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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은 서산이여
해마다 새해를 맞이하게 되면 희망을 이야기하고 새로운 포부를 밝히기 마련인데 그렇게 며칠을 지나다 보면 어느새 한 달이 금방 지나고 생의 환희라고 할만치 겨우내 굳은 대지를 뚫고 새싹들이 올라오는 것이니 계절이라는 것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모양이다.
라디오에서는 3월이 시작되자 곧 날씨가 따뜻해질 것이라면서 응달의 나무 그늘에서는 새싹들이 올라오는가 하면 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어깨도 한결 펴진 것 같다는 말을 하지만 아침저녁은 날씨가 추워서 윗옷을 걸치고 다녀야 한다.
3월 들어 맨 먼저 봄을 알려주는 곳이 강가에서 자라는 버드나무라고 할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버들강아지가 회색을 띄우며 나무 가지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버들강아지의 색깔은 짙은 회색을 띄우기도 하지만 그것이 꼬마들의 손바닥에 놓이게 되면 천연강아지처럼 귀여움을 받는 것이니 어쩌면 봄의 시작은 버들강아지로부터 온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3월이 되어 제일 바빠지는 곳이 각 급 학교이다.
신입생을 맞아 들여야 하고 그들이 학교 적응을 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 직원들은 그들을 사랑으로 감싸주어야 한다.
최근에 우리나라의 학교 현실을 보게 되면 지역마다 오차가 있겠으나 농촌의 학교는 학생들이 감소함에 따라서 교사(校舍)가 텅텅 비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60년대만 해도 초중등학교마다 교실이 모자랄 정도로 학생숫자가 포화상태였는데 지금은 어느 농촌을 가 보아도 초등학생 100명의 재적이 있다고 한다면 큰 학교로 취급이 될 정도이니 지난 동안 얼마나 농촌인구가 감소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어쨌거나 모든 사람들이 봄을 맞게 되면 부산하게 하루하루를 지나게 되고 날이 따뜻해지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서둘러서 꽃구경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니 봄은 그래서 누구에게나 기다려지는 계절이고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게 된다.
남 우균 교장은 지난 해 9월 1일자로 여자고등학교에서 남자 고등학교로 발령을 받은 이후매일같이 아침 일찍 출근을 하기 위해서 집을 나선다.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버스로 30분정도 걸리는 것이니 교통편은 좋은 편이다.
운동장엘 들어서니 그 보다 일찍 등교를 한 아이들이 담 밑에 모여 있어서 슬슬 그쪽으로 다가갔다.
“ 안녕하십니까.”
한 학생이 인사를 하자 다른 학생들도 일제히 일어나서 인사를 하였다.
“ 일찍들 왔구나. 무얼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냐.”
교장선생님이 묻자 한 아이가 닁큼 대답을 하는데 담 밑에 민들레가 나와서 신기해서 보고 있다는 것이다.
“ 민들레가 벌써 나왔어,”
“ 네. 민들레가 처음으로 나와서 벌써 꽃을 피웠는데 얼마나 신기한지 모르겠습니다.”
“ 원래 민들레는 나팔을 잘 분다는데 우리 민들레 노래 한번 불러볼까.”
“ 민들레 노래가 있나요.”
“그렇지. 들어볼래.”
「민들레야 민들레야 노랑꽃의 민들레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세수하고 나팔 불고
달님처럼 둥근 얼굴 해님처럼 밝은 얼굴.」
“ 교장선생님. 멋진 시에요. 제가 작곡을 해서 들려 드리겠습니다.”
“ 좋아. 방과 후에 교장실로 가져오도록.”
남교장이 자리를 뜨자 아이들이 멍하니 교장선생님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 얘들아. 교장선생님이 시인이시냐. 어쩜 즉석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시를 잘 지으시냐.”
“ 너 교장선생님에 대한 정보를 너무도 모르는구나. 교장선생님은 소설 가셔 소설가.”
“ 뭐. 소설가라구. 설마.”
“ 왜 아닌 것 같아서 그러냐.”
“ 글쎄 그런 소리를 처음 들어서 말이야.”
“ 내가 들은 소리인데 먼저 학교에 근무하시던 교장실에 들어가 보게 되면 교장선생님의 소설집이 여러 권이 진열되어 있다는 소리를 들었거든.”
“너는 별 것을 다 알고 있구나. 나도 사실은 소설가가 꿈인데 소설을 어떻게 쓰는 것인지 너는 알기나 하냐.”
“ 밤을 새워서 글을 쓰면 소설이 되는 것 아니냐."
“ 하하하. 너는 소자도 모르는 소리를 하는구나. 소설은 말이야 어떤 사람의 고생담이라고 할까 처절하고 굴곡 있는 삶을 조명하는 과정을 재미있게 써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지.”
“ 나는 언제나 그런 소설가가 될 수가 있을까.”
