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접란과 글쓰기 / 박복자
1) 호접란의 꽃이 지고 이듬해 봄 따뜻한 봄바람이 베란다에 불었다. 먼저 꽃대가 뻗어 나오더니 줄기에 반점이 몇 개 있었다. 꽃대에 맺은 반점이 온점으로 풀릴 기색이 없다. 이따금 창밖에서 덜 익은 봄바람이 불어와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열릴 것 같지 않은 꼬옥 다문 꽃잎, 바람과 햇살이 창가를 드나들며 온점을 터뜨려 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꽃잎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2) 집안의 공기 정화를 위해서 베란다에 화초를 가꾸기로 했다. 실내이기 때문에 작고 앙증맞은 게 좋을 것 같았다. 집 가까이 대로에는 화원이 세 군데 있었다. 이 집 저 집 다니며 여러 가지 식물을 구경했다. 희귀하고 아름답고 예쁜 것들이 많이 있었다. 그중에서 분홍빛 나비 모양인 꽃이 눈에 들어왔다.
3) 호접란은 사람이 평안하다고 느끼는 환경에서 가장 적합하게 잘 자라는 식물이란다. 조금만 특성을 알고 관리해주면 오랫동안 꽃을 감상하며 마음의 힐링을 할 수 있는 식물이라고 화원 주인이 설명을 덧붙였다. 잘 키워서 집 안 분위기를 바꿔볼 마음으로 기대에 부풀었다. 호접란은 그 꽃핀 모양이 마치 호랑나비를 닮았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4) 집 들이 할 때 들어온 행운목, 난초, 금전수, 군자란, 스킨다비스, 호야, 김기아란, 뱅갈고무나무, 벤자민 이름 모르는 몇 가지 다육이 식물이 어우러져 제법 작은 식물원이 되었다. 베란다는 남쪽으로 향해있다. 바람이 잘 통하고 햇볕도 잘 든다.
5).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매일 식물부터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물과 영양제도 주고 어디 안 좋은 식물이 없는지 살펴본다. 줄기가 튼실해지고 새순이 돋고 꽃도 피었다. 남편도 눈을 뜨면 화초를 들여다보고는 이야기를 꺼낸다. 대화 소제도 되고 재미가 있고 활력이 솟았다. 자식 둘도 다 자라 결혼해서 텅 빈 집과 허전한 마음을 채워 주어서 더욱 좋았다.
6)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서 시청과 구청에 전화해서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안내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에 끼워진 광고지가 있었다. 모 대학 평생교육원 문예창작과에서 학생을 모집하는 내용이었다. 호접란이 화원에서 우리 집 베란다로 옮겨 오듯이 나도 글쓰기를 하려고 수강료를 내고 글쓰기 교실 회원의 한사람으로 지원서를 냈다.
7) 수업 첫 시간은 서로 자기소개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선생님께서는 글을 써서 내라고 하셨다. 여고 때 학교생활 이란 주제로 수필을 썼다. 그때 좋은 성적을 받아 문예반에서 활동한 것이 전부인 나는 어떻게 써야 할지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호접란의 반점처럼 내 글귀도 풀리지 않았다. 평소에 사느라 바빠서 일기도 한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했다. 결혼 생활 이후 글쓰기와는 너무 다른 생활을 해왔었다. 머리가 복잡하고 속이 답답하고 아득하기만 했다. 그러나 문우들의 배려로 조금씩 취미를 붙여갔다.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선배님, 여고 선배님, 글쓰기의 선배님들과 어울려 시간이 언제 흘러갔는지 몰랐다.
8) 베란다의 꽃기린은 작은 빨간 꽃봉오리를 잉태했다. 시클라벤은 일년내내 꽃을 피웠다 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수국도 이젠 제법 탐스럽게 꽃을 피워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호접란은 이제 온점을 찍었다. 글쓰기에 진전이 더딘 내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글쓰기를 시도해도 A4 용지 한 장을 다 채우기가 너무너무 힘들었다. 꽃에 물을 주면서 기도한다. 바람이 잘 통하고 햇볕이 잘 드는 곳으로 자리도 옮겼다. 다른 문우님들은 글을 읽는 사람이 공감이 가도록 글도 잘 써왔다.
9) 글쓰기 강의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다녔다. 갑자기 학생이었던 아들의 말이 잠깐 머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엄마 아이들 왜 학원 가는지 알아요? 거기 놀러 가요 공부는 학교에서 선생님 설명 잘 듣고 집에서 예습 복습만 잘하면 됩니다.라고 하던 말, 번쩍 정신이 들었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 글을 쓰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빅토르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읽고 박경리작 토지소설을 읽었다. 이덕무의 문장의 온도 책도 마련했다. 마음이 바쁘고 주의가 산만했다. 일이 바쁘기도 했지만 끈을 놓지 않았다. 강의 시간은 놓치지 않고 열심히 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조금 안정이 되면서 되던지 안되던지 한번 써 보기나 하자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쓰지 않고는 답이 없었다. 풀리지 않는 매듭을 풀려고 노력했다. 알면 알수록 어려웠다. 문우들 사이에 낀 내 모습이 우리 집 화원에 놓인 호접란과 같았다.
10) 밖엔 바람이 불고 구름이 몰려오고 한바탕 천둥 번개가 치더니 비가 쏟아진다. 날은 밝아오고 해가 서산을 넘 들길 수십 번, 물도 주고 거름도 하며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한 장의 꽃잎이 열리기 시작했다. 분홍빛 나비 모양의 꽃잎이 예쁘게 피어났다. 호접란은 어렵게 꽃을 피우지만 꽃이 피면 6, 7개월을 피어있다. 글쓰기도 조금씩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늦게 시작한 글쓰기지만 호접란처럼 길고 예쁘게 글을 쓰고 싶다.
첫댓글 호접란에 대해 잘 풀어내셨네요. 제목은 <호접란>으로 하십시오. 내일 수업 때 같이 보도록 하겠습니다.
네.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