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빈 들에 당신의 영광이
박경선(안젤라 )대곡성당
김대건 신부님!
요 며칠 사이, 세속의 삶이 제 뜻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방황 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차, ‘빛’ 잡지사에서 청탁받아둔 “내 마음의 책 한 권” 숙제가 생각났습니다. 책장에서 '이 빈 들에 당신의 영광이'책 을 빼어들며 신부님에게서 위로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 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제게, 제가 얼마나 옹졸한 생각으로 살 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하십니다. 그러면서 스물한 번째 편지 에서 마음을 비우게 하십니다.
“세상은 온갖 일이 막비주명(莫非主命)이요. 막비주상주벌(莫非 主賞罰)이라. 고로 이런 군난도 역시 천주의 허락하신 바니 너희 감수 인내하여 위주(爲主)하고 오직 주께 슬피 빌어 빨리 평안함을 주시기를 기다리라.”
그 말씀에 위로를 얻으며 신부님의 생애를 돌아봅니다.
제가 처음 '이 빈 들에 당신의 영광이' 라는 책에서 신부님의 편지를 읽었을 때는 신부님에 대한 전기를 쓰려고 자료를 모으던 중이었습니다. 인물사를 쓰려면, 시대 상황부터 먼저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에 역사 비평사에서 낸 ‘한국 역사’와 창작과 비평사에서 낸 ‘한국 근대사’와 가톨릭 대학 출판부에서 낸 ‘한국 천주 교회사’부터 읽었습니다. 불교가 우리 나라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이차돈의 순교가 있었듯이 천주교를 위한 김대건 신부님, 당신의 순교 또한 이 땅에 천주교를 퍼뜨릴 큰 씨앗으로 거름이 되었습니다.
시대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한 뒤, 신구문화사에서 낸 ‘한국의 인간상’과 시화출판사에서 낸 ‘역대 인물 한국사 6’권을 읽으며 당신의 삶을 조명할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별로 잡혀오는 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낸 책 3권, 즉 ‘성 김대건 신부의 활동과 업적’ ‘성 김대건 신부의 체포와 선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유적 현황’ 을 읽으며 신부님의 삶이 짧고 굵게 살다간 부름 받은 삶이었음을 가슴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본래 전기서를 쓰려면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냉철하게 머리로 생각해야겠기에 당신을 가슴에 담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며 냉철하게 당신의 행적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읽을수록 당신은 머리가 아닌, 가슴에 담겨져왔습니다.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겨우 25세 나이로 박해 속에 살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당신의 짧은 생이 너무 억울하였습니다.
1846년 9월 15일<일성록>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군문효수(죄인의 목을 베어 군대의 문에 매어 다는)에 처해질 때 「묘당 회의」에서 거론된 당신의 죄목은 ‘사악한 가르침에 물들었고 외국인과 통해 조국을 배반한 범죄를 범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즈음 세상에서 그런 것이 죄목이라면 개그콘서트에서나 나올 법한 죄목이었지만 신부님 당신은 그런 죄목으로 목이 매달리며서 외쳤습니다.
“나의 마지막 때가 왔습니다. 여러분 내가 외국 사람과 통한 것은 오직 종교를 위해서입니다. 나는 하느님을 위해 죽지만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도 죽은 뒤에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면 천주교를 믿으십시오.”
신부님의 신심이 당장은 당신을 죽였지만, 천주교사에 빛나는 성자로 영원히 살게 하셨음을 기억합니다.
더욱이, 가톨릭 대학 출판부에서 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서한’과 함께 바오로딸에서 낸 이 책 '이 빈 들에 당신의 영광이'를 함께 읽을 때는 신부님, 편지 속에 담긴 당신의 음성이 더 또렷이 들려 제 가슴을 후려쳤습니다.
1846년 8월 26일 감옥에서 쓴 스무 번째 편지에 당신의 죽음 후 남게 될 어머니를 걱정하는 이 땅의 아들로서의 마음을 이렇게 남겨두셨지요.
“주교님, 저의 어머니 우르술라를 부탁드립니다. 저의 어머니는 10년 동안 떨어져 있던 아들을 불과 며칠 동안만 만나보았을 뿐인데 또다시 갑작스럽게 잃고 말았습니다. 슬픔에 잠긴 저의 어머니를 잘 위로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죽음 앞에서 어머니를 부탁하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마음이 이 땅의 어머니들 가슴을 후려칩니다. 세상 어느 어머니가 아들의 죽음 앞에 담담할 수 있겠습니까?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는 예수를 따라가던 성모 마리아의 마음도 이 같지 않았을까요?
너무나 참담한 죽음을 맞게 했지만, 주님은 늘 항상 함께해주신 것 같습니다. 13개월 동안 사제 생활을 하시며 2개월은 조선에 입국하기 위해 황해바다에서 보냈고, 4개월은 감옥에서 지내다 순교하기까지 그리고 순교 후에도 함께 하셨음을 저는 칡넝쿨을 통해 느낍니다. 당신의 시체를 묻은 뒤 55년이 지난 뒤에도 칡넝쿨이 당신의 시체를 삥 둘러 감아줘서 뼈가 하나도 흩어지지 않은 걸 보면, 하느님이 칡넝쿨로 관을 감싸주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주님 마음 그러시기에
‘갸륵한 목자. 안드레아! 하늘의 영광과 신자들의 영생을 위하여 살고 일하다 죽은 그대를 축복하노라.”
하시며 1925년 7월 5일, 신부님 당신을 복자로 선포하시며 천주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성자로 받들어 모시게 하셨습니다.
김대건 신부님!
당신의 생애를 묵상하면, 열매를 위해 꽃자리를 비우는 한 그루 나무처럼, 숭고한 죽음으로
뭍 신자들의 믿음을 보듬어 주시는 당신의 삶이 제 영혼을 맑게 정화시켜 줍니다.
오늘도 내 마음 곤궁하여 신부님의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이 빈 들에 당신의 영광이 가득하길 기도드립니다. (2010.1.5)
필자 소개:
박경선(안젤라)은 92년에 대덕성당에서 영세를 받고 요즈음은 대곡성당 주일 미사 새벽반 독서당번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껏 18권의 동화책을 출간하였고 지적재산권인 인세로 여러 곳에 나누고 있습니다. 김대건 전기는 역사학자 35인이 추천한 역사 인물 동화 시리즈를 기획한 출판사 파랑새의 청탁을 받고 2003년에 출간하기 까지 5년간 공부를 해서 쓴 책입니다. ‘이 빈 들에 당신의 영광이’는 그때부터 즐겨 읽는 내 마음의 책 한권이 되었습니다.
현재는 경대사대부설초등학교 교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