“ 야. 그러지 말고 우리 교장선생님께 소설공부 좀 가르쳐 달라고 하면 안 될까."
" 야. 너 말 되는 이야기를 좀 해라. 교장선생님은 출근하시자마자 화장실부터 점검을 하시는데 언제 우리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시냐. “
“ 하긴. 그렇구나. 기왕에 말이 나왔으니 각자가 알아서 할 수밖에 없겠다.”
“ 그래. 그게 속 편하겠다. 골치 아프게 누가 소설을 쓰냐.”
남 우균 교장이 교장실로 출근하는 시각은 거의 8시 정각인데 오늘은 아이들과 이야기하느라 한 10분가량이 지연이 되었다.
입고 온 윗옷을 벗어서 옷걸이에 걸고 자리에 앉자 어제 메모해놓은 탁상일지가 눈에 들어온다.
그의 일과의 시작은 출근한 이 후에 바로 1층부터 4층까지의 화장실을 점검하는 일로 그 습관은 먼저 학교에서도 그렇게 하였다.
그가 이 학교로 부임하고 나서 맨 처음에 들어가 본 곳이 각 급 학년이 쓰는 화장실인데
들어가자마자 악취가 나는 것이어서 그 현장을 알아보니 그곳은 전날 청소를 하지 않은 칸에서 나는 냄새였다.
“ 아침에 출근하면서 바로 화장실 점검을 하였는데 청소가 되지 않은 곳을 발견하였습니다.
서무주임은 매일같이 점검반을 편성해서 앞으로는 화장실에서 악취가 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확인하고 퇴근하기 바랍니다. “
그날 학교장의 엄명이 떨어지자 주번교사와 주번학생들은 화장실 청소를 청결히 하지 않은 학년을 아침 조회시간에 발표하기로 하였고 그 다음부터는 화장실바닥이 유리알처럼 반짝거리는 학교로 변모하였다.
남 교장은 나라사랑 정신을 굳건히 하고 세계에 으뜸가는 사람이 된다.를 교훈으로 삼았으며 매주 월요일 애국조회 시에는 선열 중의 한분을 선정하여 그 분의 애국사상을 학생들에게 일깨워주는데 주력하고 있다.
아울러 근검절약 생활이 곧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일기쓰기와 매일 영어 단어 외우기를 실천토록 하였다.
이렇게 면학분위기 조성에 주력하자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호응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날도 아침 일찍 출근을 하고 당일 할 일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똑똑하고 노크소리가 들린다.
창 쪽을 바라보니 아무도 보이지를 않는데 노크 소리가 다시 나는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아주머니 한 분이 계셔서 어쩐 일이냐고 하자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 왔다고 하였다.
그 분은 이웃에 살고 있는 3학년 학생 어머니의 사정을 알려드리기 위해서 찾아오신 분으로 그 내막은 남편이 없이 혼자 벌어먹고 살았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병이 나시는 바람에 반년간이나 일을 하지 못해 수입이 끊기다 보니 아이를 퇴교를 시키겠다고 하였다.
남 교장은 그 아주머니에게서 딱한 사정을 듣고는 학비 걱정을 하시지 말고 교장이 책임지고 졸업을 시킬 것이니 출석이나 잘 하도록 전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아주머니가 가신 다음에 가만히 생각을 하니 그 외에도 어려운 학생이 많이 있을 것 같아서 서무주임을 불렀다.
그런데 그때 노크도 없이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서 돌려다 보던 남 교장은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난 것이니 들어오시는 분은 남 교장의 친 형님이었다.
“ 형님이 어쩐 일이세요.”
남 교장인 동생이 먼저 학교에서 2년 동안을 근무하였지만 한 번도 찾아오지 않던 형님이 이 학교로 부임한 이후 처음으로 찾아온 것이 반가움 보다는 어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남 교장에게는 5형제가 있었는데 맨 위로 형님이 그리고 누님 셋이 있고 그는 막내로 자라면서 온 가족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라왔다.
남 교장과 형님과의 나이의 차이는 수무 살이나 되기 때문에 형님과는 자주 접촉을 할 수 없을 때가 많았다.
우균의 부모님은 그 당시 서산 읍에서는 부자 댁으로 이름이 나 있었으며 농토도 많아서 머슴을 둘이나 두었고 부업으로는 양조장을 운영하였는데 워낙 규모가 크다 보니 읍내의 술 도소매업자들의 발길이 끊이지를 않았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 소를 기본으로 두 마리나 키웠고 돼지는 양조장에서 나오는 먹이로 기르기 때문에 스무 마리 정도는 늘 돼지우리를 채우고 있었다.
정월 설 명절 때부터 시작해서 동네잔치가 있거나 읍내 척사대회가 있게 되면 돼지 몇 마리씩을 잡아서 소모를 하게 되니 양조장에서는 이에 대비를 늘 해야 했다.
