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걸 리 - - 한나 안 -
손님이 저녁에 오기로 되어있어 스트라스필드 와인 가게에 들렀더니 막걸리와 소주가 진열대에 나란히 진열되어 판매 되고 있는게 뜻밖이었다. 한국이 아닌 시드니에서 그것도 유명브렌드 리쿼숖 에서 우리나라 순수한 술인 막걸리를 본다는 게 고향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아마도 여러 나라로 수출되어 판매 되고 있는 듯했다. 기다란 네모난 플라스틱 병에 막걸리 내용을 쓴 스티커를 몸에 두르고 라이스와인이라는 이름도 근사 했다. 와인을 사고 막걸리도 한 병 사봤다. 집에 와 막걸리 병을 따고 컵에 반쯤 막걸리를 딸아 창가 식탁에 앉아 맛을 보았다.
늦가을까지 나락을 멍석들에 널어 햇볕에 말려서 탈곡까지 하고 나면 시골 우리 집 농사일은 마무리를 한셈이었다. 여름 내내 수고하였노라 며 어머니는 겨울 땔감 나무들을 산에서 해 나르는 머슴들과 아버지를 위하여 막걸리를 빚으셨다. 머슴들에게 어머니는 특별한 선심을 쓰신 것이다. 꼬들꼬들하게 쪄진 햅쌀 고두밥에 누룩가루를 골고루 섞어서 항아리에 차곡차곡 넣고 물을 적당히 부은 후 담요로 두르고 그 위에 두툼한 이불까지 뒤집어 씌어 술을 띄우는데 군불을 많이 때는 아랫방 뜨끈한 아랫목은 술이 다 익을 때 까지 항아리 차지였다. 몇 일후 술이 익을 때면 하얀 무명저고리 소매를 걷어붙이고 어머니는 술지게미를 꼭꼭 짜가면서 막걸리를 거르셨다. " 막걸리는 식혜처럼 때를 잘 맞추어서 걸러야 해, 때를 넘기면 맛이 변한다고 " 하시며 손잡이가 달린 작은 조롱박으로 술 항아리에서 막걸리를 떠 맛보실 때면 입에 쩍쩍 붓는다고 흐뭇해 하였었다. 전에 소주 공장을 운영한 일이 있으신 어머니는 여느 아주머니 보다 막걸리를 참 맛있게 만드셔서 우리 집 막걸리를 마셔본 동네 아저씨들은 술맛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농사일이 끝난 때만이 아니라 친척들이 모여 차례를 지내는 추석이나 조카들 삼촌들 모두 세배를 오는 구정 때에도 정성들여 막걸리를 꼭 빚으셨다. 동네 도갓집 막걸리는 싱거워서 못 마신다고 하면서 집에서 몰래 만드는 밀주를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인 서민의 술 막걸리의 역사는 고려 때부터라고 한다. 고려 때부터 곡주가 익어 청주와 술지게미로 나누기 이전에 막 걸른 술이라 해서 막걸리라 했고 문헌에 보면 탁주, 백주, 박주라고도 했다고 한다. 고려시대 때부터 알려진 막걸리로 이화주 가 있는데, 가장 소박하게 만드는 막걸리로 누룩은 배꽃이 필 무렵 만든다 하여 그렇게 불렀으나 후세에 와서는 아무 때에나 만들게 되었고 이화주라는 이름도 점점 사라졌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조선 양조사> 에 처음으로 대동강 일대에서 빚기 시작해서 국토의 구석구석까지 전파되어 민족의 고유주가 되었다 한다. 놀라운 것은 요즈음 한류바람을 타고 일본에서 막걸리 인기가 높아지며 맛코리 라는 이름으로 판매가 되고 있다고 한다.
뚜껑을 따고 살살 흔들어서 사발에 부어 생선찌개, 구이, 묵무침등 안주하여 기쁠 때는 기뻐서 막걸리 한잔 하러가세, 슬플 땐 속상해서 막걸리 한잔해야겠어, 화날 때는 울화가 치밀 으니 막걸리나 들이마셔야겠어 하면서 서민들과 민족의 생활 속에 면면이 담겨 이어져 온 술이다. 그래서 막걸리를 마실 때는 ' 쌀과 누룩이 발효돼 알코올이 된 누르스름한 액체만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 어머니를, 고향과 추억을 함께 마신 것이다. 찹쌀막걸리, 쌀 막걸리, 보리막걸리, 옥수수 막걸리 등등 이름도 순박하며 밥풀이 약간 떠있는 상태인 것을 동동주, 전체를 그대로 걸른게 막걸리라 이름 하였다. 청량감이 있는 상큼한 맛과 갈증을 면하게 해주고 혈액순환을 왕성케 할뿐 아니라 식욕증진과 피로회복이 빨리 되는 열량소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시골에서는 비가 오면 막걸리를 마시며 부침개를 먹고, 혼자 마시다보면 친구가 와서 ' 자네 무슨 일 있느냐 ' 고 물으며 마주앉아 나눠 마시는 시골의 인정이 한국의 마음이며 막걸리 한잔은 삶의 작은 위로 이기도했다.
