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씨, 이년도 구름을 탈것같소. 확이 뿌서지도록 방애럴 한 번 찧어보씨요.
젖 묵던 심꺼정 써서 찧어보시씨요.”
“알겄소. 내가 숱헌 계집덜얼 견뎌봤소만 아짐씨겉은 여자는 또 첨이요.”
사내의 말에 옥녀가 속으로 싱긋 웃으며 대꾸했다.
“이년도 아자씨겉은 사내는 첨이요. 심이 참으로 장사요.
아랫녁 물건만 가꼬도 아자씨 한 평생 편히 묵고 살겄소. 거그요,
거그. 쪼깨만 더 콕콕 쪼사보씨요. 아이고, 나 죽겄소.”
계집의 말에 사내가 마지막 기운을 다 바쳐 용을 쓰고 있었다.
옥녀가 엉덩이를 바짝 치켜 들고 방아확을 돌리는 어느 순간이었다.
사내가 어윽어윽 비명을 내지르며 열 댓번 방아깨비 방아를 찧었다.
그리고 그 순간 노란 나비떼가 눈앞에 아른거리는가 싶더니,
"꺄아악~!!!"
하는 소리가 계집의 입을 빠져나와 골짝을 내려갔다.
“인자, 실퍽허요?”
사내가 귓가에 대고 물었으나, 계집은 대답할 기운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가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오랫만의 살풀이가 흡족했던 것일까. 어설픈 잠자리일망정 옥녀는 달디단 잠이 들었다.
꿈자리 또한 좋았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아름다이 피어있는 꽃밭에서 벌나비를 희롱하고 있었다.
“이놈의 벌들아, 꿀을 그리 싹 빨아묵어뿔먼 꽃들은 어찌 산다냐?”
꽃잎에 숨어 꿀을 빨아먹는 벌과 나비를 훠이훠이 쫓기도 하다가,
꽃잎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기도하면서 꽃과 노닐고 있을 때였다.
달콤하고 기분좋은 느낌이 가슴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아니, 거기에서 따뜻한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 이것이 무신 요상시런 기분이랴?’
옥녀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덥석부리 사내가 한 손으로는 숲 사이의 옹달샘을 헤집으며,
입으로 가슴팍의 조롱박을 희롱하고 있는 중이었다.
꼭지를 이끝으로 물고 도리도리를 하는가하면 조롱박의 옆구리를 입술로 쿡쿡 눌러대기도 했다.
잠이 든 체 가만히 있었으나, 몸뚱이가 저절로 움죽거리고 있었다.
잠짓인체하면서 오른손으로 사내의 사타구니를 더듬어보았다.
제 놈의 말마따나 계집과의 아랫녁 송사에는 이골이 났는지,
아니면 그 쪽의 기운만 유난히 강한 사내인지, 단단한 놈의 물건이 손끝에 스쳤다.
사내가 원한다면 응해주지 못할 까닭이 없었다.
하룻밤에 일곱 사내를 몸 위에 얹었다고는 하나 나머지 여섯은 전부가 헛것이었지 않은가.
덥석부리 사내와 한번만 더 방아를 찧고나면 당분간은 아랫녁이 허전할 일은 없을 것이었다.
세상에 사내는 많다해도 어디 쓸만한 사내가 흔하던가?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는 말은 그냥 있는 말이 아닐 것이었다.
“아자씨가 사내 중의 사내요. 우리 새칠로 한번 해보끄라우?”
옥녀가 사내의 물건을 꽉 움켜쥐며 단내를 뿜어냈다.
“깨어있었소? 아짐씨, 거시기가 하도 좋아서 욕심이 난 갑소.”
“아자씨껏도 좋소. 물건 중의 물건이요.”
“허면 올라갈라요이.”
“어서 올라오씨요. 이년언 펄쌔부텀 준비가 되어있응깨요.”
옥녀가 두 팔을 활짝 벌렸고, 사내가 옆으로 돌아눕는듯하면서 몸을 올렸다.
