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가 히바 성 남문 바로 앞에 있어서 히바 성안을 구경하기가 유리한 곳에 위치해 있다. 방을 배정받고 점심을 간단하게 해결하고 히바 성안의 이찬칼라를 구경하러 가는데 길잡이가, 전체를 관람할 수 있는 표를 사는 방법과 중요한 건물을 입장할 때마다 돈을 내는 방법이 있는데 전체를 관람할 수 있는 표를 사면 2일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어느 고대도시에 못지않은 문명사를 간직한 히바는 아무다리아 강 하류의 비옥한 델타에 위치한 오아시스 도시로 옛부터 페르시아에서 카라쿰 사막으로 들어가는 출입구 역할을 해 왔으며, 동서남북을 잇는 중요한 교역도시였다. 출토된 유물에 의하면, BC 6세기경부터 성벽을 쌓기 시작해 기원전 4~11세기에는 내성을 중심으로 한 요새 도시가 형성되었다. 쿠샨왕조를 비롯해 몇 차례의 외침으로 도시가 망가졌지만 신속히 복구되었고 9세기 말 이슬람 화가 시작된 뒤, 10세기 후반 이찬 칼라(Itchan Kara, 내성)와 디샨 칼라(Deshan Kara, 외성)의 대체적인 윤곽이 잡혔고 16세기 초 히바 왕국이 건국돼 수도가 되면서 부단히 증축하고 개축해 오늘날의 모습으로 도시 구조가 완성되었다. 히바의 기원에 대한 전설이 있다. 세계가 대홍수 재난을 겪던 어느 날, 노아의 장남 셈(Shem 또는 Sam)은 홍수에 쫓겨 사막을 정처 없이 배회하다 이곳 광야지대에서 지쳐 잠들었는데, 별안간 꿈속에서 300개의 타오르는 관솔불을 보게 된다. 희망의 상징인 관솔불을 본 셈이 잠에서 깨어나자 모래언덕에 난데없던 배 모양의 요새가 나타나자 이 자리에 배모양의 도시를 건설했으며, 셈이 관솔불을 본 자리에 우물을 파자 우물에서 물이 흘러 넘쳤고 사람들은 모두 이 우물을 헤이와크(Kheivak, 우물이라는 뜻)라고 명명하였는데 이 헤이와크에서 히바란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내성 지형이 신통하게 배 모양을 닮았고, 그 지층에서는 수많은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서북쪽에 있는 헤이와크 이름의 호텔이 있다. 그러나, 셈이 판 우물은 없다. (나무위키)
여장을 풀고 간단히 점심을 먹은 후 선배부부와 히바 구경에 나선다. 길잡이가 카톡으로 보내 준 지도를 참고삼아 남문으로 가니 입장권을 보여 달라고 하기에 길잡이가 알려 준대로 성내 음식점에 간다고 말하니 그냥 입장시킨다.
이찬칼라의 입장권은 매우 복잡하다. 일반 여행자용 통합입장권은 이찬칼라의 서문매표소에서 살 수 있는데 1인당 250,000숨이며 24시간 유효한데 이찬칼라 내 16~17개 박물관, 마드라사, 주마모스크 등의 입장이 가능하며 이슬람 호자 미나렛, 파흘라반 마흐무드 영묘, 악쉬크 보보 전망대, 성벽 등 일부는 통합입장권에 포함되지 않아 별도의 입장료(약 30,000~50,000숨)를 해당 유적지 입구에서 별도로 내야 한다. 우린 오늘은 입장권을 구매하지 않고 대략 둘러보며 이찬칼라 내 지리를 알아두고 내일 오전에 보고 싶은 곳만 집중적으로 보기로 한다.
여행 전 인터넷 블로그를 보니 북문 성벽에서 내려다보는 이찬칼라 야경이 일품이라고 꼭 보고 와야 한다고 한 생각이 난다. 내일 오후엔 붉은 모래란 뜻의 키질쿰 사막에 있는 토프락칼라와 아야즈칼라, 키질칼라를 보러 갔다 밤늦게 돌아와 성벽 투어를 할 수 없어 북문까지 온 김에 성벽을 오르기로 하고 성벽 아래 작은 매표소에 표를 사러 갔더니 철문 앞을 지키던 관리인이 입장시간이 종료되었다며 문을 안 열어 준다.
