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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은 지키고, 원한은 풀어주어라
(사무엘하 21장 1-14절)
“내 인생은 왜 이럴까?”
“나쁜 일은 왜 항상 나한테만 일어나는 걸까?”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의문을 품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의문에 자주 맞닥뜨릴수록 삶을 포기하고 좌절하는 횟수도 점점 늘어납니다. 미국 보스턴에 있는 ‘채스넛 힐 연구소’의 임상치료사이며, 인간관계 부문의 인정받는 권위자로서 여러 수상 경력과 함께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미라 커센바움’ 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 자신의 저서, 『모든 일에는 일어나는 이유가 있다』에서 말하기를, “힘들고 어려울수록 그 일이 일어난 이유에 주목하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우리는 부정적인 일에서 긍정적인 것을 찾아내는 훈련을 할 수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손실이나 실망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삶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우리 힘으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의미를 모르는 채 괴로워하는 것보다 스스로 찾아 나서는 편이 좀 더 행복에 다가서는 길이 아닐까?, 모두 날 싫어해. 난 낙오자야. 난 지독하게 운 없는 사람이야, 라는 신세 한탄만 하면서 살지 않으려면 말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 책에 언급된 이유 하나하나가 수많은 타인들과 구별되는 ‘나’가 되게 해 주면서, 나는 누구보다도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동시에, ‘나’로 하여금 더욱 참된 삶을 누릴 수 있게 하고, 궁극적으로 ‘나’란 사람이 진정 누구인지 찾을 수 있게 도와줄 것이라고, 이 책의 내용을 간추려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해답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 신앙인들은 진리가 담겨 있는 성경 말씀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함 안에서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삶의 여러 가지 부침들의 결과물들은 외부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아서 그렇게 된 것도 있지만, 결국 그 원인의 제공자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모든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원인과 결과를 찾아가고,
벌어진 문제를 원위치 시키려는 노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내용의 주제는, 오늘 설교의 제목과 같이 “약속은 지키고, 원한은 풀어주어야” 하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먼저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내용을 살펴봅니다.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다윗의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
다윗 왕이 충성스러운 부하 군인이었던 우리야를 죽이고 그의 아내인 밧세바를 강제로 취하자 다윗 가문에 재앙이 일어납니다. 다윗의 자녀들 간에 강제추행 서간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아들 간에 살육전이 벌어지고, 급기야는 아들인 ‘압살롬’이 아버지에게 반역을 일으킵니다. 반역은 진압 되었지만 어수선한 틈을 타서 베냐민 지파의 ‘세바’가 반란을 일으키는 등 다윗에게는 불행한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납니다. 다윗왕의 일시적인 욕심이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하고 파탄과과 불행을 불러 오게 했습니다. 이렇듯 원인과 결과는 역사 속에서 계속 반복 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스라엘 전체에 삼 년이나 기근이 이어집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나아가, 왜 기근이 일어났는지 묻자, 하나님이 대답하시기를, 사울 왕이 살아생전에 기브온 사람을 죽여서 그렇다고 말씀 합니다. 지금 상황의 결과는 삼 년 기근이었는데, 그 원인은 수십 년 전에 있었던 일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기근이 일어난 원인을 살펴보려면 여호수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막 가나안 땅을 정복할 시기에, 여리고 성과 아이성을 점령하고 파죽지세로 가나안 땅을 정복해 나갈 때였습니다. 이 때에 기브온 족속은 이스라엘 군대와 대항 했다가는 멸족이 될 것을 두려워하여 여호수아에게 나아가 자신들은 먼 나라에서 왔다고 말하면서 거짓 항복을 합니다. 여호수아는 거짓 항복해 온 기브온 족속의 몰골이 너무나도 초라하고 불쌍해 보여서 하나님께 묻지도 아니하고, 자기 독단적으로 기브온 족속과 덜컥 조약을 맺었고, 회중 족장들은 기브온 족속에게 맹세를 합니다. 모든 족장들이 회중들 앞에서 선포 하기를, “우리가 주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름을 두고 그들에게 맹세하였으므로, 그들을 해칠 수 없다. 우리가 그들에게 할 일이라고는, 그들을 살려 두어서, 우리가 그들에게 맹세한 맹세 때문에 받게 될 진노가 우리에게 내리지 않게 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비록 그들을 살려 둔다 하더라도, 우리 가운데서 나무 패는 자와 물 긷는 자로 살아가도록 그들을 제한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나중에 기브온 족속이 거짓 항복해온 것을 알았지만, 하나님 앞에, 그리고 회중 앞에 한 약속은 어쩔 수 없이 유효한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 그 어느 누구도 기브온 족속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수 백 년의 시간이 흘러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을 때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사울왕은 기름부음을 받고 성령이 함께한 지혜로운 왕이었으나,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함으로 인해 성령이 그와 함께 하지 않자 악령에 시달리며 지냈습니다. 그렇게 제 정신이 아니었던 사울이 여호수아 시대의 ‘기브온 언약’을 잊어버리고, 기브온 족속을 무참하게 죽였습니다. 사울이 언제, 그리고 얼마나 많은 기브온 족속을 죽였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 사실을 말씀 하셨기 때문에, 그가 기브온 언약을 망각하고 살인을 저지른 것은 분명합니다.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왜 하나님은 그 때 당시 사울에게 벌을 주시지 다윗 시대에 와서 그 벌을 물으시는가?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사울 왕이 그렇게 했다면, 사울 후손에게 벌을 내리실 것이지 왜 이스라엘 전체 백성들이 기근에 시달리게 만드셨나? 하는 것입니다.
