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과 지만원이 데칼코마니?
노병은 죽지 않았다.
1983년생 노정태씨가 고대 법학과 학사와 서강대에서 철학 석사를 했다는 경력을 내걸고 나를 임종석과 동일한 선상에 놓고, 디스했다. 데칼코마니는 미술 용어로 한쪽에 그림을 그려놓고 이를 다른 종이에 덮어 복사한 복사물이라 한다. 노정태 씨는 신동아에 임종석의 영구분단 주장과 1996년 내가 저작한 [통일의 지름길은 영구분단이다]의 책 내용이 똑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씨는 내가 그린 나무에서 잎사귀 하나를 떼어내 그 글 구절이 임종석 주장과 똑같다며 나를 디스했다.
나 이전과 이후, 수준급 군사평론가 안 나와
내 책에는 이론이 있지만 임종석에는 주장만 있다. 나의 영구분단에는 두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하나는 군축이고, 다른 하나는 UN의 보장이다. 그런데 노 씨는 이 중요한 두 가지 전제 조건을 뺐다. 군축의 키워드는 합리적 충분설(Reasonable Sufficiency)이다. UN이 개입하여 군축을 단행하되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기습공격할 수 없는 수준(당시 각 10만)으로 줄이고, 이를 UN이 감시한다는 조건이었다. 노 씨는 이 중요한 부분을 빼놓은 것이다. 평론을 이렇게 함부로 하면 안된다.
군사 평론은 아무나 할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는 내가 등장했던 1990년 이전에도 내가 김대중 세력에 의해 평론 활동이 차단돼온 지금 현재까지 내가 인정할 만한 군사평론가는 없다. 지금도 없다. TV등 언론에 등장하는 군사 전문가들 중에서도 수준 있는 군사평론가를 보지 못했다. 그 어느 누구도 1991년 김영사를 통해서 펴낸 [70만 경영체 한국군 어디로 가야 하나] 급의 책을 낸 사람 없고, 내가 최근에 펴낸 [다규소설 여로]의 주요 내용인, 게릴라 전투에 대한 전술적 경험을 쓴 사람 없다.
분석력은 수학적 두뇌 훈련의 함수
지금 상태에서의 영구분단이 우리에게 해로운가, 이로운가? 지금의 체제와 영구분단 체제 두 개를 놓고 비교해 볼 때 어느 것이 유리한가?‘ ’지금‘의 뜻은 무엇인가? 지금은 남은 북한을 삼키겠다 하고 북한은 남을 삼키겠다 하는 통일 쟁취 체제다. 영구분단 체제가 더 좋으냐, 통일 쟁취 체제가 더 좋으냐? 이것이 분석의 초점이다. 사람들은 ’적대관계‘라는 걸 문제 삼는다. ’적대관계‘는 영구 분단 체제에서나 통일 쟁취 체제에 공히 존재한다. 그리고 이 세상에 적이 없는 국가는 없다. 따라서 ’적대관계‘는 비교 공간에서 제외돼야 한다.
통일에 대한 욕심을 빼면, 남침의 공포도, 북침의 공포도 없다. 지금의 국제 관계의 판도는 북침도 남침도 다 불가능하다. 이제는 남북이 전쟁하면 미국과 러시아가 자동 개입한다. 남과 북이 목장의 결투를 하는 세상이 아니라 블록과 블록 간의 전쟁이 되기 때문에 침략이라는 개념은 사라졌다. 그러면 선택은 명확하다. 남침 위협이 있는 세상이 좋은가 아니면 남침 위협이 없는 세상이 더 좋은가? 당연히 후자가 좋은 것이 아니겠는가?
북은 이미 영구분단을 선언함과 동시에 한국을 침략할 의사가 없다며 휴전선을 국경선으로 바꾸고 있다. 이런 마당에 우리만 북진 통일 정책을 추구하면 이는 북침의 야욕이 있는 것으로 평가될 것이다. 한쪽은 전쟁이 싫다는데 우리만 전쟁을 하겠다는 것이 지금 한국의 통일 정책이다. 전쟁 없는 통일, 평화 통일은 없다. 영구분단만이 현실적인 답이다. 영구분단이 긴장을 해소하고 긴장이 없어지면 그게 곧 평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