남 우균의 형님은 원래 지방의 고등학교를 나온 후에는 군청에서 공무원생활을 하다가 차츰 부모님이 연로하시게 되자 집안의 모든 관리를 위해서 중간에 공직을 고만 두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만 해도 남 우균은 중학교를 다녔는데 부모님은 중학교만 마치고 집에서 농사일을 시키기 위해서 진학을 시키지 않으려고 않았다.
그렇지만 형님은 아버지의 생각과는 다르게 남동생 하나만은 큰 도시에 가서 공부를 시켜야 장차 큰 인물이 된다면서 고등학교부터 서울에 가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우균이 형님의 덕택으로 낯이 선 서울에서 처음으로 하숙생활을 하자니 저녁만 되면 고향이 그립고 부모님이 보고 싶어서 당장 집으로 내려가고만 싶어졌다.
이렇게 처음에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지옥 같기만 하더니 친구를 사귀고 공부에 취미를 갖게 되자 집의 생각은 점차 멀어지는 가운데 좋은 친구 하나를 사귀게 되었으니 영어를 잘 하는 장 서훈이었다. 걔의 아버지는 경찰 공무원의 형사 반장으로 계시는 분으로 집에서 아버지를 만나는 것이 일주일에 한번 정도가 될 정도로 친구의 아버지는 늘 바쁘시다고 하였다.
그런데 친구의 어머니는 시골서 온 친구가 얼마나 집에 가고 싶겠냐면서 가기만 하면 별식을 해주시고 일요일에는 극장구경도 다녀오라고 표까지 사주실 때가 많았다.
이리 되자 남 우 균은 여름방학이 되면 시골집으로 서훈이를 내려오게 하여 강에 가서 멱도 감고 참외밭에 가서는 참외를 따서 실컷 먹기도 하였다.
우균의 어머니는 서훈의 어머니가 우균에게 잘 해주셨다는 말을 듣고는 서울로 올라 갈 때에 엿을 고아서 올려 보내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떡을 해서 보내기도 하였다.
우균이가 2학년으로 올라가게 되자 서훈이와 함께 야간에 영어 학원엘 다니게 되었는데 남여가 합해서 수업을 받았다.
그때에 반에서 인기가 많았던 아이는 박 나유라는 여학생으로 그는 얼굴도 예뻤지만 친구들에게 얼마나 연삭삭하게 하는지 반의 아이들 모두가 그가 떴다 하면 마치 병아리가 어미닭을 좇아다니 듯이 졸졸 따라 다녔다.
“ 야 너희들 나를 쫓아오는 것은 좋지만 하필 화장실 까지 쫓아오면 어떻거라고.”
“ 그게 아니라 혹시 화장실에 갔다가 네가 몽당귀신한테 붙잡혀 갈까 봐서 그래 .”
장난기가 심한 윤 장호가 말을 하자 박 나유는 “엄마야” 하더니 귀를 막고 자리에 앉는다.
“ 몽당귀신이라니 화장실에 그런 귀신이 있다는 말이냐.”
반에서 키가 제일 크다는 곽 순조가 물어보자 윤 장호는 우리 엄마가 그러시는데 사랑에 실패한 처녀가 변소 간에서 목을 매달아 죽고 몽당귀신이 되어 서까래 위에 앉아 있다가 예쁜 여자 애가 화장실에 들어가서 볼일을 보게 되면 오줌 누는 소리를 들으려고 얼른 밑으로 내려가서 쳐다본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박 나유는 그 소리를 들은 다음에 화장실엘 가게 되면 누구랑 꼭 같이 가려고 하였지만 어떤 때 보면 그 주위에 아무도 없어서 겁이 나서 들어가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를 때가 많았다.
그날도 우균이 학원엘 들어가는 중에 어쩐 일로 박 나유가 밖에서 서성이고 있더니 우균이를 보자 잠시 망을 봐달라고 하였다.
" 왜 그러는 데. “
우균이가 말을 하자 나유는 손짓을 하더니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때에 마침 서훈이가 교실 뒤에서 나오고 있었다.
“ 너 왜 여기에 있니 교실에 들어가지 않고 .”
그렇지만 우균이는 나유가 가만히 있으라고 하였다고 할 수가 없어서 먼저 들어가라고 하였다.
이날 이후 우균이는 서훈이와 나유가 만나는 것을 은근히 관심을 가지고 살폈는데 그것은 서훈이가 박 나유를 은근히 좋아하는 눈치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서훈이는 갑자기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면서 다음 날부터 학원엘 나오지를 않게 되자 나유는 그 다음부터는 무슨 일이 있으면 우균에게 부탁을 하였으니 우균이는 속으로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다음날 우균이는 나유를 보고 서훈이가 떠난데 대해서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보자 그는 한참 후에 간 사람은 간 것이고 우리끼리 친하게 지나면 되지 않느냐고 하였다.
