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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집 원고>
소국에서 인생을 배우다
정미자
소국이 탐스럽게 피어오른 화분 두 개를 집들이 선물로 받았다. 하나는 꽃잎이 오동통하고 찰지게 여문 진한 자줏빛 소국화분이었다. 대가 짧은 것이 빽빽하게 화분에 자리 잡고 눈을 현혹했다. 바람에 잘 흔들리지도 않고 튼실하게 잘 자란 소국이었다. 당당하게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꽃 봉우리는 소담하게 포올 부풀어 올라 물기가 터질 듯 싱그러웠다. 자줏빛 피부는 햇볕에 그을러 매끈하고 섹시했다. 누가 봐도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게 매혹적이었다.
다른 하나는 노랑 소국이었다. 대가 크고 엉성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이리 흔들 저리 흔들 온 몸을 내어 주었다. 그냥 생각 없이 이리가자 하면 이리가고 저리가자 하면 저리 가더니 결국 자신의 몸을 제대로 지탱도 못하고 바람이 조금만 세어도 쓰러졌다. 꽃 봉우리도 대 만큼이나 엉성했다. 피부도 반질거리지 않고 포실포실 탐스럽게 부풀어 올라 와 있지도 않았다. 터질듯한 싱그러움을 간직한 옆의 소국에 짓눌린 듯 색이며 피부가 영 빈약해 보였다. 소담스럽지도 탱탱하지도 않았다.
앞 마당에 놓은지 이틀째 그네들 손님들이 왁자지껄 요란하게 찾아 들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다니. 온갖 탐스런 자태를 뽐내는 자줏빛 소국에는 손님이 없었다. 하나 혹은 둘 잠시 방문했다가 바로 떠나는 것이 아닌가. 전혀 매력도 없어 보이는 노랑 소국에는 손님들이 바글 거렸다. 다음 날은 더 많은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결국 일 주일도 안돼서 꽃잎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끝까지 벌 손님들이 빈약한 집에 바글 거렸다. 초토화를 시켜 놓고도 아쉬워 계속 찾아 들었다.
자줏빛 소국은 여전히 싱싱하게 자태를 뽐내며 햋살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밤낮의 심한 기온 차에도 꿋꿋이 한 달 이상을 버티어 온 자줏빛 소국의 생명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들어 가는 순간까지도 꼿꼿이 머리를 들고 탐스런 피부를 잃어가는 순간까지도 몸매를 흩트리지 않는 자태는 가히 본받을 만 했다.
하지만 노랑 소국은 마지막 손님까지 힘에 겨웁게 대접하더니 금세 시들시들해졌다. 그나마 조금 곱던 피부도 쭈글쭈글 시들어 앙상한 뼈대만 남았다. 벌들도 더 이상 찾아들지 않았고 앙상한 대만 남은 화분은 몇 번의 바람에 화분마저 쓰러져 버렸다. 마침내 다른 구석으로 밀려나는 신세가 되었다.
자줏빛 소국도 시들어 갔다. 두 개의 화분의 잎이 모두 지고 지저분해져서 대를 자르고 뿌리를 땅에 묻었다. 살려면 살고 죽으려면 죽을 테지 라는 마음으로 흙으로 생각 없이 대충 덮어두었다.
다음 해 3월 햇볕 좋은날, 세상에 소국을 묻어 둔 자리에 파릇파릇한 순이 올라 와 있었다. 지난 겨울은 또 얼마나 추웠던가. 춘천에 이사 오고 20년만의 가장 혹독한 추위였다고 했다. 또 삼한 사온의 기본 룰을 깨고 며칠을 연달아 계속 추웠다. 올해는 어린 나무도 대부분 얼어 죽어서 가격이 많이 오른다고 할 정도로 추위가 혹독했다.
