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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 여행--------------- 김 주 일
유럽 여행 11박 12일의 여행을 하기로 LA에서 출발하여 서울 Marriott Hotel 에서 쉬고
다음날 아침 큰 딸이 서울 Marriott 아침에 와서 Hotel Chck out 한후, 인천 공항으로 가 Bus가 떠날때 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 해 주었다. 딸의 효성에 가슴이 뭉클 하였다. 남편과 함께 추억 만들기 여행을 하기로 했다.
11시 집합 시간인데 10시, 아직 시간이 있어 2층 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했고 내려 오니
롯데 관광에서 우리들과 함께 갈, 직원이 커다란 멋진 모자를 쓰고 나와 있었다.
탑승.(KAL) 이 끝나고 비행기는 하늘로 올랐다.
한국 시간으로 새벽 3시에 점심은 기내에서 먹고 프랑크푸르티 공항에 6시(현지 시간)에
말로만 듣던 독일 땅에 도착 했다. 쌀쌀 하고 춥다. (F40 C5도) 예정 시간보다 늦게 도착 했다. 한국과의 시차는 7시간이 느리단다.
유럽 관광은 유적지를 보는 관광과 역사적인 관광으 볼수 있다고 한다. 프랑크프르트는 행정적인 구역과 경제적인 구역으로 나뉘어 진다고 하며. 음식은 대체로 짜게 먹는데, 그 이유는 북쪽 소련에서 내려오는 저기압으로 인해 혈압을 높게 해 주기 위해 짜게 먹게 되고, 물은 석회질이 많아 꼭 미네랄 Water를 사 먹어야 된다고 가이드가 설명을 해 준다. (물 한병 값은 1 달러(유로) 이다.)
Hotel Chck in, 3층 310호실, 깨끗하고 방은 차다. 딸이 쑥찜 팩을 준비 했다는데, 잊어 버리고 왔다. 라지에다를 키고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일정은 프랑푸르트와 하이델부르크, 로젠부르크) 란다.
프랑크후르트 -
프랑크후르트는 독일의 관문이다. 냉전시대의 독일의 수도는 동독은 베르린 서독은 본이었다. 통일후,수도 는 베르린 으로 되어있지만 모든 중심은 프랑크후르트에 있고,인구는 665000명으로 지방 자치제를 하고있다.
시청:
중세기의 상징이다. 시청앞에 레모메리그(로마인의광장)광장과 황제 대 성당을 안내받았다.(황제 대관식을 하던곳이다) 예전에는 독일의 황제와 로마의 교황이 상부 상조 하였다고 한다. 게르만 민족이 962년 신성 로마제국을 건설하여 종국 단위로 정치하면서 현세에 이르렀다. 후랑크후르트 공항은 유럽에서 제일 큰 공항으로 중세기부터 박람회가 열리던 곳이라고 한다. 프랑크후르트 는 암마인강의 동쪽에있다. 암마인강의 길이는 524 Km 십자군 후에 동방교류(무역) 가 시작 되었고 중세기 부터는 황제 직활도시로, 상업도시, 금융도시로 은행들이 많고(유럽 중앙은행, 독일 연방은행, 중앙은행) 마인하타리 뉴욕의 Manhattan과같은 금융지역이다.
유럽에는 도시에 큰 건물은 없으나 프랑크후르트는 2차 대전때의 폭격으로 폐허에서 재건되어 고층 건물이 많다. 대성당 (파울교회)과 시청광장, 국회 처음으로 민주정치가 시작된곳인 역사적인 광장이다. 1806년 나폴레온이 장악, 통일을 이루기위해 이곳 국회에 모였다고 한다. 1861년 비스마르크제상이1870년 까지 1871년 독일제국 말기 프러시아보복 전쟁이 시작되어 1차대전 마칠때까지 비스마르코제국 통일 제국의 일원으로 국회에 모였다. 이 광장(시청) 에서 황제는 왕이 선출 (8개국)하고 모두 5개의 건물이 있었으나 2개는 2차 대전 폭격으로 상실되고 현재는 3건물만 존재한다. 광장 앞에는 법의 여신상(물의여신) 이 있으며 물의, 여신상으로 되어 있는것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순리대로 행해진다는뜻에서 조형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물이 아닌 포도주가 흘렀다고한다. 광장 건너편에는 니콜라이 교회가 있고 창문이 많은 건물들(창문 하나 하나가 다 관람석이었다고함)이 있는데 중세기에는 그 창문 수에 따라서 세금을 부과 했다고한다.
카이제 대 성당(씨자 성당):
주교좌 성당( 돔 성당 (돔=지뭉이 둥글레 건축 된것) 사암 으로 건축 되었다. 사암은 처음에는 약하나 세월이 지날수록 강도가 높게 되며 산에서 나온다. 독일의 국교는 기독교 이나 종교의자유가 있다. 이 성당의 파이프 올겐은 관이 7천개이다.프랑크프루트 관광을 마치고 하이델부르크로 가기 위해 아우트반(고속도로) 5 번 으로 진입하였다. 가이드는 고속도로에 대하여 설명을 한다.
독일의고속 도로는 속도 제한이 없고 산악 지대나 특별한 지역에는속도 제한이 있다. 200-300Km 씩 달려도 사고율은 적다고 한다. 톨 게이트도 없고 모두가 무료, 그러나 스위스에서는 한번만 내면, 된다고 한다.
1989년 11월 9일 동독이 문을 열었다. 쏘련의 고르바초프가 페로이스트가에 의해 문을 열었지만, 동독은 마지막까지 문을 열지 않았다. 체제가 문어질까봐 열지 않았으나 지성인들이 주동이되어 문을 열었으나 고르마초프는 동서독 통일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한다. 독일은 2차 대전 패전후 작전권은 동독은 쏘련, 서독은 미국으로 연합군이 가지고 있었다.
콜 총리와 고르바초프와의 관계:
콜 총리는 동서독의 통일을 위해 동독에 많은 지원을 해주었고 영국의 대처수상은 통일이되면 독일이 또 강해 질까봐 반대를 했으나 연합국 4개국이 (미국 영국 쏘련) 3개국의 승인하에 90년 10월 9일 통일이 되었다. 통일의 원인은 서독의 경제가 결정적인 역활을 한것이다. 당시 국민소득은 동독은 5000불로 사유 재산은 인정하지 않았고 생활수준은서독의 1/10.. 서독의 국민소득은 동독의 6배 서독의 1 마크는 동독의 13 마르크, 통일후 환전은 14살 까지는 1:1 로 나머지는 2:1로 환산하여 통일을 이루었다.독일은 국가 씨스템에 의한 복지국가이며 고 소득자는 Income 의 63% 까지 세금을 낸다.그러나 저 소득자는 세금을 내지 않는다. 의료 보험은 내는 차이가 있으나 받는 혜택은 동일하다.
독일의 고속도로는 힛틀러가 전쟁에 사용하기 위하여 만들어 졌고, 기후는 북위 47도-55도 에 있으나 겨울에는 그다지 춥지 않고 여름에도 별로 덥지 않아, 에어콘이 필요가 없다고 한다. 한국과 거의같은 위도에 있으나 한국은 대륙성기후이기 때문에 많이 춥고 강우량은 적으나 때로 라인강의 홍수는, 원인이 알프스산맥에서 녹아내리는 눈이 한꺼번에 내려 오기 때문인데, 주로 겨울철에 그렇게 된다고 한다.
식량은 자급 자족으로 농업은 산업의 1 % 일조량이 적어서 과일은 수입을 한다. 감자 재배가 많아 주식은 감자이며* 독일 사람의 별명은 감자 바위 라고 한다. 독일은 북쪽은 지대가 낮고 평야이며 중부는 구릉지대 남쪽은 지대가 높아 산악지대이다. 우리나라와는 반대다.인구증가 계획으로, 인구는 8100만이나 유럽에서는 제일작은 인구이다.자녀 일인당 330 유로3명이면, 990 유로를 정부로 부터 받는다.
혈통적인 국적법은 가지고 있으나 인구 감소로 국적법 개정안을 조정하여 이민국가적인 지향으로 가려고 한다. 독일은 유럽국가의 중심이다. 철강산업이 중심을 이룬다.(자동차 기계)
유럽에서는 경제적 능력이 가장 크고, 유럽 15개 국가중 12개 국가가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으나, 3나라(영국, 덴마크,스위스)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중세기에는 유럽에서 가장 강한 나라였다 고한다. 여행 안내자의 독일에대한 설명은 여기서끝나고 11시에 하이델부르크에 도착했다.
