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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14 (세 이레의 응답)
성경본문 : 다니엘 10: 1-14
1. 바사 왕 고레스 삼년에 한 일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나타났는데 그 일이 참되니 곧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 다니엘이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이상을 깨달으니라
2. 그 때에 나 다니엘이 세 이레 동안을 슬퍼하며
3. 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넣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
4. 정월 이십 사일에 내가 힛데겔이라 하는 큰 강 가에 있었는데
5.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정금 띠를 띠었고
6. 그 몸은 황옥 같고 그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 눈은 횃불 같고 그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
7. 이 이상은 나 다니엘이 홀로 보았고 나와 함께한 사람들은 이 이상은 보지 못하였어도 그들이 크게 떨며 도망하여 숨었었느니라
8. 그러므로 나만 홀로 있어서 이 큰 이상을 볼 때에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듯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으나
9. 내가 그 말소리를 들었는데 그 말소리를 들을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깊이 잠들었었느니라
10. 한 손이 있어 나를 어루만지기로 내가 떨더니 그가 내 무릎과 손바닥이 땅에 닿게 일으키고
11. 내게 이르되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 다니엘아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깨닫고 일어서라 내가 네게 보내심을 받았느니라 그가 내게 이 말을 한 후에 내가 떨며 일어서매
12.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들으신바 되었으므로 내가 네 말로 인하여 왔느니라
13. 그런데 바사 국군이 이십 일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국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군장 중 하나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14. 이제 내가 말일에 네 백성의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대저 이 이상은 오래 후의 일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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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윤태성목사
우리가 기도를 생각할 때 드는 의문이 한가지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 많은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실 수 있을까? 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드리는 기도를 어떻게 처리하실까? 그 말씀을 이해하실 수 있는 것이 시편 147편 4절입니다. “저가 별의 수효를 계시하시고 저희의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이 우주에 얼마나 많은 별이 있습니까? 천억개의 은하계가 있고, 또 그 은하계 안에 천 억개 수효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별들이 있습니다. 이 우주를 창조하신 주님께서는 수 많은 별들이 부딪치지 않게 질서를 만들어 주시고, 운행하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 백성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아 멘)
그래서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보시면 기도에 얼마나 많은 능력이 있는가? 기도에 얼마나 많은 비밀이 있는 가를 보여 줍니다. 1절을 보시면 바사와 고레스 삼년이라는 역사적이 기록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BC 536년에 페르시야 왕국에서 일어났던 다니엘이라는 분의 실화 이야기 입니다. 이 사람은 10대에 포로로 끌려와서 이제 84세나 85세쯤 되는 사람입니다.
늘 기도에 힘을 쓰는 사람 이였고 하나님은 다니엘을 “너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여” 이렇게 부르고 계십니다. 이 은총을 입은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징조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말씀하시는 가하면 “큰 전쟁에 관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 전쟁의 의미는 나라와 나라의 싸움보다도 이제 중동의 통치자들이 바뀌면서 유대인들이 겪어야하는 큰 환란이나 핍박을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겪어야 하는 고통을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1절에 “ 다니엘이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이상을 깨달아 아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할 때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그분의 뜻과 말씀을 분명히 알려 주십니다.
ex)관광버스를 운행하시는 사장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분 말씀이 한때는 사무실 직원만 8명이 있는데 지금은 구조조정을 통해서 세 사람만 근무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근무하는 한 사람은 부장으로 자신과 한 이불속에 사는 사람이고, 총괄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은 함께 교회를 섬기고 계시는 집사님이시고 또 다른 한사람은 중요한 사람인데 해외 업무와 상담을 담당하는 아가씨인데 자기와 한 이불을 덥고자는 분의 딸이다 유머러스하게 말씀하셔서 재미있게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시며 이분의 말씀이 부천 지역에 있는 20여개가 넘는 관광 버스회사가 이제 6개가 문을 닫게 되었노라 그래서 자신도 이런 위기가운데 다시 한번 자신의 신앙을 돌이켜 보고 있다. 8명의 직원이 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하신일이라고 고백을 했지만 마음속에서는 자신이 잘나고, 잘해서 그렇지 이런 교만한 마음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위기를 맞이하여 인간이 얼마나 약한 자이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얼마나 필요한가 깨달으며 교회에서 기도하며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자신이 직접 운행도 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경제적인 고통가운데 하나님의 섭리를 다시 깨닫고 계시는 분이였습니다.
