령 충만한 성도는 환난을 이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름을 준비한 처녀들은 주님을 만날 예비를 합니다.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갔다"고 하셨습니다.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은 그 기름으로 등을 밝힙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빛을 내는 생활은 열매를 맺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영으로 육신의 일을 죽이는 생활, 성령으로 무시로 기도하는 생활, 충성된 생활을 합니다.
예수님은 재림의 시기에 대하여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세"라고 하셨습니다. "악한 종들은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하여 주님의 재림에 아무 관심을 갖지 않고 성도들로 취하고 먹고 마시는 목회를 하는 그 시기에 오실 것입니다(마24:48-49).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하여 기롱하는 자들이 일어날 그 때에 오십니다(벧후3:3-4). 이 세상이 영적으로 졸며 잠자는 어두운 상태에 이르러 신랑은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943-1번. Re: 미련한 처녀와 슬기 있는 처녀의 차별 / 비유 그 자체는 계시가 아닙니다. 2004-10-26
의문이 아직 해결되지 않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회개하고 왔지만 주님(신랑)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문이 전3년반 기간의 문이라면 "예비하였던 자들은 혼인잔치에 들어가고"라고 했는데 전3년반의 문이 닫힌 후는 후3년반인데 후3년반의 기간 예비처의 기간이 혼인잔치라고 볼수는 없지않습니까
그렇다고 세대주의처럼 공중휴거로 보고싶지도 않습니다.
쉽지 않은것 같습니다.
또사러 갔다온것을 회개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파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성령은 한분이시니 복수로 이해할수 없을것 같고 파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도 성령의 (회개의)은혜를 전하는 종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종들은 때를 준비하지 않았던 악한 종들일까요 두증인은 승천했으니 말입니다.
후3년반은 마당신자들이 세상사람들과 함께 심판받는 기간 아닙니까 미련한 처녀가 등(말씀)이 있었다고 해도 성령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건 환란을 이기지 못하고 예수믿음을 지킬힘이 없음을 말하고 있는건 아닐까요
악한종들과 미련한 신부들이 후3년반기간에 남아서 구원이 있다면 그기간에도 또 다른 순교자가 있다라는 말이 되지 않겠습니까 가치가 적은 순교가 될까요 그 기간에는 경제생활을 하지못하고 표를 받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게 되니 순교자가 되든지 예비처가 아닌 다른 곳에서 피해 다니든지해야 할텐데 가능할까요 그리고 휴거때 주님이 받아주실까요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마7장말씀과 같은 상황(맥)의 말씀이 아닐까요
말씀이 있어도 순종하고 행할때 반석위에 세운 견고한 집과 같고 그렇지 않으면 말씀이 반석의 효력을 갖지 못하고 모래위에지은 집과 같아서 창수가 나면 크게 무너진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천국의 구원을 말씀하시면서 경고하신말씀)
환란전 교회시대에도 말씀이 있어도 성령으로 깨어있지 못하고 타락하고 가시와 엉겅퀴를내면 마침내는 불사름이 되리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히6장)깨어 준비하지 않은 종과 미련한 처녀에게도 심한 고난후 구원이 주어진다면 다행스럽기는 하겠지만 혹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들이 있다면 어차피 구원은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주님의 깨어있으라는 경고를 가벼이여길수 있지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주님의 엄중한 경고의 말씀과 권위를 약화시키는(?) 결과가 되지 않겠습니까
악한종도 구원된다면(비약된 생각일지 모르겠습니다.)
마24:51의 "엄히때리고 ~ 슬피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의 시간은 환란 후3년반의 기간이 되는 겁니까"(지옥이라면 때린다는 표현은 맞지않을것 같기도하지만 그러나 외식하는자의 받는 율은 저주의 지옥으로 느껴집니다)
믿는 자(성도)의 모든 구원을 성립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준비하지 못하고 깨어 있지 못한 이들에게도 구원의기회를 베푸신다는 해석과 적용이 아닐까싶습니다.
그러나 제가 알기로는 "무조건 믿기만 하면"이 아닌것으로 여겨집니다.
마7장에서도 믿는 자에게 아름다운 열매까지 확인하시길 원하시고 계신걸 보면 말입니다.