방아고가 확을 찾아 미끌어져 들어갔다.
“서두를 것이 멋이다요? 날이 샐라면 안직 멀었응깨, 서나서나 찧어봅시다.”
사내를 꽉 조이며 옥녀가 말했다.
“그럽시다. 헌디, 걱정이 한 가지 생겼소.”
“멋이 걱정이다요?”
“아짐씨럴 성님들과 나놔묵리로 헌다는 것이 껄쩍지근허요.
아무리 아짐씨가 사내들의 낯가림얼 안 헌다고 해도 내껏으로만허고싶소.”
덥석부리 사내가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아자씨가 참, 욕심도 많소. 어채피 그리 의논된 일얼가꼬. 허나 아자씨하고만 참말이요.
다른 아자씨덜언 가짜요. 내가 통 심얼 안 써도 제풀에 물러들 갈 것인깨요.”
“투김심언 계집덜헌테만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요. 사내덜도 투기럴헌단 말이요.
아짐씨럴 나 혼자만 가꼬싶소.”
“그래서 어뜨케허자는 말씸이요? 어디, 딴 살림이라도 챙겨주실라요?
아자씨가 그래만 주신담사 이년도 딴 사내허고는 방애럴 안 찧을 것이요.”
옥녀가 아랫녁을 꽉꽉 조이며 말했다.
덥석부리 사내가 움죽꿈틀 움죽꿈틀 화답을 하며 대꾸했다.
“그럴수만 있으면 그러고 싶소. 쩌그 지리산 속에 들어가 화전이라도 일구며
그렇게 살고 싶소.가끔언 고라니에 노루라도 잡아 몸보신도 험서 말이요.”
“흐흐흐, 그 일언 그 일이고 우선언 허던 일이나 계속허십시다.”
“잘 생각해보시씨요. 아짐씨라고 언제꺼정이나 고운 모십으로 살것언 아닌깨요.”
덥석부리 사내가 몇 번 깝죽러렸다. 거기에 화답을 하며 옥녀가 물었다.
“헌디, 아자씨넌 어쩌다가 도둑이 되었소?
더군다나 여그넌 남원과 운봉이 가까운 짚은 산 속도 아닌디.”
“공동무덤에 가서 물어보씨요. 내택없이 죽은 사람이 있등가요?"
"이놈도 가난허기넌 혔을망정 알콩달콩 살아가자고 약조혔던 계집도 하나 있었고,
잘만혔으면 넘의 논일망정 기운 껏 농사지어 자석새끼낳음서 살아갈 수도 있었제요.”
덥석부리 사내가 느닷없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주인의 그런 심사를 눈치챈 것일까?
사내의 물건이 슬며시 사그라 들었다. 그걸 느낀 옥녀가 몇 번 아랫녁을 움죽거렸다.
“긍깨, 멀라고 사람의 심사럴 긁소? 운봉의 이부자놈만 생각허면 내가 이가 갈리요.”
사내가 방아깨비 방아를 찧으며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이부자라는 놈이 아자씨가 맡아 논 계집얼 어뜨케 혀뿌렀소?”
“아, 그 말언 허지 말랑깨요.”
덥석부리 사내가 화를 버럭 내며 화풀이라도 화듯이 방아고를 높이 들었다 쿵 찧었다.
그것도 한 두번이 아니라 죽을둥 살둥 찧어댔다.
그러다가는 허망한 끝이 올 것 같아 옥녀가 아랫도리를 꽉 오무렸다.
“천천히, 천천히 찝시다. 시월이 좀 묵는 것도 아닌디.”
“아니구만요. 언제 성님덜이 깨어날지 모르는디, 아짐씨허고 나허고만 빠져나간 것을 알면
쎄려죽일라고 허실지도 모르는디.”
“알겄소. 이년도 아자씨가 맞아 죽는 꼴언 안 보고 싶소.
