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시운 시집 <꽃잎 발자국은 푸르다> 서평
생태적 시심 혹은 영혼의 눈
이재창 (시인)
김시운 시인의 작품에서는 시인의 맑은 영혼의 눈이 담겨 있다. 봄날의 싱싱한 연초록 잎들이 한 줄 바람에 떨리는 그러한 생태적 시심, 아니면 시인의 눈에 비춰진 어린날의 추억에서 삶의 새로운 동력을 끄집어 내는 시심이다. 또한 자연과의 대화를 통해서 인간의 삶과 복잡다기한 현대문명에 대한 분명한 반기를 들고 있다.
시인들은 오래 전부터 인간의 생명과 자연의 생명력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주제로 많은 시를 생산해 왔고, 최근에는 문명비판에 대한 작품들도 하나의 주류를 이루며 문학사의 일정부분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사실 모든 예술은 생명을 보존하고 육성하는데 기여해 왔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술적 상상력과 생태학의 밀접한 연관성을 부인할 수 없다. 문학은 예술의 작은 갈래이고 그 중에서도 운문은 자아와 세계의 합일을 지향하는 속성을 지닌다. 시적 상상력은 본질적으로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화해라든가 자연에 대한 헌신적 자세 등을 기반으로 발현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그의 시작품 속에는 현대시가 추구해야 할 생태적 삶의 한 카테고리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정공량 시인의 작품 해설에 보여주듯이 자연의 섭리를 존중하는 시인의 맑은 생태적 영혼이 시편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또한 자연의 무한한 진실을 여러 가지로 밝혀내고 있다. 유소년기의 아름다운 동화적 상상력을 빌어 작품을 그려낸 것이나 자연 속에서 자연의 삶을 직시하고 그 속에 우리 인간의 삶이 어떠한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던져주고 있다.
그의 작품을 대표할 만한 시 몇 편을 살펴보면,
나무 하러간다
나무를 하러간다
낫을 갈고 갈퀴를 끼고
톱 쓸고 도끼 메고
작대기를 짚고 일어서기 전에 벌서 한 짐 돼버렸네
나무를 베고 솔잎을 긁고
나무를 켜고 나무를 찍고
아픈 줄은 아는 거냐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산토끼 발자국만 내놓은 겨울산에
나무들 울음이 산을 적신다
작은 나무들이 숨을 죽이고 밤새 내 떤다
큰 나무들 멀뚱거린다
하늘의 별들이 눈물을 흘려준다
나무 한 짐 해다가
부엌간에 싸놓고
겨울 산에서 얼어 죽은 사나이가 있을지도 몰라
눈을 헤치고 가는 갈가마귀 어쩐지
그 울음이 수상도 하다
멧돼지 마을로 내려온 산에
-「겨울산」
현대적 삶의 인간과 심신계곡의 나무들이 자라는 모습은 어쩌면 모두 다 같다. 이 작품은 나무들의 생령력을 통해 인간 생명의 고귀한 존재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서정시의 전범은 아니다. 작중 화자가 독백을 하듯이 내뱉는 언어 속에서 어린시절 땔감을 구하기 위해 들로 산으로 지게를 지고 다니던 기억에서 땔감으로 사용되어지던 나무들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상상력이 돋보이는 시다.
잔가지를 낫이나 톱으로 자르거나 도끼로 찍어서 자르는 나무들의 아픔과 비애, 그 속에서 시인은 나무에게 아픈 줄은 아느냐고 묻는다. 그렇지만 나무들의 울음이 온 산을 뒤덮고 작은 나무들도 그 모습을 보고 밤새 떠는 비유는 우리 어린시절의 삶과 흡사하다. 가장인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코흘리게 자식들이 좁은 단칸방에서 살던 모습과 흡사하다. 가장이면서도 폭력적인 옛날 아버지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어머니와 자식들을 위로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하늘의 별들만이 반짝이며 무언의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항상 불안한 삶을 살았다. 이처럼 그의 작품 속에는 “겨울 새벽 미명 푸른 별들 속으로 가난한 그림자를 싣고 내빼”(「겨울새」)는 삶의 생태적 모습이 잔잔하게 담겨 있다.