그런데 그 귀여운 것이 방긋 나 보란 듯 고개를 내밀었다. 과연 어느 소국이 그 생명을 이어가려고 혹독한 겨울을 견뎌 낸 것일까? 자줏 소국일까 노랑 소국일까? 궁금해서 매일 꽃봉오리만 올라오길 기다렸다. 노랑 소국이면 그대로 한편의 인생 드라마를 보게 될것이고 자줏 소국이면 또 그대로 또 다른 인생살이를 보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어느 꽃이든 제 2막의 인생 드라마가 한 편 나올 것 같았다.
마침내 꽃 봉오리가 살짝 터졌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소국의 너무나 다른 삶을 보며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추구하고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두 소국의 삶 중 어느 것이 더 갚진 것인지 가름 할 수 없다. 그럼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벌들이 왁자지껄 찾아오는 노란 소국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찾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혼자 외롭지만 꿋꿋이 자신의 미모를 사랑하며 나름 멋지게 살아가는 나르시스 같은 자줏빛 소국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자줏빛 소국은 더 오래 자신을 지키며 고고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우리를 즐겁게 했다. 어쩌면 요즘 시대에 잘 어울리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벌들이 찾아 주지 않아도 좋았다. 자신의 탐스러운 피부와 자태를 유지 할 수 있다면.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 주지 않아도 상관 없었다. 자신이 오래 우아하고 고고함을 유지 할 수 있다면.
아마도 노란 소국은 맛있는 젖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벌들은 수차례 방문했고 친구들까지 대동해서 노란 소국의 젖을 말려 놓았다. 노란 소국은 아낌없이 자신을 다 내어 주었고 소멸했지만 벌들은 그 젖을 먹고 날개를 더 힘차게 파드득 거리고 세상을 유유했으리라. 또 다른 생명을 키우기 위해 부지런히 젖을 날랐으리라. 노란 소국이 마지막 한 방울의 젖이라도 더 벌들에게 주기위해 얼마나 힘들게 버티고 있었는지, 아니면 몇 순간이라도 더 견디며 살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었는지 벌들은 모를 것이다. 노란 소국의 삶은 우리네 어머니들의 삶을 닮아 있었다.
한 덩어리였던 화분의 노란 소국은 밭 한 귀퉁이를 전부 노랗게 물들일 정도로 많이 퍼져 나갔다.
문학저널 2017년 9월호 수필 신인상 등단
2018년 ~2020년 7월 현재: 춘천문인협회 차장
춘천 여성 문학회 회원
<번역원고>
인간의 능력
정미자
전철역 안에서 할머니 한분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무엇을 실었는지 짐이 잔뜩 들어가 있는 카터를 앞에 두고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이쿠 저렇게 연세가 드셨는데 무슨 짐을 저렇게 많이 가지고 다니시나.’
정철의 ‘늙은 것도 서러운데 짐까지 웬 말이요’ 라는 시가 생각이 났다. 안타까운 마음에 계속 눈길이 갔다.
그것도 잠시 그 할머니가 일어났을 때 나는 기겁을 했다. 할머니의 허리가 반으로 접혀져 있는 것이다. 앉아 있을 때는 몰랐던 할머니의 몸이 일어서서 걸을 때는 허리를 펴지 못했다. 나도 모르게 입을 막고 신음소리가 밖으로 새어나오지 못하게 했다. 할머니는 나의 놀란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픈 기색도 없이 씩씩하게 카터를 밀면서 걸어갔다.
아인슈타인에 의하면 인간은 1%의 능력만 발휘한다고 한다. 나머지 99%는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일까?
얼마 전에 루시라는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는 우리 인간의 숨어 있는 99%의 능력을 극대화 시켰을 때 어떤 가공할 만한 힘을 발휘 할 수 있는 지에 대한 공상과학 영화였다.
불이 나면 엄마는 피아노가 아이인줄 알고 들고 뛴다는 말이 있다. 이 또한 인간능력의 한계가 무한함을 보여 준다.