1. 기도가 필요한 때
그런데 이 다니엘의 기도를 보면서 성경에 나타난 어려운 때의 모습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고대 상황을 보시면 대부분 농경 사회이기에 농사가 잘 되야 개인과 국가의 삶이 윤택하게 됩니다. 이와 반대로 흉년의 때가 되면 모든 삶이 피폐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흉년을 하나님의 징계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성경에서 흉년하면 떠오르는 분이 누구입니다. 요셉과 엘리야. 먼저 우리가 요셉의 때를 보면 7년 풍년 후에 7년의 흉년이 듭니다.
이때를 보시면 요셉이 기도하였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다 이런 기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이미 꿈을 통해서 이상을 보여 주셨고 응답하셨습니다. 이제 중동지역에 7년간 풍년이 발생을 합니다. 그때에 요셉은 다음 흉년을 대비해서 창고를 크게 짓고 곡물을 저장을 합니다. 그리고 7년의 풍년이 지나자 이듬해에는 7년간의 흉년이 발생합니다.
이런 풍년과 흉년은 경제활동을 하는 동안 주기적으로 나타납니다.
경제활동이나 경기에 대입을 하면 항상 생산 활동은 바닥점을 찍고 다시 반등이 되고 다시 활황기를 맞이하는 싸이클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식을 투자할 때도 아무리 불경기라도 자금에 여유가 있는 사람이면, 투자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경기는 싸이클이 있기에 언젠가는 오르게 된다. 이런 것을 가르켜 비즈니스 싸이클이라고 합니다.
이런 비즈니스 싸이클의 대표적인 예가 1920년대 발생한 미국의 경제 대공황입니다. 이때에 미국 대통령이였던 루즈벨트가 7년간의 경기부양책을 씁니다. 은행에 돈을 공급하는 관치금융과 테네시강 개발사업과 같은 대규모 공공사업으로 위기를 극복합니다. 이런 경우를 우리는 예측아 가능한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흉년이지만 예측이 되지 않는 흉년이 있습니다. 북이스라엘 아합 왕 시대에 3년 반이나 가뭄이 듭니다. 이 흉년의 이유를 성경에서는 “저는 그 전의 모든 이스라엘 왕보다 심히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겪발하였더라”
이전에도 우상 숭배가 있어왔지만 이 시대은 이방 여인이였던 왕비 이세벨과 아합 왕의 조직적인 우상 숭배가 자행이 됩니다. 왕의 잘못이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백성들은 불행한 시대를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흉년은 이스라엘과 같이 경지 면적이 적은 곳은 대단한 위기입니다. 혹시라도 3년 반 동안 장사가 안되었다. 이러면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굶어 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3년 반 동안 가뭄이 들었다 그러면 굶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때는 어떤 정책을 펴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가 없습니다.
이러한 징계의 시대에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 시대를 알고 깨어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이 땅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 때에 가장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가 나타나서, 그 백성의 죄악을 이야기하고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고 예배를 회복합니다. 그리고 그자신이 무릎을 끓고 주님 앞에 기도할 때 문제가 해결이 되어집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시대를 보면 요셉의 때와 같은 단순한 경제적 싸이클이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벌어지는 세계사적이고 국가적인 재앙들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됩니다.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쓰나미와 같은 대재앙이 있고, 환경오염으로 북극 빙하의 경우 4년 후면 다 녹아버린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도 예멘에서 벌어진 알카에다의 테러와 북한과의 대립의 문제가 있습니다. 경제의 위기로 신 빈곤층의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이런 것보다도 사람들의 마음에 염병과 같이 퍼지는 배금주의로 인한 같은 인간성 상실의 문제가 심각한 때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때는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예레미야 14장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타락한 백성들에게 내리는 징계가 있는데 그것이 칼과 기근과 염병입니다.
