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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축하며 다시 세우는 자
성경본문 에스라 7:27-28
27. 우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찌로다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
28. 또 나로 왕과 그 모사들의 앞과 왕의 권세 있는 모든 방백의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나의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어 이스라엘 중에 두목을 모아 나와 함께 올라오게 하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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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퀴즈를 하나 하는 것으로 오늘 말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지금 제가 말씀 드리는 인물들은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공통점인지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에스라, 느헤미야, 학개, 스가랴, 말라기, 스룹바벨, 그리고 여호수아, 이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아닙니다. 학개서와 스가랴서에 나오는(학1:1, 2:4, 슥3장),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입니다.
이 인물들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성경을 깊이 아는 분들에게는 여기에 제3 이사야를 덧붙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들은 모두 귀환시대의 인물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다가 돌아올 때, 그리고 돌아와서 예루살렘에서 살 때 백성들을 지도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다시 세우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세웠습니다.
총독 스룹바벨은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세웠습니다.
학개와 스가랴와 말라기는 예언운동을 다시 세웠습니다.
에스라는 율법을 다시 세웠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들의 수고를 기억해야 합니다.
귀환시대에 이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성전과 믿음과 선민의식을 다시 세우는 수고를 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스라엘은 제대로 서지 못하고 슬그머니 주변민족에 동화되면서 사라지고 말았을 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에서 돌아올 무렵 주변에 수많은 군소 부족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의 재건운동을 방해한 일이 느헤미야서를 비롯하여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아니 모두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것을 '제2의 출애굽'이라고 합니다. 첫 번째 출애굽 때 모세의 적극적인 지도가 없었더라면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으로 되돌아와 버렸거나 광야에서 헤매다가 사라지고 말았을 가능성이 높았었습니다.
제2의 출애굽 때 에스라, 느헤미야, 학개, 스가랴, 말라기, 스룹바벨, 그리고 여호수아, 이들의 바른 지도가 없었더라면 마찬가지가 되었을 위험이 아주 컸습니다.
귀환시대에 이들이 다시 세우는 수고를 했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시 성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 성전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메시아를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으로 전통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다시 세워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세계적으로 기독교의 위상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기독교가 세계 역사에 많은 영향을 미치며 역사를 이끌어온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일입니다. 서양의 경우는 중세까지는 교회의 역사가 곧 세계의 역사였습니다.
지금은 기독교의 영향력이 날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최근에 한 신뢰할 수 있는 통계를 보니까 지금 세계의 기독교 신자수가 20억으로 종교를 믿는 인구 가운데 아직은 기독교 신자가 제일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장률은 이슬람교가 제일 높고 그 다음은 시크교, 그 다음은 힌두교, 그 다음이 기독교입니다. 성장률이 두 번째로 높은 시크교는 힌두교의 한 파입니다.
선교전문가들은 '교회가 이슬람 선교를 많이 이야기하는데 이슬람권에 복음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슬람의 확장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고, 이슬람의 침투를 막는 일이 더 시급하다'고 말합니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과 교회에 대한 좋은 인식과 성장률이 날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것을 다시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민족적으로 분단 이전의 역사를 다시 세워야합니다.
우리 교회는 성전을 다시 세워야 하고 부흥의 역사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특별히 각 개인의 삶이 그렇습니다.
은퇴를 한 분들, 명예퇴직을 한 분들, 어떤 큰 손해를 본 분들, 그 동안 쌓아올린 것들이 무너진 분들, 많은 것을 잃고 원점으로 돌아간 분들, 사업을 새로 시작하는 분들, 그리고 재수생들, 각종 고시에 두 번째, 세 번째 도전하는 분들, 다시 세워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분들은 '나는 끝났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정말 끝나버리고 맙니다.
'나는 다시 세워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을 가져야합니다. 그러면 다시 세울 수 있게 됩니다.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청년 이후의 세대는 그들을 삶을 다시 세워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의 역사, 민족의 역사를 다시 세우고 특별히 삶의 역사를 다시 세우는 일, 매우 중요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새롭게 시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잘 다시 세우면 처음보다 더 아름다운 역사를 이룩할 수 있고 더 알찬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에서 돌아와 스룹바벨의 지도 아래 성전을 다시 세웠습니다.
