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다. 무엇이 어떻게 잔인한지는 모르지만 딱! 이때가 아닐까싶다. 꽃 잔치에 눈부셔서 시린 마음, 주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가벼운 등산 차림으로 버스를 타고 광교산 입구 버스정류장에 내린 것이다. 평일인데도 등산을 하려는 사람들과 산을 내려오는 사람들로 붐비는 가운데, 광교저수지의 마루 길을 따라 한창 피기 시작하는 벚꽃을 보기 위해 나들이 나온 상춘객들도 많았다.
이곳에 오면 반딧불이 화장실에 들르는 것은 필수 코스다. 산을 오를 때나 내릴 때나 이곳에 들러, 먼 산 보듯 시치미 떼고 창문을 통해 저수지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사색의 묘미가 아닐까싶다. 그렇게 결전을 다지기라도 하듯 자판기 커피 한잔을 빼 마시고 계단 길을 오르면 경사가 높아 시작부터 만만치가 않다. 그러나 여기저기 진달래꽃이 붉게 핀 가운데 이들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올라가면 곧 능선에 이르고, 6,25동란 때에 이곳에서 적군과 아군간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음을 알리는 '평화의 쉼터'가 있어 숙연한 마음이 든다.
광교산 '진달래 10리 길' 생기면 좋겠네요 _1
하지만 길은 여기서부터 평탄해지고, 가슴이 터질 듯 헐떡이던 숨결도 한결 가라앉아 많은 생각을 갖게 해준다. 말하자면 심중의 평화지대라고 할까. 곳곳에 도열해 핀 진달래꽃들이 주마등처럼 환호한다. 누구라도 이 길을 걸어본 사람이라면 놓칠 수 없는 그 진달래꽃 길, 제아무리 무심하다 해도 가슴 한번 설레 보지 않을 사람은 아마 없지 싶다.
길은 그렇게 경기대에서부터 형제봉까지 3.5킬로미터에 이른다. 간간히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계단 길을 만나기도 하지만 별로 험하지 않고, 어린 아이들도 어른들과 함께 할 수 있어 가족 산행하기에는 아주 좋다. 산은 우리의 허파라고 하는 말도 있듯이 이런 좋은 광교산이 곁에 있는 수원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매번 광교산을 오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찌 나 뿐만 이겠는가.
올해는 유난히 광교산의 진달래꽃도 한꺼번에 피어나며, 그 어느 해보다 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전에는 광교산에 진달래꽃이 핀다는 정도만 알았을 뿐 이토록 형제봉 길이 진달래꽃길인 줄은 미처 몰랐다.
광교산 '진달래 10리 길' 생기면 좋겠네요 _2
'문암골' 갈림길을 지나 가파른 고개를 오르면 간이 쉼터가 있고, 이곳에 앉아 주변에 핀 진달래꽃들을 바라보면 산들바람과 함께 마음은 한없이 꽃 속에 빠져든다. 꼭, 어디라고 집어 말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이곳에서 더 올라가면 고개 아래로 천년수와 백년수의 갈래 길이 나온다. 그러나 곧바로 올라가는 동안 변함없는 꽃길이 이어지며, 고개에 이르면 그 철탑 앞에 지금은 볼 수 없지만 김소월의 '진달래'시 판이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왜 그곳에 진달래 시판이 서 있었는지 이제는 알 것만 같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 못 잊어서 사뿐히 즈려 밟고 가라함이었을까. 연분홍 진분홍 진달래꽃 가슴에 담아보며 형제봉이 건너다보이는 그 마루턱을 내려가면 또 다른 의미의 진달래꽃도 곱게 피어있다.
광교산 '진달래 10리 길' 생기면 좋겠네요 _3
등산로 양쪽으로 쌓아놓은 작은 돌탑 2기, 그곳에는 태극기가 펄럭이며 6,25때 적군과의 전투에서 산화한 국군장병의 유품과 유골이 발굴되었다고 표시되어 있다. 누군가는 꽃을 놓고 가기도 하고, 누군가는 과자 등의 흔적을 남겨 추모의 마음을 전하기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분들의 지난 과거, 이런 비극적인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을 것이며, 우리가 이토록 즐겨가며 광교산을 찾을 수나 있을까. 항상 이곳을 지날 때면 엎드려 절하는 마음으로 그날을 떠올려보게 된다.
그래서 말이지만 이 길에 핀 진달래꽃들, 그날의 가신님들 못다 핀 사랑노래 되어 들려오는 것은 나뿐만 일까. 길 따라 줄줄이 그렇게 핀 꽃들 속에는 알지 못하는 사연이 있는 것만 같아지는 것은 왜일까.
광교산 '진달래 10리 길' 생기면 좋겠네요 _4
꼭 그런 의미를 부여할 것은 없겠지만 이왕, 진달래꽃 길 얘기가 났으니 이참에 나는 감히 제안 하나를 해본다. 광교산 형제봉 길, 경기대-형제봉 구간 3.5킬로미터를 진달래꽃 길로 조성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이다. 지금처럼 자연 그대로가 엉성하고 부족하기는 하지만 생긴 대로가 좋다고 말한다면 그만일 것이다.
그러나 광교저수지길 벚꽃과 함께 연계하여 형제봉까지 '진달래 십리 길'이 된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 같다. 이는 수원의 관광명소로 변모해가고 있는 광교저수지와 함께 좋은 반응을 불러오지 않을까싶다. 다른 어떤 사업보다 공사비도 거의 들지 않을 것이며, 마음만 먹으면 뜻밖의 수확으로 수원의 또 하나 자랑거리가 생길 것이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