때로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의 편향된 엄청난 능력을 접하곤 한다. 이런 능력 또한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숨은 99%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의 능력은 절대로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종종 극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한 삶을 종종 엿 볼 수 있다. 그들의 노력은 수백, 수만 번의 반복을 통해 만들어내는 기적이지 그냥 얻어 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익히 많이 들어 알고 있고 한국도 방문했던, 오체 불만족의 저자 오토다케 히로타다, 팔다리 없는 소년 레슬러 토르소맨, 손가락 두 개로 손가락 10개로도 치기 힘든 피아노 건반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소녀, 그 외에도 인간의 능력의 한계가 어디까지 일까 궁금하게 만드는 참으로 경이로운 삶은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들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힘든 시간을 겪은 대단한 영웅들이다.
일본의 한 여성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젊은 여성인데 손과 다리가 없었다. 하지만 입과 머리를 이용해 옷을 너무 잘 입어서 리포터가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옷을 잘 입어요?”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옷을 입을 수 있게 연습하는데 4년이 걸렸어요.”
가슴이 먹먹해 지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언제 배웠는지도 모르게 서너 살 때부터 옷을 쉽게 입기 시작했을 일을 그녀는 사년을 피나는 노력으로 얻어낸 것이다.
하루하루 바쁘게 사느라 때로는 운동할 시간도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시간에 쫓기며 사는 우리들의 시간과 그녀의 시간은 확실히 다르다. 우리는 시간이 빠르다고 투덜거리며 허겁지겁 따라가며 살지만 그녀의 인생은 시간이 뒤에 느릿느릿 따라 온다. 그녀에게는 시간의 개념이 아예 사라진 것이다. 그녀에게 시간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늘을 산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개개인의 삶을 특히 몸이 불편한 사람들의 처절한 삶을 돌아보면 인간능력의 한계는 경계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한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죽으라고 애쓰는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보상이다.
신은 인간이 견딜 만큼만 고통을 준다는 말이 있다. 나는 아니라고 하고 싶다. 인간은 어떤 고통도 견뎌 내는, 견뎌 내려고 하는 엄청난 영물이다. 신이 견딜 만큼의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대단한 인간이 견뎌가는 것이다. 죽을힘을 다해서…….
그런 인간이 신보다 더 존경스럽다.
Human Ability
Jeong, Mija
There was an old woman sitting on the bench in the subway station. She looked like she was waiting for the subway train. She had a cart filled with junk.
‘Why does she bring the cart filled with junk? She looks so old.’
I kept watching her with a pity. She reminded me of a poem written by Jeongchul, a man of old.
‘It is sad to get older, but it is much sadder to be an old man who even has a burden on his back.’
A few minutes later, I was so surprised to see her stand up. Her waist was folded. She couldn’t stand up straightly. I couldn’t recognize her condition when she sat down on the bench. I tried to keep my mouth from moaning. She walked away gallantly from me, leaning on the cart. She seemed to sneer at me.
Einstein said that most people live with only 1% of their ability. Where is the rest of it, 99%?
Once I watched a movie named Lucy. It was a science fiction, which showed the most extreme power a human being can get when the 99% of human ability is evoked and maximized.
It is said that when there is fire, if a mother thinks the piano is her baby, she can hold the piano and run out of the fire. It shows that human ability doesn’t have limitation.
Sometimes, we have heard that some autistic patients have special ability. It may be one of the abilities of 99%.
But most of great ability is not the one that we, normal people, can get easily. We often find people who have extreme jobs or enjoy extreme sports. and also find the handicapped who have extreme ability. They have different lives beyond our imagination. Their ability is achieved by repeating practice a few thousands of times, or a few millions of times. Then they can make it miracle.
There are many people who live with extreme ability around us. You have ever heard about Ototake Hirotada who wrote a book called 'No One's Perfect', Dustin Carter who is known as Torsorman, Korean girl, Hee Ah Lee, who can play the piano very well with four fingers, and other many handicapped people. They are heros and heroins who bore their hard time.
I watched a documentary about a Japanese woman on TV. She doesn’t have arms and legs. She, however, could wear her clothes well with her lips and head.
