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에 성서의 민낯을 벗기는 분들을 만났습니다. 불교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재가 불자들'에 의해 붓다의 원음에 가까운 소리를 찾는 일이 있었는데, 기독 신자 중에서도 이런 유형의 연구자들이 보이기 시작하는군요. 반갑네요. 오늘은 그 중에서 매우 중요한 십자가에 대한 얘기 중 일부입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이념을 받치는 상징입니다. - 혜공]
《십자가를 뜻하는 라틴어 크룩스(crux)는 헬라어(그리스어) 스타우로스(Stauros)의 번역이다.》
그러나 '막대기'가 '목발'을 의미하지 않는것처럼 헬라어 스타우로스는 크룩스를 의미하지 않는다. 헬라어 스타우로스(Stauros)는 주로 '곧은 말뚝' 혹은 '기둥'을 의미 하며, 가로 질러놓은 두토막의 재목을 의미하지않는다. 스타우로스는 고전 헬라어 전체에서 '말뚝'이나 '기둥'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예를들면,
ㆍ울타리의 '막대' (호메로스의 Odyssey 14:11),
ㆍ성채의 '버팀대' (크세노폰 Xenophon, Anababsis V. 2.21),
ㆍ토대(土臺)의 '버팀대' (헤로도토스 Herodotus, Hist. V. 6) .....
(1) 헬라어로 기록된 신약에서도 예수가 매달린 형벌의 도구를 '스타우로스'로 표기하고 있다.
(2) 고대 세계에 있어서 말뚝이나 나무에 매다는 처형은 페르시아, 앗수르, 페니키아, 이집트인 등의 관습이었고, 후에 페르시아인과 페니키아인에 의해 그리스와 로마에까지 전달 되었다고 한다.
(3) 당시에 사형수들에게는 말뚝에 묶어놓고 손과 발에 못을 박거나, 아니면 말뚝에 묶어 놓고 창으로 찔러서 사형을 집행했다.
- [출처 : 다음 블로그, 은별나라 신학. '십자기의 기원']
"헬라어로 신약의 십자가에 해당하는 단어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아는것은 충격적인 일일지 모른다. '십자가'로 번역된 단어는 언제나 '기둥' 혹은 '곧은 말뚝'을 뜻하는 헬라 단어 '스타우로스'다. 십자가는 원래 기독교의 상징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집트와 콘스탄티누스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 [Norman S Prescott / Dual Heritage:The Bible and the British Museum / Odhams Books]
“교회가 사용한 두 개의 나무로 된 십자가의 형태는 고대 갈대아(Chaldea)에서 기원되었고 그 나라와 이집트를 포함한 인접한 국가에서 담무스(Tammuz) 신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그 이름의 머리 글자인 신비적인 타우 모양임).” - W. E. 바인, 『Vine’s 신구약 성경용어 주석사전』, Thomas Nelson Publishers, 1996.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를 기독교에 대한 상징으로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콘스탄틴 시대부터였다. 초대 교인들에게 십자가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치는 것이었으므로, 십자가를 심미적으로 미화시킬 위험성은 전혀 없었다.” - 『Baker’s 신학사전』, 신성종 역, 엠마오, 1996.
“교회와 사무실 속에 십자가가 도입된 것은 431년경이었고, 뾰족탑 위에 세워진 것은 568년경이었다.” - 조셉 H. 윌시, 『Harper’s Book of Facts』, 하퍼앤브라더스, 1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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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고대 그리스인들은 스스로를 "헬라스"인(고대 그리스어: Έλλας 헬라스)이라 불렀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어를 헬라스어 또는 헬라어라고도 하며, 헬라어의 한자 음역인 희랍어(希臘語)로 불리기도 한다.