사울시대에 벌을 내리지 않으신 것은, 사울이 불손종하고, 악령에 시달려서 사위도 죽이려고 하고, 파멸로 치닫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가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시려고 오래 참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가 비록 마음 중심이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일을 행하려고 벗어나서 왕의 자리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을 받기는 했지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는 사울을 포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울의 모습이 바로 우리 인생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범죄 할 때마다, 잘 못 말하고 눈 밖에 나는 행동을 할 때마다, 하나님이 우리를 판단하시고, 포기하신다면, 우리는 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남지 못합니다.
지금 우리의 삶이 평안하다고 느끼고, 나는 하나님 앞에 특별히 잘못하고 있는 것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역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이 굳어져 있지는 않은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사울 왕 같이 하나님 곁에서 자꾸 벗어나 버리는 삶을 살아가는데도, 계속 돌이킬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기다려 주심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는 “나는 평안하다, 나는 평안하다”고 착각하고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당장 매를 들지 않고 있다고 해서 내가 다 옳다고 생각하면, 계속해서 내 생각과 판단에 스스로가 붙잡혀 지내게 됩니다. 결국 기회를 다 날려버리고 멸망에 이르러서야 땅을 치고 후회한들 소용이 없게 됩니다.
그 다음에 사울 왕이 저지른 잘못인데, 왜 이스라엘 전체 백성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이스라엘 백성이 공의를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하고,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 언약을 반드시 이루어 주십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은 어떤 언약이라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맺어진 것은 영원토록 지켜야 합니다. 한 사람의 잘못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책임이라는 연대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누구라도 언약을 지키려는 의지와 조심성을 갖고 살아갑니다. 비록 사울 왕이 기브온 족속을 죽였지만, 그 책임은 공동책임입니다. 족장들이 대표로 언약을 선포했고 회중들도 이에 화답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언약을 어긴 것에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언약 공동체와 마차가지로 오늘 날에 교회도 예수님의 약속을 지키고, 실행하는 곳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에 위배되는 행동으로 분란과 어려움을 자초한다면 어느 한 사람의 잘 못이 아니라, 교인 모두가 함께 고통을 지고 가는 것이 합당한 이치입니다. 공동체 내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는 말이 ‘개인적인 일탈’이었다고 하면서, 선을 긋는 것을 봅니다. 적어도 교회는 교회내의 사람이 문제를 일으켰다면 전적으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공의를 행하지 않고 언약을 망각한 행동을 하였음에도 드러난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오랫동안 슬픔과 고통 속에 지내고 있는 기브온 족속을 전혀 살펴주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기근을 내리신 것입니다.
우리는 약속을 참 많이 하고 삽니다. 약속으로 그치지 않고 문서를 만들어 서로 교환하여 보관합니다. 어떤 때는 맹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약속, 아무리 강한 맹세도 지켜지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사람끼리 약속한 것은 다 물거품이 되고,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릴 수 있습니다. 특히나 말로만 한 약속은 언제라도 바뀌고, 자기에게 유리하게 가공될 수 있습니다. “약속했는데 왜 약속을 안 지키느냐?” “맹세까지 해 놓고 지금에 와서 무슨 변명이 그리 많으냐” 얼마나 많은 분쟁들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지키지 못할 약속과 맹세는 안 하니만 못하지만, 내가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기회 주실 때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하고, 약속을 파기함으로 인해 상대편이 얼마나 극심한 고통 속에 지내는지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믿음으로 구원해 주신다는 약속, 죽으면 천국에 가고 몸이 부활한다는 약속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 큰 약속의 보호아래 살아가는 우리가, 남에게 해를 입히는 약속 불이행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과거에 누군가에게 했던 약속의 말들을 기억나게 해 달라고 기도 하십시오.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어기고 있는 약속이 있다면, 그것이 물질이든, 마음이든, 말이든, 어떤 것이라도 약속대로 이행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로 인해서 삼 년 동안의 기근이 우리 가족과, 교회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욱더 회개함으로, 더욱 더 진실함으로, 약속의 자녀답게, 약속을 철저히 지키며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며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그 다음에는 원한을 풀어주라는 말씀을 살펴봅니다.