하이델부르크:
아! 아름답다. 만추의 계절,
단풍이 아름답다.낙엽이여기저기 딍군다 비는 촉촉히 내리고, 이것이 전형적인 독일의 날씨란다. 하이델부르크는 전쟁의 피해가 많은 도시, 30년 전쟁, 1차대전, 2차대전, 을 겪었고, 2차 대전에는 아이젠하워의 배려로 많은 유적지가 보호 되었단다. 독일은 게르만 민족이다. 로마인이 정복하지못한 민족은 독일 뿐이다. 게르만 민족은 두려워서 정복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게르만 민족은 375년에 북쪽으로부터 한 민족에 밀려 남으로 이동하여 395년에 동서, 로마 제국으로 분리되었다.
하이델부르크대학: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캠퍼스는 고성 아래, 한 동네에 주택가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독문과 대학과 신학대학 건물과 또 과 별로 Town 전체가 대학이다. 노벨상을 9번이나 이 대학에서 배출했고 학교 옆에는 황태자의 첫사랑에 나오는 학사주점이 300년이 지난 긴 역사를 가지고 2개나 있었다. 앞에는 냇가강이 흐르고 있었다. 강은 25 Km 흐르며, 후에는 라인강과 합류 한단다.
하이델부르크의 고성:.(독일)
1264년 350년이나 걸려서 지은 성으로 17세기 전쟁을 겪으면서 파괴 되었는데 그후 계속 복원 했으나 큰 벼락으로 파괴된 후, 복구하지않고 그대로 보존 하고 있다. 4개의 건물로 지어져 있고 웅장한 성과 조각이 아름다웠고 정원은 계단 식 으로 되어있었다.
포도주 보관소: (세계에서 가장 큰 포도주 통)
포도주를 보관하는큰 통이 있었다. 이 통에 227260리터를 보관 한단다. 어마 아마 하게 큰 통인데 그옆에는 왕이 가장 신임 했던 뻬르게이 상이 술잔을 들고 서 있었다. 뻬르게이는 술을 너무 좋아해서, 왕은 취한 상태에서 술을 마실까봐 열쇠를 빼앗아 특수 장치를 한 시계에 큰 털(꼬리)을 달아 시계가 울면 시계에 달린 털이 뻬르게이를 때려 정신을 들게 했다는 시계와 함께 서 있었다.우리 일행은 축축히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하이델베르크의 관광은 끝났고, 하이델베르크의 설명을 마친 안내자는 하이델베르크 기차역에서 작별하고 다음은 로젠버그로 향하였다. 로젠버그 까지는 2시간이 걸린단다.
로젠버그: (독일)
성혈 제단이 있는 성당 이다. 이 성당에는 자기의 소원을 적어 벽에 부쳐 놓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도 소원을 적어 벽에 부쳤다. 이 성혈 제단이있는 성당 입장료는 1,50유로, 대성당을 관람한후 시청앞 광장에 모였다.이곳 은 뻐꾹이 시계의 본고장이라고 한다. 예쁜 선물 가계가 즐비 하다, 그런데 가격이 너무 비싸다. Town을 둘러싼 원형의 성을 돌아서 저녁 식사를 하고 7시(오후)에 출발 하였다. Town은 어둠 속에 깔리고 온 종일 내린 궂은 비로 모두들 추워서 벌벌 떨며 9시에 Hotel 에 도착 했다. 지금은 밤 11시 15분이다. 오늘의 일정을 2시간 동안 기록했다 아! 몹시 피곤 하다. 내일의 일정은 뮌헨 인데 내일의 날씨는 어떻런지! 오늘도 즐거웠고 내일도 또 즐겁게! (숙박 한곳은 로젠버그에서 남쪽으로 알렌제뉴란 소 도시이다.)
오늘의 일정은 독일 뮌헨과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크
뮌헨까지의 소요 시간은 2시간. 8시에 출발 하였다. 뮌헨은 엘란제뉴 라고 하기도 도 한다. 뮌헨까지 가는 동안 한국에서 우리와 함께 온 가이드는 게르만족에 대한 이야기와 유럽과 독일의 역사를 다시 말해 주었다.
유럽의 인류 민족 구분은 세 가지 민족으로 구분 한다로 한다.
(1) 라틴(라스) 민족…. 포루트칼 스페인 프랑스 이태리 루마니아가 라스민족으로 날씨가 좋아(남쪽) 예술적인 면이 많이 발전 하였다. 이 라스 민족이 375년 까지 지배해 왔고.그 후 1000년동안 로마가 지배해 왔다 (흑발에 키가 작고 예술적이다.)
(2) 게르만 민족…스웨덴 덴마크 놀웨이 독일 스위스의 일부 60% 북유럽에서 좋은 날 씨를 찾아 남하했다. 특징은 키가크고 금발 파란눈 혹은 회색눈 으로 진취적, 도전적이라고 한다..
(3) 스라브족….러시아 중키에 흑발이며 소수 민족으로는 그리스 리투아니아 알바니아 등 이같이 구분된다.
유럽은 392년부터 기독교가 부활(박해시대로부터)하여 기독교가 국교가되었고 400-1400년까지 (루네쌍스시대-카돌릭이 군림하던시기) 헨리 1세때에 가장 번성기를 맞는다. 헨리 1세이후 오토 1세는 교황청과 손을잡는다. 교황은 황제로서 최고 이며, 황제의 임명은 교황이 한다. 오토 1세는 게르만 민족의 왕이다. 오토 1세는 대물림을 할수있도록 교황청과 손을 잡았고, 프랑스와 영국의 100년 전쟁이 있었다. 유럽은 로마 멸망후 도시국가로 분리된다. 1870년, 이태리가 통일되고 1871년 독일이 통일된다. 이렇게 설명을 하는 동안 뮌헨에 도착하였다.
로젠브르크에거 뮌헨까지 오는길은 비가 계속 내렸고 고속도로 주변의 수풀같은 나무들은 비에 젖어, 나무 잎은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어떤 나무에는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어, 그 아름다움이 극치 이다.
뮌헨에 도착하여 도시를 구경 하였다. 인상적인 시청은 교회와 같은 건물이었고 건물 조각속에 장식된 인형들이 매 시간마다 인형극으로 이벤트를한다. 시청은 교회 같은 (뾰족한 건물) 건물이었고 그 내부는 성속에 들어 가는것 같은 구조였다. 12시 정각에 교회의 3종 소리가 끝난후 인형극을 관람하고 12시 45분에 집합하여 인스부르크로 향헸디. 주위의 건물들은 500-600년씩 된 건물이지만 너무 깨끗하고 튼튼하게 지어 졌으며 길가의 상점이나 다른 건물은 질서 정연하게 우아함과 정결함이, 마음이 차분해지는 그런 도시의 광경이었다.간판도 거의 없고 건물 속에는 안내를 위한 글만이 부착되어 있었다. 인상적이었다. 뮌헨점심은 중국짐에서 한다고 했다. 여행중에는 계속 서양식 음식을 먹었기에, 오랫만에 먹어 보는 중국 을식을 기대를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식사중 제일 형편 없는 점심 이었다. 남편은 중국 술 (백알)을 청 하여 한잔씩을 함께 온, 일핻들에게 권해 주었다. 밖에 나오니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1845년 막시밀리언2세의 아들 루드빅 2세가 태어난 궁전을 구경했다. 막시밀리언 황제가 아들을 낳아주었다고 아내에게 하사한 궁전이란다. 루드빅 2세는 바그너와 친교가 두터웠다고 한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다. 궁전 안에, 있는 휴게소에서 생맥주 한잔씩 하고 밖으로 나오니 넓은 정원에는 한국의 밤과 똑 같은 열매가 많이 떨어져서 널려 있었다. 그것 을 밤인줄 알고 주워서 먹어보니 아추 떫고 몹씨 쓰다. 밤이 아니었다 우리뿐이 아니고 다른사람들도 모두 속았다.
