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면목
/해안 대종사
푸르고 빈 하늘
넓고 아득한 땅
높은 산 깊은 바다
붉은 꽃 푸른 버들
그 어느 것이
님의 얼굴 아니리오
꾀꼬리 노래 제비 말
부엉이 두견이 개구리 울음
바람소리 물소리
그 어느 것이
님의 소리 아니오리오
뭉게뭉게 타오르는
백단향(白檀香) 전단향(閱檀香)
아침 이슬 머금은 장미화(薔薇花)
영산홍 왜철쭉 진달래
진흙 속에서 솟아 피는
백련(白蓮) 홍련(紅蓮)
그 어느 것 하나
님의 향기가 아니오리오
오욕(五慾)에 빠져
즐기는 중생들아
너 즐기는 것
화택(火宅)임을 알아라
네 가슴에
타는 불이 꺼져야
네 눈이 걸림 없이 밝아서
님의 얼굴을 친견(親見)하리라
육근(六根)에
종 노릇 하는 인생들아
종(鍾)소리 들으면
북소리에 어둡고
피리소리 들으면
물소리에 막히나니
네가 가진 것 모두를 버리라
고금(古今)에
한 소리밖에 없나니
이러고야
님의 소리를 들으리라
사랑과 미움과 질투의 줄로
묶여서 버둥대는 중생들아
놓아라,
실(實)답지 못한
애욕(愛慾)의 줄을
이 때문에
다생(多生)을 두고
윤회하지 않는가
적나나(赤裸裸)
적사사(赤灑灑)한
청정한 몸만이
만고불멸(萬古不滅)
님의 광명을 받으리라
삼독(三毒)의 고해(苦海)에
허덕이는 중생(衆生)들아
지혜(智慧)의 보검(寶劍)을 잡아서
무명(無明)의 번뇌를 베어 버려라
생멸이 다하고
적멸(寂滅)이 현전(現前)할 때
비로소
님의 그윽한 향내를 맡으리라
해안스님은
‘나’를 알려면 ‘십현담’을 보라
‘동(東)경봉(鏡峰)
서(西)해안(海眼)’이라 하여
동쪽의 경봉 스님과 비견되며
수행납자들의 존경을 받았던
스님은 자신이
7일 용맹정진에서
견처를 얻는 체험을 했듯,
“누구나 7일이면
깨달을 수 있다”며
항상 출·재가 수행자들에게
철저하게 공부할 것을 강조했다.
때문에 언제나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출가자는 물론
재가 수행자들과
동등하게 수행하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였던 스님은
“일반적으로
정진을 오래 해야만
깨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으나,
견성은
단시일을 두고
결정내지 않으면 안 된다”
면서
아무리 미련하고 못난 사람이라도
7일이면
도를 성취한다는
옛 조사들의 경책을 긍정했다.
그리고
7일 만에
깨치지 못하는 원인을
“공부하는 사람의
정신 자세가
철저하지 못한데 있다”고 지적했다.
스님은 또 제방에서
용맹정진을 한다고
7일간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잠 안 자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견성하는 것이 목적일 것이므로,
모두 다
바로 생각해서 할 일이지
잠 안자는 것을
용맹정진으로 아는 것은
그릇된 생각”이라며
기계적 정진이 아니라,
신심을 다한
정진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스님은 또한
“모든 일은
나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에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 나를 알아야 한다”며
“이름은 천 가지
만 가지로 달리 부를 수 있으나,
실상은 명백히 하나뿐이니
나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이름에 속지 말아야 한다”
고
‘나’를 아는 것으로부터
공부가 시작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리고 나를 알 수 있는 답이
‘십현담(十玄談)’에 있다며
‘십현담’
정독을 간곡히 권했다.
‘십현담’은
중국 당나라 선승
동안상찰(同安常察)이
조동종의 가풍과
수행자의 실천 지침 등을
칠언율시 형식으로 노래한
10수의 게송으로,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제29권에 실려 있다.
송나라 때 법안종을 개창한
문익(文益)이 여기에
주석을 달았고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김시습이
한문 주석을 붙인
‘십현담요해(十玄談要解)’
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인
1926년 만해 한용운 스님도
여기에 주해를 가해
‘십현담주해(十玄談註解)’
를 펴낸 바 있다.
이때 만해 스님은
‘매월당도 오세암에서
십현담주해를 썼고,
나도 오세암에서
열경주
(悅卿註, 김시습이 풀어쓴 십현담)
를 읽었다.
수백년이 지나서
그 사람을 만났지만
감회는 오히려 새롭다.
그래서 십현담 주석을 쓴다’며
이 ‘십현담’의 주석을 쓴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해안 스님은
이런 만해 스님의
‘십현담주해’를 강본으로 삼아
강의를 하고
만해의 서문을
번역해 붙여놓기도 했다.
“모든 사람들이
진실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과
거짓 없는 생활을 하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붓을 들게 되었다”고
‘십현담’ 강의를
책으로 엮은 이유를 설명했던 스님은
“공부를 한다는 사람들 중에
흔히 유에 집착하지 않으면
무에 집착하고,
무에 집착하지 않으면
공에 떨어지거나
더러는 열반에 집을 짓고
안주하는 이들이 없지 않다”며
“이 ‘십현담’을 열 번 읽고
백번 읽고 천번 만번 읽다보면
거기에서
전에는 못 보던
나의 참 얼굴을 보고
속으로 감사의 눈물을 흘릴 때가 있을 것”
이라며
수행자들의 필독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