이찬칼라의 야경을 감상하며 호텔로 돌아온다.
히바 칸국
1510년의 메르브 전투 이후 1511년까지 트란스옥시아나는 우즈베크 칸국의 직계후신인 부하라 칸국과 이란 사파비 왕조에 의해 양분되었다. 하지만 모든 우즈베크 족이 샤이바니 왕조를 따라 부하라 칸국에 합류한 것은 아니었다. 일부 세력은 현재는 카자흐스탄 서부인 아랄 해 북부 연안에 남아 있었고, 그들은 동포들이 애써 정복해 놓은 땅을 수복하기 위해 1511년, 일바르스 1세의 지휘 하에 남하하였고, 시아파를 혐오한 히바와 우르겐치 주민들의 봉기에 힘입어 1512년에는 페르시아 군대를 완전히 몰아내었고, 1515년에 완전 독립한다. 일바르스 1세는 샤이바니 칸의 조부인 아불 하이르의 조부인 아랍 샤 이븐 풀라드의 또 다른 후손이었다. 대부분의 시기에 히바 칸국의 영토는 11세기 말에서 12세기 중반까지의, 서아시아를 제패하기 이전의 호라즘 왕조와 영역이 비슷했다. 심지어 수도도 우르겐치로 같았지만 강물의 흐름이 바뀌어 우르겐치가 사막화의 길을 걷자 1619년, 국명에 걸맞게 히바로 천도한다.
동쪽 이웃의 부하라 칸국과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다툼이 잦았는데, 1538~1540년, 그리고 1593~1594년 사이에 부하라 칸국에 의하여 점령되기도 하였다. 16세기 말 이후 시베리아 및 현 카자흐스탄 북부 초원지대를 통해 중앙아시아로 차차 침투해 온 러시아는 1717년, 표트르대제의 분견대를 히바에 파견한다. 하지만 이 당시에는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사이에 기술력 차이도 크지 않았고 초원-사막지대라는 험지를 극복할 만큼 교통이 발전되지 않아 파견대는 패배한 후 실종되었고 그 후 한 세기 반, 150여 년 이상의 세월 동안 러시아 조정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된다.
그리고 1740년, 이란의 튀르크계 나디르 샤에 의해 부하라칸국과 함께 정복되며 1747년까지 아프샤르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나디르 샤 사후 그의 제국은 공중 분해되었고 트란스옥시아나 지방도 전처럼 독립을 찾았다. 1804년, 옹기라트 왕조로 혈통이 교체되었다. 그들은 몽골 제국 시대에는 왕비족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무려 테무친의 어머니가 속한 씨족으로 몽골 제국의 외가 조상이 된다. 13세기 말에 호라즘을 지배하다가 티무르 왕조에게 축출당한 왕가의 후손이다. 알리쿨리 칸의 치세에는 중앙아시아 전역에 대하여 패권을 잡아 명성을 떨친다. 히바칸국은 전성기에 현재의 카자흐스탄 남서부, 우즈베키스탄 서부, 그리고 투르크메니스탄의 대부분을 지배하에 두었다.
러시아 제국은 1868년 부하라 칸국, 1873년에는 히바칸국을 점령했다. 1886년에는 페르가나분지의 코칸트칸국까지 점령하게 된다. 코칸드칸국은 완전 합병해 한 주로 만들었지만 부하라칸국과 히바칸국은 조약을 맺어 보호국으로 만들어 나라는 유지시켰다. 러시아 제국의 보호국 신세였던 히바칸국은 1917년의 러시아 11월 혁명과 뒤이은 적백내전에 휘말렸다. 히바 칸국은 볼셰비키에 대항하여 백군에 힘을 보태 러시아 내전에 참가했으나 패배하고 히바에서도 혁명이 일어났다. 칸은 아프가니스탄으로 도망가고, 결국 히바칸국은 1920년, 호라즘 인민소비에트공화국으로 개편되며 멸망한다. 호라즘 소비에트공화국은 1924년에 공식적으로 소련에게 병합되어 우즈베크 소비에트사회주의 공화국의 일부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