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뮤지엄에서 열리는 헬로 미켈란젤로전
헬로 미켈란젤로전을 관람했습니다. '헬로 미켈란젤로전'이 '헬로 뮤지엄'에서 열리니 헷갈리네요. '헬로'는 전시장의 이름인가, 전시의 컨셉인가? 전시장이 능동 어린이대공원 안에 있는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옆에 있습니다. 육영재단의 이름을 대하니 또 궁금해집니다. 이 재단의 주인은 누구인가, 그리고 누구의 것이 될 것인가?
미술전시장에 장성한! 자식들과 함께 왔습니다. 두 세대가 함께 미술관을 찾는 건 아이들이 어릴 때나 가능하기 쉬운데 말입니다. 감회가 새롭습니다. 이제 <헬로 미켈란젤로> 관람을 시작하겠습니다.
도슨트 설명을 들으면서 관람하는 것도 좋은데 시간이 맞지 않습니다. 도슨트의 도움은 오전 11시, 오후 3시, 오후 7시에 맞춰야 받을 수 있습니다.
전시 컨셉은 공간을 8개 섹션으로 나누고 섹션별로 테마를 부여했습니다. 위 우측 사진이 첫 번째 섹션 안내문입니다. 관람 초반부는 작품 반, 텍스트 반입니다. 어떤 작가의 전시 작품을 자신의 지식과 감성을 총동원해서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작가 관련 스토리와 관련 잠언들을 대하는 것도 좋네요.
딸이 이 문구 앞에서 '얼음땡' 했습니다. 대학 졸업하고 취직했겠다, 남자친구 있겠다, 급하고 아쉬울 것 없다 싶었던지 딸이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듯 보였는데 자신을 비춰볼 계기가 되었나 봅니다.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고 합니다. 방황하는 한 자신의 촉발 계기를 만나기 마련입니다.
이번에는 아들의 발걸음이 멈춥니다. 아들은 격정적으로(!) 요리의 세계와 요리사들과의 관계망과 관련해서 지평을 넓혀가는 중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문구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보는 모양입니다. 예술작품은 상상력과 경험을 필요로 합니다. 텍스트가 작품처럼 전시되면 텍스트도 예술작품이 됩니다. 어떤 작가의 작품과 스토리에 어울리는 텍스트를 발견하면 색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텍스트도 예술작품 전시 형식으로 제시되니 상상력을 촉발합니다.
전시장에 오기 전 제가 알고 있는 미켈란젤로는 조각가이자 성당에 벽화나 천정화를 그린 작가입니다. 그런데 전시가 어떻게 가능할까 궁금했었습니다. 광학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빛으로 입체감을 표현하는 겁니다. 헬로 미켈란젤로전은 빛과 텍스트로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아래는 주로 빛을 통한 전시입니다.
종교가 주제인 까닭은 중세를 막 벗어나는 시기라서였겠지요. 미켈란젤로는 인체의 아름다움을 통해 신의 세계의 완전성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전시장 해설에도 있습니다만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은 물질적 형태보다는 정신적 가치를 추구합니다. 당시 인문학자들 사이에 플라톤이 유행이었다고 하네요. 플라톤과 신, 절대성을 표현하는 전범입니다. 이 전시가 광학의 힘을 빌어 버라이어티한 전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단조로움이 느껴집니다. 이는 아마 초지일관 인간의 무력함과 신의 절대성을 표현한 작품들 때문일 겁니다.
이번에는 제가 멈췄습니다. 뻔해서 심드렁한 인생을 살 것인가, 낯설어서 설레는 삶을 살 것인가 하는 물음에 직면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살아야 하겠습니다.
아들이 또 멈췄습니다. 빛이 반사되어 텍스트가 안보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가장 위험한 일은 목표를 너무 높게 잡아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너무 낮게 잡아 간단하게 도달해 버리는 것이다" 어떤 경지를 상상하면서 투지를 다지는 중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아들의 생각과 행동을 문맥으로 보면 그런 판단이 가능합니다.
아트샵입니다. 골판지 느낌의 소재로 만든 저 말은 수제품일까요? 아니면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한 작품일까요? 3D프린터로 출력한 것은 아닐텐데요. 이제 침대 뿐만 아니라 예술도 과학인 모양입니다^^
저의 미술관 탐방은 겨우 2~3년 될까말까 할 정도로 '늦배운 도둑질'입니다. 제가 50여년 평생 온몸으로 겪어본 바로는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 인증된 조건들의 갖춤 여부가 문제가 될 따름입니다. 저만 그런가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의 목적은 '선(좋은 것)의 추구'라면서 삶의 형태를 크게 세 가지, 향락적인 삶(쾌락이 행복)과 , 정치적인 삶(명예가 행복), 관조적인 삶(이성적 사유)으로 나눕니다. 그리고 관조적인 삶이 '최고의 선'이라고 합니다. 충격으로 다가와 그 대목에서 한참을 멈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 수 밖에 없었지요. 며칠 전의 경험입니다.
예술, 철학 등을 대하면서 제게도 생각이 생겼습니다. 삶에 경제적 조건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자각이 생기니 시야가 넓어집디다. 회화, 조각, 심미성이 느껴지는 주택과 조경 등에 대한 경험이 저를 변화시켰습니다. '아무 것도 기적이 아닌 것처럼' 인생을 살고있다고 느껴진다면 예술작품을 찾아다니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예술은 경계를 넘어서는 유연한 사고와 풍부한 감성적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족은 각자가 헬로 미켈란젤로전에서 자신에게 새로운 어떤 자극을 받고 약간은 먹먹해지는 느낌을 받은 것 같습니다. 아참! 헬로뮤지엄 주변에도 포켓몬들이 디글디글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