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을 향한 수도자의 노정 (이상헌 평전)
8) 하늘 섭리의 최전선 미국을 가다
8. 샌프란시스코, 하와이를 가다
오크랜드와 샌프란시스코는 붙어 있다. 오크랜드에는 일본인과 중국인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인은 집단 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 석방된 곳이 오크랜드시였다.
중국인도 오래전부터 무역관계로 오크랜드에 많이 정착하게 되었다. 거리의 이름도 한자를 사용한 것이 눈에 띠었다. 그런가 하면 미국에서 제일 긴 다리로 오크랜드와 레이를 잇는 다리가 있는데 중간에 유명한 보물섬이 있다.
박케이(Barkey) 대학은 캘리포니아 대학의 한 분교이나 독립된 대학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캘리포니아 대학에는 여러 브린치 캠퍼스가 있다.
오크랜드에는 뉴욕 다음으로 흑인이 많으며 실업자도 많은데 그들은 대부분 연금으로 취저생활을 하고 있다. 그들은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어 한국인이 사업에 성공하는 것을 보고 샘을 내고 있다. 오크랜드는 반전운동의 근거지이며 히피(Hippy)족의 중심지였다. 원리연구회가 주축을 이룬 한인교회가 있는데, 샌프란시스코로 나가게 되었다.
그동안 방송프로에서 대담을 가끔 가져서 이제는 특집프로에 발탁될 정도로 사회적 위치가 높아졌다. 특히 미국의 3대방송의 하나인 ABC방송국은 국내외의 저명한 인사만을 특집프로에 초청하는데 이번 문총재 재판에 관해 밤의 나이트라일(night line)의 프로에 트리비(Tribe)변호사와 함께 초청되어 도날즈(Donals) 기자와 대담을 하였다.
거기에는 재판부의 조사관 부쵸(Bucho)도 초청되었다. 도날즈 기자는 총재님의 유죄판결에 대해서,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라고 묻는 질문에 대해서 더스트 협회장은 유죄판결이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분명히 이것은 종교탄압이다. 통일교회는 앞으로 번영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역시 트리비 박사는 이번 판결은 헌법상 있을 수 없다. 아무리 헌법을 연구해도 문목사가 감옥에 갈 하등의 이유가 없다. 만일 헌법상 레버런 문이 감옥에 간다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기로 된 헌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인데, 헌법은 그렇게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재판이 잘못되었다고 반박했다.
부쵸는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공정히 했음을 자신 한다고 답변했다.
7월24일(토)
아침식사 후 출발하여 10시경에 미국에서 유명한 유니버설 스타디움(universal stadium)에 이르러 명배우들이 사인해 놓은 바닥의 돌 위에서 사진을 찍고 남부 가주(加州)의 교회에 이르러 기도를 한 후 헌금을 하고, 한인교회에 가서도 역시 기도한 후 헌금을 했다.
오후 5시15분에 고 박종구의 댁에 이르러 고인의 영상 앞에서 일행과 가족을 모이게 한 후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6시에 떠나서 7시 경에 영빈관에 도착했다. 이미 와서 기다리는 MFT대원 차도순, 문사장의 큰딸과 이상림의 큰딸 등과 일행이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7월25일(일)
새벽 5시에 미국 LA의 영빈관에서 경배식을 가졌다. 끝나고 ‘자녀들의 7년 노정’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하였다.
공항에 나아가 수속을 마치고 12시20분에 출발해 5시간 후인 오후5시40분에 호노룰류에 도착했다. 오오니시(大西)씨의 영접을 받고, 모아나 호텔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하와이의 유래와 현황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6시경에 유명한 와이키키 해안에 나아가 잠시 해수욕하고 들어왔다.
저녁 7시에 칼 호텔에 가서 오래간만에 된장찌개 백반을 먹었다. 밤11시 비행기로 문승용 사장의 뉴욕에서 호노룰루에 도착해 반갑게 해후했다.
LA영빈관에서 자녀의 노정에 관해 말씀을 했다. 전에 한국과 일본 등에서 몇 차례 강의하였던 내용이었다. 즉, 자녀노정은 첫째, 가나안 복귀노정 둘째, 사탄굴복 노정 셋째, 개인의 성장노정으로 나눠서 이야기했다.
마지막에는 부모님의 가나안 진입 후의 가나안 7족 진멸, 경제복귀를 의미하는 땅 분배, 통일작업 즉, 기독교 통일을 비롯한 종교통일, 사상통일 등에 협조해 드리는 노정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노정을 걸으려면 부모님을 항상 흠모하면서 심정적 인연의 유대를 굳게 맺고 나가야 함을 알려주었다. 마지막 기도 때는 흐느껴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을 참으며 기도하였다. 미국 식구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하와이의 유래와 현재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하와이는 폴리니안 쪽으로, 본래 80여 년 전까지는 왕조였으나 마지막 여왕 때 쿠데타가 일어나 미국의 한 지역으로 병합되었다.
이 지방의 특산물은 사탕수수로, 주로 대미 수출로 경제를 유지해 왔으나 미국에서 관세장벽을 높아가며 병합을 꾀했다. 또한 하와이의 경제 실권은 그동안 이주해온 백인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병합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왕조가 망하게 될 무렵, 여왕이 부른 망국의 애가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의해 애창되고 있다. 이곳 원주민은 전체 인구 100만 중 15%인 15만이고 백인계가 33만, 일본인이 25만, 필리핀인, 중국인, 한국인, 기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인의 이주 유래는 사탕수수의 농사에 노동력 제공을 위해서였다. 중국인도 동일한데 일본인보다 오히려 먼저 정착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본토의 일본인은 한 사막에 격리 수용되었으나 하와이의 일본인은 지도층을 제외하고는 무사했다. 미국인의 대일 감정을 생각하여 본인이 일본계임을 나타내기를 꺼려하고 있으나 일본이 점차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가 되어가자 점차 긍지를 회복하고 있다.
