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의 정의 22
- 안개 -
溥根 / 최기복
사랑은 보이지 않는 것
사랑은 보여지지 않는 것
먼바다를 향해 노를 저어 가다
암초에 부딪쳐 난파를 당하면
긴 한숨과 함께 노를 바다에 던진다
자욱한 안개가 눈을 가리고
체념의 핏줄이 멈추어지는 순간
안식은 눈물이 된다
내 젊음의 노트에
그려져 있던 긴 머리의 소녀는
색 바랜 기억의 설렘이었을 뿐
눈앞에는 온통 안개뿐이다
이 안개가 걷히면
새벽은 다시 올 수 있으려나
가버린 사랑은 저 혼자 자맥질하며
안갯속을 헤맨다
안개만도 못한
안개 같은 사랑
2. 사랑의 정의 23
- 꿈속의 사랑 -
溥根 / 최기복
살아 있음에 감사해야 할 이유를 찾았다
인지의 주체가 사람이라는 이유로 하여
꿈을 꿀 수가 있고
꿈속에서 만난 호박 마차를 탄
유리공주는 사랑을 고백한다
혼곤한 잠에서 깨어나
자리끼로 허기를 채우고 다시 잠을 청한다
유리공주 대신
샤일록이 나타나 심장을 도려 달라고 성화다
차라리 깨지나 말 것을
꿈속의 사랑도 사랑인지라
나는 꿈을 꾸고 산다
천사보다 만사보다
훨씬 아름다운 그녀는
내 꿈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3. 사랑의 정의 24
溥根 / 최기복
꽃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꽃이 되지 못했다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온
사랑꾼
사랑을 사랑한 것이 죄가 된 사연
혈맥을 타고 올라오는 뜨거운 눈물은
회한의 시간을 번아웃 한다
꽃은 져야만 꽃이고
사랑은 맺어져야 사랑이어늘
꽃은 지화(紙花)가 되어
표정을 잃었고
사랑은 떠돌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길을 잃었다
아! 어쩌란 말이냐
바람을 타고 흐르는 미세먼지만도 못한
내 사랑을
4. 사랑의 정의 26
溥根 / 최기복
외롭다는 이유만으로
학대한 세월 앞에
경건하게 무릎을 꿇는다
신(神)의 존재를 부정하다
신(神)에게 버림받은 불신의 믿음이
신을 능멸하고
세상의 오욕에 찌든
육신을 향해 침을 뱉어도
카타르시스의 제물이 될 수밖에 없는
나는 에덴동산의 버려진 미아
누구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속죄의 비밀을 토설하는 것인가
길은 하나밖에 없는데
길은 보이지 않는다
물로 채워진 위장이 잔기침을 해도
후련할 수 없는 통증
신(神)이시여!
내 사랑 찾아주오
5. 사랑의 정의 27
- 꼭두 첫새벽에 -
溥根 / 최기복
사랑한다는 것은
새벽에 달기장에서 닭이 홰치는 소리다
홰치는 소리에
맥을 놓고 있다 화들짝 놀라고
식은땀 흘리다 숨길이 끊기기도 한다
고요가 멍이 되고
천둥이 피멍이 되기도 하지만
울림은 이명이 되어 헛것이 보인다
어디까지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왜 가야 하는지
그 길이 길인지를 모르는
눈빛 맑은 천치가 되어
새벽을 맞이한다
넋을 놓고 사는 것이 사랑일까
사랑한다는 것은
새벽닭이 달기장에서 아침잠을 잃고
목놓아 부르는 노래다
듣는 이야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