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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 풍류길 1코스
오늘도 견문을 넓혔다
• 코스
덕정역-덕정사거리-덕정중학교-태봉산-서재마을-청담천-풍류정-김삿갓교-회암사박물관-회암사지-약수터-석조부도-부도탑(지공 나옹 무학)-회암사-선왕각사시비-108바위 전망대-선녀탕과 삿갓바위-삿갓향기쉼터-김삿갓심터-김삿갓 벽화거리-김삿갓교
2019년2월21일 목요일 미세먼지
오늘도 할 없이 해는 저물어서 저녁식사 끝내고 침대에 누워서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오늘밤은 막걸리 한통 마실 가- 하지만 할멈이 무섭다 하여 생육신의 한 사람인 추강 남효온 선생이 어머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금주선언을 하니 이 소식을 들은 매월당 김시습 선생이 향음주례(鄕飮酒禮)를 거들어 금주선언을 풀라고 권유했다는데 나는 금주선언이나 향음주레중 어느 것을 선택할 가 망설이는데 따르릉 울린 다
“ 나. 파란문이요 아침에 편지를 띄웠는데 왜 지금까지 무소식인거요”
“ 편지를 보냈다고...”
“ 그려라~” 그러면서 모래 양주로 가서 김삿갓 풍류길을 걷자고 권유하길 래 일언지하에 o.k를 하니 할멈이 비양거리기를 “돌았구나. 내일은 영흥도 養老峰을 가겠다면서 다음날 또 양주를 가고 모래는 치과에 들리고 글피는 교동도를 간다며...늙은 몸을 가지고 잘하는 짓이다” 라고 비양거려...
“그럼 내일은 포기할 겨~”라 하니 헤헤헤 거린 다
김삿갓 풍류길은 양주시에 있고 불광모임에서 일정을 잡았으니 여주의 여강길에 밀려 보류된 상태로 걷고 싶었던 길을 걷게 되었는데 나는 작년 여름에 영월에 있는 김삿갓 문학길 힐링 트레킹(외씨버선길 12코스)을 다녀오면서 양주시의 김삿갓 풍류길 3개코스를 걸은 다음 화순군으로 가서 김삿갓의 이야기가 있고 종명지(終命地)를 찾아 볼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참으로 잘되었다
• 김삿갓 풍류길
난고 김삿갓이 양주시 회암동에서 태어나 방랑시인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두루 돌며 주옥같은 수많은 시를 남긴 사실을 전파함으로써 양주시의 역사적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감삿갓 문학지원을 연계한 숲길을 조정하고자 3개 구간으로 나뉘어 총 21Km를 조성하였다
덕정역에 도착하니 9시35분 동행보다 앞서 도착했고 동행들은 다음 전철로 왔는데 온다던 박 대장은 보이지 않고 박 교장님 안색이 곱지 않았는데 경미한 접촉사고를 냈는데 상대방에게 화의를 하자해도 고급 승용차의 젊은 차주는 보험처리 하자고 화해를 거절하였단 다 그래서 트레킹 끝날 때 까지 박 교장님은 기분이 우울하였다
덕정역 앞에는 김삿갓 풍류안내도가 있고 오늘의 이끄미 파란문은 우리들을 우측 방향으로 안내하니 덕정사거리에 방향과 이정목이 있는데 1코스는 좌측으로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고 2,3코스는 우측 방향이다 덕정중학교를 지나니 태봉산(183.9Km 삼각점 있음) 입구가 보여 우리들은 입산하니 눈 들이 아직도 녹지 않았고 미끄러운데 산책로가 거미줄 같이 많았고 중년부인이 개 두 마리와 산책을 즐기는 모습이 보였다
태봉산에서 하산하면서 묘지들을 보고 도로와 접속하여 도로따라 곁으로 걸으니 선비의 고장 “서재마을” 표석이 보이고 조금 진행하다가 다리를 건너 하천가로 내려서니 청담천이고 하천정비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풍류정이 나왔고 풍류정에는 김삿갓의 시가 보이는데 “仙人畵像” “將棋” “욕설” “落葉” “蘭皐 平生詩” 雪“등 중에 욕설시를 옮겨본 다
步至華楊洞(걸어서 화양동에 이르러)
書堂來早至: 서당에 먼저 왔더니
學童諸未十: 배우는 아이들은 모두 합쳐야 열명도 안되고
師父奈不謁: 훈장은 어찌 코빼기도 안 보이는 고?
