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2004-02
말 죽 거 리 잔 혹 사
박병민목사(새터공동체)
그제는 처의 생일이었고, 어제는 우리가 결혼하고 십 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래서 같이 하자는 것이, 그간에 함께 가본 일이 한 두 차례 밖에는 없는 영화관을 찾기로 하였다. 영화를 보자면, 밑에 글로 풀어 이야기해주는 외국 영화는 눈이 어두워 보기가 어려우니, 우리영화보기를 좋아한다. 그곳에 가서보니 광고판에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보고있다는 실미도라는 제목도 있었으나 그것보다는 더 정(靜)적이고 토속적이어 보이는 말죽거리라는 말이 좋았다. 시야(視野)가 좁아서 그런지 동적인 영화보다는 정적인 영화에 마음이 많이 가는 것 같다. 처도 그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제목에 마음이 다다르는 것 같았다. 서울하면 가보지는 않았으나 왕십리, 모래내, 구파발, 말죽거리 하는 그런 동네의 이름이 좋다. 서울의 양재동을 이십여 년 전만 하여도 말죽거리라고 사람들은 그렇게 일컬었단다. 그 연유는 조선시대에 지방과 서울을 오가는 여행자들이 타고 온 말에게 죽을 끓여 먹이고 자신도 쉬어 갔던 곳이라서 그렇게 불려졌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왕따”라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서 자주 오르내렸다. 그러면서 요즈음에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무슨무슨 “짱”이라는 말이 유행을 한다. 그 말을 좀 빌려 써보려 한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는 1978년 실제로 말죽거리에서 살았던 영화를 만든 이가 그 해의 봄을 회상한다. 영화에서 현수는 강남의 정문고로 전학을 온다. 정문고는 선생폭력과 학생들간 세력다툼으로 악명 높은 문제학교. 이소룡 열혈팬이라는 이유로 금새 죽고 못사는 친구가 된 모범생 현수와 요즈음 말로 학교짱 우식..... 하교 길 버스 안에서 올리비아 핫세를 꼭 닮은 은주를 보고 동시에 반하는 현수와 우식. 하지만, 은주는 다정한 현수보다 남자다운 우식에게 빠져든다. 한편, 학교짱 자리를 놓고 선도부장 종훈과 한 판 붙은 우식. 종훈은 비열한 방법으로 우식을 이기고, 우식은 그 길로 학교를 떠난다. 우식 없는 틈을 탄 종훈의 현수에 대한 괴롭힘, 열반으로의 강등, 더해 가는 선생들의 폭력, 거기다 은주마저 결국 우식을 택하자 현수의 분노는 폭발한다. 현수는 밤새 연습한 쌍절봉을 들고 학교 옥상으로 향하는데... 그리고 여릴 듯한 현수가 비열하고 강인하게만 여겨지던 종훈을 그 곳에서 넘어뜨리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나에게 그 영화는 생각처럼 정적인 영화는 되지 못하였다. 아니 그 영화는 시종 난투(亂鬪) 장면만을 보여주는 활극(活劇)이었다. 영화는 바로 1978년 유신말기, 개발붐에 들어선 강남의 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군사독재 사회의 폭압성은 학교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영화를 보면서 그 속의 사람에게 매료 내지 매혹되는 것이 아니라, 젊은 학생들의 무도함을 내내 볼 수밖에는 없었다. 학교는 오직 성적과 그들의 배경만으로 학생을 판단, 가혹한 폭력을 일상적으로 행사하기도 했다. 개발과 성장 중심의 이념이 학교를 지배했던 지난 50년 동안 학생들은 힘의 논리에 의존한 생존경쟁을 겪어내야만 했다. 말죽거리 잔혹사는 그 동안 외면되어 왔던 우리들이 겪었던 학교의 진실, 그리고 그 안에 갇힌 십대들의 일상과 일탈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것 같다. 그런 모습 사이사이에서 외면과 소외를 보았다. 일본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만큼 그곳에서는 팽배한 집단따돌림 현상인 “이즈메”가 연상되었다. 우리에게는 “왕따”의 현실로 아이들의 학교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고들 말한다. 그것은 더욱더 공동체성의 실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공동체 이야기