부족한 지식 가운데 질문드립니다
목사님의 너그러움과 용납가운데 짧게라도 답변 부탁드립니다
2004-10-25 18:31:04, "민병석" 님이 쓰신 글입니다.
*슬기 있는 처녀, 미련한 처녀
형제께서는 응답자의 글을 잘못 보셨습니다. 응답자는 전3년반을 미련한 처녀들의 회개기간이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전3년반은 지상에 있는 모든 교회(성도)들이 신부의 준비를 위한 회개기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추수를 위해 두 증인들로 예언을 하게 하십니다. 이 기간에 회개하지 못한 성도들이 후3년반에 떨어지게 되고 그들은 그곳에서 다시 온전한 회개를 위한 무서운 시련과 연단을 다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25장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비유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면으로 해석하는 것을 바라봅니다. 그것은 비유이기 때문에 해석이 한가지 만으로 나올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말씀을 들려주신 목적이 어디 있는가에 대하여 올바른 판단이 앞서야 바른 해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이 비유는 주님이 장차 재림하실 때 모든 성도들이 깨어 있어야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는 우리는 깨어 있어야 신랑이신 예수님을 맞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하나의 비유이며 이 비유의 목적이 우리들에게 주 재림을 바라보며 깨어 있으라고 하시는데 있다는 것을 그 핵심으로 알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 비유에서 신랑은 예수님이시고 열 처녀는 성도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신랑이신 예수님을 맞이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신랑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속히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 중 다섯은 미련한 처녀라고 하셨습니다. 그 까닭은 등은 가졌지만 기름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의미는 이 처녀들은 신랑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마음이 없이 세속적인 생활을 하다가 결국은 신랑을 영접할 기회를 잃어 버렸다는데 있습니다.
이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라고 하신 말씀에서 등은 하나님의 말씀과 연관된 말이며, 구원을 뜻하기도 하는 것입니다(시119:105. 요15:3).
이들에게도 기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기름은 주님을 영접하기에 부족했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생활을 못했습니다(롬8:14). 그들은 영의 생각으로 주님을 섬기지 못했습니다(롬8:6). 그들은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지 못한 사람들입니다(롬6:13). 그들이 가진 기름은 겨우 자신의 구원을 유지하기 위한 소량의 기름뿐이었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기름이 부족하여 신랑을 맞이할 수 없음을 알고 슬기 있는 처녀들에게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슬기 있는 처녀들에게 들은 이야기는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는 권면입니다.
여기서 사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께 대한 회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갔다는 말은 그들의 회개할 시기를 의미합니다.
이들은 기름을 샀지만 문은 이미 닫혔습니다.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문은 구원의 문이 아닙니다.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왔다"고 한 것은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왔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들어가야 할 문은 이미 닫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오실 때 믿는 많은 성도들이 환난에 떨어진다고 하는 여러 가지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눅21:34-36. 고전3:15. 계3:10, 11:13, 12:17). 여기서 말씀하신 문은 바로 이 전3년반의 문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회개는 했지만 문은 이미 닫혔습니다. 이 세상은 이미 후삼년반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들은 할 수 없이 후삼년반의 환난을 겪어야 하는 것입니다. '남은 자' '남은 자손'이라고 나와 있는 사람들이 이 미련한 처녀들입니다(계11:13, 12:17).
슬기 있는 처녀란 지혜로운 그리스도인들을 상징한 말입니다. 지혜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을 말합니다.
이 처녀들은 등도 가지고 기름도 가졌습니다. 등이 신앙의 외형적인 모습이라면 기름은 신앙의 내적인 모습을 의미하는 것으로 성령의 임재를 말합니다.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다"고 하셨습니다.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한" 미련한 처녀들과는 근본적으로 신앙적인 자세가 다른 것입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기름을 빌려달라고 했지만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이 오시는 그 시간까지 그들의 길을 밝힐 충분한 양의 기름을 가지고 있어야 했음으로 거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비유는 성령 충만한 성도는 환난을 이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름을 준비한 처녀들은 주님을 만날 예비를 합니다.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갔다"고 하셨습니다.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은 그 기름으로 등을 밝힙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빛을 내는 생활은 열매를 맺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영으로 육신의 일을 죽이는 생활, 성령으로 무시로 기도하는 생활, 충성된 생활을 합니다.
