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대로 가기 전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 2021년-2022년 송구영신 예배
본문 / 누가복음 13:6-9
모래시계를 한 번쯤은 다 사용해 보셨을 겁니다. 우리 인생이 어쩌면 모래시계와 같은지 말입니다. 모래시계를 뒤집어 놓으면 그 작은 틈으로 모래가 쏟아집니다. 모래가 밑으로 쏟아지는 양은 처음이나 맨 나중이나 일정합니다.
그런데 모래가 위에 가득 차 있을 때에 밑으로 떨어지는 것은 왜 그렇게 더디게 느껴지는지 말입니다. 그러나 모래의 절반이 빠져 나가면 속도가 빨라지고 얼마 남지 않았을 때에는 쏜살같이 밑으로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인생은 모래시계와 같습니다. 어린아이나 청년이나 중년이나 노년이나 시간은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은 다 똑같지만 체감하는 인생의 그 속도는 다른 것입니다. 다애, 다솜이 아론이 이 아이들이 체감하는 인생의 속도는 엄청나게 느립니다. 저 아이들은 세월이 거북이처럼 느껴지기에 빨리 시간이 가 언제 어른이 되나 생각하지만 중년과 노년의 인생들에게 시간은 너무나 빠른 것입니다.
모래시계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쏜살같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듯이 인생의 황혼이 되면 세월은 너무 빠른 것입니다. 모세도 인생이 신속히 날아간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내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인생은 60부터라고 하더니 요즘은 수명이 늘어나 인생은 70부터라고 말을 하는데 인생은 70부터가 아니라 70이 넘으면 진짜 정신을 차리고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 만날 날을 준비해야 하는 때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 수명을 스스로 정할 수가 없으니 언제 세상을 떠날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오래 사는 것을 복으로 압니다. 그런데 젊어서 세상을 떠나나 늙어서 살만큼 살다가 세상을 떠나나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으로 가는 것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보면 오래 살고 적게 살고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건강이 최고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건강도 있는 건강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이지 좋은 약과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면 오던 죽음이 주춤은 해도 피해가지는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심판대 앞으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얼마나 미련하고 어리석은지 아십니까? 잠깐 살다가는 인생은 그렇게 아쉬워하며 더 살아보겠다고 벌벌 떨며 약도 챙기고, 백신도 맞고, 좋은 음식이 있다면 찾아서 먹고, 힘이 들어도 운동을 하면서도 그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은 준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제가 새벽기도회에 나올 시간이면 2층에 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 이른 새벽에 운동을 나가십니다. 할아버지는 걷는 게 불편한 분입니다. 날이 추워져서 그런지 요즘은 나오지 않고 할머니 혼자서 나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그것을 보면서 저 분들이 저 시간에 교회를 가 기도하는 거라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일까? 정말 기가 막히겠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로 옆집에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시는 데 교회를 다녔다고 합니다. 이제 몸이 불편해서 교회를 못 나간다고 하시기에 제가 집으로 찾아가서 예배를 드릴까요? 했더니 펄쩍 뛰면서 사양을 하시더군요. 그런데 몸이 불편해서 교회는 못 가신다는 분이 전동차를 타고 역전 시장, 병원, 마트 등은 정말 열심히 다니시더군요.
제가 이 시간이 되면 늘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한 해의 끝을 주신 것은 너희들의 인생도 반드시 끝 날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 끝 날에 새 날을 맞이하며 내 인생의 종말이 반드시 온다는 것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그 날을 준비하며 살 것을 다짐을 하는 것입니다.
인생이 길고 짧은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열매가 있느냐 없느냐는 것입니다. 건강을 위해 좋은 약도 먹고, 좋은 음식도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면 좋습니다. 세상의 미래를 위해 보험도 들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진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갔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는 믿음의 열매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주인은 무화과나무를 심고 삼 년을 기다렸지만 열매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몇 년을 교회에 다녔고 직분이 무엇인가는 심판대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믿음의 열매가 있느냐는 겁니다.
주인은 열매를 얻지 못하자 농부에게 그 나무를 찍어버리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농부가 주인에게 일 년만 시간을 달라고 부탁합니다. 거름을 줘보겠다는 겁니다. 그래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때는 찍어버리라는 겁니다.
