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여름호를 펴내면서
지구 해열제 이서빈 한겨울인데 열 펄펄 끓이며 춥다고 몸서리치는 지구
어디 지구 해열제 만들어 낼 제약회사 없을까? 필사적 몸부림으로 지구가 낳은 식물 당뇨 혈압 고지혈 진폐증 골다공증 동맥경화 오염에 헤아릴 수 없는 고질병에 시달린다 세상 오염 편집하는 전문가 없을까? 몇십 년 전 오염 참다 못한 배추머리개그맨 ‘지구를 떠나거라’ 외치자 인간은 인공위성 쏘아 올리며 ‘지구를 떠나거라’ 웃지 못할 개그 하면서 웃고 있다 오염에 찌든 별들 햇살 좋은 날 강물에 뛰어내려 몸 씻자 반쯤 남은 낮달 시든 목소리 물도 다, 다, 다, 썩, 썩, 썩, ‘었다’는 말 입속에 두고 스르르, 숨 감는다 죽은 지구에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인간은 지구가 죽으면 자신이 죽는다는 걸 모른다 환풍기는 쉬지 않고 매연을 돌리고 지구는 해열제 한 알 구하지 못해 끙끙 앓고 하늘은 유령처럼 검은 눈물 흘리고 있다 ----이서빈 외 ‘남과 다른 시쓰기’ 동인집, {덜컥, 서늘해지다}에서 이 세상에서 ‘만물의 영장’이라는 동물처럼 어리석은 동물도 없을 것이다. 우리 인간들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에서처럼 ‘사유하는 인간’에 그 존재의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도 ‘만물의 영장’이라는 맹신에 사로잡혀서 그 미치광이들의 삶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자연은 만물의 터전이고, 우리 인간들은 자연의 품을 떠나서 결코 살아갈 수가 없다. 이 자명한 이치, 즉, 이 자연의 법칙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만물을 지배하고 자연을 정복하겠다는 우리 인간들의 탐욕이 ‘인문주의’라는 종교를 낳았고, 이 인문주의의 종교는 우리 인간들의 영생불사의 꿈을 위하여 만물의 터전인 자연을 정복하기에 여념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전자 공학과 생명공학은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은 물론,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켰지만, 그러나 그것이 모든 국가를 요양원과 요양병원의 천국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은 결코 강조하지 못한다. 컴퓨터 산업과 디지털 혁명은 로봇인간과 인간보다도 더 뛰어난 인공지능을 만들었지만, 그러나 그것이 곧바로 인간의 죽음과 역사의 종말에 이르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은 결코 강조하지 않는다. 인문주의는 탐욕에 기초해 있고, 이 탐욕은 광신에 기초해 있으며, 이제는 막가파식의 한탕주의로 돈밖에 모르는 인간들을 출현시키게 되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외쳐도 아무런 소용이 없고, 공자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외쳐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노자가 ‘무위자연’을 외치며 물소를 타고 사라져 가도 아무런 소용이 없고, 스토아 학파와 장 자크 루소가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쳐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현대 사회의 근본 토대는 탐욕이며, 더 많이, 더 빨리,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그 모든 전쟁과 반란과 혁명과 자연의 파괴와 대량학살마저도 다 저지르고 본다. 탐욕은 불이고 불꽃이고, 오늘도 이 탐욕이 ‘경제의 탈’을 쓰고 활활활, 타오른다. 돈은 태양이고 달이며, 돈은 우주 전체이며, 우리 인간들의 탐욕의 원동력이다. 돈으로 해가 뜨고 돈으로 해가 진다. 돈으로 초신성들이 태어나고, 돈으로 대폭발이 일어나며, 돈으로 수많은 생명체들이 죽어간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랑과 평화와 행복과, 그리고 그 반대방향에서, 이 세상의 모든 전쟁과 불화와 불행마저도 돈이 다 주재한다. 이서빈 시인의 [지구 해열제]는 자연을 만물의 터전으로 되돌리려는 생태환경의 시이며, 제정신을 갖고 ‘지구 해열제’를 생산해내려는 인문주의의 산물이라고 할 수가 있다. “한겨울인데 열 펄펄 끓이며/ 춥다고 몸서리치는 지구”를 보면서 “어디 지구 해열제 만들어 낼 제약회사 없을까”라는 시구는 만물의 영장이 아닌, 우리 인간의 자기 반성과 성찰에 맞닿아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죽은 지구에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인간은/ 지구가 죽으면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모른다는 것---, 이 무식함, 아니, 이 무식함을 가장한 교활함 때문에, 지구는 더욱더 병들고 있는데, 왜냐하면 “몇십 년 전 오염 참다 못한 배추머리개그맨이/ ‘지구를 떠나거라’ 외치자” 이제는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며 ‘지구를 떠나거라’”라고, “웃지 못할 개그”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의 배추머리개그맨의 ‘지구를 떠나거라’는 생태환경 오염의 주범들을 향한 최후의 심판과도 같은 말이지만, 후자의 자본가들의 ‘지구를 떠나거라’는 막가파식의 한탕주의로 지구를 오염시켜 놓고, 우주 식민지로 도망을 가려는 모습과도 같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구가 죽으면 모든 생명체들도 다 죽고, 인간도 죽는다.