인스부르크(오스트리아):
뮌헨을 떠난지 2시간 만에 인스부르크에 도착했다. 이스부르크는 대학의 도시였다. 비 는 계속 촉촉히 내리고, 이곳에도 길가에는 낙엽이 쌓여 있었다. 궁전이었다는 건물은 박물관이되어 있었고 국립극장도 있고, 유럽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Jacob 성당을 보았고, 황금의 지붕이 있는 곳에서 시청도 관람 했다
Jacob성당
밖에는 우람한 사토로 튼튼하게 지어졌고 단조로워 보였으나 안으로들어가니 내부는 완전한 예술이었다. 천장에 그려진 미술 작품과 사방에 그려진 작품들, 성당안에는 제대가 사방으로 몇개씩 있었다 각 제대에는 서로 다른 모습의 예수님의 형상이 그려져 있고(고난의 예수님, 십자가의 예수님, 성모님과 함께 계신 예수님등..)이런 다른 모습의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묵상을 하였다. 앞면 졔대에는 금과 백금의 장식으로 꾸며진, 그 화려함이 이루 표현할수 없이 아름답다. 앞에 모셔진 성모님의 형상, 아기 예수님을 안고 손에 묵주를 드시고 반겨주시는 모습이 마음속에 와 닿았다 성모님께 아이들의 가정을 위한 부탁의 기도를 드렸다. Pipe Organ의 웅장함, 발길이 돌려지지 않는다. 십자가에 매달린 고통 스러운 예수님의 형상이 마음을 아프게한다. 이성당은 자기가 구원하는 기도가 이루어지는 성당이라고 한다. 성당 안에 들어서면 왼쪽에는 예수님과 성모님이 그려져있고 성화 앞에 마련된 촛불 제단이 있다. 그곳에서도 아이들 가정을 위한 촛불을 밝히고 하느님과 성모님께 가슴 벅찬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구 시가지를 돌아보고 Mcdonald에서 Coffee와 후렌치 후라이를 3불주고 사 먹었다. “비엔나 소년 합창단” 은 이곳 인스부르크에서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인스부르크 관광을 마치고 Hotel로 돌아왔다. 식사는 7시 15분에 했고, 선택 관광을 하려던 요들 쏭과 민속 춤은 마감이되어 관람 하지 못하였다. 꼭 듣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호텔 저녁 메뉴는 닭요리였다. 닭요리를 먹지 못하는 나를 배려해 나는 Beef Steak으로 저녁을 먹었다.내일의 일정은 스위스..루체론과 인터라겐 이란다.
인스부르크를 아침에 떠나 루체론과 인터라겐을 향해 출발 하였다. 5시간동안을 차 안에서 관광은 운치가 최고라고 하는데, 계속 내리는 비로, 구름과 안개에 쌓인 밖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것은 비 구름뿐, 그러나 웅장하게 둘러 쌓인 아름다운 알프스 산맥을 희미하게나마 볼수가 있었다.
인스부르크(오스트리아) 에서 루체론(스위스)까지 오는동안 여러개의 터널을 지났다. 산 으로 둘려 쌓여있으니 산속으로 터널을 통해서 스위스까지 왔다. 일베르 터널을 지나왔다. 이 터널은 3번째의긴 터널이란다.(15Km), 몽불랑 터널(11.5 Km)
라니텐슈라인:
인스부르크(오스트리아)에거 루체론(스윗)로 지나오는 가운데 있는 작은나라, 주로 면세와 관광사업을 주로하는 아주 작은 나라로 모든 기념 우표는 이곳에서 찍어 우표의 나라 라고하기도 한다고 한다.
(유럽의 미니국가….바디칸제국, 싼마리노, 라니텐슈라인(오시트리아와 스위스 사이) 모나코)
스위스는 7명의 장관이 있고 대통령의 임기는 1년이라고 한다. 스위스는 가난한 나라였다고 한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국민들을 다른 나라에 용병으로 갔었다고 한다. 국민소득 45000불의 세계 1위란다. 북쪽 에는 독일 남쪽에는 이태리 동쪽에는 오스티리아 서쪽에는 프랑스 에 쌓여있는나라로 중립국이다. 수도는 쥬리히 (경제 수도) 43%가 기독교베틀(행정수도) 47%가 카토릭, 국토 410000Km, 인구 700만. 지방자치제로 26개주로 나뉘어져 있고 언어는 여러종류로 사용하고 있다. EU 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로 화폐는 스위스프랑을 사용하는데 우리나라돈으로 850:1이다. 대학은 7개가 있고 강의는 영어로 한다. 다민족 국가로 게르만 60% 불어권 30% 산악지대 ㅣ%.
루체론: (루체론이란 호반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사자 기념비를 관광하였다.(사자가 조각된 비) 사자가 창을맞고 고통스러워 하며 죽어가는 그 조각은 용병시대에 불란서가 망해 모든 제후들이 다 도망갔지만 약속을 지키는 스위스의 용병들은 국민 끝 까지 화살을 맞고 신의를지켜 죽어갔다는 상징으로, 슬픔과 아픔이 묘사된 사자상 이었다. 그리고, 구 시가지로 들어와 관광 하였다. 스위스의 명물인 시계, 가계가 즐비하다. 백화점을 둘러 보았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로체롬에 도착하여 관광후 점심을 한식으로 하고 다시 인터라겐으로 가기위해 버스에 올랐다.
스위스 알프스를 등정하려면 인터라겐에서 시작된다. 알프스 등정은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져서 등정을한다. 동쪽은 융푸라우 코스, 서쪽은 몽불랑 코스, 등정할수있는 높이는 3217m 요금은 160 프랑. (스위스는 시계의 나라).
인터라겐 융푸라우의 도시 (스위스)
버스를 타고 약 2시간후 인터라겐에 도착하였다. 비는 그쳤고 사방은 알프스에 쌓여있다. 만년설에 쌓인 알프스 산도 보인다. 아름답다. 강이 흐르고..빙하가 녹아서 흐르는 물은 비취색이다. 록키 산맥의 루이스 호수의 색 같지는 않지만 물색이 특이하고 아름답다. 5시에 도착하여 5시 40분에 모여 저녁 식사를 하고 (식사는 형편없다 모두들 불평들이다) 돌아 와 남편은 다른 팀과 한잔 하러 갔고 너무 고단하여 즉시 취침에 들어갔다.
인터라겐으로 오는 도중의 궂은 날씨는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지만, 어디서 많이 살았다는 느낌! 어디선가? 언제인지 모를, 먼 옛날의 향수 가… 아! 맞아! Pittsburgh! 바로 그곳의 날씨! 잿빛 하늘에 질펀하게 진눈깨비가 내리는 그런 날씨! 힘들었던 Pittsburgh의 생활이 떠올랐다. 이민 초기, 힘들었던 시절, 이제 그것은 추억이 되어 그리움으로 마음속에 남겨져 있었다. 과거는 그립고 추억은 아름다운것, 그때가 그립다. 젊었고, 아이들이 다 품속에 있었으니….. 지금은 모두 각자의 가정을 이루어 다 떠나 버렸다. 바로 이 시간이 지나면 지금이 또 그리워 지겠지!
인터라겐(스위스) 융프라우(스위스) 밀라노 (이태리)
아침 3시 30분에 기상하여 여러가지 준비 끝내고 6시 30분에 식사 7시40분에 산악 열차로융프라우를 가기 위해 출발 하였다 산악 열차는 2번 갈아탔다 알프스를 오르면서 5분간씩 정차하여 전경을 본다. 어제까지 내리던 비는 맑게 개였고 알프스 정상의 기후는 환상적이었다. 일년동안 이렇게 맑고 깨끗한 전경을 볼수있는 날은 몇번 않된다고 한다. 어린시절 부터 동경 해온 그 알프스를 이렇게 눈 앞에서 보니 가슴이 벅찼다. 3700여 미터까지 오르면서 심장이 약한 나는 약을 먹고 올라갔지만 어지러웠다. 함께 따라온 가이드가 지압봉을 부쳐주고 천천히 걸으면서 관광 하고 돌아오는 열차를 타니 심장이 너무 뛰고 숨이 차다. 겁이 났다. 한참을 안정하니 가라 앉았다. 산악 열차로 돌아오는길은 올라 갔던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내려와 기다리던 버스에 올라 밀라노로 향했다.
