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치유의 변증법
-영화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
아버지 2주기에 다녀왔다. 토요일 오후 5시 형제들이 산소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함께 저녁을 먹었다. 셋째 매제의 제안으로 예배 후에는 자리를 편 뒤 과일과 포를 진설하고 술도 한 잔 따라 올렸다. 다들 골수 예수쟁이들이지만 ‘우리나라 전통의 인사방식’이라는 내 주장에 누구 하나 우상숭배니 뭐니 시비 걸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우리사회도 많이 변했다. 아니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의 인식의 변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2주기 설교를 하면서 ‘우리는 왜 기일을 기억하는가?’를 질문했다. 우리가 기억하고 예(禮)를 갖추는 것은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되새기고 말씀과 삶으로 보여줬던 가르침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돌아보기 위함이라고 설교했다. 아버지는 81세에 쓰러져 10년을 병상에서 보냈다. 그리고 우리형제들이 지칠만할 때 홀연 세상을 뜨셨다. 그래서 ‘여한(餘恨)’이 없을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움은 더욱 깊어진다.
직장 동료들과 문경으로 놀러갔던 딸이 여름옷을 가져간다며 집에 들르겠다고 연락했다. 오전에 아내 가게에 가서 일을 돕고 오후 2시쯤 빨래방에 가서 봄철 내내 덮었던 이불이며 카펫을 빨려고 하는데 전화가 왔다. ‘친구들 데리고 집안까지 들어올 거니?’ 딸아이는 잠시 들어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말이 잠시지 친구들이 우리 집에 들어온다니 마음이 심란했다. 평소 살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청소하고 정리할 시간은 더더욱 없었다. 과일이나 음료라도 대접해야겠지만 집안에는 마땅히 준비된 것들이 없었다.
난감한 마음으로 급히 빨래방에서 돌아와 서성거리는데 딸아이가 키 큰 남자를 대동하고 현관으로 들어왔다. 순간 직감했다. ‘딸아이가 사귄다는 녀석이구나.’ 딸아이는 옷을 찾는 척 옆방으로 가더니 ‘내 남자친구야’라고 속삭이듯 말했다. 짐작은 했지만 황당했다. 딸은 자기 집이고 제 부모니까 거리낌 없이 데려왔겠지만 내 정서로는 참 낮 설게 느껴졌다. 밖에서 우연히 마주쳤다면 웃으며 넘어갔겠지만 집안까지 데려온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난감했다. 어떻게 아는 척을 하지 고민하다가 불쑥 손을 내밀며 ‘사귀는 친구라고 들었어요, 반가워요’라며 악수를 청했다. 10분 뒤 딸은 제 옷들을 챙겨서 남자친구와 함께 떠났다. 나는 딸이 떠난 뒤에도 한동안 서먹하고 낮 설었던 풍경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마음을 수습하고 다시 빨래방으로 돌아가 빨래를 해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뒤에도 싱숭생숭한 마음은 오래 지속됐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서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하는 영화를 봤다.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였다. 오래 전 한 번 봤던 영화인데 지금의 내 처지와 너무도 닮아 끝까지 보게 되었다.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는 미국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황야의 무법자’다. 고등학교시절에는 190cm가 넘는 장신에 시니컬한 표정으로 시거를 물고 탕탕 총을 쏴대는 모습에 매료 됐었다. 그랬던 그가 1970, 80년대 영화감독과 배우, 제작자 그리고 정치인으로 변신하더니, 1990년대부터는 배우보다 감독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것도 배우출신의 그렇고 그런 감독이 아니라 몇 차례의 아카데미 감독상과 작품상, 칸과 베니스, 그래미를 비롯한 유수의 영화제에서 찬사를 받는 세계적 거장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 가운데 ‘용서받지 못한 자’는 충격적이었다. 중세의 몰락을 그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처럼 서부극시대의 몰락을 그린 이 영화에서 그는 더 이상 황야의 무법자가 아니었다. 이 영화 말고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영화계의 호평을 받은 ‘밀리언 달러 베이비’나 ‘그랜 토리노’,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 빅터스’도 재밌게 봤다. 장르도 다양하고 연기도 훌륭했던 수많은 영화 가운데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가 있다.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를 보며 놀랐던 것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기력이었다. 연기의 톤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와 비슷했지만 깊고 넓은 연기 폭은 앞의 영화를 능가했다. 80대 노 배우의 연기에 딸로 출연한 에이미 아담스, 딸의 애인으로 등장한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연기가 묻혀버렸다.