에스라서 1장에서 6장까지는 그 내용입니다.
그 다음에 에스라가 돌아와 그 성전을 기초로 율법을 다시 세우는 일을 합니다.
율법을 다시 세운다는 것은 영적 재건을 말하기도 하고 개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에스라서 7장부터는 그 내용입니다.
에스라는 이스라엘의 신앙을 재건하기 위해 돌아오면서 먼저 하나님을 송축합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에스라는 말씀과 귀환과 관계된 여러 가지 일들을 살피면서 깨닫고 체험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 언약의 성취,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 등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의 찬양을 올리고 있습니다.
사실 에스라는 지금 하나님을 송축하기보다는 짜증을 내기 쉬운 형편입니다.
우선 다시 세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소설가가 소설을 쓰는데, 목사가 설교 원고를 쓰는데, 누가 편지를 쓰는데, 문서를 작성하는데 컴퓨터가 말썽을 일으켜서 지금까지 쓴 것이 다 날아가 버렸습니다. 할 수 없이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하는데 한 번 썼던 것이고 머리 속에 내용이 기억되어 있어서 쓰기 쉬울 것 같지만 어떻습니까? 처음 쓰는 것보다 더 어려웠던 체험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 짜증이 납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에스라는 바벨론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던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것을 버리고 돌아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에스라는 돌아올 때 2,000명이 좀 못되는 백성을 이끌고 넉 달 걸려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데 홍해가 갈라지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앞장서는 놀라운 일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에스라가 해야 하는 일은 보이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에스라서 7장 10절을 보면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전을 세우고, 성벽을 세우고, 성문을 다시 다는 일은 눈에 보이는 일이어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데 '아, 여기까지 진행되었으니 이제 이만큼 남았구나!'
알 수도 있는데 율법, 율례, 규례를 가르치는 일, 한 마디로 말씀을 재건하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언론계에 종사하는 친구 둘이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한 사람은 방송사에서 일하고 있었고 한사람은 신문사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방송사에서 일하는 사람이 신문사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고 '당신은 참 좋겠다. 나는 하루 종일 부지런히 일해야 전파는 다 공중으로 날아가 버리고 눈에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심하다. 당신은 열심히 일하면 눈에 보이는 신문이 제작되어 나오지 않느냐?' 했습니다. 그러니까 신문사에서 일하는 사람이 '맞아!' 했습니다.
이런 형편이지만 에스라는 짜증내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마지못해 하지 않고, 하나님을 송축하면서 이 일을 시작합니다.
자신의 삶을 다시 세워야 하는 분들, 목양교회의 역사를 다시 세워할 책임을 가지고 있는 여러분과 저, 한국교회의 부흥과 사회적인 영향력을 다시 세워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 짜증내지 말고, 피곤해 하지 말고, 부정적인 요인들을 내세우지 말고 하나님을 송축하면서, 하나님을 송축하면서 이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송축하며 다시 세우는 사람들이 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말씀에 의지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성경은 에스라에 대해 말할 때 '말씀을 잘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빠뜨리지 않습니다.
에스라서 7장 6절 앞부분을 보세요. 에스라를 소개하는데 아론의 16대 손이라는 것을 밝히고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7장 12절을 보세요. 아닥사스다 왕이 '이스라엘 백성은 돌아가도 좋다'고 내린 조서의 시작부분입니다.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는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조서를 내리노니 우리 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지어다
7장 21절을 보세요. 역시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 가운데 일부분입니다.