스위스 알프스는 신이 만들어준 대 자연의 웅장함과 화려함에 다시한번 하느님의 역사에 감탄하게 한다. 내려오는길에 펼쳐진 맑은 호수는 커다란 강으로 착각 할 만큼 크고 넓었다. 이런 아름다움을 가슴에 담고 알프스를 떠났다. 버스속에서 Sound of Music Video 를 다시 보았다. 오스트리아 의 짤스부르크를 떠올리면서….(알프스 정상에는 Top of the Europ 이라는 글이 써 있었다),
밀라노(이태리)
융프라우를 출발하여 4시간 후에 밀라노에 도착 했다. 7시 30분에 저녁 식사 (중국식)룰 마치고 성당, 극장, 도시 관광을 하였다. 웅장한 성당은 탑이 130 개이고 탑 마다 세워진 성인 상은 3000개 란다. 성당은 보수 관계로 청동 청문 5개만 보여지고 다 가려져서 전면은 문 밖에 관람 하지 못했지만 전면을 빼고는 성당 전체를 볼수 있었다. 아름다운 대리석으로 조각된 고디식 건축의 화려함이 먼저 독일에서 느낌과는 또 다른 면이거기 있었다. 2차 대전시 성당이 폭격 목표였지만 신앙심으로 성당을 폭격 할수 없어서 그 옆의 극장을 폭격 했단다.네오날드 다빈치의 상이 광장 한가운에 그를 도왔던 사람들의 조각상과 함께 서 있다.
레오날드 다빈치는 피렌체에서 태어나 밀라노, 피렌체등 여기 저기 옮겨 다니며 살았다고 한다. 귀족의 사생아로 태어나 생각 보다 화려하게 살지 못하고 생을 마친 다빈치의 생에 대한 연민의 정을 느끼게했다.( 작품으로는 천지 창조 , 최후의 만찬등) 그 옆에는 2차 대전에 성당을 대신하여 폭격을 당해 새로 건축된 오페라 극장이 있었다.) Gelleria 건물이 웅장하게 천정을 덮은 건축으로 길거리에는 Bar가 즐비하게 있고 Itariano들이 하루일을 끝마치고 길가 주점에 모여 행인들이 쳐다보는 거리에서 한잔씩 하고 있었다.도시는 독일이나 스위스, 오시트리아 처럼 고전풍으로 아름답지만, 질서 정연 하지 않고 멋대로 고대 건물과 현대의 건물이 섞여 있었다. 미국과 같은 그런 느낌이다.
밀라노
밀라노는 휏션의 도시이다. 도시에는 휏션을 상징하는 장식들이 몇개 있었다. 융프라우 관광과 늦은 시간 관광으로 피곤한 우리는 오늘의 관광이 끝나자 10시에 Hotel에 도착하였다. Hotel은 Concorde Hotel 306호. (밀라노인구 150만이태리 북쪽에 위치하고 있음. 수도는 Rome (행정적인 수도) (밀라노는 경제적인수도). 이태리는 301000 Km 인구 6000만 GNP 북-30000유로 로마 -20000유로 남 10000유로 밀라노,인구 150만 지하철은 4개 노선 땅속을 깊게 팔수가 없다고한다. 이유는 유적지 가 많기 때문이란다.)
밀라노를 떠나 베네찌아로 향했다. 베네찌아는 영어로 베니스라고 한다. 움직이는 버스 안에서 가이드는 이태리와 또 다른 국가들에 대한 설명을한다. 이태리의 주 산업은 첫째농산물 산업 2) 자동차 산업, 3)기계산업 4) 섬유 산업 5) 도기 산업 6) 관광 산업이다. 매해의 관광 수입은 3억 불이라고 한다. 3대 농산물로는 올리브, 밀, 와인, (올리브는 불 포화성이기때문에 성인병을 예방한다.)
베네찌아:
쎅스피어작 베니스의 상인 의 도시, 물의도시, 118개의 섬으로 만들어진 도시 자연적으로 된섬은 6개, 그외의 섬은 하나, 하나 사람의 힘으로 다져서 이룩한 섬이다. 작은다리 하나를 건느면 그것이 또 한 섬이다. 400년동안 사람의 힘으로 이룩하였다고 한다.
지중해의 특징은 파도가 없고 잠잠하여 이렇게 이룩할수 있었다고한다. 밀물과 썰물의 높이의 차이로 11월에는 물에 잠겨 관광을 할수 없을때도 있다고 한다.(섬에 착륙할수가 없기 때문이다.베네찌아에 배를 타고 20-25분 후에 도착했다. 섬 장료는 팀당 160유로… 베네찌아에는 사계의 곡을 쓴, 안토니오 비발디가 있다. 비발디는 베네찌아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에서 45세로 생을 마쳤다.카사노바도 이곳 사람으로 많은 엽색을 행하여 살다가 이곳 감옥에서 탈출하였다. 탈출할때 귀족 파티에서 옷을 훔쳐 변장을 하고 배를 타고 탈출하였다고 한다.
베네찌아의 경제권은 마피아가 장악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유적만은 장악하지 못 했다.설명을 하는동안 섬에 도착 하였다, 이곳에서 성 마르고 성당을 보고 곤도라를 탑승했다. 베네찌아에는 3가지 명물이 있다. ( 마르고 성당, 콘도라,크리스탈)
1) 성마르고 성당:..성인 마르고는 이스람 국가에 전교차 갔다가 그들에 의해 순교했다. 이곳에 있는 베니스의 상인이 그 성당을 많은 돈을 주고매입하여 마르고 성인을 돼지고기로 위장시켜(시신위에 돼지고기를 덮어씌워 위장하여) 베네찌아로 옮겨 왔다고 한다.이 성당 제일 앞 제대 밑에 마르고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마르고 성당을 지은 지반은 사람들이 만들지않은 본 섬으로, 베네찌아에서 가장 지반이 약해 들어가보니 성당바닥은 내려 안고 있었다. 성당안의 천정은 금 모자이크로 장식 되어 있고 모든 성인들과 성화가 모자이크로 그려져 있었다.
2) 콘도라… 콘도라가 무엇인지 몰라 궁금 했는데 그것은 풍류를 즐기는 여자 고무신 같은 특이한 배였다. 우리 팀 20명은 6명씩 한 배에 탔다. 운이 좋게 남편과 나는 악사와 같이 탔다. 흥이난 악사들이 아코듸온을 여주하며, 싼타루치아, 돌아오라 쏘렌토로, 오 쏠레미요 등, 이태리 민요를 노래하며 지중해에서 40분간을 즐겼다.
3)크리스탈….크리스탈 공장을 둘러 보았다. 용광로에서 달아진 유리 액체를 입으로불어 작품을 만드는 광경을 보았다. 예술적으로 만든 많은 크리스탈 제품과 유리 제품은 고급스럽고 아름다웠다. 값은 너무 비쌌다. 유리잔 한개에 300-500유로다. 여기서 크리스탈 목거리와 귀걸이 셑를 4개를 기념품으로 샀다.
베니스에는 3가지 축제가 있다.
1) 가면 축제 2) 콘도라 축제 3) 베니스 영화제.(우리나라에서는 강수연이 황금 사자상을 수상 했고, 이곳에서는 가장 많은 CF 촬영을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안성기가 Coffee 맥스웰 CF를 촬영 했단다)
*육지에서 베네찌아로 들어가는 다리는 뭇소리니가 만들었다. *베네찌아의 수호신은 마르꼬) * 자원은 모래이다. * 마르꼬 폴로의 작품—동방 견문록 (베네찌아임) 교통편은 다 배이고 섬과 섬은 걷는다.
베니스에서, 마르고 성당, 콘도라 탑승, 크리스탈 공장 견학등을 마치고 광장으로 갔다. 광장에는 많은 비둘기가 관광객이 던져주는 먹이를 먹기위해 수천마리의 비둘기가 광장을 덮는다. 강장 주변에는 많은 상점들이 즐비한데 그중 유명한것으 몇백년 된 까페이다, 이 까페에서 카사노바도 Coffee를 마셨단다
모든 관광과 쇼핑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다. 롯데 관광회사 가이드는 특별한 와인을 준비해 멋있는 Hotel 부페로 저녁식사를 초대해 주었다.
.피렌체,로마
아침 4시에 기상 7시에 아침식사 하고 8시에 피렌체로 향하였다. 피렌체는 영어로는 프로렌스(꽃이라는뜻) 도시 전체가 아름다웠다.호텔 서 부터 3시간 소요 된다고 한다. 볼로니아를 거쳐가는데 볼로니아는 세계에서 최초로 대학이 생겼다고 한다.
피렌체에서는 1) 도모성당(주교좌가 있는 대 성당)2) 마리아성당(크리스티나 성당) 3) 미켈란제로 언덕 4) 시뇨라 광장 성 십자가 성당 을 관람한다.