한국어권에서는 신약성서를 쓴 언어를 '헬라어'라고 하는데 코이네 그리스어의 약칭으로 사용된다. 엄밀하게 말하면 기원전 300년에서 기원후 300년까지 헬레니즘 사회가 구축되어 헬레니즘 권역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쓰인 일반적 헬라어였던 코이네 헬라어를 지칭한다. - 위키백과
첫댓글 알다시피, (사기꾼?) 바울의 서신이 (미화된) 4복음서보다 시대적으로 앞선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된 것이 아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갈리디아서 3:13
<새번역> 갈리디아서 3:13 나무에 목메달린 자, 13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사람이 되심으로써,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습니다.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는 모두 저주를 받은 자이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개역개정 4판>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공동번역> 13 "나무에 달린 자는 누구나 저주받을 자다."라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듯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저주받은 자가 되셔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해 내셨습니다.
<niv> 13Christ redeemed us from the curse of the law by becoming a curse for us, for it is written: 'Cursed is everyone who is hung on a tree.'
또 사도행전 5:30
<새번역> 사도행전 5:30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은 여러분이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살리셨습니다. 31 하나님께서는 이분을 높이시어 자기 오른쪽에 앉히시고, 영도자와 구주로 삼으셔서, 이스라엘이 회개를 하고 죄 사함을 받게 하셨습니다.
<개역개정 4판>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공동번역> 30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들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31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지도자와 구세주로 세워 당신의 오른편에 높이 올리셔서 이스라엘을 회개시키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결국, 공동번역에선 나무를 십자가로 오역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도행전은 똑같은 사실을 부활 비슷하게 미화하기 시작했고요.
그 당시 유대 풍습은 공동체에 밉보인 자를 돌로 쳐 죽인다음 사과처럼 나무에 매달아 다른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삼았다고 합니다.
https://youtu.be/SeXVQwcW4hk?si=ky81Um_lg--DmhBa
이것도 참고해보길 바랍니다.
PLAY
😁🙂🤔 댓글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성서 신약은 4복음서를 비롯해 "십자가"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죠.
콘스타티누스 대제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공인한 이후에 기독교에 "십자가" 개념이 도입됐습니다.
😁🙂🤔 그리고 현 유대인들의 메시아 사상은, 예수 당시 이스라엘인들의 메시아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즉 머물러 있다는 것이고 메시아는 육으로 등장해 이스라엘을 이방 위에 우뚝 서게 한다는 것입니다. 현대 이스라엘의 메시아 사상이 대단한건 없죠.
메시아가 이스라엘에 온다고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참고할 만한 것입니다.
@담마 주우 😁🙂🤔 이스라엘인들이 바라는 메시아는 수퍼맨같은 능력의 육체를 가진 인간입니다.
😁🙂🤔 그리고 바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하는데, 이는 예수가 바울을 선택한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생긴 오해에 불과 합니다. 바울은 예수가 전한 복음의 함의를 가장 잘 파악했던 인물입니다
바울을 비판하는 많은 사람 중 하나로 전락시키는 묘한 재능을 발휘하는군요.
살펴보면 누구도 바울을 사기꾼이라고 한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가 바울을 선택한 역사는 없습니다.
다마섹에서 예수의 영을 만났다는 바울의 일방적 주장, 즉 사기꾼의 소설일 뿐입니다.
https://blog.naver.com/synup/222144131805
이것을 참고해보길 바랍니다.
@담마 주우 😁🙂🤔 도판인들은 신명계의 준엄함을 알기 때문에 함부로 거짓말을 못하죠. 하물며 바울은 바리새인으로 예수를 만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기독 신자가 됐군요. 성서 비평은 성서를 철저히 탐구한 사람의 몫입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신에 대한 믿음은 도판의 신명에 대한 믿음을 상회합니다)
@혜공[蕙孔] 제 블로그 내용을 읽어보고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담마 주우 😁🙂🤔 상상력이 풍부하군요^^ 소설가로 데뷔하시면 대성하리라 봅니다
@혜공[蕙孔] 예 미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