다윗은 기브온 족속 사람들을 불러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내가 어떻게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 묻습니다. 다윗은 지극히 순종적인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기근의 이유를 알려주자 곧바로 기브온 사람을 만나 문제 해결에 힘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무엇이든지 순종하며, 적극적으로 임하는 다윗의 자세는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다윗의 물음에 기브온 사람들은, “우리를 학살하였고 또 우리를 멸하여 이스라엘 영토 내에 머물지 못하게 하려고 모해한 사람의 자손 일곱 사람을 우리에게 내주소서 ~우리가 그들을 여호와 앞에서 목매어 달겠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사울 자손 일곱 명을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죽여야 원한이 풀리겠다고 요구한 것입니다. 과거 기브온 조상들이 당한 고통을 생각하면 당연한 요구처럼 보이지만, 왕족의 후손을 내어 달라고 요구하는 배짱은 대단합니다. 그러한 요구를 하여서 다윗 왕의 분노를 사서 오히려 죽임을 당할지언정, 반드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입니다. 기브온 족속의 요구에 다윗 왕은 흔쾌하게, “내가 내주리라” 약속합니다.
그러나 다윗왕은 사울의 후손들을 내어 주되, 사울의 맏아들 이었던 요나단의 손자 ‘므비보셋’은 제외시켰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 앞에서 다윗과 요나단이.“나와 너 사이와, 나와 너의 후손 사이에 하나님이 영원히 계시리라”고 약속을 맺은 것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다윗 왕이 기브온 족속에게 내어준 사울왕의 후손은, 사울의 아들 두 명과, 사울의 외손자 다섯 명이었습니다. 사울의 정실부인은 ‘아히노암’ 단 한 명이었고, ‘아히노암’에게서 난 네 명의 아들 중 세 명은 길보아 산에서 사울 왕과 함께 전사(요나단, 말기수아, 아비나답)하였고, 나머지 한 명(므비보셋)도 반역자인 ‘레갑’과 ‘바아나’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여기서 내어 준 아들 두 명은, 사울의 첩이었던 ‘리스바’(아야의 딸)에게서 난 ‘알모니’와 ‘므비보셋’ 이었습니다. 그리고 외손자 다섯 명은, 사울의 큰 딸이었던 ‘메랍’이 낳은 아들들입니다. 메랍은 다윗과 결혼이 예정 되어 있었지만, 사울왕이 다윗을 속이는 바람에 므홀랏 사람 ‘아드리엘’과 결혼하여 다섯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그만 그 아들 다섯 모두를 기브온 사람에게 내주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사울왕의 어그러진 선택으로 첫째 딸의 아들들까지 죽임을 당하는 피의 보복을 당하게 됩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종국에는 이런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두렵습니다.
아무리 다윗 왕이 기브온 족속의 원한을 풀어주고, 약속을 회복시키려 했다고 해도, 자녀들을 내어주게 된 사울왕의 후손들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죽이는 방법도 나무에 매달아 죽였는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치욕중의 치욕으로 저주를 받아서 죽임을 당하는 경우였습니다. 사울 가문과 다윗 왕은, 오래 전에 다윗이 쫓김을 당할 시절부터 이미 원수 집안 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사울의 가족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들의 자녀들이 목매달려 형벌 당하는 것을 직접 보아야 하는 것은, 산 사람까지 피 말려 죽이는 끔찍한 일입니다. 이러한 선택만 놓고 본다면 다윗이 사울 자손을 내어 준 것은 지나쳐도 한참 지나친 처사입니다. 신명기 법에서도 조상이 잘못한 죄를 후손에게 물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신명기 24장 11절입니다. “아버지는 그 자식들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버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니 각 사람은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학자들은 다윗이 껄끄러운 정적들인 사울의 후손들을 기브온 족속을 핑계로 제거해 버렸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도 무리한 해석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언약의 회복이라는 차원에서는 원한을 푸는 것이 마땅하겠으나, 그렇다고 무작정 모든 요구를 다 그대로 다 들어주어 또 다른 피의 보복을 남기는 것이 과연 옳으냐 하는 것은 어렵고 난해한 문제입니다.