“나 곧 아닥사스다 왕이 유브라데 강 건너편 모든 창고지기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가 무릇 너희에게 구하는 것을 신속히 시행하되”
에스라의 이름은 느헤미야서에도 여러 번 나오는데 그 때 빠지지 않고 따라 다니는 말이 '학사'라는 칭호이고 때때로 제사장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느헤미야서 8장 1절부터 4절 앞부분까지를 읽어 드립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 오기를 청하매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그 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고 그의 곁 오른쪽에 선 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아와 힉기야와 마아세야요 그의 왼쪽에 선 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술과 하스밧다냐와 스가랴와 므슬람이라“
느헤미야서 8장 9절에서는 느헤미야 앞에는 '총독', 에스라 앞에는 '제사장 겸학사'라는 칭호를 붙이고 있고 그밖의 여러 곳에서 에스라를 '학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학사는 석사 밑에 학사가 아니라 말씀을 잘 아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박사와 같은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아는 사람,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힘쓰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에스라는 신앙민족으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에스라는 포로로 잡혀간 세대가 아닙니다. 바벨론에서 출생한 세대입니다. 그러면 아무래도 이스라엘 쪽 보다는 바벨론 쪽으로 기울기 쉽습니다.
월드컵 때 우리 나라 대표팀이 미국 대표팀과 경기를 하는데 재미동포들 가운데 1세대, 한국에서 건너간 동포들은 한국을 응원하고 2세대, 미국에서 태어난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은 미국을 응원하는 일이 많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았기 때문에 에스라는 하나님 편에 섰고 신앙민족으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 점은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간 곳에서 높은 벼슬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출세한 소수민족의 하나로서 그의 삶을 마감할 수도 있었는데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습니다.
다니엘서 9장 1절과 2절을 읽어드립니다.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 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여기 나오는 메데 족속이 이라크 전쟁과 관련해서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는 쿠르드족입니다.
다니엘은 이렇게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민족을 대신한 회개의 기도를 드립니다. 기도 끝에 놀라운 환상을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아는 사람, 그 말씀대로 살려고 힘쓰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에스라에게 이 중요한 일을 맡겼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잘 알고 말씀대로 살려고 힘쓰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수행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율법을 철저히 연구하여 그대로 지킨 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죄의 회개와 영적인 부흥은 재건된 성전과 더불어 귀환한 백성들에게 새로운 삶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말씀을 잘 아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대로 살기에 힘쓰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도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큰 일을 맡기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큰 일을 맡기신다는 것은 목사가 된다거나 교회에서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는 것만을 의미하
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사회에서 하시는 일, 그거 모두 하나님이 맡기시는 일입니다.
특히 다시 세워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다시 세우고 출발해야 하는 분들, 말씀을 잘 아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송축하면서 다시 세우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 하나님은 다시 세우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며 지켜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 때 우리는 하나님을 송축하며 다시 세우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귀환시대 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인 학개는 학개서 2장 5절에서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세우기 위해 힘쓰는 사람들에게 처음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도와주십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은 느부갓네살 왕의 침공 때 파괴되었습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백성들은 성전을 다시 짓기 위해서 힘쓰는데 학개는 그 성전의 영광이 처음 성전의 영광보다 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학개서 2장 7절 중간에서 9절까지를 읽어 드립니다.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을 송축하며 다시 세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복을 받습니까?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복을 누립니다.
하나님께서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켜 잘 도와주도록 합니다.
27절과 28절의 앞부분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에스라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어다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 또 나로 왕과 그의 보좌관들 앞과 왕의 권세 있는 모든 방백의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에스라서 7장의 많은 부분은 아닥사스다 왕이 내린 조서의 내용입니다. 여기 아닥사스다 왕은 일반 역사에는 아닥셀구세스 2세로 나옵니다.
성경 원문에 에스라서 7장의 이 조서는 아람 말로 기록되어 있고 오늘 본문, 27절과 28절은 히브리어로 되어 있습니다.
이 조서를 보면 아닥사스다 왕이 에스라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도왔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20절을 보면 성전에서 필요한 것,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궁중창고에서 꺼내가라고 했고 21절에서는 유브라데 강 건너편의 모든 창고지기들, 요즘말로 하면 조달청 직원들에게 에스라가 구하는 것은 빨리 내주라고 하고 22절에 그 양을 적었는데 모두 많은 양입니다. "은은 백 달란트까지, 밀은 백 고르까지, 포도주는 백 밧까지, 기름도 백 밧까지 하고 소금은 정량 없이 하라"고 했습니다.
