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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선민의 이름 궁합>의 줄거리:
궁합이란 사주를 근거로 부부로서의 좋고 나쁨을 알아보는 점입니다. 그런데 젊은이들 사이에 재미로 보는 점으로서 이름궁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궁합마케팅으로 까지 발전해서 상품의 매출에 지대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선민에게도 이름궁합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야곱이 열한 아들을 낳게 됩니다. 그런데 이름 하나하나마다 모두 그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점을 보는 것과는 다른 의미에서 선민에게 있어서도 역시 이름궁합은 참 중요합니다.
선민의 이름 궁합
(창29:31~30:24)
31.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32.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33.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34.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35.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내용으로 <선민의 이름 궁합>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눕니다.
‘선민의 이름 궁합’
원래 궁합이라는 것은 혼인 할 남녀의 태어난 년, 월, 시의 사주를 기본으로 해서, 다섯 개의 별인 태양, 목성, 수성, 금성, 토성의 오행에 맞추어 결론을 끌어내서 두 남녀가 잘 맞느냐 안 맞느냐를 보는 것입니다.
이 궁합에서 힌트를 얻어 젊은이들이 연애를 할 때에 재미 삼아 보는 궁합이 바로 이름 궁합입니다.
예를 들어 김 태희와 장 동건을 남자와 여자 대표로 뽑아봅니다.
이름에서 자음과 모음을 다 분해해서 각 자음과 모음마다 해당되는 숫자를 더하면 총 값이 나올 것 아닙니까? 그래서 김 태희라는 이름을 분해해서 숫자로 더한 수와 장 동건이라는 이름을 분해해서 숫자로 더한 수를 합쳐서 보는 것입니다. 그게 표가 있어서 ㅎ으로 갈수록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고 반복돼요. 무슨 근거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결론적으로 두 사람의 이름을 숫자로 환산해서 합친 것이 40이 넘으면 40을 뺍니다. 40이 안 되면 그냥 그대로 보는데 1부터 40까지 그 궁합의 결론이 다 나와 있어요.
둘이 합해서 41이 나왔다면 40을 빼고 1이 남는데, 그 궁합의 결론은 ‘이별하기 쉽다’ 4가 남으면 ‘진실한 사랑이다’ 5번이면 ‘절교’ 17번은 ‘잠시만 좋은 사이’ 그리고 40번은 ‘아주 좋은 사랑’ 이렇습니다. 그런데 김 태희와 장 동건을 합치면 47이 나온답니다. 40을 빼면 7이 남으니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입니다. 장 동건 씨는 이미 고 소영 씨하고 결혼해서 잘 살고 있지만 재미로 보는 것입니다.
하여간 이런 식으로 재미로 보는 이름 궁합이 웃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심각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영역이 있어요.
바로 산업 분야, 특히 마케팅 분야입니다. 궁합 마케팅이라는 것이 생겨났습니다.
예를 들면 롯데 제과에서 오래전에 ‘니트’라는 이름의 초콜릿을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니트, 니트 하다 보니 롯데 제과에서 옷을 파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측면이 있어서, 이름을 ‘샤샤’로 바꾸었더니 매출이 1년에 4배로 늘어나고 그 초콜릿 하나만 가지고도 8억 이상의 매출이 생겼다는 거예요. 그리고 재미를 봐서 ‘달래바’라는 아이스크림이 나왔는데 궁합을 맞춘다고 ‘누크바’로 바꿨더니 월 20억으로 매출이 올랐습니다.
동양 제과도 마찬가지예요. 초콜릿 이름을 ‘님에게’라고 지었는데 설문조사를 해보니 그 이름이 너무 평범해서 영어 ‘To you'로 바꾸었더니 매출이 10배로 오르더랍니다.
그리고 제일제당에서 ‘고기순대’가 나왔는데 이름 자체가 징그러운 어감이 있어서 ‘동그랑땡’으로 바꾸었습니다. 아직도 잘 나오고 명절 때에 바쁘면 동그랑땡 사다가 전 부치고 그러지 않습니까? 이게 바로 궁합 마케팅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름 궁합이라는 것이 선민에게 아주 중요합니다. 너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대로 야곱이 아내를 넷을 얻었습니다.
한 집안에서 자매를 아내로 맞이하는 중혼은 출애굽기에 가서 모세의 율법이 전해지며 금지되는 것들이고 축첩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죠.