“영화에서 클린트이스트우드는 미국 프로야구의 스카우터다. 발품을 열심히 팔고 치밀하게 연구한 덕에 타자들의 타구음이나 포수의 미트에 꽂히는 투수의 공만 보고도 정확하게 상태를 판단할 만큼 뛰어난 능력을 갖췄다. 하지만 늙어가면서 그도 뒷방 신세나 지는 낡아빠진 노인네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아직도 현장 능력을 따라갈 스카우터가 없었지만 구단은 컴퓨터 테이터로 분석하는 젊은 스카우터들을 더 신뢰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는 딸이 하나 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능력 있는 변호사로 활동하는 남부럽지 않은 딸이다. 그에게 딸은 자랑이었으며 존재의 이유였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경상도 남자처럼 무뚝뚝했고 까칠했으며 좀처럼 감정을 드러낼 줄 몰랐다.
겉으로는 성공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딸도 내면을 들여다보면 상처투성이다. 사회적으로는 능력 있고 출세한 변호사였지만 마음과 정서는 남다르게 거칠었던 세파를 이기지 못하고 너덜너덜해진지 오래다. 딸에게는 5살에 엄마가 죽고, 6살밖에 안 되는 자신을 버리다시피 삼촌에게 맡겨놓았던 아빠에 대한 서운함, 채워지지 않았던 어리시절의 정서적 결핍이 아직 치유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13살부터 대학생활까지 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며 가슴 속에 켜켜이 쌓인 외로움과 고독도 깊은 흉터다. 그 상처가 도지고 도졌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성공에 가린 내면의 상처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 그녀는 아무에게도 곁을 내주지 않는 바윗돌 같은 사람이 되었다. 차가울 대로 차가워진 감정의 온도에 그녀도 날마다 좌절했다.
상처의 크기는 아빠 클린트이스트우드도 만만치 않다. 아빠는 아내가 죽은 뒤 오랜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여섯 살 된 딸아이를 데리고 일을 하다가 딸이 부랑인에게 납치되어 성폭행을 당할 뻔한 광경을 목도하기도 했다. 그 광경을 목도한 뒤에는 눈물을 머금고 남동생에게 딸을 맡겨야 했던 아픔도 겪었다. 하나 뿐인 딸이 자신처럼 고생하지 않도록 죽도록 일에만 매달리며 돈을 벌었던 시간들도 돌이켜보면 상처다. 딸이 삶의 희망이요 위안이었지만 고단한 삶에 지쳐 한 번도 사랑을 주고받지 못했던 불행도 겪었다. 아빠의 희생 덕분에 딸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어 유명 로펌에서 일한다. 그도 눈에 불을 켜고 일한 덕에 프로야구 스카우터로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세월에 완전 연소되지 못한 상처는 평생 두 사람을 괴롭혔다. 서로의 사랑을 간절히 갈구했고 사랑만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걸 알았지만 딱딱하게 굳어버린 가슴은 다가가는 법을 잊어버리게 했다. 거친 광야와 같았던 두 사람에게 야구를 관계를 회복시켜주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어린 시절 아빠와 함께 야구장에 가고 휴일에는 야구놀이를 했던 기억은 상처뿐인 두 사람의 정서가 만나고 화해하는 오작교였다.”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는 치유와 회복의 영화다. 영화에서 야구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회복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에 불과하다. 자본주의 사회가 틀 지워준 성공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참삶’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무엇으로 대답할 것인가. 나도 잠들기 전 딸에게 전화해야 겠다.(2021년 6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