결국 사울왕의 아들 두 명, 손자 5명은 기브온 족속에게 넘겨져서 나무에 매달려 죽임을 당했고, 이를 슬퍼한 사울의 첩인 ‘리스바’가 “곡식 베기 시작할 때부터 하늘에서 비가 시체에 쏟아지기까지” 밤낮으로 슬퍼하며 굵은 베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리스바’가 시체 곁을 지키며 지낸 기간은 수개월이나 되었습니다. 그녀의 피 맺힌 ‘한’이 얼마나 처절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다윗은 ‘리스바’의 소식을 듣고 무언가 조치를 해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과 그의 맏아들 요나단의 뼈를 가져오게 해서, 나무에 매달린 일곱 명의 뼈를 수습해서, 사울왕의 아버지인 ‘기스’의 무덤이 있는 베냐민 지파의 땅 ‘셀라(지역명칭)’에 장사를 지내 줍니다. 비록 다윗 왕이 사울 집안과는 원수사이지만, 피로 인한 보복의 악순환은 자신의 대에서 회복으로 마무리 짓겠다는 화해의 행동을 보인 것입니다. 기브온 족속에게도, 사울 후손들에게도, 다 죽음의 슬픔이 있지만, 서로가 죽고 죽이는 상황이 한 번씩 휘몰아 쳤으니, 이제는 이 세대에서 피의 저주를 끊어내야 합니다. 또 다음에 피로 갚겠다고 나서면, 그때는 기근이 아니라 엄청난 재앙으로 모두 다 공멸하는 재앙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질 것입니다.
원한은 반드시 풀어주어야 합니다. 다윗이 취한 방법이 잔인한 것 같지만,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자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그의 선택이 결코 독단적이거나, 정적을 제거하려는 치졸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원한은 일 년 이년에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수십 년, 수 백 년이 걸릴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반드시 풀어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원한을 원한으로 풀어가려고 한다면, 원한의 덩어리는 커지고 커져서, 양방 모두에게 감당하지 못하는 짐이 될 것입니다. 원한의 피해자가 나일 수도, 원한의 당사자가 나 일수도 있습니다.
먼저 다윗과 같이 내 마음 안에 있는 원한의 덩어리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물어 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가르쳐 준 원인을 찾으셨다면, 그 원인을 없애기 위해 물리적인 방법이나, 과격적인 행동으로 해결하려 하거나, 이에는 이의 방법으로 반드시 갚아주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질대로 하면 다 폭력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자기 급한 대로 폭발하다가 더 큰 상처를 얻고 맙니다. 문제 해결에 앞서 미움과 증오의 마음을 먼저 제거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증오는 사람을 죽여야 끝이 납니다. 기브온 족속처럼 죽일 사람을 내 놓으라고 요구하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서로가 죽이고, 죽는 악순환의 고리가 나를 옭아 맬 것입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용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내 안의 증오와 미움을 주님이 주신 사랑의 마음으로 충분히 녹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윗이 장사를 지내주자,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장사 지내 줌으로 더 이상 원한이 지속되지 않고, 하나님이 기도와 예배를 받아주시는 회복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뜻입니다. 참으로 험난한 과정을 겪고 난 후에야 비로소 안정을 찾은 것 같습니다. 마음에 남아 있는 상처들은 비록 크고 오래 갈 지라도, 기브온 족속도, 사울의 후손들도, 다 하나님이 회복시켜 나갈 것입니다. 이야기의 시작과 과정은 참으로 험악했지만 해피 엔딩 같지 않은 해피 엔딩으로 이야기는 끝이 났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두 가지의 메시지, “약속은 지키고, 원한은 풀어라”의 실제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우리 자신들 내면에는 한 가지씩이라도 각자 지키지 못한 약속들과, 풀어 주지 못하고 있는 원한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먼저 내 자신을 위해서 약속을 지키고 원한을 푸십시오. 그리고 내 후손들을 위해서 약속을 지키고, 원한을 푸십시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혈과 육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모든 약속, 모든 원한 다 풀고도 능히 남습니다. 그렇게 못하는 것은 아직 내가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약속과 원한 때문에, 곤란한 선택을 하여야 하는 경우가 이어지지 않도록, 지키고 또 지키고, 풀어주고 또 풀어주는 넉넉한 사랑의 마음으로 복된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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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통해서 약속은 지키고, 원한은 풀어주라는 깨달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나만이 아는 약속 불이행, 나만이 숨기고 있는 원한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내어 놓고, 해결 받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이 풍성하게 주신 사랑의 마음으로 약속은 지키고, 원한은 풀어가면서, 화목의 관계를 이루어 가는 우리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약속과 소망을 주시고, 우리와 원수 되었던 모든 죄를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서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출처: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김민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