헌디, 이부자 놈이 아자씨의 계집얼 어뜨케 혔소? 다짜고짜 덮쳐뿌렀소?”
“논 두마지기에 사갔소. 씨받이 계집으로.”
“씨받이 계집이요?”
옥녀가 물었다.
“원래 이부자네가 재산언 천석이라도 자손이 귀했소.
이부자놈도 독자인디, 그 아덜놈도 독자였소.
며느리가 시집온지 다섯해가 되도록 자석얼 못 난깨,
내 계집 옥분이럴 술주정뱅이 지 애비럴 꼬셔가꼬 안 사갔소."
"내가 가서 옥분이넌 내 여자인깨, 논 두마지럴 내가 물어줄 것인깨,
내노라고 고래고래 고함얼 지르다가 이부자놈얼 거름자리에다 패대기럴 안 쳐뿌렀소.
허리병신얼 맹글아놓고 산으로 도망얼 쳐뿌렀소.”
“좀 참제 그랬소. 그래, 이부자네 아덜놈언 자석을 보았답디까?”
“펄새 세 해가 되었는디, 안직도 무자석이라고 그럽디다.
어뜨케던 자석얼 볼라고 첩도 서넛 디리고, 운봉이며 함양의 주막에 그럴듯헌 계집이
나타나면 자석하나만 낳자고 애걸복걸 헌갑습디다만,
팔자가 그런지, 삼신할매가 외면얼 허는지 자식이 안 생긴다고 그럽디다.
흐기사 이부자놈이 원체 성깔얼 더럽게 쓴깨, 그 벌얼 받는다고도 그럽디다만.”
“이부자놈이 성질이 더럽소? 어뜨케 더런디요?”
“놀부심뽀는 저리가지요. 그 놈이 어찌나 욕심이 많던지, 넘의 집에 쓸만허다 싶은
물건이 있으면 어뜨케던 제껏얼 맹글고 만당깨요. 돈푼깨나 있응깨,
봄에 쌀 말이나 빌려주었다가 가실에 쌀 한 가마니럴 받는 것언 예사고,
쌀얼 안 갚으면 논이나 밭얼 빼앗기도 혔응깨요.”
“벌얼 받았다는 말이 옳겄소. 그런 욕심쟁이에다 도둑놈 심뽀꺼정 가지고 있다면
벌얼 받아야 싸지요. 아매도 이부자 그놈도 제 명대로는 못 살 것이요.
그런 놈언 죽어야 싸당깨요.”
그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방아도 실퍽하게 찧었다 싶은 옥녀가
갑자기 몸 위의 사내가 무겁다는 생각이 들어 아랫녁을 움죽거렸다.
덥석부리 사내가 방아개비 방아를 예닐곱 차례 사정없이 찧어댔다.
“쪼깨만 더, 쪼깨만 더 기운얼 써보씨요. 시방 이년이 구름을 탈라고 그요.
하이고, 존 것, 하이고, 존 것.”
옥녀가 사내의 등짝을 힘껏 부등켜 안으며 몸부림을 쳤다.
“됐소? 됐소? 내가 시방 싸도 되겄소?”
사내가 마지막 안깐힘을 다 했다.
“알아서 허씨요, 알아서 허씨요. 아이고, 나 죽소?”
옥녀가 가물가물한 정신 속에 온 몸을 부르르 떨 때 사내가 다리를 쭉 뻗었다.
멀리서 늑대 울음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아자씨, 참으로 사내요. 아자씨 말씸대로 허십시다.
지리산 속에라도 들어가 화전이라도 일구면서 한번 살아보십시다.”
옥녀가 중얼거리며 정신을 깝북 잃었다.
덥석부리 사내가 온 몸을 푸르륵 떨었으나 옥녀는 미처 그걸 모르고 있었다.
아득한 벼랑에 서 있는 것 같은 간질거리는 느낌이 옥녀의 뇌리를 스쳐갔다.
