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코스 : 시흥연꽃테마파크 - >시흥 배곧 한울 공원
호조 벌에 풍년이 들었다. 사방 반듯한 논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였다. 바라만 보아도 가슴이 탁 터지며 배가 부르다. 경기 둘레길 53코스의 종착지이지만 오늘도 종착지에서 시작점으로 걸어가는 역주행을 하고자 한다.
Ktx 고속 열차의 좌석에는 순방향과 역방향이 있어 역방향에 앉아있으면 다소 어지러워도 자연 속으로 몸을 안기는 길에는 오로지 걷는 기쁨만이 있을 뿐이지만 경기 둘레길 전체 구간을 종주한다면 순서에 따라 순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그간 여러 가지 사유로 순서 없이 갈아왔기에 53코스의 시작점인 한울 배곧 공원보다 종착지인 연꽃 테마공원이 자택에서 교통이 편하고 54코스를 걸어 낯익은 길이 되어 53코스도 역주행으로 걸어가고자 한다.
새로이 개통된 서해선 전철을 타고 시흥 시청역에서 하차하여 2번 출구를 빠져나와 버스를 타려고 물어보니 길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서 5번 버스를 타라고 한다.
운이 좋은지 버스를 기다린 지 5분도 되지 않아 마을버스를 타고 10여 분 만에 연꽃 테마파크 입구에 이르렀다. 약 3만 평의 드넓은 평원에 조성된 연꽃 공원이지만 가을철이 되어 만개한 연꽃의 아름다움은 감상할 수 없어도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었다.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농학자였던 강희맹 선생이 명나라에서 연꽃 씨를 가져와서 심은 관곡지에 이르러 경내를 둘러보고자 하였으나 대문이 잠겨 있다. 오늘날 연꽃 테마파크 공원이 조성될 수가 있었던 것은 아마도 관곡지가 그 뿌리가 될 터인데 닫힌 철문 때문에 담 너머 바라보고 지나가는 것이 아쉽다.
그 아쉬운 마음을 호조별 한쪽에 놓인 디딜방아가 씻어주며 53코스 종착지이자 54코스 시작점인 호조벌의 한 모퉁이에 이르러 지평선의 대지에 피어난 누런 꽃으로 풍요로움을 느끼고 있다.
농수로를 가로지르는 다정함을 느끼게 하는 그 이름, 넙다리를 건너 보통 천을 따라 걸어간다. 탈곡을 마친 벼는 땅바닥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고 탈곡을 기다리고 있는 벼들은 누런 물결을 이루며 내 마음을 물들인다.
이, 얼마 만인가! 6월 23일 18코스를 걸은 지 무려 4개월 만에 맛보는 자연의 기운이다. 여름철 장마를 피하고 추석을 피하여 걷고자 한 것이 무려 4개월을 우리 땅 걷기를 포기하였으니 빠르기만 한 세월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그 게으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연에 나오면 싱그럽기만 하고 방구석에 콕 처박혀 있는 것은 마냥 부자연스럽기만 함을 잘 알고 있음에도 선뜻 자연 속으로 파묻히지 못하는 그 게으름은 언제 고쳐질까?
아무튼, 좋다.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걸어가는 발걸음이 가볍기만 한데 나뭇가지에 매달린 ‘늠내길’를 알리는 표지판에서 반갑고 다정함을 느낀다. 우리가 늠내길을 걸어갈 때 늠내길은 4개의 코스뿐이었는데 새로이 추가로 조성된 길이었다.
보통천 물길을 따라 걸어가는 길에는 농부는 보이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고 만날 수있어 의문이 쌓였는데 알고 보니 시흥시가 자전거길로 조성한 ‘그린웨이 자전거길‘이었다.