방랑시인 김삿갓(본명 김병연)이 충청도 한 고을의 서당에 이르러 하룻밤을 묵고 가려했으나 훈장이 얼굴도 안 내밀고 문전박대하자 훈장을 욕하는 풍자시를 한 수 읊고 떠났다
풍류정을 들려보고 다시 천변둔치 따라 걸으면 멀리 앞으로 천보산맥이 파노라마처럼 산맥이 보이고 천보산(423m회암동)가 보이고 곁에는 칠봉산(506m)이 있다 나는 천보산맥을 이미 종주해 봤는데 기억이 희미하다 천보산은 회암동(423m) 율전동(348m) 마천동(337m)등 3개가 있고 천보산의 의미는 “하늘 아래 보배로운 뫼”라는 뜻이란 다
구리 포천간 다리 교각 밑에 이르면 김삿갓교가 있는데 좌.로 진행하건 우로 진행하건 다시 돌아와야 하는데 좌로 진행하면 벽화거리가 있고 우로 진행하면 화엄사지가 나온 다 김삿갓다리를 건너니 김삿갓의 “고향 회암동입니다” 라는 큰 표석이 있고 곧 양주시립화엄사지 출토물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을 들렸는데 나는 지난주 목요일에는 여주박물관을 살펴봤다 박물관을 살펴보는데 산산散散 코너가 있어 들려보니 벽돌이 널부러졌는데 “부서진 뒤 알게 된 것을” 이라는 팜프렛이 있다 또 일월오봉가가 있고 임금님의 의자 모형이 있는데 포터존이라니 박 교장이 한 말씀 하시기를 “자 우리 임금이 되어 봅시다” 하고 사진을 한 장씩 남겼다
박물관을 나와 조그마한 아치 다리를 건너니 넓은 잔디 광장이 나오는데 유네스코문화유산에 등재된 회암사지다
• 회암사지
사적 제 128호로 조선전기 최대의 왕실사찰로서 고려 때 들어온 指空和尙의 뜻에 따라 그의 제자인 나옹선사가 크게 중창하였고 조선시대에는 태조 이성계의 스승인 무학대사가 머무르며 왕실의 후원을 받으며 크게 성장하였으며 태조가 상왕으로 물러난 이후에 궁실을 짓고 살아 “왕의 행궁” 역할을 하였고 효령대군 정희왕후 문정왕후 등 왕실인물들이 후원을 받았지만 지금은 절터만 복원되었는데 한 때는 우리나라 3대 사찰로서 전국 사찰의 총본산이 되기도 하였다
※ 화엄사지가 된 까닭
명종실록에 “유생들이 회암사를 불 태우려 한다”는 기록과 선조실록에 회암사 옛터에 불탄 종이 있다는 기록을 참작하여 1570년 경에 유생들에 의한 화재로 회암사가 소멸되어 페사가 되었다가 400여년 동안 흙속에 묻혀 있다가 양주시의 종합정비계획에 따라 절터가 발견되었고 국가사적 제128호로 지정되어 경기문화연구원에 의해 1977년부터 연차적인 발굴조사를 12차례에 걸쳐 실시되었고 유네스토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 순조 21년(1821년)에 이응준이란 자가 술사 조대진의 말을 듣고 이 곳 법당자리에 선친의 묘소를 옮기기 위하여 절터에 남아있던 지공과 무학의 비를 철거하였으나 이 사실이 알려지자 나라에서 두 사람을 섬으로 유배하고 순조 28년(1828)에 비를 원래의 위치에 다시 세웠다고 전하고 있다.