우균이는 공연한 질문을 했다는 후회를 하고는 그가 생각한 것처럼 서훈이를 별달리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며칠 후에 등교를 하다가 보니 나유와 윤장호가 함께 등교를 하는데 유난히 사이가 좋은 것처럼 보였다.
‘ 먼저는 서훈이를 좋아한 것 같았는데 언제부터 장호를 좋아했나?’
우균이는 나유를 가까이 하고 싶은데 좀처럼 나유는 그의 곁으로 다가서지를 않고 있었으니 은근히 속이 상했다.
그런데 정말 나유와 가까워지는 계기가 생겼으니 어느 날 우균이 학원엘 가는데 저만치 나유가 앞서가기에 반가워서 그를 불렀다.
그러자 나유가 뒤를 홱 돌아서다가 어떻게 다리가 꼬이는 것 같더니 앞으로 고꾸라지는데 코가 땅에 부딪쳐 코피가 터진 채 일어나지를 못하였다.
우균이는 얼른 그를 일으켜 주면서 손수건으로 그의 코를 막자 나유는 괜찮아 하더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옷을 툭툭 털고 일어났다.
“미안해. 너를 보고 하도 반가워서 불렀는데 넘어지게 해서.”
그러자 나유는 의외에도 큰 눈을 휘둥그렇게 뜨더니 한마디를 하였다.
“모든 일은 성급하면 못써야 .”
나유는 그 후부터는 우균이를 만나면 흰 이를 드러내면서 잘도 웃어주었다
그때부터 우균이는 그를 만나기만 하면 기분이 좋았는데 그런 날은 밤마다 나유의 생각이 마치 저녁마다 집집에서 올라오는 굴뚝의 연기처럼 모락모락 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반의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를 무심코 듣다 보니 사춘기 때는 누구나 이성을 그리워하게 되는데 그럴 때에는 그 마음을 담아서 편지를 써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 우균이는 나유를 생각하면서 편지를 썼는데 도무지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질 않아서 쓰다가는 지우기를 몇 번 하였는데 그럴수록 나유의 생각이 점점 깊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학원이 끝나기 전에 우균은 나유에게 함께 빵집에나 가자고 용기를 내서 제안을 하였다.
그러자 나유는 그러지 않아도 너에게 할 말이 있다면서 만나자고 하였다.
빵집엘 들어가니 시간이 늦어서 그런지 홀 안은 텅 비었는데 나유가 안으로 들어가면서 우균의 손을 잡았다.
우균이 약간 흥분이 되면서 나유의 얼굴을 보자 그는 씽긋 웃는 것이다.
우균이는 나유에게 할 말이 많은 것 같았으나 그를 만나게 되자 아무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그런데 나유가 먼저 입을 여는데 그 말을 들은 우균이는 마음이 콱 막히는 기분이었다.
“ 우균아. 우리 아버지가 갑자기 전근을 가시기 때문에 이사를 가게 되었어. 우리의 만남도 오늘이 마자막이 될 것 같아.”
“ 이가지 않으면 안 되냐?”
“ 아버지가 가시는데 낸들 어떻게 하냐.”
나유는 그러고는 손을 내밀면서 말을 하였다.
“ 우균아.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이별인가보다.”
나유는 우균의 손에다 작은 손수건을 쥐여 주었다.
그 순간 우균이는 평소에 나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하나도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우균은 그동안 나유에게 썼던 편지봉투를 내밀었다.
“ 이게 뭐야 .”
“ 내가 그동안에 너를 생각하면서 써 놓은 편지야.”
“ 연애편지. … 나도 사실은 너를 좋아했는데 말은 하지 못했어.… 이사를 간다고 해서 속이 많이 상해 있었던 거야. 우리의 운명이 이것 밖에 되지를 않으니. 그런데 혹시 아니 또 다시 우리 아버지가 이쪽으로 전근을 오실지. 그리 되면 참 좋을 텐데 말이야.”
그렇게 예뻐 보이던 나유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지고 있었다.
우균은 그 소릴 들으면서 무슨 말을 더 하고 싶었으나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이날 모처럼 나유는 우균의 볼에다가 살짝 입맞춤을 하더니 어둠속으로 살아지는데 그를 잡을 사이도 없었다.
나유는 다음날 다시는 학원엘 나타나지 않았으니 우균이는 한동안 그를 생각하느라 학원에 가기도 싫었다.
자고 깨면 나유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으며 그때마다 편지를 썼는데 막상 붙이려 하니 주소를 알 수가 없었으니 갑작스럽게 그의 말을 듣다가 미처 그의 행방에 대해서 묻지를 못하였다.
우균은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고는 하숙을 하면서 대학까지 마칠 수가 있었으니 그때에 남 우균은 인생의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게 되었다. 특히 그는 서울의 고궁을 시간이 있으면 답사를 하여 조선조에 얽힌 역사공부를 할 수 있었으며 후일 박사논문을 작성할 때도 이 시기에 공부한 자료들이 많은 참고자료로 활용이 되었다. 이렇게 시골 촌놈이 서울에 가서 공부를 할 수가 있었던 것은 형님이 그만큼 뒷받침을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에게 형님은 부모님보다도 어려운 존재가 되었고 형님의 한마디는 그에게는 군인 하사관이 선임 장교에게 복종하듯이 어려웠다.
