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의 기본 원칙이 무엇인가요?”
“適材適所(맞는 인재를 맞는 자리에 쓴다)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適所適材가 더 중요하다고 보는데요.”
…
노무현 전 대통령의 10주기를 하루 앞두고, 노 대통령 재임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공무원에게서 이런 대화 내용을 들었다. 그는 적재적소와 적소적재가 어떻게 다른지를 물었고 노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고 전했다.
“적재적소는 (능력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그 사람에 맞는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반면 적소적재는 나라나 회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먼저 정한 뒤 그 일에 맞는 사람을 찾아 배치하는 것이다.”
◆공존공영하는 適所適材 vs 공멸하는 適材適所
노 전 대통령의 ‘적소적재’ 인사원칙은 열린 정책과 열린 인사를 가능하게 하는 발상의 전환이다. 이 원칙에 따라 당시 최신식 슈퍼컴퓨터를 도입했던 기상청은 그 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 미국 박사를 채용했다. 어느 정권이든 막론하고, 특히 임기 말에 ‘문고리 인사’ ‘회전문 인사’라는 비아냥을 받았던 인사와 전혀 다른 모습이다(물론 노 전 대통령 시절에 적재적소보다 적소적재가 일관적으로 적용됐는지에 대해선 찬반양론이 있을 것이다).
적소적재 인사는 국민이 원하는 것을 시행함으로써 태평성세를 이루는 근본적인 잣대, 즉 絜矩之道(혈구지도)로 작용했다. 은나라를 세운 湯왕은 노예 伊尹(이윤)을 발탁해 하나라 桀왕을 멸하는 뜻을 이루었다(伊尹伐桀). 은나라 고종은 傅說(부열)을 공사장(版築장)에서 찾아내 중흥을 이뤘다(說感武丁). 문왕은 가난해 아내에게서 버림받았던(覆水不返盆) 姜太公(강태공)을 渭水 낚시터에서 발탁했고, 그의 아들 무왕은 강태공의 도움을 받아 周나라를 세웠다. 당 태종은 그를 죽이려고 했던 魏徵(위징)을 중용했고, 몽고족 칭기즈칸은 여진족 耶律楚材(야율초재)를 재상으로 삼아 元의 기틀을 다졌다. 정조는 세력기반이 약했던 蔡濟恭(채제공)의 도움을 받아 신해통공 등 개혁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적소적재를 실천하기는 쉽지 않고 적재적소의 유혹은 물리치기 쉽지 않다. 이성의 동물인 사람은 자기를 편하게 해주는 심복의 간계를 꿰뚫어볼 수 없어, 정실인사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즉위 초에 ‘開元의 치’를 펼쳤던 당 현종은 양귀비에 빠져 李林甫에게 국정을 위임해 안록산 난으로 자멸했다. 청나라 영토를 가장 많이 확장했던 건륭제도 간신 和珅(화신)의 ‘諂橋(첨교, 아첨 다리)’를 넘지 못했다.
◆적소적재와 ‘A4 말씀자료 엎음’, 원천은 끊임없는 학습
노 전 대통령이 적소적재라는 발상전환을 한 것은 끊임없는 학습이었다. 앞의 공무원은 노 대통령에 대한 다른 에피소드도 더 전했다. 하나는 새벽 3, 4시에 전자결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A4 말씀자료 엎기’였다.
노 대통령이 새벽에야 전자결재에 서명하는 일이 잦았던 것은 ‘책읽기’ 때문이었다. 부산 상고 졸업이 최종학력인 그는 “가방 끈이 짧아 책을 많이 본다”며 “(한국이 직면한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사람들이 쓴 책을 자주 읽는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했다. 실제로 노 대통령 서거 뒤에 나온 유작집 『진보의 미래』에는 제러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 기든스의 『제3의 길』, 로버트 라이시의 『슈퍼 자본주의』,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 등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노 대통령은 이런 책읽기를 통해 궁금한 사항에 대해 전문가와 토론을 벌이며 소화하고 정책으로 반영했다. 대표적인 것이 ‘A4 말씀자료 엎기’였다고 한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 때 비서실 등에서 마련한 ‘A4 말씀자료’를 뒤집은 뒤, 그 위에 그날 토론해야 할 사항과 의문점 등을 메모하고 회의 때 그것 중심으로 진행한다. 당연히 ‘말씀 자료’에 없는 내용이 많이 나왔고, 회의 참석자들이 당황해 할 때가 적지 않았지만, ‘종이 없는 난상 토론’으로 활기차고 생산적인 회의가 이루어졌다.
독서와 A4 말씀자료 엎기 및 적소적재 등은 노 대통령이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눈’으로 정책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밑바탕이 됐다. 한미FTA를 맺고 제주도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대선에서 자신을 지지해준 사람들이 반대했지만, 국가 경제와 안보를 먼저 생각하고 비판을 견뎌내면서 결정 내리는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진보와 보수, ‘국민의 행복한 삶’이 잣대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나는 그냥 불행한 대통령이다. 나는 분배는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분배 정부라고 몰매만 맞았던 불행한 대통령이다”(『진보의 미래』, 152쪽)고 했다. 또 “자칭 진보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 ‘자기 한계를 훨씬 뛰어 넘는 과욕, 의식 이념과 투쟁의식 같은 것, 노동과 환경은 변화하고 있는데 철석같이 변화하지 않는 이 사람들”이라고 했다. “진보 정치 세력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노무현 너 잘못했다’고 하는데 ‘당신들은 뭐 했노?’ 그걸 내가 물어보고 싶다”(138쪽)고도 했다.
그는 진보와 보수에 대해 버스 타기에 비유했다. “공산주의 혁명이론이 뭐냐면 버스 딱 세워놓고 몽둥이 들고 올라가서 ‘차주 내려와’ 하면서 패고, ‘기사 내려’ 하면서 패고, 확 끌어내 버리고, ‘우리가 몰고 가자’ 하고 빵 가버리는 거거든요. 진보는 ‘차가 좀 비좁나? 그래도 다 같이 가야 되는 사람들인데 타야 될 거 아이가? 우리도 좀 타자’ 근데 못 타게 하니까 ‘왜 못 타 임마’ 이러면서 올라타거든요. 보수는 ‘야 비좁다. 태우지 마라. 늦는다, 태우지 마라’ 이거죠”(220~221쪽).
결국 보수든 진보든 국민들이 어떻게 행복한 삶을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또 “민주주의든 진보든 국민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만큼만 간다”며 행동하는 시민을 교육해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넓고 깊은 독서를 통해 스스로의 생각을 자유롭게 하고,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적소적재를 실천하도록 요구함으로써 집단이기주의에서 벗어나도록 행동하는 시민이 늘어날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행복한 삶도 누릴 수 있다. 나는 노력하지 않으면서 네 탓만 되뇌어서는 갈등은 풀리지 않고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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