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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7: 26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 히 7: 28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
히 7: 26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하시고 악이 없으시고 더러움이 없으시고 죄인들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분이시다.
그는 자신을 위하여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으셨고, 단번에 자신을 드려 우리를 위한 속죄 사역을 이루셨고 의(義)를 이루셨다.
1]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이러한 대제사장'이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영원하시며(24 절), 자기를 의지하는 자들은 온전히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25 절), 항상 살아서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께 중재할 수 있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새 언약에 합당한 제사장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모든 길을 마련해 놓으신 분이다.
저자는 영원한 구원의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신 대제사장 그리스도에 대해 다섯 가지로 묘사한다. 이 다섯 가지는 그리스도께서 새 언약의 대제사장으로 지녀야 할 성품과 지위를 나타낸다(Hauck).
2] 거룩하고
이에 해당하는 '호시오스'는 70인 역에서 '충실한'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시 12: 1 -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지상 생활 가운데서 보여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나타낸다(5:7,8).
3] 악이 없고
이에 해당하는 '아카코스'는 '교활하지 않은', '순수한'이라는 의미로 예수께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순수하셨으며 어떠한 악과도 접촉하지 않으셨음을 시사한다(Moffatt, Grundmann, Bruce).
4] 더러움이 없고
이의 '아마안토스'는 '더럽혀지지 않은', '순결한'이라는 뜻으로 제의적 순결성을 나타낸다(마카비 2서 15:34).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제의 의식을 통해서 외적으로 더럽혀진 자신을 깨끗이 하였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전혀 더럽혀지지 않은 온전한 도덕적 순결성을 소유하셨다(Morris).
5]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이것은 앞서 언급한 그리스도의 세 가지 성품과 연결된다.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도덕적으로 죄인들과 분리되어 있어 근본적으로 죄인인 인류와는 다른 존재이시다(Buchanan, Peterson).
6]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하늘보다 높이'(휩셀로테로스 톤 우라논)은 하나님의 보좌를 가리키는 표현이다(Lane).
예수께서는 레위 계통의 제사장과는 달리 승천하셔서(4: 14) 곧 바로 하나님 존전에 나아가신 대제사장으로서 완전한 중재자가 되신다(Morris).
히 7: 27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이 완전하기 때문에 더 이상 다른 제사가 필요 없음을 나타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단번에 이루신 의(義)는 완전한 의이다.
1]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들은 속죄일에 다른 사람들의 죄를 위해 속죄 제사를 드리기에 앞서 항상 자기 죄를 위한 속죄 제사를 드린다(5: 3)
* 레 4: 3-12 - ③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의 허물이 되었으면 그가 범한 죄로 말미암아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 ④ 그 수송아지를 회막 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수송아지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⑤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 ⑥ 그 제사장이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곧 성소의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⑦ 제사장은 또 그 피를 여호와 앞 곧 회막 안 향단 뿔들에 바르고 그 송아지의 피 전부를 회막 문 앞 번제단 밑에 쏟을 것이며 ⑧ 또 그 속죄제물이 된 수송아지의 모든 기름을 떼어낼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⑨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쪽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떼어내되 ⑩ 화목제 제물의 소에게서 떼어냄 같이 할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번제단 위에서 불사를 것이며 ⑪ 그 수송아지의 가죽과 그 모든 고기와 그것의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과 ⑫ 똥 곧 그 송아지의 전체를 진영 바깥 재 버리는 곳인 정결한 곳으로 가져다가 불로 나무 위에서 사르되 곧 재 버리는 곳에서 불사를지니라.
* 레 16: 6-10 - ⑥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집안을 위하여 속죄하고 ⑦ 또 그 두 염소를 가지고 회막 문 여호와 앞에 두고 ⑧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⑨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⑩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
왜냐하면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도 역시 불안전한 인간으로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번 자신과 백성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희생 제사를 드렸으나 저자는 본 절에서 '날마다'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저자 자신도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속죄일에 희생 제사를 드린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드리는 것으로 표현한 이유는(9: 7, 25. 10; 1) 대제사장이 제사를 매일 드렸다는 의미보다는 그가 부주의로 죄를 범했을 때 매일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할 필요가 있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Bruce).
그러나 예수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시므로 자신의 죄를 위하여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으실 뿐만 아니라(4: 15)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반복적으로 제사를 드리실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가 드린 한 번의 제사는 하나님의 독생자 되신 자신의 몸을 제물로 바친 완전한 제사였기 때문이다.
2]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저자는 그리스도가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사실을 그의 대제사장직의 핵심적인 기능으로 제사한다(Zimmermann).