남 우균은 대학교 재학 중에 중등교사 자격증을 획득하는 바람에 졸업 후에는 바로 고향인 서산의 중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물론 그 자리는 지방에서 유력한 유지로 활동을 하시는 형님의 후광이 크게 작용을 하였다.
지방에서는 양조장집 아들이 교사 발령을 받자 온 동네에서 축하를 해 주었는데 형님은 이 기회에 동네 사람들을 대접하기 위하여 떡을 하고 집에서 기르던 돼지 한 마리를 잡고 양조장의 약주술을 손님상에 풍족하게 내놓으니 동네 사람들은 얼씨구 좋다 하면서 저녁 늦도록 양조장 댁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이때에 형님을 가장 잘 따르던 학교 후배 중에 유 승기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상과를 나온 후에 서울의 모 회사에서 경리로 있다가 몸이 좋지를 않아서 고향으로 내려와 있었다.
그는 서울에서 직장을 갖기 전에 잠시 모 정당에서 경리를 봐달라고 해서 일을 한 적이 있는데 지방에 내려와서 생각을 하니 구지 서울에 가기보다는 고향에서 나름대로 정치활동을 하고 싶어지는 것이었지만 돈이 없어서 포기를 하고 있었다.
그 무렵 양조장에서는 경리 아가씨가 결혼을 하는 바람에 후임을 물색하던 중인데 마침 유승기 라는 후배가 방문을 하게 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직원채용을 한다는 말이 나오자 그는 자기를 채용해 달라고 사장에게 부탁을 하였고 사장은 잘 되었다면서 그를 출근토록 하였다.
이렇게 해서 유 승기는 우연치 않게 양조장의 직원이 되었는데 그때부터 그는 기회가 되면 사장에게 정치활동을 권해 볼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어느 날 정당에 입문을 해보라고 권고를 하였다.
남 우균의 형님은 원래 활달한 성격에다가 명예심도 강하여 평상시에 기회가 주어지면 국회의원 한번쯤은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마침내 선거가 1년쯤 앞으로 다가오자 서울의 모 정당에서 양조장 사장에게 함께 일을 하자 권하였고 사장은 유 승기의 의견에 좇아 정치에 입문하기로 결정을 하였다.
이렇게 되자 세상이 온통 정치판이 된 듯 날마다 정치인들이 문턱이 닳도록 찾아오기 시작을 하는 것이니 그럴 적마다 양조장에서는 밥을 해서 대접하는 기회가 많아지고 쌀 한가마니가 열흘이 못가서 동이 날 정도였다.
유 승기는 그럴 때마다 양조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챙기면서 장차 사장님이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데 적극적이었다.
한편 남 우균은 중학교 교사 발령을 받은지 5년이 되던 해에 생각지도 않게 신부를 알게 되고 결혼식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마당발인 형님이 주선을 해서 당시 서산 읍의 은행에 다니는 아가씨를 신부로 맞게 되었다.
형님이 공무원 출신인데다가 양조장 사장이니 아는 사람도 많고 부조하는 사람도 많아서 그날 피로연장의 음식이 다 떨어져서 나중에 온 손님들은 그냥 돌아갔다는 말까지 날 정도였다.
형님의 활동이 남다른 것은 아는 사람들이 많이 따르는 장점이 있었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이 모두가 마치 연못에다가 깻묵을 뿌리게 되면 고기들이 그것을 먹으려고 모이듯이 양조장이라는 곳엘 가게 되면 막걸리 한잔이라도 공짜로 얻어먹을 수가 있어서 사람이 들끓었다.
결혼식 당일 우균은 식장에서 주례선생님을 향하여 걸음을 떼어 놓다가 문득 나유의 얼굴이 떠올라 하마터면 뒤를 돌아다 볼 뻔 하였으니 나유가 혹시 이 자리에 온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는 주례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는 뒤돌아서면서 장중을 한 바퀴 휘둘러보았으나 나유의 그 다정하던 모습은 보이지를 않았다.
한편 형님인 남 사장은 평소에 가만히 있는 성질이 아니고 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 남이 하는 말에 솔깃하는 버릇이 많아 어떤 때는 금전 손해를 당한 때도 있었다.
한번은 서산의 모 농협 간부로 과거에 친하게 지나던 사람이 사업자금이 부족하다면서 1년만 융통해 달라고 하자 형님은 차용증도 없이 닁큼 주었는데 그 사람은 도중에 이렇다 말 한마디 없이 외국으로 날라버리고 말았다.