1) 도모 성당…도모 성당은 피렌체의 상인들이 세운 성당으로 그 옆에는 천국의 문이 그려져있는 건물이 성당 이었던것을 성당을 새로 지은후 그 성당은 세례당으로 씌여졌다고 한다.동쪽으로 난 금색의 문에 조각은 성서에 나오는 모든 일들을 조각 으로 나타 내었다.(다빈치 작) 너무나 아름다운 문이라 이것을 “천국의문” 이라고 이름 지었단다. 후에, 미켈란제로가 이것을 찬양 했고 여기서 느낀 마음으로 베드로 성당에 최후의 심판과 천지 창조를 그렸다고 한다. 세례당에 조각된 문과 건물은 열려있지 않아 겉으로만 관광했다.( 도모 성당은 1296년 아루늄피스에 의해 건립을 시작하여 1417년 까지 120여넌 에 걸쳐 건축하여 1436년에 부루엘스키 에 의해서 완공 되었다고 한다. 도모성당에 와보니 성당을 과람하기 위하여 줄을 선 사람들이 끝이 없었다. 1사 30분에 집합 하기로 되어 있는데 점심시간 이어서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관람 할수가 없어 성당 내부는 볼수 없었다. 겉으로만 보았다. 미켈란제로가 이것을 본따 베드로 성당을 지었다고 한다.
2) 꽃의 마리아 성당…. 아름다운 대리석으로 (초록, 분홍, 아이보리 색의 대리석)3가지 색의 대리석을 섞어서 쌓아 올린 성당은 퍽 아름다웠다. 외부에서만 보았다. 그 옆에는 지요도 (좃도) 의 종각이 서 있었다. 당시에는 성당과 종탑은 분리 하였단다.
3) 성 십자가 성당…..이 성당은 유일하게 수도원과 나란히 붙어있다. 묘지의 성당이다.다빈치, 갈릴레오, 마리아 웰리, 미켈란제로등 유명 인사와 성인들의 유해가 안치된 성당인데 단테의 묘소는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단테는 추방을 당했기 때문이다.입장료는 4유로, 천장에 그려진 성화와 주위에 안치된 무덤은 마음을 무겁게 했고 그 옆에, 성모님의 제단에는 많은 촛불들이 밝혀져 있었다. 초값은 3센트였다. 나도 아이들 위해 촛불을 밝히고., 소원을 마음으로 말씀드렸다.
4) 시뇨라광장….도모 성당 앞에 넓은 광장.. 사비스 여인 약탈상, 데비드 나체 조각상,헤라크라스 나체 조각상이 있고, 중세기 돈의 중심, 금융가의 중심, 은행가의 중심 근처에는 단테의 집과 단테가 베아테리체를 만났던 성당도 관람 하였다. 단테의 생가와 단테가 다니던 성당은 거의 같은 거리에 있었다. 걸어서 20-30 발자욱 정도이다. 단테의 생가는 보수 중이어서 겉에서만 보았다. 뻬아트리체를 만났다는 성당도 들어 갈수가 없엇다. 그래서 겉에서만 보았다.
단테의 생애:….단테는 평생 뻬아트리체를 짝사랑 했단다. 처음 만난곳은 뻬아가 9살적에 다리위에서 처음 만났고 두번째는 성당 앞에서 만났으나 말도 건네지 못했고 뻬아가 17살에 결혼해서 24세에 죽은후 평생을 결혼하지 않고 생을 마감 했다. 단테는 1265넌에 태어나 1301년 까지 10여년을 방황 했고 그 후에 공직에 오른다. 교황의 탄압으로 1302년 사형 선고를 받고 2년후 추방을 당했다.( 단테는 이태리어 글을 만들었다) 피렌체 사람들은 단테가 추방당한 것에 대해 추모로, 모금하여 단테의 무덤에 보내는 성유 값을 매년 보내며 이곳 사람들은 단테를 추모하는 뜻에서 빵에 소금을 넣지 않아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빵을 먹는다고 한다. 우리도 먹어 보았는데 정말 맛이 없었다. 우리는 스파케티 소스에 찍어 먹었다.
5) 미켈란제로 언덕….이 언덕에 오르니 피렌체 전 시가지가 한눈에 볼수 있었고 남과 북을 잇는 여러개의 다리가 연결 되어 있었다.이곳 다리는 남과 북의 차이를 두지 않는다는 뜻에서균등하게 연결시킨 다리인데 2차 대전에 모두 파괴 되었으나 유일 하게 한개의 다리는파괴 되지 않아 그 다리 위에는 보석상과 보석 가공을 하는 상점들이 다리위에 있었다.세계의 보석 가공은 이곳에서 80% 를 한다고 한다.
피렌체…르네쌍스가 시작된곳….피렌체는 토스카나주에 위치하여 모든 가죽의 중심지이다. 메리리치 가문에 의해 부의 축적으로, 은행 설립, (메리리치 가문) 의약품등…. 피렌체는 메리리치 가문에 의해 부를 축적 했고 귀족들이, 상인 이라는것에 대한 무시에 맞서 모든것을 부로서 해결했다. 딸들은 교황의 조카들에게 많은 지참금을 주어 결혼시켰고 프랑스에서 교황의 조카와 결혼할때에도 어마어마한 결혼 지참금과 새로운 Fashon으 의상을 지참시켜 새로운 프랑스의 Fashon을 발전시켰다고 한다. (귀족과의 결혼으로 Up Grade 하기 위해)
라우다데 성가대는 피렌체에서 시작 되었다. 작품 모나리자의 배경은 피레체의(아로나강)
(피렌체 출신의 사람들…..레오날드 다빈치, 미켈란제로, 라파엘, 단테)
토스카나주….피렌체 지역으로 가죽 염색이 으뜸이다. 가죽 염색은 메리치 가문에서 염색, 색상, 코팅 까지 특별한 방법으로 시작 하여 가죽은 세계에서 제일 가는 곳이다. 토스카나 가죽은 여기서 시작된 말이다. (.이태리는 한국의 1 1/2 크기이다.20개 주로 나뉘어져 있다.) 이렇게 우리 일행은 피렌체의 관광을 마치고 버스에올라 저녁은 한국식 식사를 하고버스로 3시간 (300Km)후 로마 호텔로 돌아 왔다.
일정…로마 성 베드로 성당, 바디칸, 박물관, 트레비 분수, 대 경기장, 진실의문, 콜로세 움
아침 4시에 기상했다 식사는 6시 40분에했고 우리 일행은 8시 30분에 미니버스로 오늘 일정에 올랐다. 바티간 소국에 도착하였다.
바디칸 박물관…미니버스로 박물관에 이르니 관람객들의 기다리는 줄이 말이아니었다. (너무 많아)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란다.성수기에는 1시간씩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입장료를 사가지고 입장하여 처음으로 들어간곳이 솔방울 정원이다.
솔방울 정원….. 정원안에 솔방울 모양의 조각을 올려 놓은 (2개의 조각을 함께)로마 시대의 유적을 볼수 있었고 또 정원의 중앙에는 조각가 포모도루(도마도) 조각가 작, 황폐 해지는 지구의 구리상(청동상) 이 있었다.
박물관에 들어가기전 시스미아 (소성당은 성당 안에서는 일체 말을 할수가 없단다.) 성당에 조각된 천지 창조, 최후의 심판, 그리스도의 일생과 모세의 일생을 설명 들었다( 미켈란제로의작)
바디칸 박물관은 세계의 3대 박물관중에 하나이다 (영국의 대영박물관 바디칸박물관 프랑스의 루불.박물관). 바디칸 박물관으 하후 평균 입장객이 19000명 이란다. 1503년 유리우스 교황의 꿈은 교황권 안에서의 통일 (유럽) 세계에서 최고의 성당 건립, 최고의 도시를 만드는것이었다 이것에 의하여 베두루 성당이 건립 되었다.
원래 베두루 성당은 이 자리에 있었으나 너무 낡아 유리우스 교황 즉위 3년에 신축 되었다.
브라민 건축가에 의하여 설계되어 건축되었고 건축가 미켈란제로의 그림, 라파엘의 그림등으로 완성 되었다. 미겔란제로는 건축,시, 조각의 명장이었다.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천지 창조는 33세에, 최후의 심판은 61세에 그렸다고 한다. 1512년 3년 5개월만에 완성 되었다고 한다. 최후에 심판에 그려져 있는 인물은 391명이 등장한다. 천국, 연옥, 지옥으로 표현된 작품으로 (단테의 신곡으로 표현됨) 61세에 최후의 심판을 그린 미겔란제로는 이 그림을 완성한후 건강이 몹시 나빠져서 눈도 보이지 않고 말을 거의 하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예술가로서 고된 일생을 미겔란제로는 살았다. 최후의 심판에 나오는 인물들은 전 나체이었는데 이것을 미켈란제로의 제자 볼페르가 가리개로 하기 위해 덧칠을 했다고 한다.
