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4일 새벽
본문: 마태복음 12:1-13
제목: 안식일의 "뜻"
본문은 마가와 누가도 모두 다룬 본문이기도 하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과 비교해보면 한 쪽 손 마른 사람을 회당에서 고친 사건은 밀밭 사건이 발생한 안식일이 아닌 다른 안식일에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아무튼 세 복음서를 비교해보면 오늘 읽은 본문을 좀더 보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안식일에 회당으로 가는 길에 밀밭을 통과하면서 제자들이 배고파서 밀을 훑어 먹는 상황에 아마도 바리새인들도 가까운 거리에서 따라가고 있었던 것 같다. 마가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막 2:27)라고 예수님이 안식일의 정신과 의미에 대하여 명료하게 대답하신 내용을 포함시켰다. 세 복음서 모두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는 말씀을 공통적으로 포함시켰다. 마태는 마가와 누가가 다루지 않은 내용을 기록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6-7절). 이 말씀에서 "뜻"이라는 단어가 오늘 본문을 이해하는 키워드이다.
바리새인들은 "뜻" 즉 의미, 정신, 원리, 중심을 알지 못했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외양적으로는 율법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하는 자들이었다. 실상은 경건의 모양을 갖추고 있었지만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이었다(딤후 3:5 참조). 그러나 복음서 전체에서 나타나는 대로 그들은 그릇의 겉을 깨끗하게 씻으려고 했지만 속이 매우 더러운 상태에 있는 자들이었다. 회칠한 무덤과 같았고 생명력이 없었다. 사람을 살리는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으로 사람들을 옥죄며 힘을 빼앗는데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안식일 규정의 "뜻"에 대해서 다음의 유명한 말씀을 하신 것이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위하여 안식일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지킬 것을 계명으로 주신 "뜻"은 탐욕을 갖기 쉬운 인간들에게 "쉼"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창조시에서부터 지음을 받은 다음 날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안식"을 은혜로 누렸다. 안식일은 하나님과 자기 백성 사이의 "영원한 언약"이자 "영원한 표징"(출 31:16, 17)이었다. 이방 백성들과 구별됨을 보여주는 "거룩"의 표식이었다. 모세는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압 평지에서 율법을 다시 강론하면서 십계명에 대해서 출애굽기에 나오는 안식일 계명의 의미를 확장시켜 설명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 5:15). 인간이 탐욕으로 "쉼"이 없이 일하지 않도록, 일을 시키지 않도록 명시적으로 법을 주신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모세는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같이 안식하게 하라 하느니라"(신 5:15)라고 종들과 짐승들에게까지 "쉼"을 줄 것을 명시한 것이다. 이 안식일 계명에는 하나님의 자비심과 긍휼심이 잘 드러난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제사를 원하셨다. 그래서 각종 제사 제도를 규정하시고 알려주셨다. 제사를 소중하게 다루셨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제사의 "뜻"과 "정신"이었던 것이다. 제사는 하나님의 "자비"(mercy)를 표상한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는 것이 제사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첫 장에서 바리새인들과 같은 삶을 살았던 당시 남유다 백성들과 지도자들의 실제 모습을 직면하여 외쳤다.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사 1:10-15). 그들은 유황불 심판으로 멸망당했던 소돔과 고모라의 백성들에 비견될 정도로 실제 삶은 악한 상태였던 것이다.
어릴 적부터 주일성수를 중요시하는 목사 가정에서 성장기를 보낸 나는 주일성수를 강박적으로 지켰던 율법주의자였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도 토요일 밤 12시가 되면 공부하는 것을 중단하고 주일에는 예배 드리는 시간 외에는 주로 잠을 자거나 했지 공부를 하지 않았다. 월요일에 시험을 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주일 밤 12시가 되면 잠에서 깨어 공부하기도 했다. 이런 주일 성수는 안식일 계명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는 오늘날의 유대인들이나 안식교 교인들의 모습과 비슷한 것이었다. 주일 성수와 관련된 개인적인 에피소드가 있다. 총신대 신학대학원에 진학하기 전에 먼저 수강해야 했던 헬라어 라틴어 동계강좌를 수강하는 기간 동안 주일에는 기숙사 식당에 일하시는 분들이 쉬기 때문에 식사가 없었다. 주일은 세끼를 굶었던 기억이 있다. 한번은 배가 고파서 중국집에 들어가 자장면을 시켜 먹다가 주일을 어겼다는 생각이 들자 불안감 때문에 목구멍에 넘어가던 면발이 걸려 더 이상 먹지 못하고 나온 기억도 있다. 강박적이던 주일 성수 개념에서 자유하게 되는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주일에는 일반 책을 읽고 싶어도 불안 때문에 책의 내용이 소화가 되지 않았다. 지금도 주일의 기본 정신은 지키려고 한다. 그러나 이전에 강박적으로 주일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삶에서는 벗어났다.
예수님은 성소에서 물려낸 진설병은 제사장들 외에는 먹을 수 없도록 율법이 규정했지만 아비아달 대제사장은 그 떡을 시장한 상태에서 찾아온 다윗과 그와 함께 한 자들에게 주었던 사건을 연결짓기 하면서 제자들이 시장하여 밀을 손으로 훑어서 먹는 것이 안식일의 정신을 위배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성전보다 더 크신 분이시며 대제사장들보더 더 크신 분이시라고 대답하셨다. 예수님은 안식일에도 주가 되시며 "예수님 안에서" 선을 행하는 것은 안식일의 정신을 위배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의 정신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주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9-13절에서 이어지는 안식일에 회당에서 한쪽 손이 마른 자를 고쳐주셨다. 예수님은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라고 안식일의 "뜻"을 직접 우리에게도 가르쳐주신다. 나무 몇그루에 집착하는 시각을 벗어나 큰 숲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는 성숙한 삶을 살아가기 원한다.
이관직교수, 온라인상담실 "이관직상담실" 홈페이지 주소 kleecounseli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