회암사(현존) 일주문 앞에 숲길(트레킹 등산로)이용 안내문이 있는 곳에서 입산하니 천보산은 1.9Km-
檜巖寺-梅月堂 金時習
古松藤蔓暗相連 옛소나무와 등나무는 보이지 않게 서로 이어져 뻗어나가고
一徑深深入洞天 일경은 깊고 깊어 동천에 들어간다
佛殿尙留三世火 불전은 오히려 삼세가 불사르도록 남았는데
法門今絶五宗禪 법문에는 지금 오종의 선이 끊어졌다
崢嶸樓閣雲爲鎖 한껏 가파른 누각은 높으나 닫아 걸었으며
牢落庭除草作氈 지나가던 뜰에 쓸쓸히 덜어져 모전(毛氈)을 지었다
勝境宛如那爛寺 장소는 마치 나란다와 같이 뛰어나건만
恨無人導組燈傳 법등을 이끌어 전할 사람이 없는 것이 한이다.
오류 한 글자는 8구의 조등은 組燈이 아니라 祖燈이 맞다
잠시 오르다가 갈림길에서 등산로를 버리고 좌틀하면 눈이 소복하고 미끄러웠고 회암사 약수터가 나온 다 약수물이 졸졸 나왔고 한 모금씩 마시려니 배속이 시원한데 박 교장이 “泉流不息”이라고 흐르는 샘물은 쉬지 않는 다 말을 듣고서 다시 진행하여 무명 석조부도를 지나 화엄사지의 명당자리에 지공화상 부도가 있으며 위에는 나옹선사의 부도가 있고 밑에는 무학대사의 부도 탑이 있는데 보물 338호로 지정되어 있다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 경기도 유형 문화재 제50호
지공선사 부도 및 석등: 경기도 유형 문화재 제49호
※ 指空和尙은 인도사람으로 나옹선사의 스승이지만 티베트의 주술사에게 독약을 투여 받았 고 사람들에게 매를 맞아 이가 부러지기도 했으면 대독하에서는 도적을 만나 알몸으로 뺑손이도 첬다는 일화가 있다
• 무학대사(1372~1405)
고려 말~조선 초의 이름난 승려로, 이름은 自超이고 호가 無學이다. 18세에 출가하여 小止禪師 아래로 들어가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으며, 慧明國師에게서 불교의 교리를 배운 후 묘향산에서 수도하였다. 1392년(태조 1)에는 태조의 부름을 받고 스승이 되어 도읍지를 물색하기도 하였다. 이후 회암사에에서 머물다가 금강산의 金藏庵에서 입적하였다. 새로 지어진 회암사의 삼성각 대웅전 관음전을 들려 선각왕사시비가 있는 능선에 올랐다
• 선각왕사시비(보물 제387호)
경기도 양주시회암동에 있는 고려 후기 禪覺王師 懶翁의 부도
나옹(1320~1376)은 1344년(충혜왕 복위 5) 檜巖寺로 들어가 불교에 입문하였다. 1358년(공민왕 7) 원나라에서 돌아와 왕의 부름을 사양하고, 구월산과 금강산 등에서 은거하다가 회암사로 다시 돌아와 절을 크게 새로 지어 올렸다. 1376년(우왕 2) 밀양 영원사로 가던 중 경기도 여주 神勒寺)에서 57세로 입적할 때까지 불법만을 행하였으며, 입적한 후 시호를 선각(禪覺이라 하였다.