그
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사랑이다. 그리고 성서는 그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단점을 이야기해주는 것보다, 장점을 말하여 주는 것이 더욱 좋다. 그는 우리와 같이 이곳에서 두 달이 지나고 더 몇 일 동안 있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여러 날을 그곳에서 보내다가 다시 우리에게로 왔다. 나이 스물 아홉의 그는 나에게 순진한 것을 더하여 아니 아이처럼 천진 무구함을 가져다 주었다. 우리와 같이 있으면서 그는 예전에 병원에서 접하게된 담배를 떨쳐 내지를 못하여 괴로워했다. 그는 매사에 우리가 귀찮게 여기리만큼 물어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어느 봄날에 돋아나서 살아가기를 막 시작하는 새순 같았다. 그러면서 자기 마음가짐대로 살아가기에 힘들어하는 스스로의 나약함을 괴로워하였다. 그는 병원 안에서만 생활을 하여서였든지, 어느 때에는 조금만 움직여도 가쁜 숨을 몰아쉬기도 하였다. 그런 중에도 체구가 큰 그가 하얀 벙거지를 쓰고, 길을 따라 아래 마을에 다녀오는 그 모습이 좋아 보였다. 이곳에서는 그에게 사람살이를 조금이나마 배우게 할 요량으로 먹고 난 그릇의 뒷정리를 부탁하였다. 그는 가위 혹은 칼을 가지고 종이를 자르거나 오려서 다시 붙였다, 떼었다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 모습은 그의 펼쳐지는 삶을 마치 모았다가 흩었다가 하는 들살이 같이도 보였다.
이전에 우리와 함께 계셨던 김 선생님께서 몇 일 전에 전화를 주셨다. 읍내를 다녀와 보니 그 분께서 집에 와 계셨다. 저녁 무렵에 그 분과 함께 우리들 넷은 바람을 맞으며 길을 걸었다. 길 중에서 그 분은 그런 말씀을 하셨다. 떠돌아다니며 이 집 저 집에서 얻어먹고 지낸다는 동가식 서가숙(東家食西家宿)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권세는 오래 가지 못한다는 권불십년(權不十年)을 말하셨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성서를 찾아보았다. “나그네로 거리에서 자게 하지 아니하고 내가 행인에게 내 문을 열어 주었었노라”(욥기 31:32)
공 동 체 소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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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터 공동체 가족
이현주
최성재
최영애
지명수
정무래
박종만
어귀녀
박병민.진선미.한솔.진솔
* 금산 제원적십자사는 금산밀알의집 새터공동체 그리고 이웃 장애인 분들과 함께 갖는 목요일 모임을 1월 29일에는 군북교회가 함께해주셔서 목욕과 점심식사를 하였으며, 2월 5일에는 유상현 회장님 댁에서, 12일에는 제원면 신안사에서 각각 모임을 가졌습니다. 군북교회(한성국 목사)에서 같이하여주셨습니다.
* 04년 2월 16일에 제원교회 조종국 목사님과 논산의 대둔산 수락랜드의 도움으로 공동체 식구들이 함께 목욕을 하였습니다.
☻ 기도하며 함께 하신 분들
주식회사EG(이광형).금산군청(3인).그리스도의집.금산로타리클럽(곽춘상외4인)튼튼영어대전동구(연월순외12인).금산경찰서(장명수외3인).성대초등학교30회동창회.충남도청(2인).만나교회(전남홍외11인).동산베이커리.어귀녀.정무래.최영애.최태준.세광교회.최명진.채윤기(박현실).지명수.김기홍.대덕교회(이중삼.김동춘).진명구.최선희.정현진.김철우외1인.부여교회청년부(김중권외5인).박종만금산밀알의집(박세아외1인).대전노회.남일중앙교회(10인).김용순.대덕교회.찬미교회(이상은).쌍샘자연교회(백영기).대전일보(김세원외2인).김종택.옥천동부교회신건태.대전제일교회.추부제일교회.최선희
(호칭은생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