모르는 척하면 안 되겠니
새벽에 잠깐 다녀간 아침이슬
꽃잎을 핥고 갔다고
숨길 순 없겠니
꽃가루를 부비고 간 나비
못 본 척 할 순 없겠니
꽃가지를 흔드는 바람
그런 걸 얘기하고 싶어
못 참겠니 한 철을
귀가 가렵단 말이지
대숲 없는 언덕에 홀로서서
-「꽃잎 발자국은 푸르다」에서
또 그의 시집 표제작인 「꽃잎 발자국은 푸르다」를 보면 그의 맑은 영혼의 시심이 보인다. “밤하늘/별들/숨으러 가는/새벽/이슬을 따러갔다/한 뼘의 길이에서/꽃잎은 어쩔 줄을 모른다/부끄럼타는 저 잎 좀 봐”(「꽃잎」)에서처럼 그는 살아있는 식물의 생명력으로 그의 삶의 상상력을 발현시킨다. 또“바람이 저리 떠는 건/설렘을 채우다 넘치는 사랑을 뻗는 거지/떨림을 참다 솟구치는 기쁨을 뿜는 거지”(「아침」)에서는 바람을 통해서 발랄한 아침의 상상력을 피우는 영혼의 시심이 여간이 아니다. 새벽처럼 출근 했다가 밤늦게 귀가하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 딱딱하고 메마른 빌딩 숲의 서울의 삶 속에서 이렇게 맑고 순수한 시심을 지녔다는 것은 같은 시인으로서도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작품들은 대체로 한 편 한 편이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그 이야기들은 시인의 어린시절에서부터 시작된다. 유소년 시절 뛰어놀던 고향과 막 고개를 내민 푸른 보리 이삭이 세찬 바람에 시달리듯한 굶주림, 시인의 가슴에 묻어둔 고향의 낭떨어지와 같은 도시의 학창생활 속에서 체득한 독버섯과도 같은 현실이 지금의 시적 상상력의 본류다. 그러한 유소년 시절의 상상력을 동원해 현대사회의 생태적 시심과 도시생활에서의 가슴앓이 삶을 떨어내는 영혼의 맑은 시심, 자아를 회복하는 생애의 강을 건너는 모습이 눈에 선히 보인다.
한마디로 그가 보여준 시세계는 “자연의 훼손에 대한 책망과 아울러 자연의 회복을 통하여 우리 인간의 심성도 자연과 같아지기를 희망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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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창 시인은 /
1959년 광주광역시 학동에서 태어나
1977년 고교 2학년 재학중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최종심에 오름.
1978년 《시조문학》에 「옛 동산에 올라」로 1회 추천과
1979년 《시조문학》에 「墨畵를 옆에 두고」로 2회 천료,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 「거울論」 당선,
1991년 《심상》 신인상 시 「年代記的 몽타주 · 2」 외 4편 당선돼 문단 활동.
문학평론집 『아름다운 고뇌』 (시와사람, 1999),
창비 6인 시조집 『갈잎 흔드는 여섯 악장 칸타타』 (창작과비평사, 창비시선 189번, 윤금초 편저, 1999),
시조집 『거울論』 (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인선, 태학사, 2001),
시집 『달빛 누드』 (시선사, 2005) 등이 있다.
목포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10여년간 ‘시조창작’을 강의함.
현재, 濟州와 光州에 거주.
* ‘5세대’ 사화집 『그리움이 터져 아픔이 터져』(나남, 1987) 출간
* ‘5세대’ 사화집 『노래로 노래 해다오』(열음사, 1989) 출간
* ‘토풍시’ 사화집 『다시, 화양연화』(이미지북, 2023) 출간
* <이재창교수 작명역학 연구원>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sijosi59
* <이재창교수 동양학 사관학교> (다음 카페 http://cafe.daum.net/tongma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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