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비의 아내가 된 견씨는 조비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위(魏)의 명제(明帝:조예)와 동향공주(東鄕公主)를 낳는다. 하지만 견황후의 불행은 조비가 한 헌제의 선양으로 황제에 오르면서였다. 조비는 곽귀빈을 총애하면서 점차 견황후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조비의 총애를 받은 곽귀비는 곽영의 딸로 미색도 뛰어났고 총명했다. 곽귀빈은 야심이 컸던 모양이었다. 내심 황후에 오르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러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일이 일어났다. 견황후가 무심코 조비를 원망한 말 한마디가 전해진 것이었다.
오랫동안 자신을 찾아주지 않은 여인의 자연스러운 한탄이었지만 곽귀빈은 이를 놓치지 않고 견황후를 모함했다. 견황후가 조비를 저주하는 것처럼 꾸몄고 조비는 단순하게도 이를 믿어 버렸다. 결국 조비가 황제에 오른 뒤 1년이 조금 지나 견황후는 자결 명령을 받는다. 견황후가 죽은 다음 날 일식이 있어 위나라 조정은 견황후의 죽음을 심상치 않게 받아들였다.
위나라 대신들은 곽귀빈이 황후에 오르는 것을 반대했다. 그러나 조비는 결국 곽귀빈을 황후로 앉혔다. 곽귀빈은 자식을 낳지 못해 견황후의 소생인 조예(曹叡)를 키우게 되었다. 조예는 원수와도 다름없는 곽황후를 극진하게 섬겼고, 조예는 이러한 태도를 인정받아 다음 황제에 오르게 되었다.
이러한 견황후를 남몰래 그리워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조조의 아들이며 조비의 아우인 당시 최고의 시인이었던 조식(曹植)이었다. 그 조식의 낙신부(洛神賦)라는 시가 있는데, 이는 형수였던 견황후를 그리워하는 조식의 마음을 잘 알 수 있는데 아름다운 낙수의 신 복비를 보고 견황후를 떠올리며 지었다는 설이 있다.
3. 강남 이교(二喬) - 오(吳)나라의 두 미녀 강남 오나라에는 두 명의 미녀가 있었다. 교국로(喬國老)의 딸들로 언니 대교(大喬)는 오(吳)의 장사환왕((長沙桓王) 손책(孫策)과 동생 소교(小喬)는 오나라의 대도독(大都督) 주유(周瑜)와 결혼을 했다.
조조가 강남의 오나라를 평정하고자 수륙 백만의 대군을 이끌고 장강(長江:양자강) 북안에 진주하자, 신야에서 조조군에 패배한 유비 (劉備)는 형주(荊州)의 유기(劉琦)가 있는 강하(江夏)에 몸을 의탁해 제갈량의 진언에 따라 손-유(孫 -劉)협력으로 조조군을 물리칠 것을 강구한다.
이 때 오나라의 조정에서는 장소(張昭)를 비롯한 문신들은 화친할 것을, 정보(程普)를 중심으로 하는 무신들은 결사 항전 할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전선에 나가있는 대도독 주유의 심중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삼국지연의에서, 적벽대전(赤壁大戰)이 발발하기 전 제갈량(諸葛亮)이 손권의 참전을 유도하고자 주유의 분노를 사기 위해 조식이 지은 동작대부(銅爵臺賦)에, 조조가 대교와 소교를 탐하고 싶다는 내용을 집어넣어서 불렀다고 한다. 조조는 동작대 준공 기념으로 아들 조식에게 동작대부를 짓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