1997년 3월 천보산에서 발생한 산불로 인해 보호 비각이 불타면서 비석 역시 심하게 파손됨에 따라,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로 옮겨 약 3년간 보존 처리 과정을 거쳐 복원되었다. 복원된 비는 경기도박물관을 거쳐 현재 曹溪寺의 중앙불교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1999년 8월 원래의 부도비를 대신해 그 자리에 모조 부도비를 세워 놓았다.
비문은 李穡이 짓고, 權仲和가 예서로 썼으며 전액도 권중화가 썼다. 나옹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거북 받침은 훼손 당시의 처참한 광경 그대로 현장에 방치되어 있으며, 원래 비가 서 있던 자리에 모조 부도비가 세워져 있다. 복원된 비는 추후 회암사지 박물관이 개관되면 다시 돌아올 예정이다.
선각왕사시비 뒤로 진행하면
檜巖廢寺-栢庵性聰(天鏡集)의 시를 읽을 수 있다
光陰百劫一須臾: 백 겁의 세월은 한 순간이요
淨地金沙已草蕪: 금모래 정토 땅은 이미 잡풀로 무성하네
苔雜回廊門不掩: 이끼 낀 회랑문 굳게 닫혔고
葉塡香井水還枯: 낙엽 쌓인 우물은 물이 말라 버렸네.
懶翁功業眞開土: 나옹은 정말 위대했던 스승이요
牧老文章非俗儒: 목은(牧隱)의 문장 또한 속되지 않네.
獨立斜陽無限思: 석양에 홀로 서서 이저 생각에 젖나니
冷烟喬木有啼鳥: 찬 연기 높은 나무에 갈가마귀 우짖네.
108전망 바위가 나오고 안내문이 있다
숲길을 걸으면서
바음의 번뇌를
이곳에 내려놓고
평온한 심신으로
탐방하세요 김삿갓 풍류길
또108바위 앞에 나옹선사의 “靑山兮要我” 詩板이 있다
108바위전망대를 지나면 풍류길은 1.3Km를 걸으면 산자락에서 벗어나고 700m의 벽화거리를 걸으면 김삿갓교가 다시 나오는데 내리막은 계곡길이다
函月 海源 檜巖寺懷古(天鏡集)
遠訪楊州天寶寺: 멀리 楊州 天寶寺를 찾으니
嵯峨石塔至今留: 우뚝 솟은 石塔에 이르러 이제 머므른다
南溪流水千秋恨: 南溪는 千秋의 恨을 남아 흐르고
北嶽溪雲萬古愁: 北嶽溪의 구름은 萬古의 시름이로다
廢蝶荒臺成兎窟: 담장과 누대는 荒廢해저 토기굴을 이루었는데
玉樓金殿作塵丘: 玉燈金殿은 俗世의 티끌을 모아지었는가
層階尙在人何去: 계단에는 사람이 있기를 바랐건만 어찌 떠났던가
獨立斜陽淚未收: 해질녘 홀로서니 눈물을 거두지 못하노라
계곡길에는 김삿갓의 금강산 시를 비롯하며 많은 시판이 있고 선녀탕&삿갓 바위을 지나려면 안내문이 있다
•삿갓바위와 선녀탕
선녀가 내려와 미역을 감고 올라 갔을 만큼 계곡의 물이 맑고 깨끗한 곳이다
천보산맥 산자락에서 벗어나니 김삿갓 향기 쉼터가 있고 숲속도서관에 일반인들의 詩板이 바위마다 걸려있고 앙증스러운 그네기 나란히 있고 쉼터의자도 있다 삿갓 조형물을 배경으로 포터존이 있어 김삿갓이 되어 박 교장님과 나란히 사진을 이끄미 파란문이 찍어준 다 오늘 트레킹에 파란문이 없었다면 좋은 해설을 들을 수 없었을 테니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다
민가를 지나려니 김삿갓 쉼터가 또 있고 도로를 건너면 군 부대 담장에 양주시에 관련된 벽화가 그려저 있다 공모작품으로 벽화거리는 700m 다