내가 어릴 적 시골에서는 막걸리가 없어서는 아니 될 식품이기도 했다. 특히나 혼인때 와 상갓집에서는 더욱 그랬다. 화기애애한 잔칫집 마당 멍석위에 이집 저집에서 잔치손님들 위해 빌려온 작은 쪽 상들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누런 양은 술 주전자에 막걸리를 가득 담아 주거니 받거니 거나하게 마신다. 취기가 오르면 잔치 객들은 젓가락으로 술상바닥과 술주전자를 장단 맞춰 두들기며 구성지게 육자배기 노래를 부르고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며 찬치 흥을 돋운다. 상갓집에서는 밤샘을 위해 모여든 동네 남정네들을 맨송맨송 그대로 밤새우게 할 수 없어 밤새 술상이 나온다. 막걸리 한잔씩 마시면서 고인과 함께 했던 시절들, 이웃사람들끼리 이야기들 나누며 슬픔을 나누었었다. 그뿐 아니라 농사철에는 피곤한 허리를 펴고 논두렁에 앉아 새참을 기다릴 때면 머리에 이고 오는 세참 함지박보다 손에 들고 오는 막걸리 주전자에 일꾼들의 눈이 더 간다고 했다. 막걸리 한 대접 크윽 마시고 나서 술기운에 흘러간 노래들 흥얼대며 농부들은 힘든 농사일들을 피곤한줄 모르고 해 지기 전에 척척 잘도 해 내었었다.어머니는 남자손님이 집에 오시면 으레껏 술상보아 막걸리 대접을 했다.노란 양은 주전자와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손에 쥐어 주면서 도갓집에 퍼뜩 댕겨 오너라! 하던 게 어제일 같다. 가난한 농촌생활에서는 툇마루에 걸터앉은 주인과 손님에게 막걸리 한 되에 막 지저낸 파전 한 접시와 푸성귀 열무김치 한보세기면 안주인이 내놓는 손 대접으로는 후한 편이었다.
어느 한 가난한 선비 집에서 집에 오신 손님대접을 하여야 하는데 막걸리 한 되 살 돈이 없어서 아내가 비녀를 빼고 머리를 잘라 팔아서 막걸리를 사서 집으로 들어오면서 수건을 머리에 쓰고 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주막집 이라는 말을 나는 참 좋아 한다. 잘은 모르나 아마도 이는 막걸리술집 이라는 이름 일거라 여긴다. 허름한 초가집에 낮은 싸리문 울타리 마당으로 들어서면 긴 하얀 앞치마에 호들갑스럽게 주모가 웃는 얼굴로 낯선 이를 반기며 호리병에 막걸리와 안주를 작은 상에 받쳐 들고 나온다. 한잔 마시고 나면 온몸의 피곤이 풀리고 노곤한 팔다리를 쉬어갈수 있어 등에 지고 온 봇짐을 베게 삼아 손님은 한숨 낮잠을 자고나서 가던 길을 계속 갈수 있는 쉼터이기에 말이다. 인생도 내 앞길만 보며 외길로 발이 부르트게 걷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가끔은 주막집에 들려 인생의 막걸리를 마시며 거나하게 취하여 보는 것 도, 놋 대접에, 사기사발에 막걸리를 그득 부어 친구와 마주앉아 마셔도 좋고, 부부끼리 마셔도 좋으리라. 새큼한 맛의 막걸리에 배부르고 부담 없이 마실 수 있어 끄윽 하는 트림을 장단삼아 그렇게 내 어릴 적 농부들은 애주로 많이도 마셨을게다.
시드니에서 막걸리는 들쩍지근한 맛이 어릴 적 사카린을 타서 휘휘저어 처음 맛보았던 그 맛은 아니었다. 그러나 막걸리 향이 닮았고 운치가 닮았고 그리고 정성스레 막걸리를 빚으시던 어머니의 옛 모습이 거기에 도 분명 있었다.
첫댓글 이전에 쓴 습작이며 합평할 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