아담과 하와가 만난 것처럼 1부 1처가 하나님의 뜻인데, 선민의 집안임에도 불구하고 하여간 이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네 명의 아내가 무려 11 아들을 줄줄이 낳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라헬이 베냐민을 낳다가 난산으로 죽습니다.
아브라함이 자손의 약속을 받은 지 25년 만인 100세에, 사라가 90세 때에 이삭 하나를 얻은 것에 비하면 아들을 낳은 것이 아니라 줄줄 흘리는 것 같아요.
그런데 눈에 들어오는 점이 무엇이냐?
레아도 그렇고 라헬도 그렇고 그 아들의 이름을 자기들이 짓습니다.
이삭을 낳을 때에는 아브라함이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이 집안은 아내가 많으니까 다 일임을 했는지, 자식의 이름을 아내들이 짓습니다. 이름을 지을 때마다 11명의 아들 모두에게서 여호와의 이름이 거명이 됩니다.
두 번의 예외가 있지만, 그 두 번의 예외에서도 여호와의 이름을 잊은 상태에서 지은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정확하게 명시적으로는 9번이 거명이 되는데 라헬이 자기의 여종 빌하를 야곱에게 들여보내고 아기를 낳았을 때에 여호와의 이름이 거명되지 않는데 원어대로 직역을 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거명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민들에게 있어서 이름이 어떤 의미를 지니느냐?
하나님의 이름을 거명하는 것에서 알 수 있지만, 태어난 이유와 존재의 목적, 의미 같은 것들을 담아서 이름을 짓습니다.
우리는 아기를 낳으면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됐으면 좋겠다는 우리의 소망을 이름에 담지 않습니까?
그런데 선민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 아이가 태어난 이유와 존재 의미, 목적 같은 것들을 담아서 이름을 짓게 됩니다.
궁합 마케팅에서는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많이 살 수 있겠는가를 염두에 두고 이름을 바꾸어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기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기에 이 아이가 태어났겠는가를 염두에 두고 이름을 지어가는 거예요. 이게 이름 궁합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비유적인 의미로 궁합 마케팅이나 젊은이들 사이에서 재미로 보는 이름 궁합처럼 이름이 그렇게 지어진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아이들의 이름을 짓는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하나도 선민 같은 모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지금 왜 아이를 낳고 있느냐?
레아가 언니이고 라헬이 동생인데 남편을 가운데 두고 사랑싸움을 하면서, 라헬이 사랑을 받고 있으니 레아가 아이를 낳는 모든 이유는 남편의 사랑을 빼앗아오기 위해서 아이를 낳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빼앗아오기 위한 자기의 목적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다는 그런 의도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거명합니다.
라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는 아기를 못 낳으니까 야곱에게 강짜를 부립니다.
30:2절에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태를 막은 것을 나보고 어떻게 하란 말이냐?’
라헬이 여종인 빌하를 들여보냅니다. 빌하를 들여보내서 아기를 낳으니까 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언니와의 경쟁에서 나를 이기게 하셨다고 합니다. 이긴 것도 아니죠, 언니는 이미 넷을 낳지 않았습니까?
전부 이런 식으로 자매지간의 경쟁과 질투심에 의해서 아기를 낳으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얼마나 동조해 주시냐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거명하며 이름을 지어댑니다.
특히 르우벤이 들에 나가서 합환채를 가지고 오는데 그게 최음제라고 해요. 그걸 먹으면 사랑하고 싶어지는 약효가 있는 것인데, 아이를 못 낳거나 그럴 때에 먹으면 도움이 될까 해서 라헬이 합환채를 달라고 하는데 언니의 아들인 르우벤이 못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라헬과 레아가 흥정을 합니다. 합환채를 주면 야곱이 왔을 때 언니한테로 보내겠다고 합니다. 거래가 성사가 되어서 또 아들을 낳습니다. 이건 뭐 선민의 집안 꼴이 남편과 잠자리를 위해서 거래를 합니다.
그리고 합환채를 팔아서 레아가 또 아기를 낳으면서 뭐라고 하나님의 이름을 거명하느냐?
여종 실바를 남편에게 들여보내서 아들을 낳았는데 하나님께서 그 값을 내게 지불해 주셨다고 합니다. 자기의 종 실바를 남편에게 들여보낸 것이 잘한 일이라서, 그 잘한 일에 대한 값을 쳐주셔서 하나님께서 아기를 주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명하기는 하는데 엉망진창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는 십계명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라고 하나님의 계명을 전달합니다.