시스티나 성당 옆면, 들어가면서 왼쪽에는 그리스도의 일생이 그려져 있고 오른쪽 에는 모세의 일생이 그려져 있다. 그리스도의 일생은, 우리를 구원하는것이고 모세의 일생은 이스라엘을 구한다는 내용의 그림이다. 이것은 박물관 입장 하기전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가이드의 설명을듣고 박물관으로 입장하니 들어서자마자 조각품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2000년전 조각한 헬레니즘 시대의 정교한 작품들이란다. 박물관의 순서는
1)팔각 정원…정원 안에는 (유리우스 정원) 신들의 작품으로 시작된다. 아폴로신 (최후의 심판에서 얼굴을 따옴) 티그리스강의 신등….
2) 뮤즈의 방.( Music) …
3) 원형의 방….신들의 조각상 제우스, 아테네, 씨저의상 과 네로 황제의 욕조가 있었다.
4) 그리스 십자가의 방…(십자가가 가로 세로 똑 같은 길이) 석관과 헬레나상은 왼쪽.. 콘스탄틴 상은 오른쪽에 서 있었다.
5) 촛대의 방…로마 시대의 화잔(촛대) 다이아나 여신상 .. 바닥에는 비오 7세의 문장… 네오 13세의 문장과 교황님의 (금, 은) 선과 악의 열쇠 가 있었다.
6) 아랏치로 만든 카페트의방…. 라파엘로가 그린 그린 그림을 아랍에서 카페트로 짜서 벽에붙혀 전시 되어있다 (부활 장면을 짜서 벽걸이로)
7) 지도의 방…. 바로크 시대 완성 프레스크화 로 그림.
8) 8) 소비에스키방…세계에서 제일 큰 유화로 요한 3세
9) 삼위 일체방….서모마리아 무염시태가 그려져 있다.
10) 콘스탄티누스의 방…Hall 이 크다.작품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기독교를 공인하기 위한 전쟁)
11) 라파엘로 방…교황이 서명하는 그림 (라파엘로 의 그림)
12) 보르고 화재의 방…트로이 전쟁을 표시.
이렇게 시스티나성당, 박물관을 관람하고 시스티나 소 성당으로 갔다. 소성당에 들어서자 아름다움의 극치이다. 가이드가 미리 설명 해준것처럼 천장에는 천지 창조와 오른쪽 벽에는 모세의 일생,왼쪽 벽에는 그리스도의 일생, 전면에는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었다.
이 시스티나 성당에서는 교황을 선출 한다.
베드로 성당…. 들어서자 왼쪽에는 삐에다 성모상이 있다. 앞면 그림에는 베드로 종도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 성화가 있었다. 그리고 또 많은 성화가 그려져 있었다.
각 기둥에는 역대의 교황님의 상이 있었고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 군인이 창을 들고 있는 조각상이 있고 실제로 찌렀던 창의 끝 쇠가 보관 되어 있었다.
앞면 제대 같은 곳에는 역대 교황님의 시신이 안치 되어 있었다.
웅장한 모자이크 성화와 제대, 조각상, 그림등..유럽의 보석함 그 자체이었다. 내부를 둘러 보고 문으로 나오니 베드로 광장이었다. 교황 성하가 나오시는 발코니도 보았다. 교황 성하가 건강이 나쁘셔서 매주 수요일에 알현 하는 행사도 취소 되었다고 한다.
많은 의자가 즐비해 있었고 우리는 광장 분수대에 집합하여 선물집에 들렸다가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점심 식사후 우리는 로마 시내 관광을 하였다.
콜로세움… 원형 경기장 , AD 70-80 년 완공 검투사 경기장으로 타원 경기장 5만명 수용할수있는 경기장으로 로마가 멸망하기 전까지는 더 큰 경기장은 없었다고 한다. 기독교박해(동물,사자의대결등)장소였던 곳이다.
기독교 박해 시초는 네로 황제 때부터 시작 되었다. 로마사람의 등급은 귀족, 병사, (시민), 여자, 노예의 의 4 등급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우리는 대전차 경기장을 둘러보았다(벤허 에 나오는 대 전차경기장 인데 너무도 작고 초라해서 실망 하였다. 그리고, 진실의 문, 콘스탄티누스의 개선문, 토일 기념관, 트레비 분수,(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던 장소) 에서 우리는 오드리 헵번처럼 아이스크림도 사 먹었다. 그리고 그 분수에 로마에 다시 오고 싶다고 분수에 동전도 던졌다. 또다시 올수 있을까! 동전을 1개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오고 2개 던지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3번 던지면 이혼한다는 전설이 있단다. 그래서 모두들 동전을 던지는데 이 동전은 세계 아동기구에 전해 진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점심에는 이태리 전통의 피자와 스파게티를 먹었고 저녁은 아리랑 하우스 에서 한식을 먹었다. 저녁을 먹은후 호텔에 돌아와서 전주에서 올라온 전직 교장선생과 포도주 한잔씩을 하고, 오늘로 유럽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바디칸, 로마의 일정은 끝났고, 내일 (14일) 아침 5시 30분에 출발하여 공항에서 비행기로 영국을 향할 것이다이제 관광 할수 있는 날은 영국과 프랑스 2일 남았다.
런던 대영제국 박물관, 버킹검 궁전,항드 파크 , 웨스트민스턴 사원, 국회 의사당, Town Bridge.
아침 5시30부터 로비에서 모여서 런던으로 향하기 위해 출발 ALITALIA 200편기 로 우리는 영국으로 간다. 이태리 네오날드 다빈치 공항에서 딸에게 2번째 전화를 했다.영국에 도착하니 현지 가이드가 Red Wing이라고 쓰인 대형 버스를 대기 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가이드의 안내가 시작 되었다 괭장히 똑똑하고 정확한 안내를 해 준다)
이곳 하이드로 공항은 (황무지라는 뜻) 청사는 4곳으로 되어 있어 1번 청사는 영국 국내건, 2번 청사는 유럽에서 오는 비행기, 3번 청사는 다른나라에서 들어오는 국제 선이고, 4번은영국에서 가까운 유럽에 자주 드나드는 비행기 전용 이라고 한다. 첫번째로 우리는 하이드로 공원으로 갔다.
하이드로 공원….이공원은 총 73만 평이고 그 규모가 어마 어마하였다. 푸른 숲과 산책 거리는 아름다운 길로 되어 있었고 그 공원안에 Royal Family들이 살고 있었다. 마침 궁중의 왕족을 모시러가는기마병 호위속에 따라가는 근사한 자동차를 볼수 있었다. 이 공원안에는 다이에나 황태자비가 살았던 켄싱턴 궁전과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Albert 공작의 동상이 공원안에 서 있었다. 그 동상 앞에는 Albert Hall 이 동상과 마주 보고 있었다.
Albert 동상…… 영국에서 제일 태평성대를 누렸던 Victoria 여왕의 남편으로 독일 공작이었고 9남매를 낳았다. 너무나 가정 생활이 화목 했고 두분의 사랑이 지극하였으나…… 43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하자 90세 까지 장수한 여왕이 그를 추모하여 곳곳에 남편을 그리는 시설을 해 놓았고 임종에 이르러 마지막 남긴 말에서, 자기는43세에 남편을 (죽음) 이별했지만 그후 50여년을 남편을 마음속에 묻고 남편과 함께 살았으나 이제는 정말 남편 곁으로 간다며 임종을 했단다.
켄싱턴 궁전….하이드 공원안에 있고 이 궁전은 다이아나비가 위자료로 받게 되어 있었던 궁전이나 이혼 직전 사고로 사망하여 받지 못하였다. 가엾어라!
Town Bridge….템스 강에 세워진 이 다리는 영도 다리 처럼 가운데가 열려 배가 지나갈수있게 만든 다리다. 양쪽으로 탑이 세워져있고 그 가운데가 열린다. 템스강은 바다와 연결이 된다.
오늘 여기 특별한것은 세계적인 마술사 (David Vlain)이 20억을 받기로 하고 단식 44일 에 들어가 단식을 하고 있었다 유리 상자안에서 크레인에 매 달려 있었다, 지금 거의 한달 정도 되었다고 한다.
타운 브릿지 앞에는 약간 비뚤어진 타원 모양의 시청이 있었다.
