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서 그리스도의 권위
四季 朴埰同 (2021.06.14.20:5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해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분 말을 들을지니라.(신 18:15)
옛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했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마 5: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가 그분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마 7:28~29)
그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해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대답해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해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하나님께서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됐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해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해 잘 예언했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했느니라.” 하시고, (마 15:1~9)
산상보훈에서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권위는 모세의 권위와 대조되는 권위가 아닌 모세를 그릇되게 해석해 가르친 장로들 유전, 사람의 계명을 맹종해 이를 가르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권위와 대조되는 권위다. 즉, 산상보훈에서 “옛사람”은 칼빈 선생님과 헤르만 바빙크 목사님 해석대로 ‘모세를 그릇되게 해석한 유대교 장로들’을 뜻하지, {복음과 율법의 관계}1)에서 새관점파 대표신학자 제임스 던 “그리스도의 전권주장”론을 따르신 서철원 목사님 주장인 ‘모세’를 뜻하지 않는다. 바꿔 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신명기 18장 15절에 예언된 선지자’, “나(모세)와 같은 선지자”2)이셨다. 모세와 대조※)되는 선지자가 아닌 모세와 같은 선지자이셨기에 선지자 그리스도께서는 산상보훈에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 5:17~19) 하신 것이다.
성육하시기 전 성 삼위 성자 여호와 주님께서는 모세 율법의 입법자이셨다. 즉, 모세 율법은 여호와의 영원한 율법이다. 그런데 “산상보훈 영감靈感이 모세 율법 영감보다 월등하다.”는 제임스 던 해석3)을 따른 서철원 목사님 주장대로라면, 여호와의 율법을 “진리”로 노래한 <시편 119편>은 구약 성도들만이 노래해야 할 성경일 뿐이다. 물론, 이런 주장은 세대주의자들이나 하는 주장이다.
그런데 {복음과 율법의 관계}에서 “옛사람”은 ‘모세’라며 서철원 목사님이 인용하신 책 ‘제임스 던 {Jesus and the Spirit}’, 이 책에서 인용하신 쪽은 ‘42, 53, 79쪽’이다. 이 쪽들을 살펴보고 싶어 몇 주 전에 이 책을 검색해 봤다. 책값이 만만치 않았다.
============
1) 서철원 {복음과 율법의 관계} (서울: 도서출판 엠마오, 초판 1987). 서철원 {복음과 율법의 관계} (서울: 총신대학교출판부, 개정판 2000)
2) 그리스도께서는 ‘신명기 18장 15절에 예언된 선지자’, 모세와 ‘같은’ 선지자이셨음을 논증한 글로는 ‘최낙재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보라.} (서울: 성약출판사, 2007)’에서 [계시와 성경 (2)]를 참고하라. 즉, 이 책 65쪽~74쪽을 참고하라.
3) ‘서철원 {개정판: 복음과 율법의 관계} (서울: 총신대학교 출판부, 2000)’ 156쪽. 즉, 이 책 [10장: 예수의 메시아적 권위] <1. 예수의 전권 주장>에 있는 주장이다. 각주에 ‘제임스 던 {Jesus and the Spirit} 53쪽’에서 인용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 글 다음 제목인 <2. 산상수훈의 반명제>에서 서철원 목사님은 “헤르만 리델보스가 주 예수께서 인용하신 본문은 옛 랍비들이 해석하고 가르친 것이지, 율법 본문에서 직접 인용이 아니라고 한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하신다. 아주 그릇된 이 주장은 ‘서철원 {서철원 박사 교의신학 제4권: 그리스도론} (서울: 쿰란출판사, 2018)’ 126쪽~135쪽에도 나온다. 즉, 이 책 <5.3.2. 예수 그리스도의 전권 주장>에도 나온다.
※) 다음은 ‘김홍전 {사도행전 강해 ⑥: 이 믿음에 거하라.} (서울: 성약출판사, 2009)’에서 옮기는 강설이다. 들여쓰기 없이 옮긴다. 참고로, 이 강설에 나오는 “정통주의를 주장하는 근본주의자들”이라는 용어에서 나는 세대주의자들을 떠올렸다. 배경색은 내가 칠한다.
************
제9강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
성경본문: 사도행전 15:6~11절
…(전략)…
구약과 신약의 대립?
여기서 우리들이 잠깐 생각하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의 대조(contrast)와 대립이라는 문제를 때때로 듣게 되고 말하는데, 구약과 신약의 대조와 대립이라는 말부터가 원래 신학적으로 볼 때는 그렇게 좋은 내의內意를 갖는 것이 아닙니다.