“How can you wear your clothes easily?” asked the reporter.
“I had to spend four years to wear my shirt easily.” she said with a big smile.
I was very impressed by her reply. I have never thought about how easily I can wear my clothes, and I didn’t spend as much time as she did to wear clothes. She might practice and practice a few thousands of times for four years.
We sometimes say that we are so busy doing something that we can’t have time to exercise and to have meals on time.
Our time value is definitely different from hers. We complain time goes by so fast and we follow the time in a hurry with difficulty, but her time follows her slowly. She doesn’t have times anymore. Time is not important to her. Important thing to her is just living today.
When we consider special people’s lives, especially the handicapped’s, a human being’s ability seems not to have limitation. But it is not easy to go beyond the limitation. Only the people who struggle to death deserve the great prize.
It is said that God gives us just tolerable degree of pain.
“Definitely No!” I cry.
Human beings try to endure any pain, and keep trying to endure it with a struggle to the death to the end. We, human beings, are mystical great creatures. These creatures deserve more admiration than God.
약력
문학저널 2017년 9월호 수필 신인상 등단
2018년 ~2020년 7월 현재: 춘천문인협회 차장
춘천 여성 문학회 회원
<신입회원 특집 원고>
옥황상제의 딸 /정미자
“아이쿠, 고생이 많으셨네요.”
점쟁이는 내가 미처 앉을 새도 없이 다짜고짜 큰소리로 말을 했다.
“네?”
“아이가 둘이시고, 두 아이 모두 제대로 못 낳았지요. 절대로 제대로 낳지 못하지요. 젖도 한 번 못 물려 보았을 텐데요!”
나는 아이 둘을 제왕 절개로 낳았다. 물론 아이들에게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애정표현인, 내 가슴을 마음껏 가지고 놀라고 내어 주지도 못했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엄마를 향해 눈을 흘기며 입을 실룩거렸다.
“나 아무 말 안했다.” 엄마는 단호한 어조로 나의 눈 흘김을 막아냈다.
완벽한 신상 털리기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대는 옥황상제의 딸이었답니다. 무슨 큰 죄를 저질렀나 봅니다. 살기가 녹녹치는 않았겠네요. 남편사주를 좀 주시지요.”
나는 점쟁이의 말을 믿어야하는지, 그 상황에 웃어야 하는지,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남편 때문에 팔자가 많이 수그러졌네요. 지금도 옥황상제 따님 앞에 큰 집채만한 바위가 앉아 있어요. 굿을 한 번 해 보실라우?”
그때부터였다. 내 마음에 옥황상제의 딸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지기 시작한 때가. 처음에는 별 의미 없는 웃기는 말이려니 했지만 세월이 갈수록 선명하게 각인되어 이명처럼 들려오기 시작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마다 옥황상제의 딸이라는 주홍글씨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믿고 싶었다. 설사 그것이 점쟁이의 말도 안 되는 상술적인 멘트라 하더라도 그냥 믿고 싶었다. 그래야 내가 겪었던 모든 일들이 설명이 되었고, 이해할 수 있었고, 보상 받는 기분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 쫓겨난 것이었어. 의젓한 딸이 되어 돌아오라는 사랑의 매였을 거야.’
나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하늘을 향해 애정의 화살을 쏘아 올리며 울먹거리기도 했다.
내 이름은 미자, 흔한 이름처럼 정말 평범한 여자로 잘 지내고 있었다. 남들보다 열정이 좀 과하다는 말을 듣곤 하지만 이것을 부러워하는 이들도 있으니 그리 나쁜 것도 아니다. 나는 내가 살아온 삶이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단지 운이 조금 부족했을 뿐이고, 그런 운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별로 생각 없이 살았다.