1958년에 주로 승격되었으며, 현 시장은 일본계이다. 그는 주지사를 겸하고 있으며 이 주 출신의 상원의원 2인이 모두 일본계이다. 미국의 경제계에도 일본인의 진출이 현저히 증거하고 있다.
이곳 하와이의 특징으로는 첫째, 해수욕장으로 와이키키가 유명하다. 둘째, 원주민이 대단히 관용적이어서 그 전통을 이어 받아 하와이의 인심도 대단히 관용적이다. 본토와는 다르게 여러 인종의 대립이나 갈등이 적고 서로 화해를 조성하고 있다. 셋째, 한국인도 활발히 활동하여 적응하고 있으며, 한국의 김치는 이제 전체 도민의 일반식의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넷째, 이곳의 쇼핑센터는 미국에서 제일 크다고 한다. 이를 일본의 대영(大栄)의 슈퍼 체인이 매입하였다.
7월26일(월)
기숙했던 호노룰루의 모아나호텔에서 새벽 5시에 기상했다. 아침 식사 후 9시경에 출발해 고전장(古戦場)과 강풍통로 및 아름다운 경치로 잘 알려진 팔리 전망대에 갔다. 카메하메하왕의 동상 앞에서 사진 촬영한 후 주청을 지나 진주만이 바라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태평양 제도의 생활풍습으로 의식주 문화와 양식 등을 구경하고 오후 3시경에는 강에서 배를 타고 전시하는 각 지역의 특유한 춤을 관람했다. 밤에 일본 오오다니(大谷)씨에게 전화하여 내일 나와 문승룡을 비롯하여 다섯 사람이 동경으로 떠난다고 전달했다.
하와이를 관광하며 느낀 점을 피력하자면, 하와이는 일반적으로 폴리네시아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어휘가 적고 하나의 자음과 모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어도 그와 같은 점에서는 동일하다. 일본어의 남방 유래설이나 또은 음성상으로도 이는 일본어와 유사하다.
하와이의 뜻은 나무에 꽃이 핀다는 뜻이다. 하와이 주민들이 방문객의 목에 걸어주는 꽃은 하이비스커스(Hibiseus, 고등식물)라는 나무의 꽃이다. 하와이의 산 지형에는 강우가 자주 있으나 평지는 맑은 날이 많다. 우량이 많으므로 나무를 심으면 빨리 성장한다.
카메바메하왕이 하와이 제도를 통일하기 위해 지금의 팔리라 불리는 전망대에 올라가보니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이곳에는 강풍로라 불리는, 강풍이 부는 통로가 있는데 왕이 이 바람을 이용하여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한다. 하와이에는 아프리카와 같은 정글이 있는데 뱀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카메하메하왕의 동상과 건너편에 있는 궁전은 약 80년 전에 지어졌다. 마지막 여왕이 살던 곳이기도 한데 매우 인상적이었다. 여왕이 망국의 애가를 애인과의 작별에 비하여 지었는데, 이는 알로아에라고 하는 노래이다.
하와이주 청사의 맞은편에는 평화의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호롤루루가 있는 섬을 오하우라고 불렀다. 하와이의 나무 중 인상적인 것으로 원숭이 나무가 있었다. 끝없이 펼쳐져 하늘에 닿을 것 같은 파인애플 농장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과실을 수확한 후에는 나무를 모두 갈아엎어 비료로 사용한다. 바나나 묘목을 심는 것은 밭을 만들어서 나중에 마치 벼를 심는 것과 같이 재배한다.
하와이에 기독교가 처음 전파된 것은 250여 년 전으로, 영국 사람인 캡틴 쿠프(Captain Coop)에 의해 전파되어졌다. 그 당시 원주민과의 충돌이 일어나 그는 당시 살해되었다. 그 후 150여 년 전부터 미국인들이 본격적으로 선교하기 시작하여 오늘에는 거의 기독화 되었다.
이 섬에는 1300여 년 전인 7세기부터 원주민이 살기 시작했다. 남방의 폴리네시아 제도의 주민들이 카누를 타고 정작 8000km의 거리를 항해하여 이곳에 상륙했다. 학자들마저 그것이 가능한가를 실험할 정도로 먼 거리였다. 7세기와 13세기 2회에 걸쳐서 대이동이 있었다. 폴리네시아의 기원은 인도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인도인이 인도네시아인으로 그리고 다시 폴리네시아인이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와이의 주산물은 사탕수수를 비롯하여 파인애플, 파파야, 코코넛 등인데, 최근 노임이 비싸서 사탕수수 재배가 대외 경쟁에서 타산이 맞지 않자 늪(池)을 많이 만들어서 굴과 가재, 새우 등의 양식을 권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양식에는 기술이 요구되기 때문에 그렇게 수월하지 않다.
라이에라는 지역은 몰몬교의 주된 정착지로 형성되고 있으며, 이곳에 태평양본부와 모르몬대학이 있다. 몰몬교는 약 250여 년 전에 조셉스미쓰에 의하여 세워졌으며, 미국이 선민국가이며 재림메시아가 온다고 여기고 있다. 몰몬교는 오늘날 기업체를 통한 경제기반이 튼튼하여 교세가 강하다. 폴리네시아 센터는 몰몬교에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