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장애인 문제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묻는다
근육장애인은 시한부 생명
여러분은 가끔 이웃이나 매스컴을 통해서 근육병을 앓는 환자나 형제, 자매 또는 가족의 모습을 보거나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장애유형이나 질환을 앓는 사람들의 모습보다 유독 근육병에 대한 보도나 방송횟수가 많은 이유를 한번쯤 생각해 보셨는지? 그 이유는 근육병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특성과 결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근육병이란(Progressive Muscular Dystrophy)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또는 행동하게 하는 근육들이 진행성 위축 혹은 가성비대로 근력약화를 동반하여 점차 보행과 모든 활동에 장애를 가져오게 되어 신체를 스스로 가누기 조차 어려워지는 병이다. 따라서 모든 일상생활을 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에는 심장근육과 호흡근육까지 침범하여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다가 호흡곤란 및 기타 합병증 등으로 사망하는 현대의학으로서는 치료조차 할 수 없는 질환이다.
근육장애인 당사자가 시한부 생명이기에 겪는 정신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조차 없거니와 반성열성유전질환으로 근육병 자녀를 출산했다는 죄의식과 상시보호와 간병을 전담해야 하는 가족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말이나 글로써 표현하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한 가족 내에 여러 명의 근육병 환자가 있으며 자식은 근육병을 앓고 있고 딸들은 이 병의 보인자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 살아가는 그 심정을 누가 알겠는가? 그로 인해 가족간의 갈등은 접어두고라도 대다수가 가족 해체와 해체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현재 근육병을 앓는 사람들의 수는 의료계에서 최소한의 추정치로 약 14,000여명 내외로 추정하고 있으나 정부에서는 근육병 출현율을 기준으로 추정만 하고 있을 뿐 지원 제도나 계획, 예산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재가 및 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근육장애인의 정확한 수치와 실태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다. 단지 통계청의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에 따라 근육병을 근위축증(Muscular dystrophy), 근경직성 장애(Myotonic disorder), 선천성 근병증(Congenital myopathy), 근위축성측삭경화증(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척수성근위축증(Spinal muscular atrophy) 등 이와 유사한 질환으로 분류하여 희귀ㆍ난치성 질환자로 등록받고 있을 뿐이다.
당사자의 참여를 위해
1980년대 대학병원에서조차 근육병이 무엇인지 진단내리지 못하던 시절에 근육병을 앓는 한 젊은이가 아마추어 무선 통신(HAM)을 통해 근육병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생긴 것이 한국근디스트로피협회(잔디회)이다. 이 단체는 의료계와 우리 사회에 근육병을 알리고 회원을 규합하고 해외의 최신 의학정보를 각 회원에게 알리며 사회적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으며 이것이 한국근육장애인협회의 모태가 되었다.
잔디회의 20여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초창기 순수한 의도와는 달리 최근 몇 년 전부터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당사자들의 욕구와 권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 점과 다수의 회원을 위한 잔디회가 아니라 의료적 모델에 입각해서 재활중심으로 소수의 몇몇 대상자들의 이해와 욕구에만 치중해서 진행되어 온 점이다. 또한 근육병 당사자들의 의견과 판단, 결정이 무시되는 것과 회원을 위해서가 아닌 소수의 사람을 위해 근육병 회원을 앞세워 후원금을 요청하고 거기에 전문가를 표방한 이해당사자들이 개입하는 등 이상한 구도로 흘러갔다.
위와 같은 이유로 당사자주의를 외치는 대다수 회원들이 스스로의 목소리로 단순히 의견과 판단결정 배제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나 억압의 타파가 아닌 참여에 의한 발전을 위해 새롭게 금년 3월 16일에 한국근육장애인협회를 창립하게 된 것이다.
현재 근이양증부모회(이하 근보회)가 근육병 환우들의 봉사단체를 표방하고 있으면서도 희귀ㆍ난치성 질환 연합회에 가입하여 근육병 정책과 지원제도에 참여하고 있으며 한국근육병재단은 근육병 치료를 목적으로 설립되어 있다.
당사자 입장에서 이 과정을 살펴보면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근육병 자녀를 둔 부모들의 절박한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는 부분이 있으나 근보회의 창립 목적은 근육병 환우를 위한 봉사가 주 목적임에도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결국 근육모세포이식술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을 무리하게 도입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결과이다. 내 자식을 먼저 치료하고자 하는 이기주의가 분열을 초래했고 아직까지 그 후유증은 고스란히 근육병 당사자의 몫이 되고 있다.