그런데 가만히 과거를 돌이켜 보면, 사실 내가 그리 평범한 삶을 살아 온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태어나는 날부터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왔다. 밤 11시 넘어서 태어났는데 그 때는 밤 11시 되면 소등이 되었기 때문에 산파가 집에서 촛불을 켜 놓고 나를 받았다고 했다. 때는 섣달 초하루, 밤이 긴 때이라 해가 늦게 떴다. 새벽 아닌 새벽에 일어나 산파는 나의 상태에 기겁을 했고, 나를 이불 채로 들쳐 메고 아버지의 트럭에 태워 30분 걸려 병원 문을 두들겨야 했다. 산파가 탯줄을 꽉 묶지 않아서 탯줄 사이로 밤새 피를 흘려서 이불에 붉은 피가 흥건했고 나는 울지도 않았다고 한다.
사실 엄마는 나를 임신했을 때부터 고난을 겪기 시작했다. 입덧이 너무 심해서 소파 수술을 결심했었다. 이미 아이가 세 명이나 있었고, 한 명쯤 잃어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수술대 위에 누워있을 때 수술 도구들이 양철통에 놓이는 쇳소리가 천둥이 울리는 것처럼 들렸다고 했다. 어머니는 수술대 위에서 벌떡 일어나 병원을 뛰쳐나왔으며 나는 그 때 첫 번째 죽을 고비를 넘겼다. 엄마는 심한 입덧에 10개월 내내 거의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누워 있어야만 했다. 이 불효를 하고도 모자라 태어나는 순간까지 부모님을 힘들게 한 것이다.
의사는 갓 태어난 나를 우여곡절 끝에 살렸고 나는 두 번째 죽을 고비를 넘겼다.
부모님이 부자도 아니고 오빠 두 명, 언니 한 명, 동생, 이렇게 다섯 명 중에 제일 눈에 띄지 않고, 관심 받기도 어려운 넷째로 나는 태어났다. 관심을 받고 싶어서 그랬는지 어린 시절 내내 남들 하는 작은 병치레는 다 겪었다. 툭하면 열이 올라 호랑이 나온다, 여우 나온다, 등 이상한 헛소리를 하는 바람에 부모님은 밤을 새우기를 셀 수도 없이 했다. 나의 아버지는 다른 자식들 키운 일은 생각이 나지 않는데 나를 업고 밤새웠던 일은 기억할 정도이니 어지간히도 부모님을 괴롭혔던 게다.
어릴 때 나는 좀 예뻤는지 미스코리아 나가도 되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말을 듣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그런 말을 자주 들으면 팔자가 세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것이다. 항상 병을 달고 사는 아이라 그런지 엄마는 집에서 굿도 했었다. 부모님은 나만 생일을 양력으로 호적에 올렸다. 여자에게 섣달 초하루는 팔자가 세다는 이야기를 철석같이 믿고 어떻게 해서든 나쁜 운이 조금이라도 한눈팔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IMF가 터지기 일 년 전 즈음에 흙수저로 태어나서 부모님께 물려받은 돈 하나 없이 시작한 남편과 나는 열심히 맞벌이해서 티끌모아 모은 돈으로 집이라는 것을 처음 지어보겠다는 결심을 했다. 10가구는 원룸으로 만들어서 월세를 주고 3층에는 우리가 살기 위해 다가구주택을 짓기 시작했다. 나름 재택을 하겠다고 시작한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우리는 계약대로 돈만 잘 주면 되는 줄 알고 시공자가 달라는 대로 주었다. 그런데 시공자가 중간에 돈을 가지고 잠적해 버리는 사고가 생겼다. 시공자는 모든 자재 값을 외상으로 처리하고 도망을 가버리는 바람에 자재를 떼어가겠다, 전기를 끊겠다는 등 석 달이면 끝나는 공사가 7, 8개월이 되도록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돈은 돈대로 더 들고 남편은 두 달 휴가를 내고 건축을 마무리해야하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삶이 힘들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살아온 과거를 돌이켜보게 되었고 본인의 삶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남들이 볼 때는 승승장구해 나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를 초등학교 시절부터 알고지내는 친구는 종종 말했다.