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며 우주 식민지를 개척하고 싶어하지만, 이 우주 어느 곳에서도 돈을 위해 살고 죽으며, 돈을 위해 그토록 무자비하고 철두철미하게 모든 에너지를 다 불태우는 돈의 노예들을 용서해줄 별들은 없을 것이다. 한 겨울인데도 열이 펄펄 끓어오르며 춥다고 몸서리 치는 지구, “당뇨 혈압 고지혈 진폐증 골다공증 동맥경화” 등, 온갖 오염에 시달리는 식물들, 이제는 모든 별들마저도 오염에 찌들었고, “햇살 좋은 날” “반쯤 남은 낮달도 시든 목소리”로 ‘물도 다 썩었다’고 숨을 끊는다. 모든 환풍기, 모든 바람마저도 대기오염의 매연을 확산시키고, “지구는 해열제 한 알 구하지 못해” 끙끙 앓으며 죽어간다. 하늘은 유령처럼 검은 눈물을 흘리고, 모든 별들과 우주 전체가 다 사라진다. 이서빈 시인의 [지구 해열제]는 생태환경시의 진수이며, 온몸으로, 온몸으로 이 지구촌을 살리려는 열정으로 가득차 있는 시라고 할 수가 있다. 시는 열정이고, 이 열정으로 가득찬 시인은 자기 자신을 불살라 이 지구촌을 살려낼 ‘지구 해열제’를 생산해낸다. 이서빈 시인의 언어에는 대자연의 푸르름과 모든 생명체들이 다같이 뛰어놀며 평화롭게 살아가던 옛 추억이 묻어 있다. 그의 언어는 모든 생명체들의 씨앗과도 같으며, 그의 언어들에 의해서 모든 인간들의 탐욕을 제거하고 지구촌을 되살릴 수 있는 ‘지구 해열제’가 탄생하게 될 것이다. 이서빈 시인의 언어는 티없이 맑고 깨끗하며, 제일급의 정신에 걸맞게 푸르고 푸른 지구촌의 꿈과 희망이 자라나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이서빈 시인이 온몸으로, 온몸으로 이끌고 있는 ‘남과 다른 시쓰기 동인’과 그 동인들의 생태환경 시집 {함께, 울컥}, {길이의 슬픔}, {덜컥, 서늘해지다}가 바로 그것을 증명해준다. (완성분) ‘기획특집: 논쟁문화의 장’은 아흔 여섯 번째로 애지문학회 편과 반경환의 명시감상을 내보낸다. 애지문학회 제18집 {멸치, 고래를 꿈꾸다}에서 이원형 외 14명의 시를 선했고, 반경환 명시감상은 애지문학회 회원들인 박용숙, 최병근, 임덕기, 최윤경, 김선옥, 정해영, 이선희 등의 7명의 시에 대한 평을 실었다. 박용숙 외, {멸치, 고래를 꿈꾸다}는 애지문학회 제18집이며, 전국의 47명의 회원들이 참여해 주었고, 그 시적 수준이 아주 높고 뛰어나다고 할 수가 있다. 이번 호의 ‘애지의 초대석’에는 한이나 시인과 송영숙 시인을 초대했다. 한이나 시인의 시 [청호반새 저 꽃잎]과 황치복의 작품론 [절제의 미학과 구도의 시학], 그리고 송영숙 시인의 [남자들이여 출산하라]와 반경환의 작품론 [지옥은 새 옷 입고 처음처럼 가는 길]을 다 함께 읽고 감상해주기를 바란다. ‘애지의 초점: 이 시인을 조명한다’에서는 글가람 시인과 사공경현 시인의 시들을 내보낸다. 글가람 시인의 신작시 [한글] 외 4편과 오홍진의 작품론 [푸르고 푸른 생명 윤리를 향한 꿈], 그리고 사공경현 시인의 [그들의 항변] 외 4편과 권온의 작품론 [운문과 산문의 조화, 거대하고 복합적인 언어]를 다 함께 읽고 감상해주기를 바란다. 본지는 이번 호에도 [눈부시게 맑은 밤 우리 거기에] 외 4편을 응모해온 하록 씨와 [이제부터 나는 북극곰을 사람이라 부르고 사람을 북극곰이라 부르겠다] 외 4편을 응모해온 솔미숙 씨를 애지신인문학상 당선자로 내보낸다. 나태주 시인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가 한국에서 75만부, 일본에서 8만부, 그리고 중국과 대만과 인도네시아와 필리핀과 태국 등까지 포함하여 85만부 정도 팔렸고,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5만부 정도 팔렸다. 최세규 시집 {꽃은 혼자 피지 않는다}, 이용우 시집 {너의 서쪽은 나의 동쪽이 된다}, 이원형 시집 {당신을 꽃을 쓰세요 나는 시를 썰 테니}, 전금란 시집 {벚꽃 칸타타로 떨어지는 봄을 본다} 등이 출간되었고, 김충경, 송영숙, 정여운, 우종숙, 강상윤 시집 등이 속속 출간 대기중에 있다. 이 어렵고 힘든 시기에 {애지} 필자 선생님들과 독자 여러분들, 그리고 애지문학회 회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아무튼 계간시전문지 {애지}와 편집진은 너무나도 분명하고 확고한 걸음으로 ‘애지의 창간 이념과 목표’에 따라 최선의 노력을 다하게 될 것이다. 비판만이 위대하고, 또 위대하다. 비판은 당신의 존재증명이다. 당신은 누구를, 무엇을 비판할 수 있는가? 애지 여름호 표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