그러면 한국근육병재단은 어떠한가? 근육병 당사자들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자로 삼아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희생한다는 취지로 후원금을 받고 근육모세포이식술을 시행하였으나, 몇 케이스를 시술했는지 결과가 어떠한지 가능성이 있는 치료시술인지 실패한 것인지 조차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뜬소문만 난무할 뿐이다. 이렇게 분열된 이유는 우리들의 문제가 의료적 모델에 입각하여 재활중심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판단과 결정이 무시된 채 부모 혹은 의료관계 종사자들이 오랫동안 당사자들의 입장을 대변해왔고 우리들의 결정을 대행해온 당연한 결과이다.
의사나 근육병 당사자, 환자 부모는 동병상련의 아픔을 공유하면서도 근육병에 대한 정보나 서로간의 지지세력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 분열과 대립은 이해되어야 하지만 근육병 문제의 본질을 덮어두고 호도하거나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한다거나 마치 권력인양 행세하는 일들이 다반사처럼 보여지는 것이 근육병 당사자의 시각이다.
환자가 아닌 장애인으로 거듭나기
근육병 당사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가장 열악한 처지에 있으면서도 우리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근육병 중 여러 타입이 있지만 최초 진단시에 받는 충격이 상당히 오래가고 스러져가는 생명에 대한 치료의 갈망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사람이 장애를 입으면 겪게 되는 과정이 있는데 그 중에 부정기와 혼란기를 가장 오랫동안 겪는 유형이 근육병이다. 그렇기에 치료법에 매달리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기 자신이 근육병으로 인한 장애인이 아니라 여전히 환자라는 틀 속에 사로잡혀 있게 된다. 자신으로 인해 가족간의 갈등요인이 되고 차별과 억압의 대상이 되면서도 환자라는 의식 속에 갇혀 있기에 직업 재활이나 사회활동 참여에 소극적이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는 두 가지 원인으로 볼 수 있는데 첫째는 근육병이 불치라는 이유로 부모가 치료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집안에 자식을 편안하게 두는 것이 자식을 위하는 길이라고 여겨 독립적인 인격체로 양육하지 못한 결과이다. 또한 열악한 교육환경으로 인해 인간관계 형성과 사회성 발달저해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근육병으로 인한 장애 잔존기간과 유병기가 장기간임에도 환자라는 의식 속에서 장애인이라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다른 장애 유형보다 단결력이 약하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의 노력과 힘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제는 개인마다 역량을 키우고 참여를 통한 발전을 모색할 것이다. 전국에 산재해 있는 근육병 회원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욕구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근육병이 비록 반성열성유전으로 모계에 의해 유전되는 질환이지만 그 1차적 발생원인은 산업화로 인한 사회적인 것이다. 먹을거리의 대량생산과 보존을 위한 화학약품 첨가와 공기, 물 등의 오염과 공해의 증가로 인해 인간의 유전자 손상을 가져오고 그 결과 암이 발생되거나 희귀ㆍ난치성 질환자의 출생으로 이어진다는 사회적 발생원인을 알리고 지지를 구하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재활이 아니라 자립을 위해
장애인 복지의 궁극적 목표가 정상화와 사회통합에 있다면 이 목표 달성에 가장 사각지대에 머물 수밖에 없는 근육장애인 모두가 이제는 스스로의 역량을 키워 우리들의 목소리로, 우리 각자의 자립을 이루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모든 노력과 활동을 펼쳐나가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우선 근육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 사업으로 근육장애가 이 사회에서 말하는 부모의 1차적인 책임이 아니라 사회적인 책임임을 강조할 것이다. 출산율이 점점 낮아지는 추세에서도 희귀ㆍ난치성 질환자의 출생빈도는 점점 높아지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렇기에 근육장애인의 문제는 당사자나 가족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이며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인권의 문제로 부각시켜 나갈 것이다. 아울러 사회적 지지 확보에 노력하고자 한다.
그동안 정부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차별 등을 개선하고 생계보호, 취업 및 기타 재활서비스를 위한 기틀을 마련해왔다. 최근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에서 내부장애와 정신장애를 확대하였으며 당사자들을 중심으로 한 장애범주 확대를 수용하고자 하는 정책 전환을 꾀하고 있다. 우리 근육장애인들은 소위 재활패러다임에서 말하는 클라이언트조차 되지 못하고 있으며 열악한 현실 때문에 시설 입소조차 불가능한 실정이다. 그 유일한 대안은 지역사회에서 소득을 보장받고 재활이 아니라 자립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지원시책 마련이다. 장애범주 확대에 따른 근육장애인 별도 분리, 의료비 및 간병비 현실화, 근육장애인 리더양성, 협회소속 각 지회마다 자립생활센터 설립, 자립생활을 위한 활동보조인 파견 등 우리에게 필요한 지원제도를 만들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