다시 김삿갓교로 돌아와 78번 마을버스를 타고 덕정역으로 돌아와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로 갈 가 하다가 눈에 띄는 만두수제비국 메뉴를 보고 찾아들어 박 교장과 파란문에게 내가 제본한 “천리능선”을 주었는데 제본집에는 “낙동정맥의 연가”와 호남정맥의 “ 저 소리는 무슨 새여...” 그리고 한남금북의 “풀잎마다 사랑을...” 이 수록되어 있다
아름다운변화 양주에는 트레킹과 산행으로 다음과 같은 길이 있다
• 김삿갓 풍류길 3개 코스
• 도락산 등산
• 은봉& 호명산 숲길과 등산로
• 노아산과 계명산 숲길
• 감악산 숲길과 등산로
• 개명산(고령산) 숲길과 등산로
• 칠봉산 등산로
• 천보산 숲길과 등산로
• 불곡산 숲길과 등산로
• 천보산림욕장 등 산림치유 프로그램이 있다
나는 가끔 나옹선사의 토굴가를 듣는 다
靑山林 깊은 골에 一間土窟 지어놓고 松門을 半開 하고 石徑에 俳徊하니 錄楊春三月下에 春風이 건 듯 불어 庭前에 百種花는 처처에 피었는데 風景도 좋거니와 物色이 더욱 좋다. 그 중에 무슨 일이 세상에 最貴한고. 一片無爲眞妙香을 玉爐中에 꽃아 두고 寂寂한 明窓下에 묵묵히 홀로 앉아
이하 생략
※ 有感
길을 걷다보면 안내문과 이정을 보게 되는데 안내판을 훼손 된 것도, 낡은 것도 있어 볼상 사납고 글자가 마모되어 읽을 수 가 없으며 간혹 오자도 발견되고 이정은 거리가 정확성이 떨어진 다
내일은 쉬면서 치과치료를 받고 모래는 토산회 회원들과 교동도로 가서 강화나들길 10코스 머르메가는 길을 트레킹을 할 것이다
김삿갓(1807~1863)
본명은 炳淵이요, 삿갓을 쓰고 다녔기에 흔히 김삿갓 또는 金笠이라고 부른다. 그의 조상은 19세기에 들어와 권력을 온통 휘어잡은 안동 김씨와 한 집안이었다. 그 때문에 그의 할아버지도 이런저런 벼슬을 할 수가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益淳이고 그의 아버지는 安根이다. 그는 세 아들 중 둘째로 태어났다.
1978년 김병연의 후손들이 중심이 되어 광주 무등산 기슭에 詩碑를 세웠다. 그리고 1987년 영월에 “전국시가비건립동호회”도 시비를 세웠다
강원도 영월군 동부에 있는 하동면이 2009년10월20일 김삿갓면으로 변경되었다. 이 명칭은 김삿갓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조선시대의 풍류시인 蘭皐 金炳淵의 묘가 와석리에서 발견된 것에서 유래했다
• 삿갓 선생의 일화
김삿갓이 일생을 竹杖芒鞋로.세상을 유람하다 端川 고을에서 결혼을 한일이 있었다 청춘 남녀의 신혼 밤은 시간 시간마다 천금이 아닐 수 없지 않는 가~
불이 꺼지고 천재 시인과 미인이 만남으로 함께 어우러졌으니 어찌 즐거움이야 이루 다 말할 수 있는가? 그런데 느닷없이 삿갓 선생이 벌떡 일어나서 종이에 쓰기를...
毛深內闊 必過他人
털이 깊고 안이 넓어 허전하니 필시 타인이 지나간 자취로다
하니 새색씨가 물끄러미 들여 보다가 다음과 같이 쓰고는 이불속으로 꼭꼭 숨었다
後園黃栗不蜂坼 溪邊楊柳不雨長
뒷동산의 익은 밤송이는 벌이 쏘지 않아도 저절로 벌어지고시냇가의 수양버들은 비가 오지 않아도 저절로 자라니라.
