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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청의사랑방이야기 56 나쁜 어른들 단아한 백면서생 열세살 청수… 어느 밤 뒤뜰 별당을 엿보니
얌전한 요조숙녀 어머니가… 청수는 천석꾼 이진사의 열세 살 삼대독자로 백옥처럼 하얀 얼굴에 깎아놓은 밤처럼 단아한 백면서생이다. 아버지 이진사는 한점 흐트러짐 없이 사랑방에서 글만 읽는 고고한 선비이고 어머니 유씨도 잠은 안방에서 혼자 자지만 낮엔 연못이 딸린 별당에서 사군자를 치고 처마 아래 매화 가지를 다듬는 요조숙녀다. 또래 학동들보다 서너 걸음 앞서가 훈장님의 칭찬을 한몸에 받는다. 집에서도 도포차림에 유건 쓰는 걸 잊지 않는 아버지 이진사의 본을 받아 청수도 삼복더위에 세모시적삼을 벗는 법이 없었다. 청수는 결벽해서 서당의 다른 학동이 그의 책을 만지기라도 하면 손자국이라도 찍힌 듯 집에 와서 행주로 닦아내고, 서가엔 책 한 권 삐뚤게 놓지 않고 방에는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다. 어느 날 밤, 무엇을 잘못 먹었는지 뒷간에 갔다가 달빛에 안마당을 가로지르는 웬 사람을 보고 모골이 송연해졌다. 뒷간 벽에 걸린 낫을 빼들고 고양이 걸음으로 그 사람을 쫓아 안채처마밑 으로 몸을 붙여서 뒤뜰로 향했다. 그 사람은 불이 켜져 있는 별당으로 서슴없이 들어갔다. 청수는 발걸음을 돌려 대청마루로 올라가 어머니 방을 두드렸다. 대답이 없어 문을 열었더니 코끝에 분 냄새가 홱 지나가고 어머니는 없었다. 다시 뒤뜰을 거쳐 별당 처마 밑에 몸을 숨겼다. “부인 불을 끄지 마시오.” “부끄럽습니다.” 분명 아버지, 어머니 목소리다. 절구통을 딛고 열어놓은 봉창으로 한쪽 눈을 끌어올렸다. 이럴 수가! 그렇게도 의젓하고 엄하신 아버지가, 그렇게도 얌전하던 어머니가 저럴 수가! 제방으로 돌아간 청수는 잠을 잘 수 없었다. 새벽녘에야 깜빡 잠이 들었다. “청수야, 세수하고 밥 먹고 서당 가야지.” 어머니가 방문을 두드렸다. 옥색치마에 연두색 저고리를 입고 단정하게 머리를 빗어 동백기름을 바르고 문고리를 잡은 어머니를 청수는 마주 볼 수 없었다. 아침마다 사랑방에 들러 아버지께 문안인사를 드리던 일도 거른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몇 숟갈 뜨는 둥 마는 둥 책보자기를 들고 서당으로 향했다. 서당에서 책을 펼쳤지만 글자는 안 보이고 벌거벗은 아버지 어머니 모습만 떠올랐다. 초시를 보기 위해 한참 글공부에 매달려야 할 청수가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사서를 펼쳐든 청수는 글귀가 꽉 막혀 책을 들고 훈장님의 해독을 듣기 위해 찐옥수수를 싸들고 밝은 달밤에 둑길을 걸어 서당으로 향했다. 사립문을 열고 서당으로 들어가던 청수가 걸음을 멈췄다. 그날 밤 뒤뜰 별당에서 터져 나오던 신음이 들렸기 때문이다. 홀아비 훈장님에게 어떤 여인이? 청수는 장독 뒤에 몸을 숨겼다. 한참 뒤에 나가는 여자는 이웃집 과부였다. 그렇게도 근엄하신 훈장님도! 아무 말, 아무 글 하나 남기지 않고 청수가 집을 나간 것이다. 이진사네 하인들이 고을을 샅샅이 훑어도 청수를 찾을 수 없었다. 떨어진 조그만 암자에 똬리를 틀었다. 집에서 찾아올 수 없는 멀리 떨어진 깊은 산 속, 빼어난 경관, 근엄하신 스님,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 암자 앞 뒤뜰에 잡초 하나 없이 깨끗하게 청소하고 법당 안도 티끌 하나 없이 쓸고 닦는 건 청수다. 밤이면 <반야심경> <금강경>에 매달렸다.
오지 않던 어느 날 깊은 밤, 방에서 나와 법당 앞을 지나는데 백일기도 하러 온 귀부인이 철야기도를 하는지 아직도 불이 켜져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또 미친 어른들의 그 신음이 들리는 게 아닌가. 청수는 결벽증에다 관음증까지 생겼다. 백일기도 하러 온 하얀 소복 귀부인의 치마를 걷어올리고 바지를 벗은 스님이 올라타 헉헉거렸다. 청수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장가를 가서 아들을 낳았다. 백만송이장미ㅡ =cafeapp 내장산ㅡ cafeapp 천생연분ㅡ =cafeapp 기억해줘요내모든 날과그대를ㅡ cafeapp 아픈사랑ㅡ cafeap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