손해를 본 후에야 후회를 하였지만 끝내는 지금까지 받지를 못하고 만 것이니 그렇게 한 때 손해를 크게 보고 난후에도 형님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재산관리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는 경향이 많았다.
남 우균이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1년에 몇 번 형님 댁엘 가서 보면 양조장에는 항상 낯선 사람들이 와서 점심이나 저녁을 먹고 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 형님을 찾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한번은 어머니 제사 날 형님 댁엘 갔더니 그날은 서산 읍내에서 모 정당 사람들이 30여명이나 모였는데 이날 형님이 정당공천을 신청을 하였다는 것이다.
남 우균은 그 말을 듣고 나서 가슴이 서늘하여 이날 처음으로 제사가 끝난 뒤에 형님에게 어렵사리 말씀을 드렸다.
“ 형님 국회의원 공천을 신청하셨다면서요. 가능성이 있으신가요.”
“ 그야 자신이 있으니까 나가는 거지.”
“ 이번에 들려오는 소문을 들으니 형님은 들러리라는 말이 공공연히 들리던데 그것은 무슨 말이지요.”
“ 너는 어서 그런 재수 없는 소리나 듣고 다니냐. 이번에 공천은 문제없다고 듣고 있다.”
“ 형님. 제가 듣건 대는 양짓말에 사는 서울서 내려온 사람이 유력하다는 말이 들리고 있으니 당초에 포기하시는 게 어떠세요.”
그러데 그 말씀을 드리자 형님은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그 따위로 나를 대하려거든 다시는 이 집에 나타나지도 말라는 것이니 섭섭한 것을 너머서 부화가 나는 것을 억지로 참고 돌아섰다.
그 후 남 우균이 들은 대로 그 사람이 공천을 받았으나 당선은 되지를 않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 후의 일로 이번에 공천을 받지를 못하였으니 다음에는 꼭 공천을 주겠다는 중앙의 약속을 받았다고 하였다.
그런 약속을 이행하려면 아직도 4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데 남 우균이 다음의 일을 어찌 믿겠느냐고 하였지만 그런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형님은 그 다음부터는 자신이 사람들을 불러드리는데 한 달에 한번 꼴로 중앙당에서 사람이 내려오고 그 때마다 형님은 그 사람들의 뒤치다꺼리를 해서 보내었다.
마침내 4년 후에 형님이 공천을 받게 되고 이번이야말로 당선이 확실시된다는 정보가 매일같이 형님에게 들어온다고 하였다.
남 우균은 이번에야말로 모처럼 공천까지 받고 여론조차 유력하다고 하였으니 형님 덕에 국회회관 한번 구경해보겠구나 하는 생각을 은근히 하였다.
마침내 투표일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이때 공교롭게도 형님에게 불리한 소문이 떠돌았으니 형님을 찾아온 중앙당 손님을 대접한 것이 사전선거운동을 한 것으로 신문에 보도가 되었다.
이쪽에서는 이번 선거야말로 따 놓은 당상이라고 까지 안심을 하고 있는 판인데 불길한 정보를 안고 선거를 치르게 되었으니 마치 검은 구름이 지붕을 외워 싸는 격이 된 것이다.
남 우균은 모처럼의 기회이니 이번에야말로 형님에게 좋은 운이 터주기를 바라는 가운데 선거를 겨우 치르고 나서 개표를 한 결과는 불길한 예감 그대로 낙선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동안에 형님이 어떻게 재산관리를 하셨는지 부모님이 물려주신 농토를 반 이상이나 처분을 해서 돈을 쓰긴 하였지만 그 액수가 부족하여 부채를 많이 졌다는 것이다.
하기야 남 우균이 생각을 해도 중앙당의 사람들이 내려올 때마다 양조장에는 읍내에서 술집여자들이 동원이 여러 번 되었다고 하니 그 비용이 얼마나 많이 들었으랴.
더구나 그 당시의 땅값이라는 것이 그렇게 높은 것이 아니어서 조상님께 물려받은 땅을 다 팔아도 그 액수는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형님은 국회의원에 낙선이 되고나서 한동안은 두문불출을 하더니 어떻게 된 일인지 다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양조장은 다시 활기가 넘치고 다음 선거를 1년 앞두고는 중앙당에서 먼저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내려오기 시작을 하였다.
형님은 다시 중앙당의 공천을 받았고 이번이야말로 성공할 것이라는 여론이 돌더니 개표결과는 일백여표의 차이로 당선이 확정되었다.
양조장 사장이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자 온 동네 사람들이 날마다 양조장으로 모여들어서 축하를 하였고 중앙당에서도 며칠에 한반씩 사람들이 떼거리로 몰려 와서 날을 새다 싶이 축하를 해 주었다.