월터루 다리….템스강 에 있는 이 다리는 로버트 테일러와 비비안 리 가 주연한 “애수” 에 나오는 다리, 월더 루 기차역도 보았다.(로버트 테일러가 내렸던)
London Tower…..이곳은 여러가지 용도로 쓰였으나 주로 감옥과 사형장으로 쓰였단다.지금은 까마귀 만이 살고 있고.. (사형 집행한 시신을 먹여 기르던 곳). 헨리 8세의 “1000일의 앤” 의 앤버린 왕비가 단두대에 올랐던 사형장이다. 헨리 8세는 6번 결혼 했고 3번째 앤버린 왕비는 아들을 낳지 못해 사형되었고, 5번째 부인은 간통죄로 사형 당했다.
국회 의사당….고딕 건물로 뾰족 뾰족 솟은 건물은 그 길이가 대단하였다. 그 옆에는 런던 아이(Eye)가 돌아가고 있었다. 국회 의사당 앞에는 시계탑이 서 있었다. 시계탑의 높이는 98 미터이다. 국회의사당 앞에는 올리브 크러멜 동상이 있었다. 올리브 크러멜은 민주주의 의 창시자로 처음으로 국회를 만들었던 사람이다. 촬스 1세에 의해 사형 되었다.
London Eye……2000년 밀레니움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원형의 관망대.. 60여명씩 캡술에 태워 서서히 돌아가면서 전경을 내다 볼수있는 eye는 한번 도는데 30분 걸린다.
대영 박물관……..세계 3대 박물관 (바티칸, 대영 루불) 박물관 에 들어가니 여러 관으로 나뉘어져 있다.
1) 앗씨리아관… 석상들이 즐비하다.
2) 그리스 관.. 쌍뚜스 신전에 모신 여신상으로 목과팔이 잘려나간 여신들의 석상.. . 바닷가 절벽위에 세워졌던 여신상.
3) 피르데스 신전… 2500년전 유물로 국보 1위 (통일과 단결을 신조로 만듬) 그릿의 파르데스 신전의 유물로 터키와 전쟁시 화약으로 파괴된 신전의 유물로 방치되었던 유물을 엘긴 백작이 전재산을 팔아 그리스에 지불하고 영국에 가지고 와서 자기잡 정원에 안치되었던 유물로 750만 파운드를 지불하고 가져 왔던 유물을 정부가 원해 360만 파운드를 받고 영수증 한장으로 헌납했던 세계 최대의 보물이란다. 이 대리석 유물을 가르켜 엘긴 마블이라고 한다.(그리스는 가난으로 인해 그 유물을 팔았다.)
4) 석관……. 석관은 외관으로 쓰여졌고 내관과 목관으로 만들어져 목관에는 미이라를 만들어 목관 내관 외관 순으로 장사를 지냈다.
5) 미이라관….수천년된 미이라가 전시 되어있었다. 미이라를 만드는법도 설명해 주었다.죽으면 즉시 복부를 뚫어서 내장을 다 꺼낸후 다 씻어 건조 시킨후 (뜨거운 모래 바닥에)그것을 항아리에 넣어 시체를 감고 (방부된 천으로) 그 시신과 함께 관에 넣었다. 미이라를 만드는 원인은 다시 살아난다는 신조를 믿었기에 모든것을 미이라로 처리 했단다.(뇌는 코쪽으로 꺼내어 버렸다고 함)
이렇게 5관을 둘러보고 나오니 반갑게도 한국관이 있었다. 이 한국관은 삼성 구룹에서 대영박물관에 돈을 지불하고 여러가지를 전시 해 놓았다.(청자, 서적, 한국 민속품 등) 거대한 유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런대로 가슴이 뿌듯 하였다.
****(Westminster사원…. 국회 의사당 앞에 있다. 황실의 경, 조사가 이루어지는곳. 대관식, 결혼식, 장례식, 다이아나비의 장례식이 있었던곳)*****
오늘 영국 런던의 관광은 이것으로 끝나고 간단한 기념품을 사려고 일행은 버버리 상점으로 갔다. 너무나 비싸다. 마후라와 장갑을 몇개 샀다. 호텔로 오니, 오후 8시 30분이다. 이제 유럽 관광은 내일 하루 남았다.
(참고의 말…대영박물관에 진열된 모든 유품은 영국것은 하나도 없단다 고대 영국은 해가지지 않는 나라로 영국은 싸워서 이긴 전리품을 다 가져다 진열하였기에 돈도 받지 못한단다. 수 백년 지나오는 동안 수리비와 관리비는 적자여서 의회에서 입장료를 받기로 하였으나 시민단체의 반대로 (원인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다 와서 보아야할 유물을 돈을 받는다면 돈을 낼수 없는 사람들은 볼수 없음으로 반대 했단다.) 입장료는 받지 못하고 한쪽에 헌금함을 따로 마련해 놓고 방문객의 헌납을 바라고 있었다. 우리 가이드의 조크에 의하면 자기가 가끔 돈을 넣으니 우리는 넣지 말라고 하여 일행이 모두 웃었다. 참 좋은 인상을 남기고 우리는 작별했다.
유럽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다. 유로스타로, 프랑스, 빠리,루불 박물관, 개선문, 콩코트 광장, 샹제리제, 몽마르뜨 언덕, 성심 성당으로 간다.
아침 6시 30분에 호텔 로비에 모여 도시락을 받고 8시 10분 유로스타 고속 열차에 올라 빠리로 향했다(.여권 검사 마치고) 영국에 3시간만에 빠리에 도착했다. 영국 과 빠리와는 1시간의 시차가 있다. 빠리에 도착하니 10시 30분이었다. 현지의 가이드가 나와 있었다.
빠리…
빠리는 여성의 도시라고 칭한다.( 로마는 남성의 도시라고 하고) 부드러운 선으로 표현한다. 첫번째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달팽이 요리와 고기를 겯드린 마카로니 국수, 아이스크림, Coffee를 먹었다. Coffee의 맛은 작은잔에 Original 진한 에스프레소, 물을 한컵 달라고 해서 큰잔으로 만들어 먹었다. 점심후에 빠리 관광을 시작 하였다.
몽마르뜨 언덕은 3 언덕으로 구분된다고 한다.
1) 성심 성당 2)화가의 광장 3) 언덕으로 구분한단다.
몽마르뜨 언덕…몽마르뜨 언덕은 드니(Denis) 신부님의 순교지라고 한다. 상점이 즐비한 골목 길 (상점은 완전히 싸구려, 땡, 물건만 파는 골목인것 같다)을 올라가니 커다란 성당이 보였다. 이것이 성심 성당이다. 몽마르뜨 언덕은 3 언덕으로 구분된다고 한다.
성심 성당… 빠리의 도시를 내려다 볼수있는 꼭대기에 위치한 성당으로 Denis신부님의 처형지로 이곳에 성당을 지었다고한다. 성당내부에 들어가니 엄숙한 분위기에 사람들이 지켜서서 입에 손을 대고 정숙하라고 표시를 한다. 참으로 아름답다. 사면에 죽 둘려져 마련된 성인 성녀들의 동상(소화 데레사, 성모님, 베드로종도 등) 앞에는 많은 촛불들이 켜져 있었다. 성모님께 2개의 촛불을 아이들 가정의 건강과 평화와 안전과 은총을 부탁 드렸다. 현지 가이드가 성심성당의 설명을 잘못 설명 하기에 정정해 주었다.
화가의 광장…. 성당을 나와 성당을 끼고, 주위에는 많은 화가들이 유채화와 초상화를 그리고 있었다. 선물 가계에 들러서 손주의 선물, 달력하나를 샀다. 화가의 광장을 걸어 내려와 우리는 다음 관광지인 루불 박물관으로 갔다.
루불 박물관….가이드가 세계 3대 박물관 틀리게 안내 한다. 3대 박물관중에 하나인 바디칸 박물관을 빼고, 미국에 있는 박물관이 3대 박불관이라고? 설명을 하네? 아주 마음에 안드는 가이드다. 충청도 대전이 고향, 유학을 왔다고 자기 소개를 했는데, 관광에 대한 지식이 없다. 틀리는 설명을 하는것은 예사이고, 사람들의 말은 받아 드리지 않고 실수한 자기 말을 합리화 하기에 극급한다. 모두 엉터리 설명을 하는것 같아 설명을 받아 던 메모지를 접고 기록을 하지않기로 했다.