“너처럼 나는 못 산다.”
그러면 나는 말하곤 했다.
“내 이름이 뭐지? 나라 정, 아름다울 미, 아들 자, 아니더냐. 나는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자녀라는 뜻이지. 내 이 이름을 헛되게 하지 않으리라.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자녀가 될 것이다.”
나는 너스레를 떨며 그렇게 열심히 사는 자신이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아니 인생이란 그냥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닐까라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사실 힘들다는 생각은 없었다. 항상 내 공허함을 채워줄 무엇인가를 찾고 추구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지칠 줄 몰랐다. 힘들다는 것은 아직 극복해야 할 멋진 대상이 있다는 것이고, 생명이 있는 한 누구나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 어떤 책에서 읽은 ‘삶이 곧 종교다’ 라는 말을 어떤 종교보다도 더 강하게 인정하며 살아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무엇을 해도 할 수 있는 강건한 육체와 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였다. 하늘을 향에 빳빳이 쳐들었던 날개에 힘이 빠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 때가.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친정엄마가 함께 점을 보러가자는 제의를 했다. 나는 지칠 때로 지친 심신을 이끌고 친정엄마에게 끌려서 용하다는 소문이 자자한 점쟁이의 집을 찾게 된 것이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시도했을 때 쉽게 해결되었던 일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살아온 과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왔으며, 나의 삶에 구멍 나고 해진 옷처럼 너덜거리는 순간들이 꽤 많았다는 것에 새삼 소스라치게 놀랐다.
‘네 인생이 참 고달팠구나. 어떻게 그런 일들을 견디고 살았니? 전신마취 수술 6번에 부분마취 6번! 남들은 한 번도 올라가 보지 않았다는 수술대를 12번이나 올라가다니……. 거기다 귀까지 한 쪽은 배냇병신으로 들리지 않고, 눈도 한 쪽은 거의 장님 수준이니, 참 네 인생도 짜안하다.’
내 기억에 가만히 도사리고 있던 것들이, 참고 억눌러 놓았던 내 힘들었던 시절의 자아들이, 나도! 나도! 나도! 하며 자기를 좀 알아 달라고, 위로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내 가슴을 헤집어 놓기 시작했다.
나는 나를 위로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옥황상제 딸이어야 했다.
또 다시 하루는 시작되고, 하루를 견디고 살기 위해 생각이란 것을 할 틈도 없이 내 앞에 닥친 일부터 해 내느라 바쁘게 나날을 보냈다. 다행히 옥황상제님은 내가 미웠는지는 모르나 손자들은 예뻤는지 잘 지켜주고 좋은 몫을 지어 주었다. 멋지게 성인의 문턱도 넘었고, 나름 자기분야에서 잘 나가고 있어서 나의 모든 힘들었던 삶이 몇 곱으로 보상이 된 듯하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종종 말하기도 한다.
“너희들은 옥황상제 손자, 손녀야. 걱정 말아. 하는 일 마다 잘 될 거야.”
아이들은 나의 이런 농담도 잘 받아 넘긴다.
“야호, 나는 옥황상제 손자다!”
“이힛!!! 나는 옥황상제 손녀다!”
나는 오늘도 내일도 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저 열심히 지금을 살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뜨거운 가슴으로 하늘을 향해 외쳐 본다.
‘나는 옥황상제 딸이어야 해!’
밥벌이, 맞벌이 / 정미자
그는 직장을 30년 만에 그만 두었다. 매출이 줄어들자 30년 몸 바친 개인 회사에서 무 잘리듯 단칼에 잘려 나왔다.
그는 요즘 집에서 논다. 3,4개월 실컷 놀다가 돈 벌 궁리를 해 보겠다고 요즘 백수를 즐기고 있다. 6개월 동안은 직장을 다니지 않아도 나라에서 돈이 나오기 때문에 느긋하다. 나이 60을 바라보긴 하지만 본인은 아직 젊고, 젊은 것들보다도 훨씬 다부진 건강을 지녔다고 자부한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직업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여긴다.