이제 다니엘이 기도하는데 이러한 외부적인 상황뿐 아니라 내부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 당시에 이스라엘의 내부적인 상황은 에스라의 귀환으로 4-5만 명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건축하지만 사마리아 사람들의 방해로 건축이 중단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의 상황은 그들이 이주해서 살고 있는 바벨론과 페르시야 정착한 유대인들은 상업에 탁월함을 보여서 지금 살고 있는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기보다는 그 땅의 문화가운데 동화되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점점 하나님의 백성으로의 정체감을 잃고 있을 때입니다. 그때에 다니엘은 2절에 세이레까지 기도합니다. 세 이레라고 하는 것은 7X3=21동안 기도 하였습니다.
2. 기도의 방법
어떻게 기도합니까? 3절에 좋은 떡은 입에 대지 않고 고기와 포도주는 입에 넣지 않고 즉 금식하며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80이 넘은 분이 21일간 생사를 걸며 주님 앞에 기도합니다. 민족의 문제를 놓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머리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였다. 그 당시 중동은 모래 먼지가 많았기 때문에 밖에 나갔다오면 목욕을 하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풍습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대로 하면 다니엘은 목욕하지도 않고 오직 집중해서 기도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집중해서 기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는 주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아뢰며 그분의 능력을 구하는 것 입니다. 그때가 되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서 뚫고 들어오십니다.
창세기 32장의 야곱을 보시면 압복 강에서 야곱은 그의 문제를 놓고 기도합니다. 그가 21년의 시간을 마치고 이제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를 기다리고 있는 형님의 태도는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야곱 이 녀석 오기만 해라 나를 속이고 나의 장자권을 빼앗아간 저 여우같은 놈을 내가 그냥 두지 않겠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야곱은 얍복강에 홀로 남아서 처절하게 기도합니다. 주님 앞에서 그의 삶을 두고 가장 치열한 기도를 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 야곱과 씨름을 합니다. 그 어떤 사람은 물론 하나님이시지만 야곱은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당신을 보내 드릴 수 없습니다. 나의 문제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면 나는 당신을 보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처절한 기도 가운데 결국 환도뼈가 부러지고 너를 이제는 야곱이라 하지 않고 이스라엘이라 하겠다. 응답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의 형 에서를 만날 때 그 동생을 불쌍히 여기는 긍휼한 마음이 생기게 되고 형제가 화합하게 됩니다. 물론 그가 기도하지 않았다면 그는 여전히 성경의 주인고이기에 죽지는 않았을 것입다. 형이 그에게로 와서 “내가 하나님 때문에 너를 죽이지는 못하지만 너는 참 나쁜 놈이다.” 그의 자녀와 부인이 보고 있는 데에서 부끄러운 만남을 보여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기도함으로 그가 변화가 됩니다. 다리를 절면서 형에게로 와서 ‘형님 형님 얼굴을 보니 제가 하나님 얼굴을 뵙는 것 같습니다’ 주님 앞에 기도했더니 그가 변화가 되고 형의 마음도 바뀌게 됩니다.
그들이 얼싸안고 기도할 때 그의 아내 그의 자녀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겠습니까?
이처럼 기도는 우리의 사건가운데 주님께서 개입하시는 일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삶을 수동적으로 살지 않게 합니다. 환경가운데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능동적으로 이끌어가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기도하면 우리의 역사 가운데 뚫고 오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문제에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3. 기도의 비밀
그런데 기도에 아주 중요한 Key Point가 오늘 말씀가운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12절에 “다니엘아 두려워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에 네 말이 들으신바 되었으므로 내가 네 말을 인하여 왔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 땅에는 권세를 잡은 악한 영들이 있습니다.