여행중 제일 실력이 없는 가이드다. 받아 쓰던 메모지를 접었다.성당 에서도 잘못 설명한 말을 부득 부득 우기고 자기 합리화에 열을 올린다. 그냥 지나치면, 모든 관광객이 잘못 알고 받아 드릴것 같아, 바로 잡아 주는것이니 정정 하라고 했다. 카도릭 신자가 아닌 그는, 성심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엉터리 설명을 하니, 내가 전교는 하지 못하여도 틀린 교리는 바르게 가르쳐 주어야 할것 같아 이해 시켰더니, 그 다음 부터는 다른 사람들에게 옳게 설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설명은 중심이 없고, 말을 하다가는 자꾸 삼천포로 빠져나가, 말의 줄기가 없이 중구 난방이다. 그래서 메모는 접고 나 나름대로의 느낀것을 메모를 했다.
루불 박물관 에 들어서니 그리스 에집트에서 갖다 놓은 대리석의 조각들이 진열 되어 있었다. 다른곳에서 본 조각과는 판이도각 그리 심하지 않았다. 비교적 많은 모양을 가지고 있었다. 프랑스가 다른 나라를 정복한후 얻은 전리품의 조각상을 지나 유명한 그림이 있는 그림관으로 갔다.
유명한 모나리자 상을 관람 하였다. 나폴레온의 대관식이 그려진 그림도 보았다. 루불 박물관은 미술관이라고 하는것이 더 나을듯 싶다. 주로 그림이 많았다. 박물관을 관람하고, 다이에나비 추모비등 을 볼수있었다. 그리고 저녁 식사로 한식집에가서 매운탕을 먹었다. 이제까지 먹은것중 제일 좋은것같다. 저녁 식사후 스케줄은 에펠탑과 유람선이다. 해가 지지않아 에펠 탑은 반짝 반빡 빛이 나고 있었다.
에펠탑…
어두움이 깔리자 에펠탑은 화려한 불빛으로 빠리의 멋을 잘 표현하고 있다. 에펠이(공병이었다고함) 지은 이 철탑은 빠리의 시민들이 없에자는 파와 보존 하자는 파의 의견에 따라 이제까지 보존되어 이제는 빠리의 명물이 되었다.. 에레베이터로 3층까지 (40명 탑승) 올라가 3층에서 소형 에레베타(14인승)로 갈아타고 꼭대기에 오르니 빠리 시내가 다이야몬드 깔아 놓은듯 아름다웠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몹시 추웠다.
유람선….선착장에서 배에 올라 빠리의 전경 (야경) 을 돌아 보았다. 미라보 다리, 세느강의 아름다움, 자유의 여신상, 서울에서 한강 유람선을 타보지 못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야경을 보았으니, 서울의 유람선과 어떻게 비교가 될까!
유람선 관광후 Hotel Hillton 에 돌아오니 10시 30분이었다. 방으로 올라와 짐을 두고,빠리의 마지막 밤, 아니 유럽 여행에서의 마지막 밤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 남편과 함께 Hotel Bar 에서 생맥주 4잔을 시켜 근사하게 마시고 올라왔다. 아! 몹시 피곤하다. 내일은, 시내 관광을 더 하고 오후 9시 45분 KAL로 한국에 돌아간다.
일정 …빠리 시내 관광, 노틀담 성당, 베르사이궁전, 개선문.
베르사이 궁전
루이 14세가 세운 호화궁전 루이 13세 때에는 사냥궁으로 사용한것을 루이 14세가 확장 공사를하여 프랑스 혁명 까지 107년간 왕실과 대통령이 머물렀다. 가장 크고 장엄한 앞 뜰 정원에는 물을 끌어드린 운하와 빠리시 만큼 넓은 땅은 숲이 우거져 있고 그 곳에서 사냥을 하였다니 그럴만큼 넓은 정원이었다.
운하와 호수
잘 다듬어진 정원수는 예술이었다
궁전에 들어서자마자 성 루이 성당의 화려함이 눈길을 끌었다. 2층으로 된 루이 성당을 지나니 여러가지 방들로 구분 되어 있었다. 헤라크라스의 방,축제의 방들, 풍요의 방, 비너스의 방, 다이아나 방, 마르스방, 머큐리 방 아폴로의방 (그림으로 그려 구분)
전쟁의 방….전쟁의 승리, 전쟁의 그림으로 가득….
거울의 방…..화려함의 극치, 유리창 밖으로 내다 보면, 정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가장 사치스러운 방, 수백개의 샨드레아가 눈을 부시게하고, 아름다운 실내 장식은 표현 할수 없이 화려하다. ‘이곳에서 모두들 멋진 파-티를 했겠지!’
평화의 방…천정의 벽화는 유럽의 평화를 되 찾는것을 표현하고 벽 난로위의 그림은 루이 15세가 유럽 평화를 나누어 주고 있는 그림이 있었다.
왕비의 방…역대의 와비들이 사용 하던 방이다. 왕비의 침실 침대 옆에 놓여진 보석함은 보통 장롱 만큼 크고 화려 했다.
또한 귀족의 방, 나폴레옹 기념관등이 있었고 전쟁 겔러리관이 있었다. 베르사이 궁전 구경후 점심 식사를(쎌러드, 생선 튀김, 후렌치 후라이. 아이스크림)한후 노틀담 성당을 관람 했다.
노틀담 성당….”노틀담의 꼽추” 를 만들었던 성당이다. 성당을 들어서자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고 있었다. 성당 전면에는 십자가사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시신을 앉고 계신 성모님의 “비에따” 상이 있었다.
사방에 조각된 성인 성녀앞 제단에는 많은 촛불들이 타고 있었다. 짧은 시간에 쫒기어, 다른 곳은 볼수가 없다. 성모상만 찾아서 (성모상도 여러개가 있었다)그중, 2곳에 아이들 가정을 위한 촛불을 4개씩, 또 한개씩 켜 놓고, 화목과 건강과 안정을 위한 기도를 올렸다.
개선문……개선문을 중심으로 12개의 도로가 쫙 펼쳐진 빠리 도시는 깨끗하고 도로 계획이 정확히 뻗어져 있었다. 옛날 길이라 도로폭이 좁아 모두 일방 통행이다. 개선문 에는 나폴레옹의 600명 장군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고 이름 밑에 줄이 그어진것은 죽어서 (전사)돌아온 사람들이란다. 그 밑에 광장에는 추모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개선문 꼭대기 까지는 걸어서 올라갈수도 있다.(지하도를 통해서 들어간다)
개선문앞을 둘러싼 콩코드 광장에도 들러보았다. 그 다음은 개선문에서 직통으로 뻗어 펼쳐진 샹제리제 거리를 구경하고 샹제리제에 있는백화점에 들려서 쇼핑 관광을 하였다.샹제리제 쇼핑이 끝난후 진미 식당(한식) 에서 불고기로 식사한후 오후 7시에 공항에 도착했다. 7시 15분에 출국 수속을 하고 오후 9시 9시 30분 KAL 서울행 비행기로.., 이것으로 12일 만의 서 유럽 관광은 끝났다.
17일 오후 4시 30분에 인천 공항에 내려 공항 버스로 Marriott Hotel 로 돌아왔다. 참으로 좋은 여행이었다.
아이들이 보내준 효도 여행, 우리에게 많은 경비 들여서 베풀어준 그 마음씨가 고맙고 오늘 지난날을 돌아보며, 인생의 절반은 성공 한것 같다. 물질적이 아닌 마음으로, 우리를 많이 생각 해 주는 자식들, 아이들이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은 어렵게 살아온 지난 세월에 대하여 많은 위로를 받게 한다. 이제 인생을 정리하며 살아야 할 입장에서 모든것 감사 하면서 살아가리라.
지금까지 오랜동안 남편과 함께 같이 살게 해주신것 감사 드리고, 아이들 건강하게 해주신것 감사 드리고, 똑똑한 손주들 주신것 감사 드리고, 내가 마지막 사는 그 날까지, 감사의 기도를 하며 살것이다. 이런일 저런일 생각하니 참 인생은 잠간 인것을,,,,,,
이제 앞으로 10년? 아니면 20년? 남은 세월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욕심도 버리고 사심도 버리고 감사 하면서 남은 삶을 마무리 해야지!
오늘의 시간은 또 내일의 시간으로 연결 될것이디. 희망의 내일로….
서울 Marriott Hotel에서.
후기: 이곳에 설명된 말은 현지 가이드가 말해 준것을 받아 기록한 것이므로, 혹 잘못 써 진것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양해 하여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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