그가 집에서 놀기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아직도 그는 가부장적 가장의 위엄을 잘 지키고 있다. 그는 집에서 놀아도 청소를 하지 않는다. 앞베란다에 빈 박스가 쌓여도 정리해서 버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본인이 먹은 라면 그릇도 설거지해 놓지 않는다.
사실 이 집안 식구들 모두 청소를 잘 하지 않는다. 손님이 올 일이 부득이하게 생기면 그때야 조금 치운다. 그래서 손님이 오는 것을 극구 싫어한다.
그 집에는 곧 시집가도 될 25, 27살 두 딸이 있다. 그 아이들 방에도 책상 위, 침대 모서리, 의자에 옷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침대 밑에는 덩어리진 먼지들이 이리쿵저리쿵 공놀이를 한다. 현관 입구는 신발들이 너부러져있고 짝 맞추어 나란히 서 있는 것들이 없다. 식구들이 들어올 때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이리저리 치다보면 신발들은 짝들과 헤어져서 엎어지거나, 겹쳐지거나 여기저기 나뒹굴어져 있기도 한다.
싱크대에는 설거지 그릇이 항상 쌓여 있다. 그 집 거실에는 긴 빨랫줄이 거실창문 커튼고리에서 부엌 모서리 시계 걸이에까지 조금 높게 걸려 있다. 이제는 빨래를 개는 일도 없다. 365일 빨래가 거실을 가로질러 널려있다. 거실을 지나다닐 때 키 큰 그는 빨래를 이리저리 헤치며 다닌다.
화장실! 노란 물때가 바닥을 뒤엎고 세면대 아래와 변기 모서리는 곰팡이가 진을 치고 있다. 세면대 위는 그가 면도할 때 생긴 검은 수염파편들이 노란 물때와 석여 굳어 있어서 마치 최신형 타일 같다. 화장실 신발은 발을 씻을 때마다 누런 물때 찌꺼기가 씻겨 나온다.
그 집은 식탁도 닦을 필요가 없다. 식탁 위에 횟집에서 사용하는 얇은 비닐이 두껍게 자리 잡고 있다. 매일 한 꺼풀씩 벗기기만 하면 된다.
그가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신혼 초에는 혼자 벌어도 집에 오면 청소를 도와주기도 했었다. 두 딸이 생겼을 때도 하루 종일 아이들 보느라 힘들어하는 부인을 위해 빨래도 게고, 설거지도 하고 옷 갈아입을 새도 없이 바로 청소기 들고 집안을 치우기도 했다. 그런 그가 어느 시점부터인가 바뀌기 시작하면서 청소의 가출을 묵인하게 되었다. 게으름은 절대로 아니다. 본인을 치장하는데 거의 1시간을 투자하니까…….
그녀가 직장을 다닌 지가 약 15년 정도 되어가고 있다. 결혼하면서 그만둔 직장을 40에 다시 다니기 시작 한 것이다. 남편과 비슷한 금액의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생각했다. ‘나도 똑 같이 돈을 버는데 왜 나만! 똑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똑 같은 시간에 퇴근하는데 남편은 tv 보고 소파에 누워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옷 도 벗지 못하고 빨래를 하고 빨래를 개고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직장 다니기 전에 했던 모든 일들을 똑 같이 하고 있는 거지?’
“여보 청소 좀 해.”
“아, 피곤해!“
“우리 똑 같이 피곤해. 자기만 돈 벌어? 나도 벌거든.”
“그럼 자기도 하지 마. 그러면 되겠네.”
“그럼 굶을래?”
“오늘은 배달시키자.”
그녀는 남편의 반응에 어이가 없고 화가 났지만 본인도 피곤하던 터라 잘됐다 싶어서 그날 저녁은 시켜 먹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것이 어쩌면 시발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집은 외식을 잘한다. 음식을 배달시켜 먹기도 잘한다.