그런데 그런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번에도 선거 운동기간에 사람들에게 금품을 돌렸다는 제보로 인해서 입건이 되었고 국회에 등원한지 겨우 1년 만에 재판에 넘겨져 집행유예를 받아 국회의원 자격을 상실한 것이니 남 우균의 형님에 대한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선거운동 기간에 현금이 필요하자 유 승기로 하여금 은행에서 급전을 내게 하였는데 자격을 상실하자 은행에서는 즉각 빚을 갚으라는 독촉장이 날아온 것이니 양조장 사장은 나머지 농토마저 헐값에 내놓을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토록 부채가 많이 늘어난 것도 생각지 않고 유 승기로 하여금 국회에 들어가기만 하면 다 해결이 될 것이라는 말을 하였는데 사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는 말과 같이 부채가 늘어난 것도 어쩌면 유 승기가 중간에서 장난을 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후의 이야기를 들으니 빚은 그밖에도 많아서 살고 있는 집까지 차압을 당하였는가 하면 남의 집 사랑방으로 나 앉는다는 소문과 함께 양조장까지 처분한다는 소리를 듣고는 형님을 찾아 갔다.
사실 남 우균은 지금까지 형님에게 무슨 말씀을 하고 싶어도 어렵고 주눅이 들어서 하지를 못했던 것은 형님이 그의 앞길을 개척을 해주신 분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그의 앞길은 형님이 닦아주셨기l 때문이었다.
“ 오래간만이로구나. 네가 할 말이 있어서 왔겠지. 어서 해보려무나.”
“ 형님 소문에 의하면 양조장을 파신다는 말이 있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 어서 들었는지 모르지만 그게 맞는 말이다. 국회에 진출하기 위해서 빚을 내다보니 예상외로 비용이 많이들은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으니 방법이 없지 않니.”
“ 그렇지만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양조장인데 어떻게 하든지 놓지를 말아야지요.”
“ 네 말은 구수하게 들린다만 이미 화살은 내 손에서 튀어나간 것 같다 .”
형님은 그 말씀을 하시더니 한숨을 길게 내쉬시었다.
동생이 지금까지 본 형님은 항상 웃는 얼굴이었고 한 번도 형님이 인상을 찌푸리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형님의 그런 모습을 뵙게 되니 갑자기 가슴이 쿵 울리는 것 같아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사람이 무슨 일이든지 간에 욕심을 내다보면 항상 실수가 따르게 마련인 것처럼 형님이 정치에 발을 들여놓지를 않았던들 이런 일은 벌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사업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부리는 사람을 제대로 알고 채용을 해야 하는데 후배이고 능력만 믿다가 그로 인해서 큰 손해를 입었다.
이날 형님이 오신 사유는 물론 돈 때문에 오셨을 것이다.
“ 형님. 요즘에 어떻게 지나시는지요.”
“ 알다 싶이 내가 지금 곤궁한 처지에 놓인 것을 너도 알 것이다. 3천 만 원만 융통을 해주면 좋겠다.”
“ 형님의 그 말씀을 들은 동생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형님이 얼마나 어려우면 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실까 하는 생각을 하니 어떻게 하던지 도와드려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사실 그동안 동생은 형님이 자기에게 베풀어준 은혜에 대해서 한 번도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나이 차이가 있다 보니 형님을 대하기가 늘 어려웠고 형님 또한 자주는 아니더라도 이따금 만나게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정하게 대하다가도 동생에게는 집안에 대한 안부나 물을 정도로 늘 서먹서먹한 사이였다.
그런데 형님은 그 다음의 말씀을 하시는데 그 말씀을 듣고는 진땀이 났다.
“ 한 달 안으로 그 돈을 마련해줄 수 있겠니. 양조장을 남에게 넘기지 않으려니 그 돈이 필요하다. 내가 모처럼 동생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이 도무지 형의 체면이 서지를 않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번 일이 잘 해결이 된다면 다시는 정치판에 뛰어들지도 않고 조용히 살고 싶다.”
커피도 잡수시지 않고 율무차 한잔을 반이나 남기신 형님은 교장실에서 일어서시는 것이다. "돈이 되면 이리로 보내거라. “
형님이 주신 쪽지에는 농협은행의 계좌번호가 적혀 있었다.
“ 일어서시려고요. 형님이 모처럼 오셨으니 점심을 대접하겠습니다.”
“ 바쁜데 뭘. 일이 잘 되어 우리가 다시 웃는 얼굴로 만나게 되거든 그때 점심을 먹도록 하지.”
형님이 구지 일어서신다고 하기에 뒤를 따라나서다 보니 그렇게도 옛날에는 키가 장대 같았는데 오늘은 너무도 초라하게 보여 마음이 아팠다.
“고만 들어가게. 더 나오지 말아.”
형님은 더 이상 뒤도 돌아보지 않으시고 운동장에 세워놓은 차에 오르시었다.
형님의 뒷모습을 배웅하던 동생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형님이 정당 활동을 하신다고 하였을 때에 적극적으로 말려드릴 수도 있었는데 형님은 그때
후배인 유 승기에게 홀딱 빠져 날마다 하늘높이 구름만 잡고 있던 때였다.