그렇다면 이 길은 경기둘레길, 늠내길이자 그린웨이 자전거길이었다. 굴다리를 지나며 늠내길과 헤어지고 다리를 건너 이제는 보통천을 왼쪽에 두고 걸어간다. 다소 멀리 왼쪽으로 시흥의 신시가지 아파트 단지가 눈에 띄고, 오른쪽으로는 인천 송도 신가지의 아파트가 눈에 띈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시내의 외곽지에 나오면 보이는 것은 초가집뿐이었는데 그 후 슬레이트, 기와집으로 바뀌더니 이제는 아파트 단지가 숲을 이루고 있어 상전벽해란 말을 실감하게 하였다.
발전된 국토의 모습에서 희열에 젖을 때 시흥을 대표하는 군자 봉과 고만고만한 봉우리가 눈에 들어오며 신들린 듯 가슴이 뛴다. 산에 병이 들었나보다, 그런데도 산에 오르지 않고 찾아가지 않는 것일까?
갈 길은 멀기만 한데 발걸음은 늦어지고 있다. 모처럼 자연의 기운을 맞아 흥분 속에 사로잡혀 있을 때 오른쪽으로 시흥의 명소 갯골 생태공원의 전망대가 눈에 띄었다.
반가웠다. 늠내길을 걸으면서 생태공원에 이르러 “ 전망대에서 바라본 생태공원은 인간이 꾸며 놓은 더할 나위 없는 정겨운 아름다운 정원으로 다가왔다. 흙으로 빚어진 속살을 드러낸 듯한 진흙별 피어난 칠면초, 나문재, 퉁퉁마디·모새달, 갈대밭…. 등이 수놓은 가공되지 않은 투박하고 거친 듯한 질박한 그대로의 모습으로 드넓은 평원을 이루고 있는 풍광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라고 가슴을 치게 하였던 그 전망대였다.
천리타향에서 옛친구 만나고 오래 가뭄 끝에 단비 만난 기쁨을 만끽하며 분주해진 발걸음으로 국가 해양습지보호 지역인 갯골 생태공원에 도착하였다. 휴일이 아닌데도 관광의 명소답게 사람들이 붐볐다.
귀중한 인연의 땅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우연히 다시 만날 수 있으랴! 듣기 좋은 유행가도 두 번이면 질린다고 하였는데 어이 하여 한번 걸었던 길을 만나고 또다시 걸어야 하는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저 혼자서 흥분하고 있다.
다정한 벗 늠내길을 다시 만남을 기뻐하며 함께 걸어간다. 한번 왔던 길을 다시 걷는 것이 아니라 오늘은 경기 둘레길을 걸어가는데 오래된 친구인 늠내길이 잠시 동행하여 주는 것이니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방산대교 가까이에 이르러 동행한 늠내길은 미생의 다리로 방향을 잡고 경기 둘레길은 월곶 포구로 진행하였다. 이제 자연의 품속에서 나와 시내로 진입하는데 새로이 추가된 늠내길을 알리는 표지기가 펄럭인다.
갯벌 건너편은 인천시의 소래 포구였다. 갯벌에는 바닷물이 서서히 들어오고 있었지만 아직은 물이 차지 않아 갯벌의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경기 둘레길이자 갯벌 제방을 따라 걸어가는 추가로 조성한 늠내길이었다.
갯벌 제방을 따라 월곶 해안로 60길을 따라 월곶 포구에 이르렀다. “월곶 포구는 소래 포구와 함께 수도권을 대표하는 어시장이다. 지역 사람들은 월곶을 달월이라 부른다. 바다로 튀어 나온 땅이 반달 같다고 붙인 이름이다. 조선 시대 수군만호가 설치될 정도로 군사상 요충지였다. 지금은 주변 신도시로 인해 도시표구가 되었다. ” 고 경기 둘레길 홈페이지는 적고 있다.
월곶 중아로에 이르어 서행랑길과 만나니 경기 둘레길. 서해랑길, 늠내길이 하나가 되는데 시가지를 통과하는 길이 되어 길의 이탈을 염려하며 신중하게 걸어간다.