예수님은 재림의 시기에 대하여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세"라고 하셨습니다. "악한 종들은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하여 주님의 재림에 아무 관심을 갖지 않고 성도들로 취하고 먹고 마시는 목회를 하는 그 시기에 오실 것입니다(마24:48-49).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하여 기롱하는 자들이 일어날 그 때에 오십니다(벧후3:3-4). 이 세상이 영적으로 졸며 잠자는 어두운 상태에 이르러 신랑은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2004년10월25일 민병석 목사
<응 답>
비유 그 자체는 계시가 아닙니다.
* 비유는 계시가 아니라 계시의 정확한 해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신 예화입니다.
형제의 의문은 비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비유의 정의가 정리되지 않는한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마25장의 말씀은 하나의 비유입니다. 비유는 계시가 아닙니다. 비유를 계시로 보고 비유에 나타난 표현대로 성경을 이해하려 한다면 그것은 이해도 되지 않으려니와 비유 그대로를 가지고는 본문의 해석이 불가능합니다.
이 비유는 먼저 비유에 나오는 표현이 무엇인가에 대한 관찰이 필요합니다. 이 비유에 나타난 계시의 시기는 천국도 아니고 천년왕국도 아닙니다. 13절에서 이 비유의 시기를 가리켜 주시기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시기는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24:44절에서 주님은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고 하심으로 미련한 처녀의 비유는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에 성도가 예비하고 있지 않으면 환난을 당할 일에 대한 경종으로 주셨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밤중"이란 바로 예수님의 재림직전 교회가 세속화되어 영적으로 캄캄한 시기를 의미합니다. 이 시기는 전3년반의 기간을 가리킵니다. 그 때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려 나오라"고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 소리는 계11장에서 사역하는 두 증인(종말에 사역할 하나님의 종들)들의 예언의 사역을 상징해 줍니다. 주님은 이 비유에서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깨어 기도하는 생활을 통해서 예비한 성도들은 재림 주를 맞이하여 시험의 때를 면하는 복을 받지만 준비하지 못한 성도들은 밖앗 어두움(대환난) 가운데 떨어져 종말의 환난을 겪어야 한다는 의미의 경종으로 들려주신 비유인 것입니다.
비유는 말로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문제의 사건을 알기 쉽게 하나의 예화 형태로 이해시키기 위해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비유를 비유 그대로 사건에 적용시키려한다면 모든 비유의 해석은 불가능합니다.
여기서 주님이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고 하신 말씀은 미련한 처녀들과 전혀 관계가 없어서이거나 정말 전혀 모르는 상태를 가리킨 것이 아닙니다. 이 비유에 나타나 있는 의미는 너는 이 혼인잔치에 들어올 자격이 없다. 너희는 두 증인이 회개를 외칠 동안에 무엇을 했느냐? 나는 너희들을 신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들 역시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오래동안 기다렸던 자들이며 다만 기름이 좀 부족한 상태였었는데 그들이 신랑과 전혀 관계가 없는 자들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후3년반 기간이 혼인잔치 기간인 것이 아니라 그 기간 동안 하나님의 특별하신 배려로 예비처로 인도받아 어린양이 목자가 되시어 그들을 양육하시기 때문에 그 장소를 혼인잔치로 비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계7:14-17).
여기서 혼인잔치는 후3년반이 아니라 그 기간에 성도들이 환난에서 보호받을 예비처(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1260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계12:6))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말씀의 종류에 따라 비유는 한가지 표현일지라도 계시의 핵심이 무엇인가에 따라 가령 예비처로 혹은 천년왕국으로, 혹은 천국으로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령 같은 혼인잔치란 말의 비유지만 마22:2절의 혼인잔치는 교회를 비유하고 눅14:8절은 천국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19:7절의 어린양의 혼인기약이란 표현은 천년왕국을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유에 나타난 혼인잔치를 오직 하나만의 뜻으로 해석한다면 그 문장은 이미 비유가 아닙니다. 파는 자들에게 샀다는 비유는 그들이 결국 회개하여 기름준비를 했다는 뜻의 비유이지 그 판 사람이 누구냐의 대상을 알려주시려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들이 누구의 경종을 들었건 누구의 메시지에 의했건 회개했다는 의미의 비유로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