선민의 이름 궁합에서 진짜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라헬과 레아가 서로 경쟁하고 갈등하고 싸우는 와중에 하나님이 내편을 들어주셨다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거명하면 안 되는 거예요.
선민의 이름 궁합이 정말로 중요한 것은 내 이름이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변하고, 아니면 내가 낳은 자식의 이름을 뭐라고 짓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더 먼저 중요한 이름 궁합은 하나님의 이름과 선민 한 사람의 마음이 맞아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이 보여주는 것은 지금 선민을 대표하는 12명의 아들이 태어나서 12지파 가 생겨나는 가장 중요한 대목입니다.
그런데 선민의 울타리 안에 들어온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선민이 아닌 사람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데 하나님의 이름만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과 그 하나님의 이름이 전혀 궁합이 맞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민들이 아닙니다.
선민이 아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사람들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여호와의 이름만 알려주신 상태입니다. 마음 상태는 선민이 아닌 사람과 똑같은 상태예요.
그런 상태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있고, 이제 여호와의 이름에 맞는 마음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 선민이라는 것입니다. 선민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대단하게 다르게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에 맞춰진 마음으로 바뀌는 것, 이것이 바로 선민의 이름 궁합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이름에 맞춰진 마음이 어떤 마음입니까?
그것을 아브라함이 모범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12장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 땅에 도착했을 때에 서쪽에는 벧엘이고 동쪽은 아이가 있는 곳에 장막을 치고, 여호와를 위해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려면 단을 쌓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않고 거룩하게 부르려면 단을 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쪽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벧엘이 있고, 한쪽은 폐허라는 뜻의 아이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여호와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것입니까?
원래 하나님은 하늘에 계십니다.
주님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말씀하셨고, 구약에서도 하늘에 계셨기에 에녹이 그렇게 승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때에는 여호와가 계신 하늘을 향해서 부르게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는 하늘에 계신데 땅을 보고 부르면 되겠습니까?
폐허라는 아이 성은 이 땅이 폐허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므로, 이 땅에 있는 나의 삶을 등지고 하나님이 계신 하늘을 향해 부르는 것입니다. 이게 선민의 마음이 여호와라는 이름과 궁합이 맞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제단은 왜 쌓습니까?
이 세상을 폐허처럼 놔두기 위해서, 내 마음이 세상에서 사랑하고 아끼고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다 죽어버리기 위해서 제단을 쌓는 것입니다. 죽는 곳이 제단이니까.
결국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때에 거룩하게 여김을 받게 부르는 것과 망령되게 일컫지 않는다는 것이 어떤 것입니까?
이 세상에 대해서 마음이 죽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향해서 그 이름을 부를 때에 여호와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고 망령되게 일컬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나님께서 먼저 선민에게 여호와의 이름을 주십니다.
오늘 집안 꼴을 보면 선민이라고 할 것도 없어요. 여호와의 이름만 주어진 상태이지 선민이 아닌 사람과 똑같은 상태예요.
중혼, 축첩, 남편과의 잠자리를 놓고 합환채로 거래를 하는 아내들의 모습, 첫 아들 르우벤은 라헬의 여종이자 자신의 서모인 빌하를 범하게 됩니다. 선민의 집안이라고 할 수 없는 패륜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름만 주어진 상태예요. 이 상태에서 선민으로 변해가게 되는데 이게 궁합을 맞춰가는 것입니다.
마치 초콜릿에 ‘니트’라는 이름이 궁합이 안 맞기에 ‘샤샤’라고 바꾸는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과 선민의 마음이 있는데 전혀 안 맞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것을 맞춰가는 과정이 선민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름만 주셨다는 것은 이름이 가리키는 존재가 있습니다.
이름이 어떻게 거룩히 여김을 받고 망령되게 일컬어지지 않느냐?
여호와의 이름을 우리가 입에서 거명하고 마음에서 생각을 할 때에는 그 이름이 가리키는 존재가 하늘에 계시기 때문에, 그 존재가 내 마음의 첫 번째 주의와 관심을 끄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주의와 관심이 돈에 가있는데,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여호와라는 이름과 내 마음의 궁합이 맞지 않는 것입니다. 온전한 선민의 상태가 아닌 것입니다.