그녀도 처음에는 아주 깔끔하고 꿈이 많은 새댁이었다. 집안도 예쁘게 꾸미고 싶어서 옷감 구경하려고 동대문도 다니고 손으로 직접 부엌 커튼을 만들기도 했다. 돈 버느라 힘든 남편을 위해 집안과 화장실을 반질바질 닦고 맛있는 반찬도 이것저것 매일 바꿔가면서 챙기느라 놀아도 바쁜 하루를 보람차게 보냈다. 아이 둘이 생기면서 조금씩 힘들어졌지만 남편이 혼자 돈을 벌어 온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힘들 텐데 집안일까지 도와주는 것이 너무 고마워서 더 열심히 쓸고 닦으며 시간을 보내도 힘들지 않았다.
아이들이 크면서 돈이 들어 갈 때는 많은데 개인회사 다니는 남편의 월급으로는 제대로 된 학원도 보내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돈을 벌기로 작정하고 상고출신인 장기를 살려서 경리학원을 다니고 자격증을 따고 취직을 했다. 월급이 남편과 비슷해졌다. 불만이 그녀의 마음에 싹트기 시작했다. 남편이 조금만 도와주어도 고마워했던 일들이 더 이상 그녀의 성에 차지 않았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 부부의 싸움이 잦아진 것이다. ‘안 해? 어디 한 번 두고 보자. 나도 안 해!’ 라는 심산으로 시작한 무언의 항의가 바로 청소부재로 이어졌고, 습관이 되고 눈에 익숙하게 되고 마침내 별로 불편하지 않게 된 것이다. 집안 구석구석이 본인이 보기에도 조금 버거워 졌는지 집에 대한 애착이 조금씩 사그라지고 때때로 불현 듯 이사를 고려해 보기도 한다.
깨진 유리창 법칙이 가정일 에도 해당됨을 보여준다. 정말 사소한 배려와 노력이 10배, 아니 100배의 효과를 낳거나 아니면 사소한 신경전이 그 만큼의 나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맞벌이는 이제 결혼 조건의 일 순위가 되었다. 하지만 맞벌이는 용납하지만 집안일에 대한 남녀 차별 의식은 아직 기지개만 펴고 있다. 나는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살기가 빠듯해진 현실에서 집안일을 나누어서 한다는 것이 당연한 일임을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자식에게 가르치고 있다. 아들에게는 요리를 배우라고, 요즘은 남자가 요리하는 것이 흉이 아니라고, 집안 일 하는 것이 얼마나 소소한 행복을 가져다주는지에 대해 종종 말하고 있다.
오래전 방송 매체에서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는 아버지와,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는 아버지의 자녀들의 행복지수, 학업능력, 자기 주도적 삶의 능력에 대해 조사한 내용을 본적이 있다.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는 아버지의 자녀들이 훨씬 높은 것으로 나왔다.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남편이 집안일 잘 해 주면 부인이 좋아할 것이고 서로 싸울 일보다 감사한 일이 많아질 것이고, 자녀와 함께할 시간도 많아질 것이다. 사실 집안일이 사소한 것 같아도 힘쓰는 일이 의외로 많다. 청소를 해도 금방 다시 어지럽혀지고 표도 안 난다.
이것은 마치 항아리와 계속 틀어놓은 수도꼭지와 같다. 수도꼭지를 너무 많이 틀어 놓지 말아야 하지만 넘쳐 흘러 내리는 항아리의 물은 보는 사람이 먼저 닦는 것이, 함께 닦는 것이 집안을 물바다로, 쓰레기 바다로 만들지 않는 방법이다. 이 단순한 진리를 외면하고 그와 그녀는 마침내 손을 놓아 버린 것이다. 다시 둘은 싸운다.
“이사하자.”
“이사해도 곧 똑 같아질걸!”
그래도 함께 집안 치우기를 노력해 보자고 하지 않는다. 밥벌이, 맞벌이는 두 사람의 서로를 위한 사소한 배려가 있어야 윤택함과 행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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