雪泥鴻爪(설니홍조)
이 말은 ‘기러기가 눈이 녹은 진창위에 남긴 발톱 자국’이라는 뜻으로
얼마 안 가서 그 자국이 지워져 흔적이 사라지는 것처럼 우리 인생의 자취도
이처럼 결국에는 사라지는 것이니 인생이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고사성어나 사자성어 중에는
인생무상(人生無常)에 관한 말이 많은데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사람이 인생에 대하여 느끼는 감회는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든지 나이가 들면 과거를 되돌아보며
자신이 살았던 인생의 의미와 보람을 찾아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반성, 후회, 아쉬움, 허무함 등을 느끼게 되는 것은 필연적인 인지상정이다.
설니홍조라는 이 고사성어는 11세기 북송(北宋) 시대의 시인 소식(蘇軾,
소동파(蘇東坡)로 더 잘 알려짐)이 그의 아우 자유(子由)에게 보낸 시
<화자유민지회구(和子由澠池懷舊,
민지에 있는 동생 자유에게 답하며 옛일을 회상함)> 중에서
‘인생길 이르는 곳 무엇과 같은가
(人生到處知何似/인생도처지하사)/
날아가던 기러기가 눈 녹은 진창을 밟은 것과 같다네
(應似飛鴻蹈雪泥/응사비홍답설니)/
진창에 우연히 발자국을 남기지만
(泥上偶然留指爪/니상우연류지조)/
기러기 날아가면 동으로 갔는지 서로 갔는지 알 수 없구나
(鴻飛那復計東西/홍비나부계동서)’ 라는 구절 중에 나오는 말이다.
북송(北宋) 시대의 문인 소동파 (1037-1101)
이처럼 인생무상을 표현한 말로는
부운조로(浮雲朝露, 뜬구름과 아침 이슬),
일장춘몽(一場春夢, 봄날에 꾼 한바탕의 덧없는 꿈),
영고일취(榮枯一炊, 인생이 꽃피고 시드는 것은 한번 밥 짓는 순간처럼 덧없다),
역려과객(逆旅過客, 세상은 여관과 같아 인생은 그곳에 잠시 머무는 나그네와 같다)
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말을 들으며 인생의 짧음을 한탄하기 보다는,
앞으로는 욕심을 버리고 좋은 일을 하며 살아야 겠다는 마음이 일어나게도 되는데
‘옛 것을 돌아보고 새로운 것을 안다’는
논어(論語)의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 그러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 볼 수도 있겠다.
아쉽게도 인생무상과 달리 희망적인 메시지의 고사성어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 옛사람들도 나이가 들면 대부분 감상적이고 체념적인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조선시대의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이담속찬(耳談續纂)에 농부아사침궐종자(農夫餓死枕厥種子),
즉 ‘농부는 굶어 죽더라도 그 종자를 베고 죽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원래
‘어리석고 인색한 사람은 자신이 죽은 다음에 재물이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모른다’
는 뜻으로 해석되지만
이 구절 자체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앞날을 생각하여야 한다’는 뜻으로도 해석되며,
‘내일 세상이 끝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스피노자 또는 마틴 루터의 말과 상통하는 말이다.
이 말들은 얼마 남지 않은 인생, 또는 다가오는 죽음을 슬퍼하기 보다는 겸허하게
순리로 받아들이고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의지의 표현으로서 설니홍조보다는
긍정적인 시각으로 인생을 보게 해주는 말이다.
우리가 인생무상을 아쉬워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남은 인생을 보다
가치 있고 보람있게 보낼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이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좋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