이럴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장갑처럼 끼시고 당신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실 수 있는 공생애가 시작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이름과 선민의 마음과 궁합이 맞는 때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가리키는 존재가 내 마음의 첫 번째 대상으로 될 수 있을 때라는 것입니다.
레아와 라헬이 아들을 낳고 심지어는 자기의 종들에게서조차 아들을 낳을 때마다 이름을 짓는데, 여호와의 이름이 다 겉돕니다. 망령되게 일컬어지고 거룩하게 여김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라헬과 레아는 자신들이 원하는 경쟁심과 질투심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도와주고 계신다고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고 계시는데, 이들은 하나님의 뜻과 겉돌면서 자신의 경쟁심 안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끌어들인 것입니다. 이게 궁합이 안 맞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을 살아나갈 때에 어떤 환경에 처하고 어떤 대상을 앞에 두었든지, 제일 먼저 마음속에 하나님아버지의 이름을 기억해야하고, 동시에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아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존재에 제일 먼저 관심을 두고 난 뒤에, 다른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이 이름 궁합이 맞은 상태인 것입니다.
초콜릿의 이름을 ‘니트’에서 ‘샤샤’로 바꾼 것처럼, 이번에는 하나님의 이름에 내 마음을 맞춰가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선민의 이름 궁합이에요.
이 선민의 이름 궁합이 맞지 않으면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말하고 그 이름이 가리키는 존재가 내 마음의 첫 번째 관심 대상이 되지 않는 한, 우리는 선민다운 모습이 되지 못하고 선민으로서 복의 근원이 되는 공생애의 삶은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게 됩니다. 이게 아주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그럼 어떻게 나에게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에 내 마음이 맞아 들어가는 이름 궁합을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십자가 사건 밖에는 없습니다.
십자가 사건으로 지금 내 눈 앞에 보이고, 내 귀에 들리고, 내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이 땅의 모든 대상들에 대해서 죽어야,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가리키는 하늘에 계신 존재가 내 마음의 첫 번째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첫 번째 대상이 되어서 하나님의 이름과 내 마음이 궁합이 맞으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이라는 자녀가 열매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과제는 어떻게 나의 마음을 여호와의 이름에 맞는 모습으로 바꾸어 갈 것인가를 염두에 두는 거예요.
거래처 직원하고 이야기를 한다면, 우리의 과제는 어떻게 이 거래를 성사시킬 것인가가 아니라, 이 거래처 직원 앞에서 어떻게 내 마음이 여호와의 이름에 궁합이 맞을 것인가? 입니다. 거래처 직원보다도 거래를 통해서 얻게 될 이익보다도 어떻게 해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내 마음의 첫 번째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인가가 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식을 기를 때에도 어떻게 해야 자식이 잘 될 것인가가 관심이 아니라, 자식의 문제 앞에서 자식보다 하나님이 앞선 관심의 대상이 됨으로써 내 마음이 하나님의 이름에 맞는 이름 궁합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가 과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 거래처와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열매로 출산이 되는 것입니다.
흔한 말로 속궁합이 안 맞으면 자녀를 못 낳는 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이름과 맞춰져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언제 어디서나 십자가를 붙잡고 내 마음이 이 땅에 대해서 죽어야 됩니다.
죽지 않으면 내 마음의 관심의 첫 번째 대상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될 수 없으니까.
죽으면 약속대로 성령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우리에게 느끼게 해주시고 만나게 해주시고 하나님과 친하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과 내 마음이 맞는 이름 궁합이 이루어짐으로 선민다운 삶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지금 야곱의 가정은 선민의 집안이지만 선민의 삶이 아니에요. 내용적으로는 이방인과 똑같이 이 세상 것이 첫 번째 관심인 상태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만 주어져있는 상태입니다.
이제부터 이 이름에 내 마음이 맞춰져가는 이름 궁합의 과정이 진행되어야 된다는 것이지요.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정말 천지를 지으시고 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며 수많은 수식어를 갖고 계시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당신의 이름을 허락하시니 너무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이름 하나 뿐이지만 이 이름에 우리의 마음을 맞춰가는 이름 궁합을 이룸으로 온전한 선민의 모습이 되어서 하나님이 계획하신바대로 우리의 삶의 영역에서 나름대로 복의 근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