월곶대교를 건너 시내를 벗어나며 길 이탈의 염려도 사라지어 편안한 마음으로 걸어가지만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자연의 소리로 다가오지 않지만 거부 반응도 없어 때가 되었기에 자동차 소리를 들으며 준비해온 점심을 먹었다.
오늘 식단도 예외는 아니다. 삶은 달걀과 쌀국수, 과일인데 어찌 된 일인지 배가 고프지 않아 쌀국수는 끓이지 않았다. 샘솟는 힘에 경쾌하게 깔끔하게 정비된 갯벌 제방길을 걸어가는데 한울 배곧 공원을 알려준다.
“배곶 한울 공원은 배곧 신도시 외곽을 따라 조성한 6km의 수변 공원이다. 북쪽은 월곶 포구, 남쪽은 오이도, 서쪽은 바다 건너 송도 신도시와 인접했다. 공원 안에 있는 해수 풀장, 갯벌 체험장은 특히 인기가 있는 곳이며 가족 나들이에도 좋다. 공원에서 보행자 다리 한화교를 건너 인천 남동구로 갈 수있다”고 하였다. (경기 둘레길 홈페이지에서 퍼옴)
띠처럼 길게 이어진 공원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이만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다른 나라의 도시 같은 발전된 송도 시가지와 어디서나 볼 수 없는 검은 색이 수놓는 갯벌과 바다의 풍광을 만끽할 수 있도록 초현대식으로 조성된 아름다운 공원길이기 때문이다.
자연과 도시 문명이 결합한 다시 걸어도 좋을 것 같은 신명 나는 아늑한 길은 혼자 걷는 것보다는 둘이 걸어가는 것이 좋아서 그럴까, 문득 아내가 생각나며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고맙소 <김지환 작사. 조항조 노래>
이 나이 먹도록 세상을 잘 모르나 보다
진심을 다해도 나에게 상처를 주네
이 나이 먹도록 사람을 잘 모르나 보다
사람은 보여도 마음은 보이지 않아
이 나이 되어서 그래도 당신을 만나서
고맙소 고맙소 늘 사랑하오
술 취한 그날 밤 손등에 눈물을 떨굴 때
내 손을 감싸며 괜찮아 울어준 사람
세상이 등져도 나라서 함께 할거라고
등뒤에 번지던 눈물이 참 뜨거웠소
이 나이 되어서 그래도 당신을 만나서
고맙소 고맙소 늘 사랑하오
못난 나를 만나서 긴 세월 고생만 시킨 사람
나 당신을 위해 살아가겠소
남겨진 세월도 함께 갑시다
고맙소 고맙소 늘 사랑하오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고맙소란 가사를 흥얼거리며 즐거워할 때 목적지 한울 배곧 공원을 알리고 있었다. 갯벌을 바라보니 어느덧 바닷물이 꽉 찼다. 소래 포구에 이르렀을 때 처음 바닷물이 밀려오더니 종착지인 한울 공원에 이르니 가득 찬 것이다.
사수가 쏜 화살보다 빠르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 빠른 세월 속에 어느 하나 일구어내지 못하여 평범한 삶조차 누릴 수 없는 신세가 원망스러운데 하얀 머리까지 가득찼다.
스스로 어루만져주며 위로하고 달래도 부끄러움은 가시지 않는다. 그리하여 마음에 한이 쌓이고 그 한을 관용과 포용으로 매질하며 바람에 날려 버리고자 오늘도 경기 둘레길 53코스를 걸었다.
● 일 시 : 2023년10월12일 목요일 맑음
● 동 행 ; 나홀로
● 행선지
- 09시50분 : 연꽃 테마파크
- 10시40분 ; 갯골 생태공원
- 12시00분 : 월곶포구
- 12시50분 : 점심
- 14시20분 : 한울 배곧 공원
● 총거리 및 소요시간
◆ 총거리 및 소요시간
- 총거리 :16.8km
- 소요시간 : 4시간 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