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삼백예순네 번째
닥터 지바고
주제곡 Somewhere My Love로도 유명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를 영화로 본 지 오래지만, 여러 장면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작가는 주인공에게 ‘지바고’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생명이 있는’, ‘살아있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의 시 <유명해지는 건 꼴사납다>의 마지막은 이렇습니다. “살아 있어야, 오직 살아 있어야, 끝까지 살아 있는 존재여야만 한다.” 이 시를 쓴 후 그는 <닥터 지바고>를 통해 ‘지바고’라는 의미처럼 작품으로 영원히 남기를 희망했던가 봅니다. 영화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건 창窓과 러시아 현악기 발랄라이카 balalaika입니다. 화면에서 주인공 역을 맡은 오마 샤리프의 우수에 찬 깊은 눈을 자주 보여주는데, 그의 눈은 늘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봅니다. 성에가 두껍게 낀 유리창을 닦아 조그만 틈으로라도 세상을 바라보려고 애를 씁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낼 때는 그 유리창을 깨고 아스라이 멀어져간 모습이라도 기억에 담아두려고 합니다. 인간은 ‘본다’라는 행위로 무한한 상상력을 키우고 거기에서 문명이 출발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눈이 아니라 뇌로 본다고 합니다. 눈은 뇌의 창窓이라는 말이겠지요. 도스토옙스키는 예술가란 모름지기 ‘몸의 눈’을 넘어서는 ‘정신의 눈’, 나아가 ‘영혼의 눈’으로 세계를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닥터 지바고는 창문 너머의 세계를 정신의 눈으로, 영혼의 눈으로 보고자 했던 모양입니다. 그 너머에 자유가 있고, 사랑이 있다고 믿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발랄라이카는 지바고가 어머니로부터 유산으로 받은 것이고, 그것이 그의 딸에게 남겨집니다. 작가의 시구처럼 우리는 그렇게 끝까지 살아 부활하고 불멸한다는 의미이겠지요. 살아있기 위해 지금 내 영혼의 눈은 무엇을 보는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