죄 없으신 완전한 대제사장인 그리스도가 완전한 자신을 제물로 드린 그의 속죄 사역은 일시적인 레위 계통 제사장들의 속제 사역과는 달리 한 번으로 영구화(永久化) 될 수 있었다.
저자는 본 절을 통해서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들의 불완전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인 자신을 제물로 바친 그리스도의 속죄의 완전성을 설명하고 있다.
히 7: 28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 -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
온전하게 되었다는 말은 속죄사역을 온전히 이루셨다는 뜻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구주와 완전한 중보자가 되셨다.
그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루신 속죄사역은 완전하고 영원하였다.
저자는 본장을 결론지으면서 사람인 제사장과 온전하신 제사장이신 그리스도와 세 가지 차이점을 제시한다.
1] 율법과 맹세의 말씀.
옛 언약에 속한 레위 제사장들은 '율법'에 근거하여 제사장직을 물려받았으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맹세하셔서 약속하신 말씀에 근거하여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영원한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신실한 맹세의 약속을 성취하였으며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다.
2] 사람과 아들.
옛 언약의 제사장들은 유한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으로서 반복적이고 일시적인 역할을 하였으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영원히 살아계셔서 온전한 중재 사역을 행하셨다.
3] 약점을 가진 자와 온전케 되신 자.
옛 언약의 제사장은 약점을 가져서 불완전한 사역을 행할 수 밖에 없었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온전하셔서 지상 생활의 고난 가운데서도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모든 믿는 사람의 구원의 근거가 되셨다(2: 10. 5: 8,9)
왜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합당한 것인가?(26-28 절)
(1) 레위인 대제사장은 약점을 지닌 사람들로 그들 스스로가 죄 사함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대제사장 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죄 없으신 온전한 사람으로서(4: 15)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온전한 중보자가 될 수 있었다.
* 딤전 2: 5 -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2) 레위인 대제사장들은 그들이 드리는 짐승의 희생 제사는 불완전하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온전한 희생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렸다.
(3) 레위인 대제사장들은 계속 반복되는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단번에 드려진 온전한 희생 제사로서(9: 26. 10: 10)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 시켰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드린 희생 제사는 영원한 것이요 온전했다. 그래서 우리는 중보자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공로로 하나님께 나갈 수 있게 되었다.
* 요 14: 6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히브리서 7장의 진리와 교훈을 정리하자.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제사장이시다.
구약시대 아브라함 때에 나타났던 멜기세덱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였다.
멜기세덱이라는 말은 의(義)의 왕이라는 뜻이며 그는 살렘 왕으로 평안의 왕이라는 뜻이다. 그것들은 다 메시아의 명칭이다.
멜기세덱은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으며 시작한 날이나 죽은 날도 없었다.
메시아께서는 그의 신성(神性)에 있어서 아버지나 어머니가 없으시며 족보도 없으시며 시작한 날이나 죽은 날도 없으시다. 그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시며 지금도 살아계셔서 온 세상을 통치하신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받았고 아브라함을 축복했다.
그것은 그가 아브라함의 후손인 레위 지파의 아론의 자손들인 대제사장들보다 더 높음을 보인다. 이런 모든 점에서 그는 메시아의 예표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멜기세덱 같은 인물이시다. 그는 의의 왕이시며 평안의 왕이시며 시작도 끝도 없으신 신적 존재이시다. 그는 구약시대의 제사장들보다, 또 율법 제도보다 더 높으시다. 우리는 그를 믿고 사랑하고 섬긴다.
둘째, 구약의 율법 제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폐지되었다.
구약시대의 제사장 직분과 율법 제도가 사람에게 도덕적 완전함 즉 의(義)를 주지 못했다.
그것은 단지 장차 오실 메시아께서 이루실 의에 대한 예표이었다.
성경이 구약시대의 제사장과 다른 멜기세덱 같은 제사장에 대해 예언한 것은 메시아의 오심으로 구약의 제사장 제도가 변경될 것을 보이며 그것은 또한 구약의 율법 제도의 폐지를 암시한 것이었다.
멜기세덱과 같은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써 이제 구약의 제사장 직분과 율법 제도가 폐지되었다.
우리는 구약과 신약의 차이를 알아야 하고 구약의 율법 제도의 폐지를 이해해야 한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더 좋은 소망,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신 영원하신 대제사장이시다.
그는 거룩하시고 악이 없으시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단번에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다.
그는 실제로 속죄사역을 성취하셨고 우리의 죄를 사하셨고 우리에게 영원한 의가 되셨고 거룩함이 되셨다.
그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우리에게 더 좋은 소망이 되셨고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
또 그는 항상 살아계셔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고 중보의 사역을 하신다. 그는 그를 믿는 자들을 영원히,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며 그의 사역을 감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