…(중략)…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많은 사례를 들어서 구약과 신약을 대조하는 일을 했고, 또 자유주의 신학자뿐만 아니라 상당히 무슨 지식적인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그런 일을 했습니다. 우리 한국에는 그런 정도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없어도 미국이나 영국의 강단에서는 때때로 그러한 이야기를 쉽게 하는 것을 봅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바울 위에 건설한 이 새로운 신학이면 족한 것으로 생각한다. 구약에 나타난 것은 역사적인 문헌으로서 그런 것이 과거에 존재했다는 역사적인 의의만을 지닐 뿐이다. 혹은 계시의 발전이라는 의미에서는 태생기나 아동 시대, 즉 미숙한 계시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면 가질지언정, 충만한 계시의 사실로서 우리에게 실용될 수 있는 점에서는 구약이 별로 필요 없다.’ 하는 주장입니다. 이런 주장은 엄격한 의미로 볼 때 구약이 히브리적인 유전遺傳이라는 생각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중략)…
그런고로 우리 교우들은 구약 사상과 신약 사상의 대조라는 말을 주의해야 합니다. 그런 대조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중략)… 우리가 주의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주의를 고양하고 강조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고, 이미 유대주의와는 상관없다고 할지라도, 구약에 있는 사상을 파괴한다든지 무시한다든지 구약 사상의 테두리에서 벗어나는 것을 따로 만든다든지 하신 일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에서 계시하신 거룩한 복음을 구체적으로 좀 더 명료하게 발전한 형태로 보이셨을지언정, 구약에서 말하지 않고 구약과 전연 상관 없는 새로운 것을 감췄다가 그 비밀을 나타내신 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과거나 지금이나 충만하고 충분한 계시로 구원하시는 것이고 구원받기에 합당한 계시를 주시는 까닭에 아브라함이 됐든지 이삭이 됐든지 모세가 됐든지 누가 됐든지 핑계하지 못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주여, 저희들은 계시가 넉넉지 않고 복음이 넉넉지 않았던 까닭에 구원을 못 받았습니다.” 하고 말하지 못하게 다 만드셨다는 말입니다.
그런고로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복음과 은혜’를 대립시키는 것은 이른바 정통주의를 주장하는 근본주의자들이 하는 짓이지, 성경이 가르친 사상은 아닙니다. 한쪽에서는 자유주의자들이 함부로 말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른바 정통을 가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통으로 스스로 자인하는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구약에도 율법이 있고 복음이 있고 신약에도 율법이 있고 복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칙은 신약에도 있고 구약에도 있고, 사람이 따라야 할 규범은 신약에도 있고 구약에도 있는 것입니다. 신약은 반법주의反法主義(antinomianism)이고 구약은 율법주의(legalism)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러한 까닭에 구약적인 사상이라고 할지라도 성경의 사상이고 신약적인 사상이라 할지라도 성경의 사상입니다. 서로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성경의 사상이 구약에서부터 신약까지 면면히 이어져서 일괄해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지금 여기에서 의식儀式과 의문儀文을 가지고 바리새인 여당餘黨이 안디옥까지 올라와서 한 이야기는 성경의 사상이 아니고, 다만 곡해曲解한 유대주의(Judaism) 사상을 전한 것입니다. 사도들과 바울이 일어나서 맹렬히 싸운 것은 구약의 사상이 나쁘다고 해서 싸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명료하게 파악하고 넘어갈 것이 이것입니다. 예루살렘 회의의 중요성이라고 할 때 자칫 잘못하면 그 회의가 구약에 대항하고, 구세대 것에 대항하고 ‘이제는 새로운 언약이 왔으니까 옛날 언약이라는 것은 다 무효다.’ 하고 나아간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신약과 구약을 대조한다고 하지만, 신약이 구약을 하나라도 위배하는 것이 있습니까? 신약이 옛날에 맺은 언약을 더 강조하고 더 명료하게 하고 더 보강한 것은 있을지언정 위배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은 구약대로 그대로 유효한 것입니다. 구약에서 누구 율법을 행해서 구원받으라고 한 사람이 있습니까? ‘너희 가운데 율법을 행해서 구원받을 영혼이 없으니, 그런고로 너희는 내가 주는 복음을 믿으라.’ 하는 것이 구약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의 어디에서도 ‘너희들은 예수만 믿으면 되고 모든 율법을 파괴해도 괜찮다.’고 한 데가 없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마 5:17)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의 정신과 신약의 정신은 동일함
그러한 까닭에 바울 선생이나 바나바나 사도들이 일어나서 예루살렘 회의에서 강조한 문제는 구약의 의식儀式과 의문儀文에 대한 유대주의 해석을 반대한 것이지, 구약의 할례가 담고 있는 계시를 무시한 것이 아닙니다.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거룩한 언약에 대한 신앙입니다. 거룩한 언약에 대한 신앙이 있다면 할례를 받듣지 안 받든지 이제는 문제 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외적인 형태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중략)…
이와 같이 바울 선생께서 갈라디아서에서 말씀하신, 그 강력한 반대 의사는 구약에 대한 반대가 아닙니다. 구약의 정신과 참된 뜻을 추호만큼도 반대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은 그 정신을 바로 터득하셨기에 그 정신을 비틀어 왜곡한 유대주의 선생들을 반대하신 것입니다. …(중략)… 구약 시대에도 믿음이라는 조건이 절대로 필요했고, 모든 시대를 통해서 결국 도달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확신하지 않고서는 구원받을 영혼이 없습니다. 그리고 내부에 들어가서 본다면, 모든 의식과 제도를 통해서는 중생重生이라는 사실이 그에게 확증돼야 합니다. 중생 없이는 노아고 아브라함이고 이삭이고 모세고 다윗이고 구원을 못 받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아니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가 없습니다(요 3:3). 그런데 구약 시대 그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못 들어가고 가만히 어디 다른 데에 갇혀 있다는 그런 소리들을 많이 합니다.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야고보의 연설과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
…(생략)…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라.