"소금은 정량 없이 하라"고 했습니다. 무제한 내주라는 말인데 지금은 소금이 흔하지만 당시 소금은 아주 귀한 것이었습니다.
25절과 26절을 보면 "에스라여 너는 네 지혜를 따라 네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를 법관과 재판관을 삼아 강 건너 편 모든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그 중 알지 못하는 자는 너희가 가르치라 무릇 네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준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속히 그 죄를 정하여 혹 죽이거나 귀양 보내거나 가산을 몰수하거니 옥에 가둘지니라" 하였습니다.
에스라에게 법관 임명권, 교육권, 행형권(行刑權),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 줄 수 있는 권리는 다 주었습니다.이것은 다 하나님이 왕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에스라도 이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송축하며 다시 세울 때 하나님이 돕는 것을 알게 됩니다.
28절 중간 부분을 보세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그 손은 돕는 손입니다.
에스라라는 이름의 뜻이 '도움', 또는 '여호와가 도우신다'입니다. 에스라는 여호와를 대단히 신뢰하고 도움을 구하며, 도덕적으로 순전하며 죄에 대해 비통해 하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송축하며 다시 세울 때 힘을 얻게 됩니다.
"내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그 뒤에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내가 힘을 얻어"
송축하며 다시 세울 때 용기를 내어 착수하게 됩니다.
28절 끝 부분에 무엇이라고 되어 있습니까?
"이스라엘 중에 우두머리들을 모아 나와 함께 올라오게 하였노라"
결심하고서 착수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지요. '이 사업을 시작할까 말까?' '이 남자에게 시집을 갈까, 말까?' 그러다가 좋은 시기, 좋은 사람 놓치는 일이 많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송축하면서 다시 세우는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즐거운 마음으로 그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찬송가 513장 "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 차도" 3절 가사 그대로 살 수 있게 됩
니다.
네가 맡은 일 성실히 행할 때에
주님 앞에서 상 받으리
주가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며
십자가 지고 가라
즐거운 마음으로 십자가 지고 가라
네가 기쁘게 십자가 지고 가면
슬픈 마음이 위로 받네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십자가 지고 갈 수 있게 됩니다.
목사님들이 공통으로 겪는 어려움은 수면부족입니다. 특히 토요일은 더욱 그렇습니다. 설교준비를 일주일 내내 한다고 하더라도 완성되는 것은 토요일 밤인데 목사님에 따라서는 토요일 밤늦게까지 앉아서 주일 새벽에 완성시키는 분이 있고 토요일 일찍 자고 주일 새벽 일찍 일어나서 완성하는 분도 있는데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럴 때 짜증나기 쉽지요. 다른 사람들은 토요일에 긴장을 풀고 쉬는데 목사의 가정에서는 토요일 저녁에는 텔레비전도 크게 틀지 못합니다. 아예 전화 코드를 뽑아놓는 분도 있습니다.
이 때 짜증 내면서 설교 준비하면 은혜로운 설교가 준비되지 않습니다.
이 귀한 일을 맡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송축하면서 그 일을 해야합니다.
몇 해 전에 용인서지방에서 주일에 전도세미나를 하는데 통영에서 목회하면서 전도를 열심히 하고 있는 목사님을 강사로 모셔왔습니다.
그 목사님 세미나 중에 하시는 '나 어젯밤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한 잠도 자지않고 설교준비를 했습니다. 주일마다 새신자들이 몰려오는데 그들에게 좋은 양식을 먹이기 위해서 잘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밤을 새워 설교 준비하고, 주일낮예배 인도하고, 교회의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하고 부산으로 나와 비행기 타고 김포공항에 내려서 수지까지 왔으니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그러나 웃는 얼굴이었고 즐거움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아,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면 저렇게 되는구나!' 알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다시 세워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도로서, 특히 목양교회 성도로서, 한국의 국민으로서, 내 삶을 책임있고 보람있게 이끌어 나갈 사람으로 다시 세워야 하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에스라가 여호와를 송축하면서 다시 세우는 일을 시작한 것을 본받아 우리에게 이 일을 맡기신 하나님을 송축하면서 이 일을 하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