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문화탐방 수업으로 북촌에 위치한 너븐숭이 4.3기념관을 찾았다. 육지에서 온 나로서는 제주 4.3사건에 대해 깊이 알지 못했고, 막연한 거리감으로 막막해지만, 이곳의 공간과 기록은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기념관에 담긴 사진과 증언들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나라, 지금은 살아있는 아픔이 었다, 오늘의 하늘은 너무나 맑고 청명했다. 마치 그날의 아픔을 모른다는 듯 평온한 하늘 아래에서, 자연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흐르지만, 사람의 기억은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0) 북촌리의 4.3 시작
이날 아침에 세화리 주둔 제2연대 3대대의 중대 일부병력이 대대본부가 있는 함덕으로 가던 도중에 북촌마을 너븐숭이
에서 무장대의 기습을 받아 2명의 군인이 숨졌다. 보초를 서던 원로들은 군인 시신을 군부대로 들것에 실어 함덕리 주둔부대로 찾아갔다. 흥분한 군인들은
본부에 찾아간 9명의 연로자 가운데 경찰가족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살해 당했으며. 그들은 대부분은 돌아오지 못했다고한다, 그들이 사살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마을은 이미 공포에 휩싸었으며 오전 1시 무렵, 군인들이 마을을 포위해고 총부리를 들이대며 집집마다 들이닥쳤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릉 북촌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몰아넣었으며 . 병든사람도, 어린아이도 예외는 없었다고 한다, 마을의 집은 하나둘씩 불타올랐고, 400여 채가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었다고 한다,
모두 모아놓고 군경 가족은 따로 분리되었고, 교문 쪽에서 다시 총성이 울렸으며, 한 어머니가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쓰러졌고, 배고픈 아이는 싸늘해진 어머니의 품에서 젖을 빨고 있었다고 합니다, 영상속 삽화는 아무것도 모르는 저에게도 울림으로 다가오며 눈가를 적시는 장면이었다,
제주 북촌리의 옴팡밭(오목하게 쏙 들어가 있는밭)을 찾은 날, 바람은 고요했고 하늘은 맑았습니다. 겉보기엔 평범한 밭이었지만, 그곳은 단순한 자연의 풍경이 아니었습니다. 1949년 1월 17일, 북촌초등학교에서 끌려온 400여 명의 주민들이 이곳에서 집단 학살당한 비극의 현장이며, “마치 무를 뽑아 널어놓은 것 같이” 널브러졌던 시신들, 그날의 참혹함은 지금도 땅속에 깊이 스며 있습니다.
밭 한가운데 놓인 작은 봉분은 어린 희생자의 무덤이라고 합니다. 이름도, 나이도, 꿈도 채 피우지 못한 아이가 누워 있는 자리. 그 무덤 앞에 서니 말문이 막히고, 마음이 저려옵니다. 그저 조용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학비가 세워진 마당에는 현기영 작가의 ‘순이삼촌‘ 이 새겨져 있습니다. 제주 4·3의 고통과 침묵을 문학으로 풀어낸 이 작품은, 그날의 절규를 오늘의 언어로 되살려 줍니다. 붉은 화산송이 위에 누운 비석들은 쓰러져간 이들의 형상처럼 보였고, 그날의 고요한 절규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작가는4.3을 소재로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정보기관에 연행되어 많은 고초를 겪었다. 옴팡밭은 단순한 추모의 공간을 넘어,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입니다. 침묵 속에 울리는 진실, 그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습니다.
북촌마을을 걸을 때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그날의 참혹함은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숨 쉬는 고통의 흔적입니다. 후손이 끊긴 집안들, ‘무남촌’이라 불릴 만큼의 상실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슬픔입니다. 섬달 열여드렛날마다 명절처럼 지내는 제사는 단순한 의례가 아니라,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고, 살아남은 자들의 눈물 어린 기억입니다,
0) 일명 아이고 사건
1954년 1월 23일, 우리 마을은 김석태 전사자의 고별식을 위해 초등학교 교정에 모였답니다,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시절, 주민들은 고인의 넋을 기리며 꽃놀이를 겸한 조촐한 추모 행사를 열었고. 그날은 우연히도 6년 전 마을이 불타고, 수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날과 겹쳤다고 합니다,
한 주민이 “오늘은 그날의 6주기이니 희생된 영혼을 위해 묵념하자” 고 제안했고, 모두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억눌렸던 감정이 터져 나왔다. 울음이 퍼졌고, 대성통곡이 이어졌다. 그 울음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었다. 전쟁의 참혹함, 가족을 잃은 고통, 말할 수 없었던 분노와 억울함이 뒤섞인 절규였습니다,
하지만 그 울음은 곧 ‘집단행동’으로 간주되었고, 경찰이 들이닥쳤다. 우리는 하나같이 ‘다시는 집단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야만 풀려날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마을 사람들은 눈물조차 조심해야 했다. 감정 표현이 죄가 되던 시절, 우리는 슬픔을 속으로 삼켜야만 했습니다,
0) 마무리
점심을 마치고 다시 마을을 찾았다, 한 번의 탐방으로는 담아낼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이야기였다, 두 번째로 영상을 보며 생존자들의 떨리는 증언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머리로 이해했던 것이 이번에는 마음으로 다가왔다, 바람에 흔들리는 솔잎 사이로 마치 억울하게 쓰러진 영혼들리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무르는 듯 느껴졌다,
짦은 시간이었지만 , 나는 이 탐방을 통해 단순히 '과거의 역사' 를 배운 것이 아니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아픈을 마주하고, 그 기억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책임을 가슴에 새기는 시간이 되었다, 북촌마을의 하늘은 청명했지만, 내 마음속에는 무거운 구름이 드리웠다,
이상 북촌리 4.3에서~~~~~~~~~
첫댓글 엄살 짱 부리더니 잘 쓰셨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진짜 힘들었다고요~ㅎ ㅎ ㅎ
유난히 물색이 고왔던 북촌 바당
아무것도 모르는 듯
새침떼기 같은 바다가
가끔은 얄밉지만…바람은 역시
가을이 분명했습니다 ㅎㅎ
글솜씨가 좋으십니다 ㅎㅎㅎㅎ
감사합니다 ~
육지좀 다녀올려고 빨리 썼는데 다행입니다~
잘읽고 감동했어요 육지 추석쉬러가는 길 가볍길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
가족과 즐거운 한가위 잘 보내세요
멋진 후기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것 같아요..
멋진 사진을 위해 또 방문하신 보람이 있네요.. 감사해요
네~^~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감동적인 후기 감사드립니다!!
후기를 읽으면서 그날 탐방때 보고 느꼈던 그 생생함이 떠 올라 다시금 먹먹해 지네요.. 그 힘들었던 광기어린 세상를 살아내야 했던 수많은 "순이삼촌"을 생각하며 삼가 머리를 조아립니다..
네~^~
후기를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