…(생략)…
신령하게, 자유스럽게, 자연스럽게
…(생략)…
기도
…(생략)…
1966년 8월 17일 수요일

첫댓글 좋은 글 소개 감사합니다!
옛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했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마 5:21)를 본문에 보충했습니다. 또한, 각주를 보충했습니다. 적습니다.
3) ‘서철원 {개정판: 복음과 율법의 관계} (서울: 총신대학교 출판부, 2000)’ 156쪽. 즉, 이 책 [10장: 예수의 메시아적 권위] <1. 예수의 전권 주장>에 있는 주장이다. 각주에 ‘제임스 던 {Jesus and the Spirit} 53쪽’에서 인용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 글 다음 제목인 <2. 산상수훈의 반명제>에서 서철원 목사님은 “헤르만 리델보스가 주 예수께서 인용하신 본문은 옛 랍비들이 해석하고 가르친 것이지, 율법 본문에서 직접 인용이 아니라고 한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하신다. 아주 그릇된 이 주장은 ‘서철원 {서철원 박사 교의신학 제4권: 그리스도론} (서울: 쿰란출판사, 2018)’ 126쪽~135쪽에도 나온다. 즉, 이 책 <5.3.2. 예수 그리스도의 전권 주장>에도 나온다.
유학 전 한국 교회에 만연했던 세대주의 신학, 그 누룩을 제거하지 못하신 채 새 관점 대표 신학자 제임스 던 그릇된 주장을 덥석 받아들이신 서철원 목사님 신학은 이처럼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신학】입니다. 화란 자유대학교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하신 뒤에 “스승 박형룡 목사님 종말론은 전천년 세대주의 종말론”이라며 하시며 ‘세대주의 종말론’을 질타하셨던 서철원 목사님은 그리스도를 【율법을 범한 죄인】으로 만드는, 아주 위험한 주장을 하십니다.
‘서철원 {종말론 강의} (여천: 여천 감도교회1993)’ [제2강]에서 “율법을 범하는 일이 예수에게서 예사로 진행됐다.” 하신 것입니다. 물론, 이 주장은 ‘기독론’과 ‘기독론과 얽힌 구원론’에까지 치명타를 입히는 아주 그릇된 주장일 수밖에 없는데, 결국에는 새 관점 신학과 똑같이 기독론 뼈대인 ‘그리스도 능동(율법 준수) 순종’과 구원론 뼈대인 ‘그리스도 능동 순종의 의義, 그 의의 전가’를 부정하는 데로 나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새 관점 신학이 ‘그리스도 능동 순종과 그 의의 전가’를 부정함에도, ‘그리스도 능동 순종과 그 의의 전가’를 가르치는 【개혁 신학】을 두고 “이런 신학을 새 관점학파라고 하는데, 그리스도를 성경대로 믿지 않고 구원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만들어낸 사변입니다. 능동적 순종의 의, 수동적 순종의 의 교리는 전적으로 사변의 산물이고 신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하는, 개혁 교회 조직신학자라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망언】을 하고야 마셨습니다. 링크합니다.
{바른 믿음} 서철원 <능동순종, 종교개혁 허물어 다시 율법주의-로마교회로 복귀>
http://archive.fo/lfWdT
추가 설명과 댓글 잘 참거하겠습니다.