13절에 바사국군이 21일 동안에 날 막았으므로 기도가 응답되지 못하고 하늘에서 머물러 있을 때 하나님의 국방부장관 미가엘 천사나타나 하늘에서 큰 싸움을 하고 지금 도착하였다는 것입니다.
만약 다니엘이 이 비밀을 모르고 중간에 포기하였더라면 그에게 응답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도의 역사를 보면 우리의 기도는 다 응답 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의 기도는 또한 다 거절 되지 않는다. 거기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접접이 있는데 그것이 다니엘이 보여준 기도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는 자가 부르짖습니다. 기도하는 자의 기도의 깊이에 따라서 응답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인생의 문제 앞에 나를 축복하시지 않으면 가게 하지 않겠습니다. 간절함으로 기도합니다. 다니엘은 금식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계속해서 21일을 기도합니다. 우리에게도 낙심하지 않고 끝임 없이 기도하면 기다리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나오는 말
우리는 지금 사순절 기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 사순절기간의 교회사의 전통은 이 기간 동안 경건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금식하고 구제 하는 일에 힘을 쓰는 절기입니다. 또한 이 사순절 기간에 다니엘이 금식하며 전심으로 기도한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고난과 수난을 묵상하는 마음으로 이 기간 가운데 한 끼라도 금식을 하시는 것도 필요한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를 위한 커피나 단것과 같은 기호품이나 TV 시청과 같은 오락을 한가지 씩 끓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개인적인 일 뿐 아니라 우리 교회에서도 이 기간을 맞이하며 주님의 고난과 부활을 생각하면 “세 이레 능력 기도회”를 갖고자 합니다. 다니엘의 기도의 비밀은 하루에 세 번에 있습니다. 베드로도 하루에 세 번 기도할 때 성전에서 앉은 뱅이를 고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새벽에 기도를 드립니다. 저는 때때로 새벽기도회에 우리교인보다 더 많은 외부에서 오셔서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교회는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열심히 기도하시는 모습에 마음에 기쁨은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타 교인이 많다는 것은 우리의 기도 생활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새벽에 주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호수아의 능력은 새벽에 그가 일찍 일어 나서 주님의 율법을 일고 주님 앞에 기도한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새벽은 주님 앞에 드려지는 가장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주님은 정성으로 드리는 자의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새벽 미명에 기도할 때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또한 교회에서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에 화목기도회로 모입니다. 풍수지리에 보면 귀신이 가장 많이 활동하는 때를 자문동이라고해서 오후 3시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람에게 해를 많이 끼치는 때입니다. 그래서 저는 ‘올커니 잘되었다 귀신의 역사가 많으면 성령의 역사도 강하겠다’ 우리는 이 시간에 하나님과 우리, 우리와 이웃을 위해서 화목기도회를 드립니다. 그런데 이주간에 시작하려는 “새 이레 능력기도회”가 있습니다. 늘 드리던 대로 새벽기도와 화목기도회로 드립니다. 다만 저녁에도 부활절 전까지 월화 목금 저녁 8시에 감사기도회를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의 개인의 문제와 교회를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모든 시간에 다 참석하시고 다만 여의치 않을 때 시간을 정하신 때에 시간 나시는 대로 나오셔서 기도하실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저는 여러분의 함께 기도할 때 부활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지금 너희가 이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이다.”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주님을 부르는 시간입니다. 제자들이 고물에서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며 무엇이라고 합니까? “주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합니까?”
그럴 때 주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다와 바람을 잔잔케 하십니다.
그런 절박한 문제를 가지고 저와 여러분과 교회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역대상 10:9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백성이 스스로 겸비하여 얼굴을 돌이키고 내게로 와서 기도하면 내가 그것을 듣고 사하리라”
이 말씀을 기억하시고 우리가 믿음 안에 깨어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 앞에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능력을 구하실수 있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