형님이 타신 차가 교문을 빠져 나갔지만 한동안 그는 목석이 된 듯 자리에서 움직일 줄 몰
랐다.
그에게 3천 만 원이란 돈은 너무도 큰 액수였고 그것을 마련한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아
무런 대책이 있을 수가 없었다.
그날 퇴근을 하고 나서 그는 바로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럴 때는 하소연할 만한 친구라도 있으면 좋겠으나 그에게는 그럴 친구를 아직 사귀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는 집에서 좀 떨어진 작은 공원 앞에 설치된 의자에 자리를 하고 앉았다. 얼마 전까지도
휘늘어지게 피어있던 벚꽃이 다 지고 지금은 녹색의 나뭇잎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교직에 종사하면서 그는 돈이라는 것으로 인해서 친구와의 사이도 끊어진 적이 있고 돈으로
인해서 체면을 구긴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돈은 사람을 들었다 놓기도 하고 돈이란 때로는 인간의 차별화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돈이 그와는 인연이 없어서 그런지 아니면 자녀들의 뒷받침을 해서 그런지 그에
게는 모아 놓은 돈이라고는 단돈 5백만 원도 없는 것이다.
이런 동생에게 형님은 돈 3천만 원을 한 달 내로 해 놓으라고 하신다.
공원에 앉아서 아무리 생각을 해도 3천마원은 너무도 큰 액수로 이 돈을 마련하는 길은 딱
한가지 길 그것은 아무래도 부인과 협의를 해야 할 일이었다.
자리에서 일어서니 머리가 핑 돌았다.
옛날에 서울 외곽에서 군대 생활을 할 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고는 머리가
핑 돌았는데 형님을 뵙고 난 이후에 그런 증세가 일어난 것이니 은연중에 그는 돈으로 인해
커다란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방법을 생각하던 그는 집으로 들어가서 부인에게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 액수를 무슨 수로 마련을 해야 하지요.”
“글쎄 당신에게 좋은 수가 없소.”
“ 나에게 무슨 수가 있겠어요. 가진 것이라고는 손가락 밖에 없는데요.”
“ 손가락 말고 방법이 있을 텐데요. 당신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용하게도 잘 해결을 하던
데.”
“내가 언제요.”
“ 이 집을 마련 할 때에 천만 원이 부족하자 사흘 만에 구했던 일 기억나지 않아요.”
“ 당신은 그때가 언젠데요.”
“ 이번에도 그렇게 해볼 수가 없겠소.”
“ 어떻게 하다 보니 이번에도 나에게 짐을 지우려구요.”
“ 형님의 그 말씀을 듣고 저 분이 저럴 분이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니 얼마나 마음이 아팠
는지 몰라요. “
“형님이 아니면 오늘의 당신이 있을 수도 없었으니 런 마음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요.”
“ …………….”
“ 제 생각에는 이 집을 담보로 돈을 구할 수박에 없겠네요. 형님네도 곧 셋방으로 나가신다
는 말을 들었어요. 형님네가 고생을 하시는데 우리라고 어떻게 편안한 삶을 살수가 있겠어
요. “
“ 당신 그게 정말이란 말이요. 그리 되면 우리는 당장 어떻게 되는 건데 .”
“ 어떻게 되긴요. 설마하니 산 입에 거미줄 치겠어요. 인간은 언제나 빈손이라지 않아요.
재물이 아무리 많으면 무얼 하고 돈이 아무리 창고 가득하면 뭘 해요. 어려운 때에 서로 돕
고 살아야지요. 당신 형님에 대해서 조금도 그 은혜를 소홀히 하서는 안 되어요. “
“ 내일 은행에 함께 가서 보시자구요. 빨간 벽돌집이니 집값을 친다면 그래도 2억은 나가
겠지요. 거기에 대면 3천 만 원은 많은 돈이 아니네요. “
“집이 없으면 당신이 고생을 할 텐데.”
“우리가 옛날에 셋집에 얼마나 많이 살았는데요. 아주버님이 우리가 신혼살림을 하는데 사
람은 때를 굶지 말아야 한다면서 쌀 한가마니를 사서 놓고 가신 것 기억이나 하세요. “
“그런 일이 있었나.”
“우리 친구도 그런 말을 하던데 남자들은 살림에 대해서 그렇게 모르는가요.”
남 우균은 아내의 말을 들으면서 세상에 이렇게 비단결 같은 마음을 가진 아내와 함께 살았
다는 것을 생각하니 한없이 고마워서 뭐라 아내에게 할 말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아내를 소개해 주신 분이 바로 형님이란 사실도 새삼스럽게 생각이 나고 형님
이 여자를 보시는 눈이 혜안 중에도 정월 대보름달보다도 더 밝은 눈을 가진 분이셨던 것이
다.
" 계간 상록수문학 51호 ( 2019 가을호) 발표
金 斗 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