그 사람에 그 여자로 짝짝궁이 잘도 맞는 다
풍류길 1코스를 걷고서
덕정역에서
덕정역까지
박 교장은 19000 步
파란문은 10.6Km 걸었단 다
하지만
난.
걸으면서
보고 듣고 견문을 넓혔다
어제는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雨水 지만
길에는
殘雪이 수북하다
108바위 앞에선
번뇌를
끊으라고 하지만
쉽사리 되는 거 아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치과치료 때문에
한 모금도
걸치지 못한 거
기억에 남을 것이다 2019년2월21일 수요일
회암사지
천보산맥
천보산 아래
태조 이성게의 또 다른 행궁
묻혀있던
조선시대의 왕실 사찰 절 터
듣기만 했지
보지는 못 했는데
풍류길 따라 스치려니
광할하다
아~
넓고 넓다고 탄식 절로 나고
천보산을 넘어 온
아침 햇살
잔디 광장을 덮는데
절터에
숨겨진 이야기 많아서
지공화상 나옹선사 무학대사
숨결이 살았고
삿갓 선생 고향이란 다
草堂憂翁은
견문을 넓힌 다 2019년2월21일 목요일 미세먼지
楊洲市
경기도 중북부에 있는 시로 삼국시대에는 백제(또는 고구려라고도 함)의 매성군 또는 마홀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내소군으로 고쳤으며, 고려시대에 들어 947년(정종 2)에 견주군으로 개칭했다. 1466년(세조 12)에 양주목으로 승격하고 鎭을 두었다. 1504년(연산군 10)에 양주를 없앴다가 1506년(중종 1)에 복구하면서 중심지를 불곡산 남쪽으로 옮겼다. 양주의 별호는 광릉이었고- 시의 동쪽에는 천보산맥이 뻗어 있어 칠봉산(506m)·천보산(337m) 등이 솟아 시경계를 이루며, 서쪽에는 감악산(675m)·노고산(401m)·앵무봉(622m)·형제봉(545m) 등이, 남쪽에는 상장봉(534m)·도봉산(717m)·사패산(552m) 등이 솟아 있다(출처: 백과사전)
• 양주시민의 노래
천보산 푸른 숲이 우거진 곳에 맑은 여울 쉼 없이 흘러내리네
회암사 터를 찾는 유람의 발길 시민 모두의 자랑이로다
옛 조상의 얼들이 여기 살아 숨 쉬고 민족의 문화가 깃들인 고장
인심 좋고 살기 좋은 복지 양주시
감악산 정기 받은 인물의 고장 양주별산대 놀이 이어온 고장
오백년 역사 담긴 우리 양주시 저 멀리 양주산성 호국의 표상
옛 조상의 얼들이 여기 살아 숨 쉬고 민족의 문화가 깃들인 고장
인심 좋고 살기 좋은 복지 양주시
• 維楊八景
1. 山城落照: 산성에 떨어지는 곱게 물든 저녁노을
2. 妓堂瀑布: 기당골에 내리쏟는 우렁찬 폭포
3. 華庵鐘聲: 백화암의 종소리는 너무도 은은하고
4. 仙洞煮花: 선동의 지짐꽃도 뛰어나게 향기롭고
5. 金暮慕烟: 금화정 저문 연기는 미래를 다짐한 듯
6. 乘鶴煙柳: 승학교 연기낀 버들 봄빛을 자랑하네
7. 道峰霽月: 도봉산 개인달이 밝아서 좋아하면.
8. 水落歸雲: 수락산의 도는 구름 한가롭기 그지없네
• 조선시대 3대 의적 중에 한 사람인 임꺽정의 출생지이고 조소앙 선생의 기념관과 이준 선생 묘소가 있으며 불곡산과 천보산은 산행지로서 알맞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