그리고 온 몸이 푸들푸들 떨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갑자기 사내의 몸둥이가 천근만근 무거워지는가 싶어 옆으로 밀쳐내는데,
겨드랑이에서 찬바람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아자씨, 아자씨, 어째 옆구리가 시렵소. 아자씨넌 안 춥소?”
옥녀가 물으며 덥석부리 사내를 흔들어보았다. 그러나 사내의 대꾸는 없었다.
옥녀의 온 몸에서 느닷없이 소름이 솟구쳤다.
‘이 자구가 혹시 고태골로 간 것언 아닐랑가?’
그동안 몇 차례 그런 꼴을 당했던 옥녀가 일어나 앉아
사내의 코에 귀를 대보고 가슴에 손을 넣어 보았다.
희미하게나마 콧김이 맡아졌고, 움직임이 손가락 끝에 잡혔다.
‘하이고, 십년 감수했구만. 나넌 영락없이 고태골로 가뿌린 줄 알았구만.
흐나, 우리가 백년해로 바래고 지리산으로 들어가서는 안 되겄소.
멀쩡허던 사내럴 송장치운 것이 한 두번이 아닌디, 아자씨도 이년얼 감당허지는 못헐 것 같소.’
옥녀가 잠 든 사내를 향해 중얼거리다가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굴 밖이 부연 것이 날이 밝아오고 있음이 분명했다.
일단 먼동이 트면 산짐승은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음침한 곳으로 숨어들기 마련이었다.
올라 온 길이 한 참이니, 남은 길도 얼마 되지는 않을 판이었다.
어제밤에 덥석부리 사내를 따라 올라올 때에 어렴풋이 개 짖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그것은 근방에 사람이 사는 동네가 있다는 뜻이었다.
굴 안까지 어렴풋이 밝아졌을 때에 옥녀가 덥석부리 사내를 찬찬히 내려다 보았다.
사내가 두 개의 콕구멍에서 코피를 쏟아낸 채 잠들어 있었다.
쏟았기 때문일까. 사내의 얼굴빛이 거무튀튀했다.
꼭 송장을 내려다보는 기분이라 옥녀가 진저리를 치며 굴을 나왔다.
오던 길을 되돌아가다가는 도둑 사내들을 마주칠까 염려하여 반대편으로 길을 잡았다.
맹감나무며 잡목이 가끔 발목을 후려쳤으나, 눈에 삼삼 덥석부리 사내의 죽은듯한 얼굴이
떠올라 길이 험한 줄도 모르고 봉우리로만 치달아 올라갔다.
자칫 도둑 사내들한테 들켜 되잡혀 가면 떼 송장을 치룰지도 모를 일이었다.
‘흐이구, 사내 송장이라면 신물이 나는구만. 첨에넌 쌩쌩허던 사내도 몇 번 내 몸을
거쳐가면 반 병신 아니면 송장이 되었응깨.’
덥석부리 사내가 그 중 낫기는 했으나, 방사 서너 차례에 코피를 쏟을 정도라면
그 끝은 보나마나 뻔했다. 옥녀가 두어 식경을 허위허위 올라갔을 때였다.
갑자기 눈 앞이 확 트이면서 제법 넓은 들이 나타났고, 멀리 보이는 집집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우선은 사람 사는 마을이 반가운 옥녀가 한 달음에
산을 내려가 사람이 다니는 길로 들어섰다.
다시 한 식경 쯤 걸었을 때 삼거리가 나타났고, 그 한 쪽 귀퉁이에 주막이 있었다.
옥녀가 계신가요? 하고 소리를 지르며 열려진 사립으로 쑥 들어갔다.
마침 구정물을 버리러 나오던 주모가 뜨악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여그가 주막이 맞제요?"
나이가 서른 남짓이나 되었을까, 눈밑이 거무스레한 것이 사내깨나 밝힘직한 주모가
이 쪽을 찬찬히 살피다가 대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