주인이 나무를 심고 열매를 기다린 삼 년과 농부가 거름을 주고 인내하는 일 년 총 사 년은 이 세상에서 살다가는 우리의 인생입니다. 지금 우리의 인생이 농부가 주인이게 한 해만 참아달라는 그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르는 겁니다.
우리는 알 수가 없지만 하늘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 사람은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하느냐? 내가 그 영혼을 심판대로 부르겠다고 하셨을 때 주님께서 아버지 저 사람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조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지금 우리의 남은 인생이 그 시간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부르시기 전에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열매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본문의 말씀을 선포하기 전에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과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열여덟 명이 죽은 사건을 통해서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열매는 회개인 것입니다. 회개하였느냐는 겁니다. 회개는 무엇입니까? 내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만나 육체의 정욕과 탐심으로 나의 주인 됨을 숭배하던 내가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이 내 마음과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정말 회개한 사람은 십자가에 자신을 부인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열매가 열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눈물과 콧물을 흘리고 울며 기도하면 회개한 줄 압니다. 방언으로 기도하면 회개한 사람인 줄 압니다. 그러나 회개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내 마음과 인생의 주인이 예수님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고 나는 종의 자리에 내려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구하고 주님의 말씀에 내가 원치 않아도 순종하는 사람이 진짜 십자가에서 주님을 만나 회개한 사람인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예수님을 주여 주여라고 부릅니까? 그러나 예수님을 진짜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입니다. 실제로는 자기가 주인인 것입니다.
자기 멋대로 사는 종이 있습니까? 자기 마음대로 하는 종이 있습니까? 자기만족과 영광을 위해 일하는 종이 있습니까? 많은 성도들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지만 주님의 뜻을 구하지도 묻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순종이라는 믿음의 열매를 들고 심판대 앞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안다 하시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 죄를 대속해주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만나 지독한 자아숭배자로 타락한 나의 주인 됨과 왕 됨을 십자가에 못을 박고 회개할 때 비로소 우리는 예수님만을 나의 유일한 왕과 주인으로 모시며 그 뜻을 받들고 말씀에 순종하는 아름다운 믿음의 열매를 결실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겁주려는 것이 아니라 사실 우리의 인생은 살얼음판을 걷고 외줄을 타는 것과 같습니다. 살얼음판을 걸어보셨을 겁니다. 외줄을 타고 딴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인생이 언제 깨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저는 지난해에 하나님이 나를 부를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하였습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올해 하나님이 나를 부를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일 년 내내 긴장하며 살려고 합니다. 믿음의 허리띠를 단단히 조이고 등불을 들고 있으려고 합니다.
아직 갈 날이 멀었으니 마음 놓고 살라고 하면 그 말은 저에게 죽으라는 말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자기 부인도 모르는 곳에 관을 만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가끔 그 관속에 들어가 잔다고 합니다. 여보, 나 오늘 밤은 교회에서 기도 좀 할 게! 하고는 그 관이 있는 데로 가서 관속에 들어가 기도한다는 겁니다.
왜 그렇게 할까요? 마음이 느슨해질 때마다 나는 이렇게 죽어 하나님의 심판대 앞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며 자신을 깨우는 것입니다. 회개한 사람은 잠들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깨우는 것입니다.
저는 결코 심판을 준비하지 않고 마음 놓고 살지는 않을 겁니다. 절대로 그렇게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매년 새해가 될 때마다 올해 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준비할 것이라고 하면 반드시 언젠가는 준비한 것이 이루어질 날이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 가장 미련한 사람이 안 죽을 것처럼 사는 사람이고 가장 불쌍한 사람은 심판을 준비하라는 말씀을 수도 없이 듣고도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또 새 해를 주셨는데 이 해가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는 겁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대충 적당히 믿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함께 섬기며 심판을 준비할 수 없습니다.
내 삶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그런 것을 단호하게 잘라내야 합니다. 반드시 잘라내시기 바랍니다! 새 해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변화된 삶이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올 해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열매를 결실하는 풍성한 한 해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